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이 선교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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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8일에서 6월2일까지 중동의 세 나라 적십자사를 순방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아직 공식적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팔레스타인의 적신월사 총재가 작년 가을에 초청을 했고, 연이어 이스라엘 적십자 총재 그리고 요르단 적신월사 총재가 초청을 해왔습니다. 그 사연은 이러합니다.
2005년 11월. 대한적십자사는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제적십자사연맹총회를 서울로 유치하여 큰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이 모임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주목해야합니다. 서로를 주적으로 간주하여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갈등해온 두 나라 곧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십자운동을 국제적십자사연맹에 가입시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서울에서 두 적십자 총재는 별도로 만나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여 무력충돌로 인한 인간고통해소를 위해 앰뷸런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각서가 그간 제대로 원만히 실천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6월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적십자사연맹과 제네바 협약에 가입한 국가 대표들이 함께 모인 국제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두 적십자사의 연맹가입이 정식으로 결의되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나는 한반도에서는 남북간의 열전과 냉전의 쓰라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적십자간의 인도주의 협력은 계속 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적십자사의 연맹가입을 강력하게 지지 발언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작년 늦가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중동지역 회의에서 저는 유니스(Younis)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총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남북간에는 열전과 냉전이 벌어졌으나 적십자의 불구하고정신으로 남북적십자는 협력하고 있지요.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등을 열심히 하는데 팔레스타인도 우리 경험을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유니스 총재는 꾸짖듯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은 외세에 의한 분단의 고통이지만,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은 강제로 점령당한 고통입니다. 한반도 분단과 우리 처지를 그렇게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의 고통이 훨씬 깊고 큽니다. ”
이렇게 말한 뒤 그는 저보고 한번 팔레스타인에 올수 있느냐고 물었고, 갈 뜻이 있다고 답하니, 그는 대번에 싱가포르 회의가 끝나기 전에 공식 초청장을 직접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팔라스타인에 가게 된 것입니다. 마침 국제적십자운동의 최고의결기구인 상치위원장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가 회의가 끝나는 날 요르단을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요르단 적신월사 총재입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 적십자 총재도 나중에 초청장을 보내왔죠.
알다시피 적십자 운동은 국제적인 인도주의 운동체입니다. 인간의 억울한 고통이 발생하는 현장에 신속히 달려가 그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앞장서는 운동이지요. 그래서 창시자 앙리 뒤낭이 제1회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고, 그 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두 번, 국제적십자사연맹은 한번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죠. 인간의 고통은 주로 전쟁 같은 무력 충돌과 자연재난과 같은 천재지변에서 발생하며,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 속에서 그 고통은 지속됩니다. 이같은 고통이 세계도처에서 쉼없이 터져 나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몰려 사는 지역 중 한곳이 바로 중동지역입니다. 중동지역에서도 가장 가까이 살면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聖地)이기도하죠. 구약과 신약의 역사가 육화(肉化)되어 있는 거룩한 땅입니다. 하기야 그 거룩한 종교적 의미부여 때문에 그곳의 고통이 역설적으로 더욱 격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3개국 순방에서 3가지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 느낌을 함께 나누며 은혜받고 싶습니다. 특히 선교가 억울한 고통이 있는 절망의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에 희망과 용기, 보람과 감동을 심어주고 길러주는 일 일진데, 또 그러한 실천의 삶을 역사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몸소 담당하셨음을 기억할진데, 중동의 현실은 그런 선교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저를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첫째, 자기 성찰력 곧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을 상실한 이른바 선민(選民)의 모습이 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웅장한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갔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나온 안내자를 따라 전시물을 둘러보면서 저는 한기(寒氣)를 느꼈습니다. 역사상 유대인들만큼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았던 민족은 드물지요. 11세기와 12세기를 걸쳐 기독교가 강행했던 십자군에 의해 무슬림도 아닌데 억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 20세기에는 히틀러에 의해 끔찍스럽게 죽어간 유대인들. 그들의 후손들이 이 박물관에서 느낄 전율을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며칠간이라도 그곳에서 그 고통의 의미를 되씹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유물과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와 중국 등에서 자행했던 만행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신음하면서 죽어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내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일제하에 비슷한 고통을 받았지요. ”
저는 그녀가(안내자) ‘아, 그랬군요, 당신들도 당해보셨군요’라는 반응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얘기를 아예 무시했습니다. ‘너희들이 겪은 고통을 어디 우리 유대인들의 고통에 감히 비교하느냐. ’라고 무시하는 듯했습니다. 계속 자기들의 고난만을 열정적으로 해설했습니다. 바로 이같은 태도가 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자기들의 고통을 상기시키고 확산시키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남의 고통, 다른 민족의 억울한 지난날의 고통과 오늘의 분노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것, 그것이 오늘 저들 선민들의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자기들이 지금 가해자의 자리에 서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를 방문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들어가 보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친절한 안내로 위험한 웨스트뱅크(예루살렘의 서안지역. 곧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유니스 총재는 자기 민족의 세 가지 고통을 설득력있게 알려주었습니다.
