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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동족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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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7년째 두만강 변에서 상주하면서 탈북자들을 위해 사역하는 한 선교사가 한국의 선교 본부로 보내온 보고서 내용입니다.
≪제목; 기독교인 공개총살 현장 / 이름: 리 영희 / 나이: 37세(여) / 일시: 2000년 2월10일 12시 정각 / 장소: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 / 방법: 장마당 상점들을 모두 문을 닫게 한 후 전 주민이 다 나와서 목격하도록 미리 알림.
처형당하는 이유를 남녀 당원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설명하고 당과 조국을 배신하면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인민들에게 경각심 심어줌.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일어설 수가 없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말뚝에 새끼줄로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묶음. 처형당하는 사람의 눈은 헝겊으로 가려졌고 부서진 다리로는 상체를 버틸 수가 없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음. 사격수들에게 조준을 명하는 장교가 "발사준비!" 할 때 사형을 기다리던 리영희 성도는 "예수를 믿으시오!" "주여!"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발사!" 하는 소리에 더 이상 리영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저격수의 총성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음. 3명의 저격수가 머리에 4발, 가슴에 4발, 배에 4발을 쏘아서 온몸에 살점이 터지고 심장에서 터진 피는 구경꾼들에게까지 튀었고 땅은 순교자 피로 검붉게 물들었음. 시체는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됨≫(일반사회사범들은 3발씩을 쏨)
위의 글은 복음을 전하다 처형당하는 장면을 같은 동료 전도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생생하게 전한 보고중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북쪽 땅에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순교한 이영희 성도는 97년 가을에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두만강을 건너 지하처소 교회로 들어온 탈북자였습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요, 성분도 좋은 당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인해 숙청 당해서 남편과 함께 아오지 탄광의 노동자로 전락했습니다. 그들 부부가 처소교회로 왔을 때 남편은 복막염으로 사경을 헤 메일 때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치료했고 먹이고 입히며 돌보았습니다. 또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돌 봐주는 인정에 그저 감사할 뿐이더니 차츰 가치관이 바꿔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지금까지 속아 살아왔습니다. " 라고 말한 뒤에는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성장하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탈북자 생활에서도 밤새워 성경을 읽고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3개월 정도를 선교사와 같이 지낸 그들 부부는 남편의 질병이 차도를 보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싸 보내면서 성경책을 함께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음해(98년) 봄에 왔을 때에는 믿음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리영희는 친정 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서 전도도 했다고 했습니다. 또 다시 그들은 선교사와 함께 지내면서 본격적인 성경공부와 전도의 방법을 배웠고 주의 일군으로 양육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명감으로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여름철에 리영희는 쌀 대신 달러를 가지고 갔고, 의약품과 특수 제작된 소형성경을 운반했습니다. 98년부터 99년 말까지 리영희는 수차에 걸쳐 이 일을 반복했고 그 남편은 건강관계로 집안을 돌보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금년(2000년) 1월 말경 함경북도 무산에서 체포되어 2주간의 모진 고문 끝에 처형당한 것입니다. 처형당하기 전에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마비가 되었고 많은 출혈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고문하는 보위부원(수사요원)에게 "예수를 믿어야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라고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악질 반동 예수쟁이 죽어봐라"하며 채찍과 몽둥이는 리영희 성도의 몸을 파고들었고 그는 신음 대신 "주여!"를 외쳤습니다. 초죽음이 되도록 처참한 고문을 당하고도 선교사들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Mission Home(안전가옥)"과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함으로 선교사역의 피해를 몸으로 막았고 그녀는 장렬한 한 사람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이처럼 도처에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합니다. 