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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내가 선교를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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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가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선교(宣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선교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그대신 전도(傳道)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영어로 선교는 mission이라고 하고, 전도는 evangelism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두 말이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두 말의 의미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교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2년 Willingen 세계 선교 대회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라는 사람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라는 주제로 주제 강연을 했습니다. 그는 선교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지 교회가 아니라고 하면서 지금까지의 교회 중심의 선교 사업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가 사용했던 말이 유명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선교란 구원받은 전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지고 아들을 보내심 곧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여호와 하나님→교회→세상이라는 이해를 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라는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이런 구조를 인정할 수 없고 여호와 하나님→세상→교회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으시고 세상이 그의 계획의 초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道具)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온 세상(cosmos)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교회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합정 역에서 내려 한강 쪽으로 100m쯤 내려와 길을 건너면 서울 외국인 묘지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가 일명 양화진이라는 곳으로 이곳은 115년 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들어왔던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묻힌 선교사 중 켄드릭(Kendrick Ruby Rachel, 1883~1908)이라는 여자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1907년 10월에 개성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1908년 6월 급성 맹장염으로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헌신적으로 일하였습니다. 그녀의 묘비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만일 내게 일 천 생명이 있으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 ” 고 새겨져 있습니다.
켄드릭 선교사는 텍사스 엡윗 청년회의 후원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 하루 전에 엡윗 청년회에 편지를 보냈는데 마침 그 때 엡윗 청년회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연합 선교대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미지(未知)의 나라에서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그녀의 소식은 대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큰 슬픔에 젖었고 대회 분위기는 침체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하고 같지 않습니다. 그 선교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20명이나 되는 사람이 선교사로 지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20명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녀의 비석에 새겨진 글은 그녀가 죽기 하루 전에 이 곳에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텍사스 엡윗 청년회는 해마다 헌금을 해서 한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후원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십니다. 사람의 일에는 절망이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에 새로 오시는 분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이 교회는 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주 흐뭇하겠지요 아닙니다. 아주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선교를 열심히 하는 교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를 조금씩 알아가는 교회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선교에 대한 지식은 보잘 것 없습니다. 선교의 경험은 더욱 많지 않습니다.
제가 선교에 대하여 말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열망(熱望, desire)입니다. 신구약 전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열망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세요.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1 ”전능하신 자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또 구약성경 마지막 말라기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3 신약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읽어 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5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된 베드로도 이점이 궁금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6 그저께 새벽기도회에서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세상) 끝이 오리라. ”7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길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 히브리서 11:6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여러가지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도 믿음이 있어야 탈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비행기도 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음식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비지네스도 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사람을 사귈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믿음이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한가지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자기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모두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정성드려 읽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선교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선교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직도 선교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대한 설교를 하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과거에 몰랐을 때는 그랬습니다. 교회 안에서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선교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그게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구원의 은혜가 아닙니까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아니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를 그의 선교의 도구로 쓰시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결코 다른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둘째로, 제가 선교를 말하는 이유는 제가 여호와 하나님께 빚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들 있지요 크레딧 카드라는 것이 다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레딧 카드에 조금만 빚을져도 빨리 갚아야지 못 갚으면 안절부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저께 아침에는 일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다가 일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받거나 호의를 받으면 그대로 바로 갚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부담스러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야, 일본 사람들 예수 믿기 힘들다는데 일단 예수를 믿기만 하면 제대로 믿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빚지고 못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빚을졌다. ” 는 생각을 바로 깨닫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보세요.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8 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 무슨 말입니까 내가 진 빚 빨리 갚아야지 빚지고는 못살겠다는 것입니다.
아까 켄드릭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년도를 계산해 보니까 25살에 죽었데요. 조선에 와서 1년, 정확하게는 8개월 일하고 급성 맹장염으로 죽었습니다. 제대로 선교를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生))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따로 계십니다. 그녀가 10개월 동안 무슨 마음으로 어떤 선교를 했겠습니까 다 알 수는 없지만 ”만일 내게 일 천 생명이 있으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 ” 고 편지에 썼던 글에서 조선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왜 그녀는 25살 꽃다운 나이에 조선 선교사로 지원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진 은혜의 빚, 사랑의 빚을 갚으려고 그녀는 조선으로 왔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말씀을 다시 인용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그)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삶을 어둠의 삶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의 삶을 빛의 삶으로 묘사합니다. 또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9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이유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까 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으셨습니까 아무 이유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을 믿은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은혜의 빚을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셋째로, 제가 선교를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부요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우리는 선교의 삶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나 자신을 위해서는 가난해 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가치는 결코 내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여기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의 삶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내 일에 충실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대답은 언제나 분명합니다. 나의 삶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너그러웠느냐, 내가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일로 인해 가난해졌느냐,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일 때문에 나 자신을 희생했느냐, 여기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 나오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지요 이 사람은 성공한 사람의 모델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일마다 잘됩니다. 농사면 농사, 장사면 장사 하는 일마다 잘돼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모두가 부러워 하는 사람인데, 예수님의 눈에는 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많이 모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부요하지 못했습니다. ”10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인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현재의 삶을 위해서는 준비한 것이 많았지만 영생을 위해서는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11 고 하셨습니다.
유럽을 다녀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중세기 때 지은 교회당에 갔더니 그 교회당 벽에 큰 글씨로 ”그 다음은(What is next)” 이라고 씌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글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안내하는 사람이 이렇게 설명을 해 주더랍니다. 어떤 선생에게 젊고 야망에 찬 제자가 있었는데 이 제자가 하도 영리하고 똑똑해서 선생은 이 제자가 장차 대성(大成)할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선생은 이 똑똑한 제자의 장래를 생각해 보다가 문득 그가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이 제자를 불러 물었답니다. ”자네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예, 선생님 밑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그 후에는 무엇을 하겠는가” ”저는 변호사가 되어서 억울한 사람을 도와 주고 돈도 벌겠습니다. ” 선생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당황한 제자가 ”예, 나이가 되면 은퇴를 할 것입니다. ”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생은 또 물었습니다. ”그 다음은” ”예, 지금까지 벌어 논 돈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지잴 것입니다. ” ”그 다음은” ”글쎄요. 아마 저도 다른 사람처럼 죽게 되겠지요. ” 제자의 말을 들은 선생은 ”잘 알았네. 그만 돌아가 보게. ” 하면서 이 제자를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자가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선생님이 묻던 질문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결국 이 제자는 법학의 길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섬기던 교회 벽에 ”그 다음은” 하고 써 놓았다고 합니다.
인생을 길게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이 70-80년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까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부요한 일입니다. 선교는 나 자신의 일에는 가난해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부자가 되기 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제가 선교를 말하는 이유입니다.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세상 모든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12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는데, 어찌 선교를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빚지고는 못산다고 하고, 크레딧 카드에 빚이 조금만 생겨도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빚을 지고는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제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빚을졌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제가 선교를 말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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