강제로 땅을 빼앗긴 아픔, 자기들 지역에 들어와 좋은 언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정착 마을이 주는 아픔과 더불어 소수 유대인 정착촌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인위적인 장벽이 위압적으로 설치되어 팔레스타인 주민의 자유이동을 제한하는데서 오는 아픔. 이런 3고(苦)의 현실을 저는 직접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네블러스(구약의 세켐)에 있는 적신월사 지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지사회장의 인사말에 저는 놀랐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민선 시장이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우리의 교육부 장관도 그들이 잡아갔습니다…. ”
그들은 고통과 분노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들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회의를 마치고 수도 라말라로 돌아오는 길에 유니스 총재 자신도 여러 번 검문소에서 당혹스러운 수모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잡혀간 시장과 교육부 장관이 수감되어있는 군인막사 옆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 언덕위에는 빨간 지붕의 집들이 하나의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데, 계곡아래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거주지와는 퍽 대조적이었습니다. 언덕위의 멋지게 보이는 마을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마을입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그 땅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강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래에서 언덕을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증오와 분노와 고통의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듯 했습니다.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들은 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역지사지하지 않으며,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이같은 선민으로 자처하는 그들의 오만과 그 무관심에 놀랐습니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평화의 도시를 뜻하는데 그곳에 참 평화가 없다는 사실이 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평화는 없는 듯했지만, 곳곳에서 종교적 열정, 종파적 열광은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통곡의 벽 앞에서 머리를 쉼 없이 조아리며 야훼 신에게 기도드리는 정통파 유대교 신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저같은 신앙의 열정이 2000년 전 예수를 외롭게 했고 분노케하지 않았을까 그같은 종파적 열광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기야 예루살렘이 지금 평화가 없는 도시가 된 것은 그곳에 바로 세계 3대 종교의 교조적 열정이 뜨겁게 맞부딪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회교의 근본주의자들의 열기가 이곳의 샬롬을 몰아내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도 몰래 처연해졌습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고난과 슬픔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거닐며 고난의 예수님을 명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이 길이 지금은 장사꾼들의 호객소리, 관광객들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천년, 전 환전소로 전락된 예루살렘 성전에 오시어 환전상을 채찍으로 몰아내셨던 그분이 지금 여기 다시 오신다면 어떻게 행동하실까를 상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곧 처참하게 그것이 무너질 것을 아시고 슬피 우셨던 곳에 눈물교회가 세워져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2천년 전에 우셨던 예수님을 기억해 내기보다 지금 바로 내 곁에 우시고 계신 그 분을 만나는 듯했습니다. 그분의 울음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임을 느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세켐(곧 야곱의 집과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했던 바로 그 우물은 지금도 풍부한 물을 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금기를 깨면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진정한 예배는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같은 장소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신 예수님을 새삼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이지 형식과 장소가 중요하지 않음을 깨우쳐주신 예수님을 새삼 기억하면서 저는 이런 소리를 듣는 듯했습니다. ‘나를 특정 장소에서 찾지 말아라. 이곳 성지에서 나를 찾지 말아라. 인간 고통의 사슬이 풀려지는 곳에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지독하게 차별받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곧 그녀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주는 물을 제공해주셨던 예수님은 지금도 그녀같은 처지에서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속에 살아 계시는구나 하는 깨달음. 그것이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성지라는 특정 장소에서 예수님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흔들어 주신 듯했습니다.