김정일은 특명 기독교의 확산을 막으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99년 한 해만해도 400여명을 공개처형 했는데 그 중의 3분의 1은 기독교인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 도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은밀히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사역은 단순히 배고프고 헐벗은 탈북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예수를 主로 영접케 했고 사명자로 키웠으며 순교자로 만들었습니다. 2000년 01월 15일 발송한 한 선교사의 편지입니다. ≪저는 지금 6년째 중국에서 상주하면서 탈북자와 조선족을 위해 사역하는 선교사입니다. 여기 두만강 변은 온통 흰눈과 살을 에이는 칼날 같은 바람이 영하25도의 추위를 실감케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식량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치고 헤치면서 탈북자들이 숨어 있는 토굴을 오늘도 찾아갑니다. 찻길이 없는 오솔길, 허리까지 빠지는 눈길을 사람 눈을 피해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며10km 이상은 걸어야 만합니다. 중국 공안원들의 발길이 안 닿는 곳, 북조선의 특무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에 은밀하게 숨기지 못하면 이들 탈북자의 생명이 보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일행들이 걷고 또 걸어 은신처에 도착할 때에는 땅거미가 지고 어둑어둑해 질 무렵입니다. 땅을 파고 만든 토굴 속에서 한기와 주림을 견디어 내며 10여명 정도가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애들처럼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관솔불로 불을 밝히고 가지고 간 쌀로 밥을 해서 먹인 후 함께 찬송합니다. "예수 사랑해요 나 주 앞에 엎드려 경배와 찬양 왕께 드리네…" 이렇게 찬송과 말씀을 전할 때에는 주님의 사랑이 여기까지도 이루게 하심에 우리 모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저들이 배가 고파 살길을 찾아 탈북해서 이 토굴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지금 우리와 예수를 같이 믿는 형제가 되어 같이 감사하며 같이 울고 있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동상 걸린 손발을 치료해 주어야 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챙겨간 옷가지를 입히고 성경을 가르치고 주께서 저들을 보살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일이 저희가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토굴 속에서 은신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수가 도처에 수천을 넘어 수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고 예수를 주로 영접케 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 주고 성경책을 손에 꼭 쥐어 주어 다시 북한에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합니다. 다행히 우리 주의 일꾼들을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국 공안원에 붙잡혀 북한으로 되돌려 가게 되고 강제 송환된 저들의 비참함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 탈북자가 다시 북한에 끌려가면 반동, 반역자, 인민의 수치 등 별의별 죄목을 다 뒤집어 씌워 참혹한 최후를 맞게 합니다. 이런 비참함을 모면하려고 남편은 중국의 농장으로 팔려 가고 아내는 중국 漢族에게 5,000위엔(한국돈 약 75만원 정도)에 팔려 갑니다. 배고픔은 가정도 부부도 없고 오직 생명을 유지하는 길만 찾게됩니다. 처녀들은 대부분 창녀로 팔려 갑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을 목격하고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저들의 고통에 동참해 왔습니다. ≫
이들 헌신적인 선교사들의 보호 속에서 지금도 햇빛이 들지 않는 땅굴 속에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며 순교의 때를 기다리는 제2, 제3의 리영희가 양육되고 준비되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의 형제가 된 한 탈북자가 2월말 경에 선교사에게 보내온 편지입니다. 그는 이 글을 남기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면서 마지막 하직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남쪽 형제 자매님들에게 드립니다. 지금쯤 남쪽에는 봄기운이 젖어들 때인데 여기 두만강 변에는 아직도 수은주가 영하20도에서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한 겨울 내린 눈은 지천으로 깔려있고, 칼날 같은 바람은 살갗을 쓰리게 합니다. 그래도 올 겨울은 우리에게 행복했습니다. 남쪽의 형제들이 보내준 쌀로 따뜻한 밥을 먹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위를 가릴 옷을 보내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또 감사한지..... 우리는 남쪽의 형제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한끼 식량을 얻으러 왔다가 우리는 예수를 알고 영생을 얻어 돌아갑니다. 지금까지는 먹을 것이 가장 소중한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보다는 여호와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이것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갑니다. 내가 등에 지고 가는 쌀과 옷은 빼앗길 지라도 내 영혼 속에 모신 주 예수를 어찌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나의 삶은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지난 날 당과 수령에게 충성했던 그 마음으로 오직 예수만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이 속아왔습니다.