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우리 모두 선교사입니다
본문
우리 성지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남미 니카라과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선교편지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편지의 제목은 놀라운 성탄절 선물입니다.
선교통신이 늦었습니다. 타문화권 선교사의 고충입니다. 맘 놓고 어디든 갈수도 없고 간다고 한들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어서 문화의 충격이 실감나는 곳입니다. 낮과 밤의 구별이 없는 대한민국 서울에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곳은 밤만 되면 살벌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언어가 같고 피부와 색깔이 같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남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맘 놓고 교회 갈수 없고 교회를 간다 해도 긴장 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곳 선교지의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사람들은 모두가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그 중에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남의물건 훔치고 하는 일이 이들의 오랜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3개월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선교지 정착에 관한 행정적 절차와 거처관계로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한 달을 조금 넘게 임시거처로 짐을 풀지 못한 채 원주민이 사는 마을 의료선교관에서 지냈습니다.
마나과 변두리에 있는 곳인데 물 사정,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안 되는 지역입니다. 시내를 가서도 인터넷에서 이메일 확인은 할 수 있어도 자판이 없어서 이 메일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전화하기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이 모두가 문화충돌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맘대로 활동할 수 없는 아주 답답함 그 자체 입니다.
제가 탔던 차에 도둑이 들어 노트북(삼성)과 정착금(미화 8000불) 모두와 박사학위 논문이 담겨진 USB 일체를 도난당했습니다. 아직 짐도 풀지 못했고 임시거처는 안전하지 못해서 가방을 들고 다녔던 것인데 미국에서 파송 받은 이 선교사의 사무실과 정비소가 붙어 있던 곳에 이 선교사의 차를 정비소에 세우고 3분후에 차를 타 보니 그 사이에 가방을 들고 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무도 큰 2006년의 성탄 선물을 저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는 막막함뿐이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조서를 꾸미고 수사를 한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현실을 볼 땐 너무 멀고 캄캄해 보이나 위에 문은 열려졌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교 시작부터 주님께서 당신만을 바라보며 이 백성들을 위한 선교사가 되라고 말씀 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족한 이 종이 비우지 않으니 주님은 강권적인 방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가난한자들과 함께 가난해 지니 더욱 가난한자의 고통을 뼈에 사무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가난에 찌든 이곳 사람들, 제가 보기에 저들은 외국 사람들만 보면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 보입니다. 비록 2006년 12월 26일에 노트북 컴퓨터와 정착금 전부, 논문 자료일체를 도난당했으나 그래도 생명에 지장 없음에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난한 백성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선교 하라는 줄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종의 가난의 과정이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한 선교의 도구가 되기를 진실로 기도 하고 있습니다.
2월 7일 (수요일) 밤에 선교현장을 다녀오다가 저 자신이 강도를 만나 상해를 입은 2차 사고가 있었습니다. 두 번 째 시험입니다.
왜, 두 번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시험을 저에게 주시는가, 이곳에 10년 15년 계셨다는 선교사에게는 저와 같은 큰 시험이 없었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이런 큰 시험을 통해 니카라과를 더욱 사랑하며 기도하게 되고 이들을 이해하는데 전화위복의 기회를 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선교는 시험을 통한 선교가 시작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사고로
두번째로 삼성 노트북과 서류가방을 빼앗기고 강도가 저의 목 아래 칼로 등을 찌르고 상해를 입힌 후 달아났습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음에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치료는 잘 되었습니다. 어디 주님이 당한 고난과 사도바울이 당한 고난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노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선교사로서 주님의 주신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려는 중에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직까지 후유증이 좀 남아 있습니다. 요즘 들어 밤만 되면 더욱 불안해지는 불안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속히 불안감으로 부터 벗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선교사님의 편지를 통해서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우리가 마음 놓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들이 동일한 문화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등에 칼을 맞으면서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채우노라’는 바울의 고백을 드리는 선교사님의 믿음의 고백이 연약한 우리들의 신앙을 부끄럽게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다니시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약속대로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깨끼가 있습니다.
‘언제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 되는가’입니다.
즉 로마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승천하시기 직전 최후의 유언으로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주님의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이 말씀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모든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선교의 동력(動力)입니다.
무엇이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가 바로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입니다.
흔히 선교는 돈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정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재정은 보조수단이지 결코 본질은 아닙니다.
제가 싱가폴에 단기 선교사로 있으면서 동남아지역, 인도지역을 다니면서 선교지에 대한 리서치를 했습니다.