요르단에 있는 느보산에 올라갔을 때도 저는 야훼의 거룩한 심술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산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나안 지역은 한마디로 황량함, 그 자체였습니다. 수천 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거친 곳이었겠지요. 40년 동안 그곳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꿀과 젖이 흐르는 이상향으로 부각시켰던 민족 지도자 모세가 이제 늙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고 울었다는 바로 그 장소에서, 저는 모세가 울었던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한 듯했습니다. 40년 고생 끝에 마침내 닿게 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기는커녕, 가시넝쿨과 폭염과 바싹 말라있는 거친 들판의 메마른 땅이었으니, 절망감으로 울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런 느낌에 잠겨있는데 제 곁에 있던 대사관 직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이 황량함을 보고 쇼크로 돌아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
그럴 것 같았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상향이란, 장소와 땅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그 거침이 있는 곳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려는 열린 의지와 강인한 헌신이 더 중요한 것이겠지요. 사막에서 샘물을 터지게 하고, 거친 들에서 장미를 피게 하는 것은 명당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갑자기 저는 1970년 중반에 갈릴리 교회에서 모세의 눈물에 대해 설교하다가 뜻밖에 서럽게 울었던 안병무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민주화된 나라를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안박사는 설교 중에 눈물을 흘렸는데, 그런 눈물들이 그래도 오늘의 우리 형편을 이정도로 올려 놓은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새삼 생각하면서도, 성지의 지리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기독교 관광객들의 모습이 저를 안타깝게 했지요. 눈물로 황야를 기름진 땅으로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거룩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세의 눈물은 새로운 비상한 결심에서 나온 눈물, 그의 후계자에게 희망을 준 눈물이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중동 세 나라를 둘러보며 한국의 대교회주의(大敎會主義)와 자기 교회중심주의가 빚어내고 있는 특이한 선교열기가 제 가슴을 섬뜩하게 했습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대사들과 오간 여러 얘기들 중에 저를 새삼 부끄럽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큰 교회 목회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해외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중동같은 무력 충돌이 잦은 위험지역에서 그들의 경쟁적 열정이 때론 무모하며 때론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성지에 몰려와 큰 집회도 열고 평화의 이름으로 대행진도 했습니다. 올 여름에도 아주 큰 교회 목사가 2,000명의 자기신도를 데리고 온다고 걱정했습니다. 그것이 주는 신변위험에 대해 정부는 크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철없이 교만한 장로들이 자기 교회 목사가 그곳을 가면 국빈으로 영접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이때 저는 “너희 받을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라고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듯했습니다.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을 받았던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시험에 떨어졌기에 역설적으로 권력과 재력과 종교적 카리스마를 휘잡아 휘둘러 대는 한국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꾸짖는 음성을 듣는 듯했습니다.
‘너희들은 흔한 돌같이 많은 떡과 재력을 이미 가졌고
너희들은 세상을 호령하는 위세를 이미 잡았고
너희들은 기적을 이룩하는 종교적 초능력을 이미 누리고 있으니,
너희들은 앞으로 받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상을 이미 스스로 받았구나. ‘
사도행전에서 부활승천하신 주님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 (행전 1: 8)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선교일진데, 오늘 한국교회가 과연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당부 말씀과 예수님의 첫 설교의 말씀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 말씀은 이사야 61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포로된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소경에게는 눈뜸을, 억눌린 자들에게는 풀어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처음으로 선포하셨고 또 직접 실천하셨던 선교활동이었습니다. 땅 끝까지 가서 예수의 이같은 행하심을 보고 들은 대로 증언한다는 뜻은 단순한 선포의 수준을 넘어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 삶을 사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선교이지요. 그것을 땅 끝까지, 어디서나 언제나 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첫 메시지가 마지막 명령으로 이어지지요.
선교는 자기 종교의 교리, 자기 종파와 교파의 신조를 이웃종교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결코 아닙니다. 자기 교회로 신자들을 끌어 모으는 일도 아닙니다. 특히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문화와 종교를 우상이나 마귀로 폄하시키면서 그것을 훼손시키려는 행위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른 종교나 종파의 사람들에 대해 자기 종교와 다르다고 해서 오만하게 불쌍히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심각한 교만과 독선이라는 죄에 해당합니다. 예수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둠과 절망, 억압과 착취, 교만과 독선,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세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유, 겸손과 인내, 사랑과 평화를 증거하고 함께 실천해나가는 일입니다.
