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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선교와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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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얼굴이 좀 많이 탓습니다. 깜둥이는 아니지만, 지난주간 북방단기선교여행을 어제밤 저는 어제 오후6시에 도착했고, 또 나머지 분들은 교회 버스로 인천공항에서 광주까지 참 오랜시간 걸려서 밤 10시 넘어서 주말이라 도로가 아주 정체가 많아가지고 밤 10시 넘어서 도착을 하셨습니다.
아주 어려운,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나왔습니다. 선교는 고난이다. 선교는 걸음마다 고난의 현장이었음을 다시한번 확인했고, 동시에 그러한 고난의 걸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행하셔서 순간을 은총의 순간으로 바꾸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분들이 우리 교우들을 만나서 당신은 어느 교회 다닙니까 물을때에 광주벧엘교회에 다닙니다. 이렇게 대답했을 경우 그 벧엘교회 당신이 다니는 벧엘교회의 비젼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섬기는 벧엘교회의 꿈은 무엇입니까 다시말하면 벧엘교회의 목표와 사명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받았을 경우 뭐라고 대답을 하십니까
부흥과 선교입니다.
또 대답을 해야될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당신이 다니는 벧엘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벧엘교회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이 교회도 개성이 있는 것입니다. 캐릭터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교우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요, 형제교회를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이렇게 대답하시면 이게 다 주의 앞면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식구로서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교회의 성격과 우리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의 비젼과 꿈인 이 부흥과 선교는 또 무엇이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 벧엘교회에서 말하는 비젼으로 말하는 부흥은 어떤 부흥이고 선교는 어떤 선교냐 이것입니다. 부흥이라고 할때에 아주 오해가 많습니다. 자기 개교회 성장을 주로 말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 우리 교회 비젼으로서의 부흥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제가 가끔가끔 말씀을 드렸지만 다시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교회의 비젼인 부흥은 주님 오심을 대망하고, 바라보고, 준비하는 일로서 교회의 갱신과 잃은 자를 찾는 그리고 앞으로 전 지구적으로 임하는 제2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대비하고 참여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선교는 우리가 말하는 선교는 주님오심을 준비하는, 부흥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어나고 있는 마지막 선교의 단계인 미전도종족을 향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선교사역중에 특별히 우리 교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특별한 선교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이 북한입니다.
북한이 문을 열고 북한 지하교회가 자유를 얻고 북한땅에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가 되며, 무너진 제단들이 회복되는 비젼을 품고 우리교회는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지역의 미전도종족들을 선교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여러 지역에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중앙아시아, 중동, 러시아 그 외 서남지역. 미전도종족을 향해서 선교하고 있습니다만 이 선교의 주 목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교목표는 북방입니다.
우리교회는 이 북한선교를 위해서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역을 해 왔습니다. 특별히 탈북자를 도와주고 탈북자를 살펴주는 일, 그리고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빵 보내는 일들, 저 북방의 조선족 교회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일, 그리고 이러한 사역을 하고 있는 여러 선교사님들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일들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새천년 2000년도에 들어와서 3년전부터 이 북방 선교 현장을 직접 답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북방단기선교 여행팀을 파송해 왔습니다. 이렇게 북방선교의 비젼을 품고 사역하는 중에 점차 본격적으로 이 북방선교를 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서는 시무장로님중에 한분인 고장로님 부부를 전임 선교사로 금년 7월에 파송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러던 중에 금년 지난 7월 29일 월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북방단기선교여행팀을 파송한 것은 다른 어느때보다도 더 의미가 있는 사역이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보고는 다음주일 밤에 보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시간에 우리 교회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 선교의 비젼과 사역의 테두리 안에서 이번 북방단기선교 여행의 의미를 교우 여러분에게 몇가지로 정리를 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주보에 보신대로 다른 설교를 준비하고 갔습니다만 어제밤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지금 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교우 여러분과 나누도록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제밤에 좀 몸이 피곤하기 때문에 이 설교문을 기도하고 작성하는데 글자가 삐뚤삐뚤해요. 지금도 펜대를 잡으면 좀 떨립니다. 그러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 선교에 대한 말씀을 오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북방단기선교여행을 위하여 협력하고 지원해주신 교회와 당회,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의 가정,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선교 대열에 보낸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고 협조해주신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해서 기도해주신 교우들, 또 중보기도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대단히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결단해서 이 선교단기여행팀에 참여해주