그 선교지를 돌아다니면서 가장 가슴 아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의 선교사들이 엄청난 선교비를 투자하여 커다란 교회를 짓고, 병원을 세웠는데, 선교사들이 쫓겨난 지금 정글 속에 묻혀있거나, 관리가 되지 못해 폐허로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로 인도 캘커타에 있는 한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적어도 2천명 정도가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큰 교회였습니다.
강대상 전면에 있는 엄청나게 큰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들어갔는데 텅 비어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야 강대상 한쪽 바닥에 앉아있는 10여명의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섭씨 45도의 열기속에서 예배당 바닥에 앉아서 2시간 30분 동안 정말 힘든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구나.
아무리 화려한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워도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빵과 복음이 다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능력이 나타날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지금도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은사와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김동찬 선교사님과 배를 타고 복음을 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부족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인데 무슬림 지역입니다.
마침 저희가 그 섬에 갔을 때 추장의 딸이 말라리아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들을 경계하고 마을 밖으로 내좇으려고 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이 침술을 배웠는데 ‘내가 한번 고쳐보겠노라’고 했습니다.
반신반의하더니 허락을 했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주님! 사랑하는 딸을 고쳐주십시오. 열병이 떠나고 온전히 회복시켜 주십시오. ”
정성을 다해 침을 놓고, 다시 한번 간절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꼼짝 못하던 추장의 딸이 눈을 뜨더니 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열이 내려가고,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추장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들도 지금부터 당신들이 믿는 예수를 믿겠습니다. 할렐루야!
김 선교사님이 한의학을 공부한 분도 아닙니다.
어쩌면 수지침 정도 배운 분입니다. 돌파리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 섬의 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선교는 바로 성령님으로 시작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진행됩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날 때 선교는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선교의 범위(範圍)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선교의 순서를 정해 놓은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예루살렘을 복음화시키고, 그 다음에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으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명이요, 선교의 현재성을 말합니다.
먼저 예루살렘은 중심도시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서울이요 강남이요 내가 살고 있는 동입니다.
온 유대는 대한민국을 말합니다.
민족 복음화를 의미합니다.
이 나라는 복음이 들어온 지 약 120여년이 지난 지금 860여만명의 성도가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18% 정도입니다.
아직도 이 민족의 82%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속히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주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앞당겨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마리아는 특수지역에 속한 소외계층과 북한 선교 등을 말합니다.
사마리아는 같은 동족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완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지역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마리아는 북한입니다.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남한교회의 도움으로 또 하나의 교회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외 선전용이지만 교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에는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적어도 1천개 정도의 지하교회에 13만 5천명 정도의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예수를 전하다가 붙잡히면 공개총살형을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혹한 핍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20%는 종교적인 이유라고 합니다.
지금 보신 찬송가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가 친필로 쓴 것입니다.
찬송가 249장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천국을 소망하며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리고 383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입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한 구절 한 구절 저들은 얼마나 뜨겁고 목메이게 이 찬송을 불렀을까요
눈물로 얼룩져 번진 글씨는 저들 마음의 녹아 내림입니다.
다 닳고 헤어진 종이는 마음이 닳도록 여호와 하나님만 앙망한 애달픔입니다.
흙으로 묻혀진 흙빛은 저들의 생명과도 같은 핏빛으로만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좋은 찬송가와 성경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눈물로 드리는 찬양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성지교회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좀 더 북한 선교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땅 끝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땅 끝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모든 족속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말씀하십니다.
이 지구상에는 약 1만 6천 종족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약 6,720 종족이 미전도종족입니다.
종족( People)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커다란 인종언어학적 집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은 복음화율이 2-5%미만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없는 종족 (People) 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에는 아직도 약 18억명의 미전도종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인도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한00 선교사님께서 00에 거주하고 있는 카작족 선교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들을 복음화시키기 위해 미전도종족 선교연대(UPMA)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앞으로 미전도종족을 입양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누가 선교의 증인이 될 것인가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명령하십니다.
증인은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자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고 듣고 배운 바를 그대로 증거했습니다.
원래 ‘증인’이란 단어의 의미는 ‘순교’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교사 하면 특별한 사명이 있는 자만을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우리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지 탐방을 하면서 전주안디옥교회를 갔습니다.
아직도 깡통교회,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하여 만든 콘센트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재정의 60%를 선교비에 지출하는 독특한 교회입니다.