저는 요르단에서 세례요한이 갇혔던 마케라우스 지하 감옥을 보면서 문득 그가 예수께 자기 제자를 보내어 예수의 정체(正體)를 새삼 묻게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누가 7:18-22). 예수가 진정 당시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했던 메시아였는지 묻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
이같은 일을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선교요, 그것을 예수따르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교입니다. 놀랍게도 이 메시지는 예수님의 첫 선포의 실천을 뜻합니다. 여기에 특정 교파의 교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추상화된 신학적 교조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과 그 놀라운 효험입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다투어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의 확장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국 국력의 20분의 1정도 밖에 안되는 나라의 개신교가 미국 다음으로 해외 선교사를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랑합니다. 과연 그들이 해외에 가서 예수의 사랑, 평화 실천의 증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까. 이미 다른 종교가 깊이 뿌리 내려 그곳 사람들의 가치 속에 종교의 힘이 스며들어 있는 지역으로 수천 명의 대형교회 한국개신교 신자들이 몰려다니며 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그 행위는 종교적 교만의 수준을 넘어 종교적 폭력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특히 회교 근본주의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에 가서 기독교 선교(예수 선교가 아닌) 행위를 하는 것은 신판 십자군 전쟁을 하자고 무모하게 덤비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되어 고통당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대교회주의자들의 종교적 오만과 탐욕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의 고통이 代苦의 고통임을 큰 교회지도자들은 깊이 뉘우쳐야 합니다. 100년 전 평양 대부흥을 오늘에 되살리려고 하는 한국교회는, 100년 전의 우리 경험을 되살리기에 앞서 이번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앞에서 고꾸라져 먼저 회개의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진정한 2007년의 부흥은 바로 이같은 영적 고꾸라짐의 회개에서 나와야합니다.
저는 이번 중동순방을 마칠 즈음 대사관 만찬 때 방명록에 한마디 격려의 글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성지(聖地)에 와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찰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聖地가 자기를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省地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스스로 되돌아보며 예수 선교를 해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할 때 비로소 거룩한 땅을 밟게 되는 성지순례가 시작될 것입니다. 성지는 예수의 사랑과 평화가 펼쳐지는 바로 그 마당과 그 시간을 뜻함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때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의 가사가 절박하게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믿는 자여 어찌할꼬’로 끝나는 노랫말이, ‘우리 선교 어찌할꼬’라는 저의 안타까운 탄식으로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찌할꼬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찌할꼬“
정말 우리 교회들의 해외선교 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2005년 11월. 대한적십자사는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제적십자사연맹총회를 서울로 유치하여 큰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이 모임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주목해야합니다. 서로를 주적으로 간주하여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갈등해온 두 나라 곧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십자운동을 국제적십자사연맹에 가입시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서울에서 두 적십자 총재는 별도로 만나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여 무력충돌로 인한 인간고통해소를 위해 앰뷸런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각서가 그간 제대로 원만히 실천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6월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적십자사연맹과 제네바 협약에 가입한 국가 대표들이 함께 모인 국제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두 적십자사의 연맹가입이 정식으로 결의되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나는 한반도에서는 남북간의 열전과 냉전의 쓰라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적십자간의 인도주의 협력은 계속 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적십자사의 연맹가입을 강력하게 지지 발언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작년 늦가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중동지역 회의에서 저는 유니스(Younis)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총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남북간에는 열전과 냉전이 벌어졌으나 적십자의 불구하고정신으로 남북적십자는 협력하고 있지요.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등을 열심히 하는데 팔레스타인도 우리 경험을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유니스 총재는 꾸짖듯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은 외세에 의한 분단의 고통이지만,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은 강제로 점령당한 고통입니다. 한반도 분단과 우리 처지를 그렇게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의 고통이 훨씬 깊고 큽니다. ”
이렇게 말한 뒤 그는 저보고 한번 팔레스타인에 올수 있느냐고 물었고, 갈 뜻이 있다고 답하니, 그는 대번에 싱가포르 회의가 끝나기 전에 공식 초청장을 직접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팔라스타인에 가게 된 것입니다. 마침 국제적십자운동의 최고의결기구인 상치위원장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가 회의가 끝나는 날 요르단을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요르단 적신월사 총재입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 적십자 총재도 나중에 초청장을 보내왔죠.