신 24분의 교우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그리고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선교여행 짧은 일정이지만 이 일에 참여하는 그 자체가 선교의 제단에 내 몸을 헌신하는 것이고, 희생하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특별히 이번 선교여행은 지금까지 보다도 고생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북방단기선교 여행의 세가지 의미를 교우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 북방선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맨 첫단계로 그 북방 현지에 우리 교회가 신뢰할 만한 사역자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선교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 교회가 본격적으로 이 북방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는 보다 더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그런 분이 필요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고선교사 부부를 전임선교사로 파송하도록 하신 것이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그리고나서 이제 그분들이 북방으로 떠나고 나서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를 대표해서 이번 북방단기선교여행팀이 현장에 가서 우리 교회의 이름으로 북방에 가 있는 고선교사 부부를 거기에서 만나서 교회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짧은 만남 후에 연길공항에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려고 애를 썼습니다. 얼굴을 오래 볼 수가 없어서 좀 매정하지만 얼굴을 딴데로 돌리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고향과 사랑하는 교회와 두 남매를 뒤에 두고 먼 북방땅에 가 있는 우리 장로님, 이제 선교사의 신분으로 그곳에서 다시 얼굴을 봤을 때 참으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 현지 사정과 앞으로 어떻게 북방선교를 준비하고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서 협의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방향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사역을 진행하십시오. 하고 격려해 드렸습니다. 확인해드렸습니다. 여기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음에 대해서, 북방선교의 특수성에 의해서 밝힐 수 없음에 대해서 우리 교우들은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어떠튼 우리 교회는 북방선교라고 하는 이 마지막 절박한 사명을 위해서 저 북방의 선교의 전초기지. 베이스 캠프를 든든하게 차려 놓은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은총의 표징입니다.
 둘째로, 이번 북방단기선교여행에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 단기선교여행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이 참여하신 일입니다. 선교는 생각과 열의, 그리고 선교사들의 현장을 다녀오신 분들의 간증과 보고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한 선교의 감각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저 자신도 그랬어요. 선교를 해야된다. 알고 있습니다. 가슴도 뜨겁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가서 보고 느끼는 것, 전혀 다릅니다. 왜 눈물이 흐릅니까 왜 그토록 가슴이 아픕니까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단기선교여행팀을 이곳 저곳으로 여러 번 보냈습니다. 그때마다 주로 청년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에 딱 한번 장년팀이 다녀오긴 했습니다만, 물론 청년들이 이러한 선교현장을 확인하고 저들 나름대로 선교의 대열에 참여하는 것도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이건 부분적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북방선교라는 절대적인 마지막 때에 절박한 사명을 받고 순종해야되는데, 이 여호와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북방선교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회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이 선교현장을 직접 확인해야 되겠구나 그런 절실한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보고와서 전달해주고, 전달해주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구요. 그런점에서 이번 북방단기선교여행팀에 장로님들 가정, 다섯가정이 참여한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 교회는 이와같은 단기선교여행팀을 파송해야 합니다. 금년부터는 장년팀을 북방으로 청년팀을 따로 떼서 남쪽으로 필리핀으로 보냅니다.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고 또 더 많은 팀을 보낼 것입니다. 이번에 가서 봤더니 중,고등부 학생들도 보내야겠구나. 그걸 느꼈습니다.
이러한 선교의 대열에 여호와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교회 지도자급에 위치에 있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앞장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야겠다는 것입니다.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희생이고 순종입니다.
이번에도 저 북방 땅에 가서 메마른 정말로 헐벗고 메마른 북방, 북한 산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가슴은 참으로 서늘했습니다.