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라는 허울 좋은 속임수에 우리는 한평생을 희생당해왔습니다. 아니 인생 전부를 착취당해왔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고 영생을 얻은 이 기쁨은 지금까지의 고통을 다 보상받고도 남습니다. 남쪽의 형제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자유가 있는 곳.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 마음껏 찬양하고 마음껏 기도하며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곳. 사실 우리는 자유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도 이곳 중국에 와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세살 짜리 딸이 하나있습니다. 내 딸만이라도 남쪽에 있는 형제 자매들처럼 자유롭게 신앙 생활할 때가 오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저는 다시 저 어두운 북조선 땅으로 돌아갑니다. 나를 맞이하는 것은 안전부 요원들의 날카로운 채찍이겠지요. 그래도 부양해야할 처자가 있으니 얼마간의 양식과 옷가지를 얻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가족에게 내 형제에게 전해줄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배고픔도, 안전부 요원들의 심문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기쁨만이 넘칩니다. 남쪽의 형제 자매님들 통일이 되면 만나 뵙시다. 아니 그 때까지 살아남지 못한다면 천국에서 만납시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남쪽의 형제 자매님들을 사랑합니다. - 청진의 형제가 드립니다. -≫
함경북도에 있는 한 지하교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은 목사가 있어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가 세운 것도 아닙니다. 예배당도 성가대도 강대상도 없는 교회입니다. 물론 십자가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음침한 골방에 10여명의 교인들이 둘러앉은 것이 전부입니다. 탈북한 한 형제가 두만강 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에게 신앙을 훈련받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주변 친척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수차에 오고 가며 선교사들에게 말씀을 듣고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받아왔던 공산주의 교육이나 주체사상에 자기들이 속아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들은 무서울 만치 철저한 기독교인이 되어갔습니다. 이들은 드디어 함경북도 00시 한 형제의 집 으슥한 골방에 모여 목소리를 낮춰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고 찬송가 405장을 소곤거리듯 불렀고, 왕하 5:1-14까지 낭독한 뒤 "나아만 장군 앞에선 소녀"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 내용은 "포로로 잡혀온 소녀는 敵將에게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하고 결국 구원받게 했는데 우리는 제 나라에서 제 가족, 제 형제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주께로 인도합시다. " 라는 전도의 사명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첫 예배드린 날이 1998년 11월 3일 오전 10시였습니다. 이날 13명이 모이기로 했는데 교통편이 허락지 못해서 11명만 모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이들은 자기들 모임을 "00시 000교회"라고 자기들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선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10여명 정도 예배드리는 작은 모임을 "지하교회"입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는 현재 수십 개의 지하교회가 있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타민족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끌어안아 주어야 할 우리들의 同族이요,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한 사람 소개 "오바댜"하고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궁내대신"(고위공직자)입니다. 그의 신앙을 3절에서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했습니다. 당시 성도를 핍박하고 죽이는 분위기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여호와를 크게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선지자 일백인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4절) 우리가 진정 오바댜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인 이라면 북쪽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최악의 시련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한 선교사의 보고서입니다. ≪"함경남북도와 두만강 변에는 큰비가 내려서 홍수로 길들이 유실되고 민가가 파손되는 등 인명피해도 많았습니다. (태풍 사오마이의 피해) 여기 우리 처소교회와 은신처에서도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땅굴 속에서 은신하고 있는 저희들의 거처가 물구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서울의 선교 본부에서 때마침 보내준 의류 55 상자(약6,600여 점)와 의약품과 생필품 등의 보급품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보급품은 강 건너온 형제들을 통해서 대부분 넘겨 보냈습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각 처소의 사역을 보면 7월 한 달만해도 800여명의 북쪽 형제들이 다녀갔고 그 중에 절반은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를 영접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강물이 얼 때쯤이면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넘어올 것 같은데 가을로 접어들면 그 대비를 미리 해야할 것 같습니다. 