알다시피 적십자 운동은 국제적인 인도주의 운동체입니다. 인간의 억울한 고통이 발생하는 현장에 신속히 달려가 그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앞장서는 운동이지요. 그래서 창시자 앙리 뒤낭이 제1회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고, 그 후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두 번, 국제적십자사연맹은 한번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죠. 인간의 고통은 주로 전쟁 같은 무력 충돌과 자연재난과 같은 천재지변에서 발생하며,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 속에서 그 고통은 지속됩니다. 이같은 고통이 세계도처에서 쉼없이 터져 나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몰려 사는 지역 중 한곳이 바로 중동지역입니다. 중동지역에서도 가장 가까이 살면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聖地)이기도하죠. 구약과 신약의 역사가 육화(肉化)되어 있는 거룩한 땅입니다. 하기야 그 거룩한 종교적 의미부여 때문에 그곳의 고통이 역설적으로 더욱 격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3개국 순방에서 3가지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 느낌을 함께 나누며 은혜받고 싶습니다. 특히 선교가 억울한 고통이 있는 절망의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에 희망과 용기, 보람과 감동을 심어주고 길러주는 일 일진데, 또 그러한 실천의 삶을 역사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몸소 담당하셨음을 기억할진데, 중동의 현실은 그런 선교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저를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첫째, 자기 성찰력 곧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을 상실한 이른바 선민(選民)의 모습이 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웅장한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갔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나온 안내자를 따라 전시물을 둘러보면서 저는 한기(寒氣)를 느꼈습니다. 역사상 유대인들만큼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았던 민족은 드물지요. 11세기와 12세기를 걸쳐 기독교가 강행했던 십자군에 의해 무슬림도 아닌데 억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 20세기에는 히틀러에 의해 끔찍스럽게 죽어간 유대인들. 그들의 후손들이 이 박물관에서 느낄 전율을 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며칠간이라도 그곳에서 그 고통의 의미를 되씹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유물과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와 중국 등에서 자행했던 만행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신음하면서 죽어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내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일제하에 비슷한 고통을 받았지요. ”
저는 그녀가(안내자) ‘아, 그랬군요, 당신들도 당해보셨군요’라는 반응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의 얘기를 아예 무시했습니다. ‘너희들이 겪은 고통을 어디 우리 유대인들의 고통에 감히 비교하느냐. ’라고 무시하는 듯했습니다. 계속 자기들의 고난만을 열정적으로 해설했습니다. 바로 이같은 태도가 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자기들의 고통을 상기시키고 확산시키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남의 고통, 다른 민족의 억울한 지난날의 고통과 오늘의 분노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것, 그것이 오늘 저들 선민들의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자기들이 지금 가해자의 자리에 서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를 방문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들어가 보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친절한 안내로 위험한 웨스트뱅크(예루살렘의 서안지역. 곧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유니스 총재는 자기 민족의 세 가지 고통을 설득력있게 알려주었습니다.
강제로 땅을 빼앗긴 아픔, 자기들 지역에 들어와 좋은 언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정착 마을이 주는 아픔과 더불어 소수 유대인 정착촌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인위적인 장벽이 위압적으로 설치되어 팔레스타인 주민의 자유이동을 제한하는데서 오는 아픔. 이런 3고(苦)의 현실을 저는 직접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네블러스(구약의 세켐)에 있는 적신월사 지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지사회장의 인사말에 저는 놀랐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민선 시장이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우리의 교육부 장관도 그들이 잡아갔습니다…. ”
그들은 고통과 분노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들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회의를 마치고 수도 라말라로 돌아오는 길에 유니스 총재 자신도 여러 번 검문소에서 당혹스러운 수모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잡혀간 시장과 교육부 장관이 수감되어있는 군인막사 옆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 언덕위에는 빨간 지붕의 집들이 하나의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데, 계곡아래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거주지와는 퍽 대조적이었습니다. 언덕위의 멋지게 보이는 마을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마을입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그 땅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강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래에서 언덕을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증오와 분노와 고통의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듯 했습니다.