세 번째의 의미는 선교는 역시 고난 그 자체라고 하는 사실. 치열한 영적 싸움의 현장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왔습니다. 이번 북방선교여행을 위해서 미리미리 가기전부터 기도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월하게 수월하게 다녀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지에 가서 하루 또 하루 걸음마다 때마다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시말하면 사탄은 우리의 선교를 흐트러지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선교의 발걸음을 훼방할려고 했습니다. 의미가 없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한편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아니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도하시면서 선교가 얼마나 고난의 발걸음인가를, 선교가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라는 것을 너무도 절박하게 느끼고 또 느끼게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드라구요.
여러분 가운데 혹시는 참 좋것다. 거기에 가서 백두산도 간다고 하니 구경도 잘하고, 북경도 간다고 하니 구경도 실컷잘하고 참 재밌게 갔다오겠구나. 아니였습니다. 지금 여기와서 생각해도 끔찍해요. 백두산 밑에서 또 출발을 해서 아무래도 두만강 건너편에 북한땅을 보게 해야겠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 좀 준비한 일정을 제가 틀었습니다.
저 북한땅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는데, 못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준비하는 팀들은. 일정도 안 맞을 뿐 아니라, 그리고 기사가 꼼짝도 안할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갈수가 있느냐고 갔다가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정, 시간이 안 맞는거에요. 그러나 거기에 안가면 우리가 선교의 현장에 온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 갑시다. 기도하고 속으로 기도하고 내놓고 기도는 못하니까, 기도하고 기도하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방법이 있는데 새벽2시에 출발해야되는데, 그렇게 완강하던 기사분이 새벽2시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새벽2시에 출발을 했어요. 그리고장장 12시간을 버스로 계속 12시간을 강행군을 한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도보면, 저 맨끄트머리, 이쪽이 동해바다고, 러시아 땅 연해주고, 그리고 북한땅, 철로 하나있어요. 철로 하나있는데 그 철로 옆에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금요일날 대련으로 해서 서울로 오게되는데 북경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기상악화로 인해서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여! 아버지 믿습니다. 천지를 주장하신 우리 아버지 믿습니다. 저 바람을 폭풍을 순식간에 잠잠케 해주십시오. 믿습니다. 안되는 거에요. 꼬박 14시간을 공합 대합실에서 밤을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14시간을.
그리고 또 저 개인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도 제목을 주시는데 그래서 미리미리 기도하고 준비하고 조심했습니다만 마지막 날에 배탈이 났습니다. 일정대로 진행을 해야되는데 제가 배탈이 나서 꼼짝을 못하면 어찌합니까. 오 여호와 하나님 혼자서 배를 안고 배에다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 배를 주장을 하시옵소서. 그게 얼마나 간절한 기도인지 그 현장에 있어봐야 압니다.
제가 움직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냐. 따라 가야죠. 걸어야지요. 오 여호와 하나님 오 주님 정말로 걸음마다 기도였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이 우리의 삶을 꾸려가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한가지 재밌는 사건이 있었는데 같이 간 분들에게 이야기 안 했지만, 목요일 아침에 북경호텔에서 가방을 다시 꾸려서 열쇠를 채워서 나두고 나와야 되는데 가방 2개인데, 하나를 안사람이 정리하더니, 그리고 또하나 정리하고 그런데 이 열쇠를 채워놓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낼것이 있다고 열쇠를 찾는데 열쇠가 없어진 겁니다.
거기 앞에서 했는데 열쇠가 없다는 겁니다. 화장대 앞에서 했는데, 티비가 거기 있고 여기에서 했는데. 서서 했는데 어디 가겠느냐고 거기 있겟지. 아 그런데 없어요. 아무리 뒤져보고 티비를 옆으로 돌려서 혹시 거기 사이에 빠졌나 보기도 하고. 뒤로 빠졌나 보고. 시간은 바쁘고 가자고 갔다와서 찾아보자고 그리고 출발하면서 일정대로 계속 진행하면서 오 여호와 하나님 이번에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특별히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게 하실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주여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십시오.
