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전도] 선교하는 사람들

본문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죄인 구원이라는 선교적인 사명으로 오셨다. 예수님의 사심은 선교의 생활이었고 예수님은 선교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마 28:19, 20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의 부탁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복음을 들어 구원시키라"는 선교적인 사명이었다. 제자들이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에서 생명을 바친 것은 예수님의 부탁인 선교때문이었다. 딤후 4:2를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것. 이 말씀은 선교사 바울이 외친 말씀이었고, 이 말씀 때문에 각 시대와 민족을 초월한 수많은 선교사들이 세계에 퍼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 최초의 이방 선교사인 바울과 그를 배후에서 도와준 빌립보 교회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사형수로 갇히게 되었다. 이제 언제 죽을지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럴 때 바울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성경을 기록하는 도중에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자기를 도와준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던 것. 그렇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빌립보 교우들이 선교사 바울을 기쁘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서 우리 교회도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많은 선교사들을 도와주면서 기쁨을 같이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교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까
1. 선교사를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선교사를 생각지 않으면 결코 선교할 수 없다. 생각은 행동을 만듭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을 만들고 선한 생각은 선한 행동을 만듭니다. 그만큼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
10절을 보면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고 하였다. 여기 '생각'이라는 단어가 2번 나옵니다. 누가 누구를 생각한 것입니까 그것은 빌립보 교우들이 선교사 바울을 생각하였던 것. 우리가 도와주고, 우리가 기도해주고, 우리가 헌금하고, 우리와 교제한 사도 바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바울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생각하고 그의 선교 사역을 생각합니다.
이 마음이 멀리 로마의 감옥안에 있던 바울에게 전달되어 큰 기쁨을 주었다. "지금 나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빌립보 교우들이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겠지 빌립보 교우들이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바울에게는 이것이 큰 위로요 힘이 되었던 것. 그는 지금 복음때문에 감옥에 갇혀있지만 자기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빌립보 교우들이 있음을 아는 이상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고 외롭지를 않았다. 그가 한 일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것을 생각하니 바울에게는 기쁨과 위로가 충만했던 것.
여호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봉사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 내가 예수님을 생각 / 교회 /
주의 말씀 / 목사 / 이럴 때 헌신과 봉사가 있는 것이며 사랑이 싹트는 것. 일주일 내내 여호와 하나님과 교회를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다는 말입니까 여러분들이 목사를 생각할 때 목사를 아끼고 사랑할 수가 있고, 교우들이 안수집사와 권사를 생각해야 기도할 수 있고, 교회를 생각해야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는 것이며, 구역을 생각할 때 구역은 잘되고 충만해 지는 것. 학생이 공부에 대하여 전혀 관심도 없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진학을 포기해야 함. 아내와 남편이 가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큰 불행을 가져올 것이고, 사회인이 자기의 직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파산될 것이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국가가 어려움을 당함.
우리는 빌립보 교우들이 멀리 떨어진 사도 바울을 끝까지 잊지 않고 생각한 것을 기억합시다. 바울이 자유의 몸이 되든지 감옥에 갇혀있던지 그를 날마다 생각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사실을 바울이 알았을 때 그는 큰 기쁨을 갖게 되었다. 우리도 이제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선교사를 생각함으로 선교는 시작이 되는 것이며 생각함으로 선교는 지속되는 것입니다.
2. 선교사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잘한 것입니까 바울이 당한 괴로움. 그렇다면 바울이 당한 괴로움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각처에 다니면서 선교할 때 당한 고난이었다. 그는 자기가 당한 괴로움을 1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다시 말하면 불신자에게는 비천한 자가 되었고, 믿는 자에게는 사랑을 받았으며,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파하였고, 어떤 때는 믿는 자를 만나서 잘먹을 때도 있었다는 말. 그런데 이것은 바울 혼자만이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우들도 바울의 이런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 이들은 외지에 나가서 바울과 함께 이런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바울을 생각함으로 금식을 하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기도 거절하면서 바울의 당한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선교사들이 받는 고난을 과소 평가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저들은 언어가 다른 곳에 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며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선교사들은 자기의 일을 자기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다가 보니까 사람들에게 경계의 대상도 되고 습격의 대상도 됩니다.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도 아무도 도와주지를 않습니다. 몸이 아파도 병원이 없는 곳에서 혼자 해결해야 하며, 먹는 것과 거주하는 것과 자녀교육도 혼자서 해결해야 함. 그러면서도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교사의 갈등이요 고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자기가 당한 고난이 어떤 것인가를 열거를 하였다. 고후 11:23- 28을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
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매맞고 감옥에 갇히고 파선당한 배에서 견디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자기가 복음을 전하고 세웠던 교회가 잘 있는가를 생각할 때 그것이 그에게는 더욱 짐이 되었던 것. 그는 이렇게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였던 것. 그런대 빌립보 교우은 바울의 이런 것에 어떻게 하였을까 먼저 선교사 바울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서로가 기도하였다. 바울과 마음을 같이하여 그의 어려움에 서로가 도와 주었다. 바울이 이것을 알고 기뻐하고 감사했던 것. 사실 생각만 하고 "뭐 이제 떠난 사람인데…,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돈이 떨어지고 몸이 아프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니 참 안되었다. 우리가 도와주고 싶어도
멀리 있으니 어쩔 수 없지…" 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선교사를 도울 수 있을까" 하면서 그와 함께 하기로 결심하였다.