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들은 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역지사지하지 않으며,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이같은 선민으로 자처하는 그들의 오만과 그 무관심에 놀랐습니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평화의 도시를 뜻하는데 그곳에 참 평화가 없다는 사실이 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평화는 없는 듯했지만, 곳곳에서 종교적 열정, 종파적 열광은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통곡의 벽 앞에서 머리를 쉼 없이 조아리며 야훼 신에게 기도드리는 정통파 유대교 신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저같은 신앙의 열정이 2000년 전 예수를 외롭게 했고 분노케하지 않았을까 그같은 종파적 열광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하기야 예루살렘이 지금 평화가 없는 도시가 된 것은 그곳에 바로 세계 3대 종교의 교조적 열정이 뜨겁게 맞부딪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회교의 근본주의자들의 열기가 이곳의 샬롬을 몰아내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도 몰래 처연해졌습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고난과 슬픔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거닐며 고난의 예수님을 명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이 길이 지금은 장사꾼들의 호객소리, 관광객들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천년, 전 환전소로 전락된 예루살렘 성전에 오시어 환전상을 채찍으로 몰아내셨던 그분이 지금 여기 다시 오신다면 어떻게 행동하실까를 상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곧 처참하게 그것이 무너질 것을 아시고 슬피 우셨던 곳에 눈물교회가 세워져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2천년 전에 우셨던 예수님을 기억해 내기보다 지금 바로 내 곁에 우시고 계신 그 분을 만나는 듯했습니다. 그분의 울음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임을 느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세켐(곧 야곱의 집과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했던 바로 그 우물은 지금도 풍부한 물을 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금기를 깨면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진정한 예배는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같은 장소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신 예수님을 새삼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이지 형식과 장소가 중요하지 않음을 깨우쳐주신 예수님을 새삼 기억하면서 저는 이런 소리를 듣는 듯했습니다. ‘나를 특정 장소에서 찾지 말아라. 이곳 성지에서 나를 찾지 말아라. 인간 고통의 사슬이 풀려지는 곳에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지독하게 차별받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곧 그녀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주는 물을 제공해주셨던 예수님은 지금도 그녀같은 처지에서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속에 살아 계시는구나 하는 깨달음. 그것이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성지라는 특정 장소에서 예수님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흔들어 주신 듯했습니다.
요르단에 있는 느보산에 올라갔을 때도 저는 야훼의 거룩한 심술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산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가나안 지역은 한마디로 황량함, 그 자체였습니다. 수천 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거친 곳이었겠지요. 40년 동안 그곳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꿀과 젖이 흐르는 이상향으로 부각시켰던 민족 지도자 모세가 이제 늙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고 울었다는 바로 그 장소에서, 저는 모세가 울었던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한 듯했습니다. 40년 고생 끝에 마침내 닿게 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기는커녕, 가시넝쿨과 폭염과 바싹 말라있는 거친 들판의 메마른 땅이었으니, 절망감으로 울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런 느낌에 잠겨있는데 제 곁에 있던 대사관 직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이 황량함을 보고 쇼크로 돌아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
그럴 것 같았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상향이란, 장소와 땅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그 거침이 있는 곳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려는 열린 의지와 강인한 헌신이 더 중요한 것이겠지요. 사막에서 샘물을 터지게 하고, 거친 들에서 장미를 피게 하는 것은 명당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갑자기 저는 1970년 중반에 갈릴리 교회에서 모세의 눈물에 대해 설교하다가 뜻밖에 서럽게 울었던 안병무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민주화된 나라를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안박사는 설교 중에 눈물을 흘렸는데, 그런 눈물들이 그래도 오늘의 우리 형편을 이정도로 올려 놓은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있는 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새삼 생각하면서도, 성지의 지리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기독교 관광객들의 모습이 저를 안타깝게 했지요. 눈물로 황야를 기름진 땅으로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거룩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세의 눈물은 새로운 비상한 결심에서 나온 눈물, 그의 후계자에게 희망을 준 눈물이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중동 세 나라를 둘러보며 한국의 대교회주의(大敎會主義)와 자기 교회중심주의가 빚어내고 있는 특이한 선교열기가 제 가슴을 섬뜩하게 했습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대사들과 오간 여러 얘기들 중에 저를 새삼 부끄럽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큰 교회 목회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해외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중동같은 무력 충돌이 잦은 위험지역에서 그들의 경쟁적 열정이 때론 무모하며 때론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성지에 몰려와 큰 집회도 열고 평화의 이름으로 대행진도 했습니다. 올 여름에도 아주 큰 교회 목사가 2,000명의 자기신도를 데리고 온다고 걱정했습니다. 그것이 주는 신변위험에 대해 정부는 크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철없이 교만한 장로들이 자기 교회 목사가 그곳을 가면 국빈으로 영접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이때 저는 “너희 받을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라고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듯했습니다.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을 받았던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시험에 떨어졌기에 역설적으로 권력과 재력과 종교적 카리스마를 휘잡아 휘둘러 대는 한국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꾸짖는 음성을 듣는 듯했습니다.