이동휘 목사님의 선교에 대한 비디오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분의 주장은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는 선교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언제 받으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여러분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았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이 여러분의 것임을 믿습니까
이 질문에 아멘 하셨다면 여러분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순간 우리는 증인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부터 선교사다”
그리고 옆에 분을 이렇게 축복하십시오. “당신은 지금부터 선교사입니다. ”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님을 받은 우리 모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해서 토마스 라는 27살의 청년이 대동강에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토마스를 칼로 목 베었던 박충곤 이라는 사람은 후에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던진 쪽 복음을 가지고 갔다가 벽에 도배를 했던 사람도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은둔의 땅에 1885년 부활절 아침에 복음 들고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국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어둠의 이 땅에 1945년 이전까지 약 1,500명의 선교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인구통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1960년 인구가 25,012,374명이었습니다. 현재에도 2천5백만 명의 국가에 1,500여명의 선교사가 활동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민족 위에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입니다.
현재 전세계에 약 1만 4천여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 민족 위에 놀라운 부흥을 주시고, 선교의 열정을 주신 것은 특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약 7천여 종족, 18억의 미전도종족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지교회가 창립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세계선교에 대해서 눈을 떠야할 때입니다.
우리 성지교회는 이미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저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우리나라도 복음화가 안됐는데 무슨 해외선교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것은 선교를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교는 동시에 진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미국 선교사들이 미국 복음화 시킨 후에 한국 땅에 왔다면 우리는 여전히 미전도종족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제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부터, 이 민족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제는 북한을 품고 기도하며 선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를 품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무엇을 위해 쓰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1년간 선교지에 가서 신학교의 주방 설거지를 하고 오는 분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헌신하면 얼마든지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재물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시겠습니까
지금도 전 세계 수 많은 곳에 선교사를 보내야 합니다.
그곳에 바로 여러분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을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필리핀이나 캄보디아, 미얀마 지역은 2천만원이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5천만원 정도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비전을 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도행전의 29장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자합니다.
올 해도 좋은 청년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단기선교 비전트립을 떠납니다.
장년들이 중국 곤명을 중심으로 오지지역을 돌면서 선교의 비전을 갖고자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선교사입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기도하든지 우리는 선교사의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니아 환상을 본 것처럼 우리 성지교회가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그날까지 우리 모두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편지의 제목은 놀라운 성탄절 선물입니다.
선교통신이 늦었습니다. 타문화권 선교사의 고충입니다. 맘 놓고 어디든 갈수도 없고 간다고 한들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형편이어서 문화의 충격이 실감나는 곳입니다. 낮과 밤의 구별이 없는 대한민국 서울에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곳은 밤만 되면 살벌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언어가 같고 피부와 색깔이 같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남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맘 놓고 교회 갈수 없고 교회를 간다 해도 긴장 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곳 선교지의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사람들은 모두가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그 중에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남의물건 훔치고 하는 일이 이들의 오랜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3개월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선교지 정착에 관한 행정적 절차와 거처관계로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한 달을 조금 넘게 임시거처로 짐을 풀지 못한 채 원주민이 사는 마을 의료선교관에서 지냈습니다.
마나과 변두리에 있는 곳인데 물 사정,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안 되는 지역입니다. 시내를 가서도 인터넷에서 이메일 확인은 할 수 있어도 자판이 없어서 이 메일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전화하기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이 모두가 문화충돌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맘대로 활동할 수 없는 아주 답답함 그 자체 입니다.
제가 탔던 차에 도둑이 들어 노트북(삼성)과 정착금(미화 8000불) 모두와 박사학위 논문이 담겨진 USB 일체를 도난당했습니다. 아직 짐도 풀지 못했고 임시거처는 안전하지 못해서 가방을 들고 다녔던 것인데 미국에서 파송 받은 이 선교사의 사무실과 정비소가 붙어 있던 곳에 이 선교사의 차를 정비소에 세우고 3분후에 차를 타 보니 그 사이에 가방을 들고 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무도 큰 2006년의 성탄 선물을 저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는 막막함뿐이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조서를 꾸미고 수사를 한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현실을 볼 땐 너무 멀고 캄캄해 보이나 위에 문은 열려졌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교 시작부터 주님께서 당신만을 바라보며 이 백성들을 위한 선교사가 되라고 말씀 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족한 이 종이 비우지 않으니 주님은 강권적인 방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가난한자들과 함께 가난해 지니 더욱 가난한자의 고통을 뼈에 사무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가난에 찌든 이곳 사람들, 제가 보기에 저들은 외국 사람들만 보면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 보입니다. 비록 2006년 12월 26일에 노트북 컴퓨터와 정착금 전부, 논문 자료일체를 도난당했으나 그래도 생명에 지장 없음에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난한 백성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선교 하라는 줄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종의 가난의 과정이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한 선교의 도구가 되기를 진실로 기도 하고 있습니다.