선교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우리가 협력하고 있는 (김정자선교사)는 금식하다 죽을 뻔 했고, 생활비가 없어 많은 고생을 참아 왔다고 함. 홍운 선교사도 도둑을 맞아 3개월을 빵으로 산적이 있다고 함.
작년 10월 1일 중앙아시아 타자키스탄 공화국 선민 선교교회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400여명의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회교도로 추정되는 테러단들이 폭탄을 터트린 것입니다. 이 사고로 9명이 죽고 1백 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예배당은 완전히 파괴가 되었고 부상당한 성도들은 전신 화상을 입었거나 두 눈이 실명했다. 더구나 이들은 각 나라에서 온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런데 부상을 당했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할 형편이라 더욱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여러분.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이 고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과 위험이라도 저들은 기쁨으로 견디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교회가 가까이 있지만 귀찮게 여깁니다. 또한 선교사가 죽든지 살던지 어떠하든지 관심 밖의 일로 생각하고 있다. 선교사는 선교사고 나는 나다. 그런데 빌립보 교우들은 그렇지를 않았다. 그들은 바울의 사역과 고난에 깊이 동참하고 그를 이해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하였던 것. 그렇다. 선교사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 되어야 하고, 선교사의 갈등이 우리의 갈등이 되어야 하며, 선교사의 고난이 우리의 고난이 되어야 합니다.
3. 선교헌금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15)
15절을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고받는 일'은 사도 바울에게 선교 헌금을 한 것. 비록 빌립보 교우들이 직접 외지에 나가서 선교를 하지는 못하지만 이제 바울에게 계속적으로 선교헌금을 보내므로 바울이 저들을 대신해서 선교를 하게 된 것.
16절을 보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것을 보내었도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많은 교회가 있었으나 바울에게 어떤 교회가 헌금을 하였습니까 빌립보 교회였다. 이 당시 빌립보 교우들은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극심한 경제난과 가난에서도 내가 주님의 선교 명령을 어떻게 하면 감당할 수가 있을까" 자기들이 직접 해외로 뛰어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지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일을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선교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선교사가 복음을 위하여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관심을 갖고 함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교사가 힘껏 일할 수가 있도록 선교헌금을 작정하여서 바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된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이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이 풍부했다고 했습니까 빌립보 교우들이 바울을 생각하고 그의 사역에 함께 동참하고 기쁘게 선교헌금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을 대신하여서 가는 곳마다 그 헌금을 사용하며 선교를 잘 하게 되었던 것.
고후 11:9를 보면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간증하고 있다. "내가 선교 사역을 감당할 때 어떤 때는 선교비가 없어서 걱정도 하였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게도냐에서 온 빌립보 교우들이 나의 쓸 선교헌금을 보내왔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이 보내준 선교헌금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헌금은 바울에게 생명을 살리는 요긴한 일에 사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선교사 파송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 교회가 선교사를 단독으로 파송합니다. 이것은 선교사가 쓸 모든 생활비 전체와 선교비를 부담하는 것. 선교사가 사택을 구입하거나 교회를 세우며 선교 활동하는 모든 비용을 한 교회에서 부담을 하는 것. 다시 말하면 선교사의 모든 것을 전혀 부족함이 없이 한 교회에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협력선교사를 파송하는 것. 한 교회에서 선교사의 모든 경비를 지불할 수가 없으므로 여러 교회가 조금씩 모아서 한 선교사를 후원합니다. 선교사가 교회를 건축 하던지, 사택을 구입하던지, 또는 승용차를 구입하거나 어떤 선교 장비를 구입할 때 그의 생활비와 선교비를 여러 교회가 모아서 전달하며 기도할 때 이것을 협력선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선교를 감당할 때는 단독선교와 협력선교 두 가지를 다 병행하여야 합니다.
지난 두주간 저는 필리핀 선교지를 방문하고 집회도 인도함. 참으로 고생하며, 열심히 선교하고 있었다.
(아이타족 선교지 교회 설립 배경 설명) 선교 협력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귀한 성문교회의 복을 주셨다. 이제는 다음 단계인 선교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나가지 못하지만 우리를 대신하고, 이 교회를 대신 할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고 선교헌금을 하고 그의 선교사역을 도울 때 복음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선교 헌신예배를 통해 "나도 협력선교를 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여기에 동참할 때 놀라운 일이 우리와 이 교회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교에 동참하는 빌립보 교회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첫째는 모든 일에 풍성하게 해주셨다. (19절)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였다. 복은 누가 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것. 우리도 선교의 일에 동참하므로 빌립보 교우들이 받은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20)
"여호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기도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고 나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내가 선교하는 일에 참여하고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여호와 하나님은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십니다.
여러분. 빌립보 교회는 선교사인 바울을 도와주었다. 먼저 바울을 깊이 생각하였고, 바울의 고난을 나의 고난
으로 받아드렸으며, 어려운 중에도 기쁘게 선교 헌금을 하였다. 그랬더니 빌립보 교우들이 도리어 축복을 받아서 풍성해졌다. 기쁨이 풍성해졌고 삶이 풍성해졌다. 그 뿐 아니라 선교하는 그 일로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 오늘 우리는 (아이타 성문교회) 건축을 위해 선교에 동참하자. 우리의 선교를 통하여 날마다 은혜를 더하는 삶이 되어서 우리들의 생활이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선교하는 우리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