‘너희들은 흔한 돌같이 많은 떡과 재력을 이미 가졌고
너희들은 세상을 호령하는 위세를 이미 잡았고
너희들은 기적을 이룩하는 종교적 초능력을 이미 누리고 있으니,
너희들은 앞으로 받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상을 이미 스스로 받았구나. ‘
사도행전에서 부활승천하신 주님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 (행전 1: 8)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선교일진데, 오늘 한국교회가 과연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당부 말씀과 예수님의 첫 설교의 말씀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 말씀은 이사야 61장 1-2절의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포로된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소경에게는 눈뜸을, 억눌린 자들에게는 풀어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처음으로 선포하셨고 또 직접 실천하셨던 선교활동이었습니다. 땅 끝까지 가서 예수의 이같은 행하심을 보고 들은 대로 증언한다는 뜻은 단순한 선포의 수준을 넘어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 삶을 사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선교이지요. 그것을 땅 끝까지, 어디서나 언제나 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첫 메시지가 마지막 명령으로 이어지지요.
선교는 자기 종교의 교리, 자기 종파와 교파의 신조를 이웃종교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결코 아닙니다. 자기 교회로 신자들을 끌어 모으는 일도 아닙니다. 특히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문화와 종교를 우상이나 마귀로 폄하시키면서 그것을 훼손시키려는 행위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른 종교나 종파의 사람들에 대해 자기 종교와 다르다고 해서 오만하게 불쌍히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심각한 교만과 독선이라는 죄에 해당합니다. 예수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둠과 절망, 억압과 착취, 교만과 독선,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세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유, 겸손과 인내, 사랑과 평화를 증거하고 함께 실천해나가는 일입니다.
저는 요르단에서 세례요한이 갇혔던 마케라우스 지하 감옥을 보면서 문득 그가 예수께 자기 제자를 보내어 예수의 정체(正體)를 새삼 묻게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누가 7:18-22). 예수가 진정 당시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했던 메시아였는지 묻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
이같은 일을 보고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 선교요, 그것을 예수따르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교입니다. 놀랍게도 이 메시지는 예수님의 첫 선포의 실천을 뜻합니다. 여기에 특정 교파의 교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추상화된 신학적 교조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과 그 놀라운 효험입니다.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다투어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의 확장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국 국력의 20분의 1정도 밖에 안되는 나라의 개신교가 미국 다음으로 해외 선교사를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랑합니다. 과연 그들이 해외에 가서 예수의 사랑, 평화 실천의 증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까. 이미 다른 종교가 깊이 뿌리 내려 그곳 사람들의 가치 속에 종교의 힘이 스며들어 있는 지역으로 수천 명의 대형교회 한국개신교 신자들이 몰려다니며 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그 행위는 종교적 교만의 수준을 넘어 종교적 폭력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특히 회교 근본주의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에 가서 기독교 선교(예수 선교가 아닌) 행위를 하는 것은 신판 십자군 전쟁을 하자고 무모하게 덤비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되어 고통당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대교회주의자들의 종교적 오만과 탐욕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의 고통이 代苦의 고통임을 큰 교회지도자들은 깊이 뉘우쳐야 합니다. 100년 전 평양 대부흥을 오늘에 되살리려고 하는 한국교회는, 100년 전의 우리 경험을 되살리기에 앞서 이번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앞에서 고꾸라져 먼저 회개의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진정한 2007년의 부흥은 바로 이같은 영적 고꾸라짐의 회개에서 나와야합니다.
저는 이번 중동순방을 마칠 즈음 대사관 만찬 때 방명록에 한마디 격려의 글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성지(聖地)에 와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성찰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聖地가 자기를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省地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스스로 되돌아보며 예수 선교를 해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할 때 비로소 거룩한 땅을 밟게 되는 성지순례가 시작될 것입니다. 성지는 예수의 사랑과 평화가 펼쳐지는 바로 그 마당과 그 시간을 뜻함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때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의 가사가 절박하게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믿는 자여 어찌할꼬’로 끝나는 노랫말이, ‘우리 선교 어찌할꼬’라는 저의 안타까운 탄식으로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찌할꼬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찌할꼬“
정말 우리 교회들의 해외선교 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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