2월 7일 (수요일) 밤에 선교현장을 다녀오다가 저 자신이 강도를 만나 상해를 입은 2차 사고가 있었습니다. 두 번 째 시험입니다.
왜, 두 번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시험을 저에게 주시는가, 이곳에 10년 15년 계셨다는 선교사에게는 저와 같은 큰 시험이 없었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이런 큰 시험을 통해 니카라과를 더욱 사랑하며 기도하게 되고 이들을 이해하는데 전화위복의 기회를 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선교는 시험을 통한 선교가 시작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사고로
두번째로 삼성 노트북과 서류가방을 빼앗기고 강도가 저의 목 아래 칼로 등을 찌르고 상해를 입힌 후 달아났습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음에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치료는 잘 되었습니다. 어디 주님이 당한 고난과 사도바울이 당한 고난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노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선교사로서 주님의 주신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려는 중에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직까지 후유증이 좀 남아 있습니다. 요즘 들어 밤만 되면 더욱 불안해지는 불안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속히 불안감으로 부터 벗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선교사님의 편지를 통해서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우리가 마음 놓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들이 동일한 문화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등에 칼을 맞으면서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채우노라’는 바울의 고백을 드리는 선교사님의 믿음의 고백이 연약한 우리들의 신앙을 부끄럽게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다니시면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약속대로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깨끼가 있습니다.
‘언제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 되는가’입니다.
즉 로마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승천하시기 직전 최후의 유언으로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주님의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이 말씀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모든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선교의 동력(動力)입니다.
무엇이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가 바로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입니다.
흔히 선교는 돈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정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재정은 보조수단이지 결코 본질은 아닙니다.
제가 싱가폴에 단기 선교사로 있으면서 동남아지역, 인도지역을 다니면서 선교지에 대한 리서치를 했습니다.
그 선교지를 돌아다니면서 가장 가슴 아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의 선교사들이 엄청난 선교비를 투자하여 커다란 교회를 짓고, 병원을 세웠는데, 선교사들이 쫓겨난 지금 정글 속에 묻혀있거나, 관리가 되지 못해 폐허로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로 인도 캘커타에 있는 한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적어도 2천명 정도가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큰 교회였습니다.
강대상 전면에 있는 엄청나게 큰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들어갔는데 텅 비어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야 강대상 한쪽 바닥에 앉아있는 10여명의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섭씨 45도의 열기속에서 예배당 바닥에 앉아서 2시간 30분 동안 정말 힘든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구나.
아무리 화려한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워도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빵과 복음이 다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능력이 나타날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지금도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은사와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김동찬 선교사님과 배를 타고 복음을 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부족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인데 무슬림 지역입니다.
마침 저희가 그 섬에 갔을 때 추장의 딸이 말라리아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들을 경계하고 마을 밖으로 내좇으려고 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이 침술을 배웠는데 ‘내가 한번 고쳐보겠노라’고 했습니다.
반신반의하더니 허락을 했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주님! 사랑하는 딸을 고쳐주십시오. 열병이 떠나고 온전히 회복시켜 주십시오. ”
정성을 다해 침을 놓고, 다시 한번 간절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꼼짝 못하던 추장의 딸이 눈을 뜨더니 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열이 내려가고,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추장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들도 지금부터 당신들이 믿는 예수를 믿겠습니다. 할렐루야!
김 선교사님이 한의학을 공부한 분도 아닙니다.
어쩌면 수지침 정도 배운 분입니다. 돌파리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 섬의 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선교는 바로 성령님으로 시작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진행됩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날 때 선교는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선교의 범위(範圍)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선교의 순서를 정해 놓은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예루살렘을 복음화시키고, 그 다음에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으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명이요, 선교의 현재성을 말합니다.
먼저 예루살렘은 중심도시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서울이요 강남이요 내가 살고 있는 동입니다.
온 유대는 대한민국을 말합니다.
민족 복음화를 의미합니다.
이 나라는 복음이 들어온 지 약 120여년이 지난 지금 860여만명의 성도가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18% 정도입니다.