조이 도우슨도 이럴 때 기도했더니 찾게 해주셨다고 간증을 했는데 저에게도 그런 체험을 주실려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오 주여 감사합니다. 열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응답이 없어요. 하루종일 여기에 왔다가 저기에 왔다가 호텔에 가면 생각이 나겠지 호텔에 와서 식사를 다하고 더 늦은 밤에 방에 들어갔는데 그때도없는 거에요. 그냥 찾자.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도 찾겠지. 또 뒤졌어요. 샅샅이 뒤졌어요. 없어요. 그래서 가방을 앞에 놓고 심난해서 이걸 뜯어야 되나, 뜯을 도구도 없지. 뜯자고 생각하니 어떻게 마음이 심난하고 속에서 짜증이 나던지. 나도 모르게 여호와 하나님께 불평 아닌 불평이 나왔습니다. 주여! 이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때 이 주여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하면, 왜 조이 도우슨에게는 응답을 하시고는 나에게는 응답을 안하십니까
기분 나쁩니다. 그소리에요. 내 형편 아시는대. 이 가방을 뜯어가지고 줄로 묶어 다니면 그 모양이 어떱니까 여호와 하나님. 그래서 그냥 짜증 아닌 탄식을 내 입에서 나왔어요. 주여!
그런데 그 순간 딱 머리에 스쳐가는 느낌이 왔습니다. 침대 밑을 보라. 아니 여기 거울대 앞에서 가방을 꾸리고 잠궜는데 그 조그만 열쇠 두 개가 어떻게 침대 밑으로 갑니까 발이 달렸습니까 그런데 분명히 침대밑을 보라. 그런데 침대가 있으면 침대 시트로 가려져서 바닥까지 축 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침대밑으로 갑니까 그러나 분명한 느낌이고, 분명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까. 가르침이라고 할까. 그래서 들쳐보니까 거기가 얌전히 있잖아요. 어디 도망안가고. 누가 거기에다 넣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그래놓고 하루 종일 기도를 시키신 거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게 뭔가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정말 지극히 사소한 사건인 것 같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삶을 살피고 계시다는 것. 담대하라.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라는 것. 답답한 일이 있으면 믿고 기도하라는 것. 반드시 가르켜 주신다는 확실한 징표를 이 간단한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의미에요. 바울 사도입니다. 선교여행을 하는데 왜 이렇게 고난이 많습니까 강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이라고 했으니 요새 같으면 여기에 하다 더 붙었겠습니다. 하늘의 위험. 그때는 비행기가 없었으니까, 하늘의 위험이 빠졌습니다. 요새 선교사라면 하늘의 위험이라고 했겠지만. 그리고 사십에 하나 감함을 왜 다섯 번이나 맞아요 한번도, 한번도 너무너무 처절한 고통인데, 그것도 다섯 번이나 맞도록 왜 여호와 하나님이 내버려 둡니까
저 바울을 사십에 하나 감함을 때리라 하니 그말을 듣고 바울이 뭐라고 기도했겠습니까 오 여호와 하나님 피하게 해주십시오 하지 않았겠습니까 또 이왕에 말을 매라면 서른 아홉 대 아니고 한 열대만 맞게 해주십시오. 이왕 맞을매라면 안 아프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살점이 터져 나가도록 아픕니다. 고난은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여호와 하나님은 없애지 아니하십니까 왜 저에게 배탈이 나게 하시고, 왜 밤새도록 공항에서 잠도 못자고 새우잠을 자게 합니까 왜 열쇠꾸러미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하루종일 기도하게 만듭니까 이런저런 고난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 아버지 되신 우리 아버지이심을 그러한 현장에서 거듭거듭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고난은 은총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현장에서만이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 우리의 현장에서도 우리에 있는 고난 가운데 우리도 흔들리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문제가 있을때마다 고난이 있을때마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현장에서, 우리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분명히 응답하실 줄로 압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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