장마철에 발생하는 이질, 피부질환, 장 질환 등의 의약품이 시급합니다. 성경책도 많이 부족합니다. 식수로 쓰던 우물들이 흙탕물이 되어서 마실 물에 여간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허나 저들은 성경말씀대로 살고자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먹을 양식이 있고, 찬송할 수도 있고, 기도할 수가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저들은 말합니다. 장대 같은 빗줄기를 피할 길이 없어 그냥 날 비를 맞으면서도 오히려 찬송을 부르며, 더욱 간절한 기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목욕 한번 잘했다고 저들은 모두 좋아했습니다. ≫
저들은 우리 同族이요, 주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당연히 저들을 돕는 손길에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한 선교사의 호소입니다. ≪지금까지는 이곳 형편이 되는 대로 그럭저럭 꾸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굶주리는 탈북자 수는 점점 더 증가하고 먹이고 입힐 것은 부족해서 많은 기도 끝에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이 곳에는 쌀 10Kg에 한국돈 3,000원 정도 합니다. 이 쌀10kg이면 60명을 한끼 먹일 수 있습니다. 부식비까지 해도 한국돈 1만원이면 100명을 한끼 먹일 수 있습니다. 한국돈 100원짜리 동전 한 개면 한 사람을 한끼 배부르게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폐결핵, 간염, 영양 실조로 인해 복수가 차고, 아무 것이나 닥치는 데로 입에 넣어서 생긴 장질환, 동상, 피부 염증, 장티푸스, 등의 질환에 걸려 있습니다. 그 외에도 회충약, 이·빈대약, 소독약, 소염제, 항생제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예수님을 도우시는 마음으로 도와주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이 일에 동참할 사람들을 찾아 주십시오. 옷도 있는 데로 필요합니다. 양말도, 내의도, 구급약도, 모든 필수품이 다 필요합니다. 지금은 겨울용 옷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현금으로 최소한의 필수품을 여기 중국 현지에서 구해 쓰기도 합니다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제 구호 품이나 민간 단체에서 북한에 정식으로 들어가는 구호품들은 당 간부나 고위층에서 다 착취해 버리고 밑바닥 백성들에게는 구경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죽기를 결심하고 두만강을 넘어온 탈북자, 우리 동족들이 눈앞에 굶주리며 떨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죽어 가는 내 이웃 내 형제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 한민족 모두가 나서 해야 할 마땅한 일이지만 더욱이 우리에게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이시고, 주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맡기신 사명이라고 사료됩니다. 이 일에 동참할 사람을 주께서는 예비하셨을 줄로 압니다. 나는 이 편지를 쓰기 직전에도 두만강 가를 배회하다가 왔습니다. 손발이 얼어 터지고 온몸에 상처와 추위와 굶주리는 탈북자들과 함께 은혜와 고통을 같이 나누다가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들을 너희가 도와주어라!" 하시는 주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이 일을 함께 할 사람을 찾아 주십시오. 분명히 자원해서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예비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도울 자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중북 선교회는 조선족을 대상으로 신학교 사역을 통해 많은 사역자들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또 한 반이 금주에 졸업하게 되어 마지막 강의와 졸업식에서 설교키 위해 내일 중국으로 출국합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36명 졸업생 중 18명이 북한 사역에 목숨을 바치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저들 조선족 헌신자들의 역할이 없이는 선교사들의 사역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탈북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선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우리 선교사들의 직접 사역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험성과 외교문제 또 성경 배달을 비롯하여 각종 은밀한 사역을 이들 헌신된 조선족 사역자들이 감당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발각되면 중국 당국에 의해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 가난한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 졸업식을 마치면 그들 18명의 선교 헌신자들과 별도의 장소에서 합숙하면서 강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사역하느라 지쳐 있을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돌아올 예정입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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