아직도 이 민족의 82%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속히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주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앞당겨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마리아는 특수지역에 속한 소외계층과 북한 선교 등을 말합니다.
사마리아는 같은 동족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완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지역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마리아는 북한입니다.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남한교회의 도움으로 또 하나의 교회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외 선전용이지만 교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에는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적어도 1천개 정도의 지하교회에 13만 5천명 정도의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예수를 전하다가 붙잡히면 공개총살형을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혹한 핍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20%는 종교적인 이유라고 합니다.
지금 보신 찬송가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가 친필로 쓴 것입니다.
찬송가 249장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천국을 소망하며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리고 383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입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한 구절 한 구절 저들은 얼마나 뜨겁고 목메이게 이 찬송을 불렀을까요
눈물로 얼룩져 번진 글씨는 저들 마음의 녹아 내림입니다.
다 닳고 헤어진 종이는 마음이 닳도록 여호와 하나님만 앙망한 애달픔입니다.
흙으로 묻혀진 흙빛은 저들의 생명과도 같은 핏빛으로만 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좋은 찬송가와 성경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눈물로 드리는 찬양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성지교회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좀 더 북한 선교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땅 끝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땅 끝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모든 족속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말씀하십니다.
이 지구상에는 약 1만 6천 종족이 있는데, 그 가운데 약 6,720 종족이 미전도종족입니다.
종족( People)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커다란 인종언어학적 집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은 복음화율이 2-5%미만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없는 종족 (People) 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에는 아직도 약 18억명의 미전도종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인도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한00 선교사님께서 00에 거주하고 있는 카작족 선교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들을 복음화시키기 위해 미전도종족 선교연대(UPMA)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앞으로 미전도종족을 입양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누가 선교의 증인이 될 것인가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명령하십니다.
증인은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자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고 듣고 배운 바를 그대로 증거했습니다.
원래 ‘증인’이란 단어의 의미는 ‘순교’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교사 하면 특별한 사명이 있는 자만을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우리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지 탐방을 하면서 전주안디옥교회를 갔습니다.
아직도 깡통교회,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하여 만든 콘센트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재정의 60%를 선교비에 지출하는 독특한 교회입니다.
이동휘 목사님의 선교에 대한 비디오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분의 주장은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는 선교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언제 받으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여러분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았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이 여러분의 것임을 믿습니까
이 질문에 아멘 하셨다면 여러분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순간 우리는 증인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부터 선교사다”
그리고 옆에 분을 이렇게 축복하십시오. “당신은 지금부터 선교사입니다. ”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님을 받은 우리 모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해서 토마스 라는 27살의 청년이 대동강에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토마스를 칼로 목 베었던 박충곤 이라는 사람은 후에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던진 쪽 복음을 가지고 갔다가 벽에 도배를 했던 사람도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은둔의 땅에 1885년 부활절 아침에 복음 들고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국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어둠의 이 땅에 1945년 이전까지 약 1,500명의 선교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인구통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1960년 인구가 25,012,374명이었습니다. 현재에도 2천5백만 명의 국가에 1,500여명의 선교사가 활동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민족 위에 베풀어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입니다.
현재 전세계에 약 1만 4천여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 민족 위에 놀라운 부흥을 주시고, 선교의 열정을 주신 것은 특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약 7천여 종족, 18억의 미전도종족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지교회가 창립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세계선교에 대해서 눈을 떠야할 때입니다.
우리 성지교회는 이미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저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우리나라도 복음화가 안됐는데 무슨 해외선교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것은 선교를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선교는 동시에 진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미국 선교사들이 미국 복음화 시킨 후에 한국 땅에 왔다면 우리는 여전히 미전도종족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제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부터, 이 민족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제는 북한을 품고 기도하며 선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를 품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무엇을 위해 쓰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1년간 선교지에 가서 신학교의 주방 설거지를 하고 오는 분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헌신하면 얼마든지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재물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시겠습니까
지금도 전 세계 수 많은 곳에 선교사를 보내야 합니다.
그곳에 바로 여러분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을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필리핀이나 캄보디아, 미얀마 지역은 2천만원이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5천만원 정도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비전을 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도행전의 29장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자합니다.
올 해도 좋은 청년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단기선교 비전트립을 떠납니다.
장년들이 중국 곤명을 중심으로 오지지역을 돌면서 선교의 비전을 갖고자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선교사입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기도하든지 우리는 선교사의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니아 환상을 본 것처럼 우리 성지교회가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그날까지 우리 모두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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