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의 동력
본문
월드컵 대회를 통해 생긴 말 가운데 하나가 12번째 선수라는 말입니다.
금번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12번째 선수들의 응원도 반드시 포함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바닥 사건의 주인공들이 선교의 현장에서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만큼
보내는 선교사들의 후원과 응원이 선교의 승패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선교의 동력이 무엇인냐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기독교 유사이래 가장 강력했던 사도 바울의 선교의 동력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 내일교회의 선교의 저력으로 삼을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교회생활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구원하시는 분으로서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바울 자신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선교의 저력이 무엇인가
즉 선교의 동력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바울의 선교관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선교를 어떻게 해 왔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바울이 선교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있었지마는
전체적으로 볼 때 신앙의 성숙한 면모가 가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14절에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라고 합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도덕적인 성숙함과 구원의 도리에 있어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아니해도 잘 해 나갈 수 있는 교회임을
바울도 잘 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더 이상 신앙생활에 있어서 2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에 있어서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더 이상 권면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15절에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 고 합니다.
그러니 신앙생활 특히 교회 생활에 있어서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성숙한 면을 보이는 로마교회이지만
그러나 또 다른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성도들을 바라볼 때
오늘 바울이 로마교회에 말하고자 하는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내일교회 교인들 비교적 교회생활에 있어서
성숙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성경을 알려고 하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일성수 하고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직분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며
개발과정을 통하여 성경공부 제자훈련을 받고
교회가 점점 더 성숙해져 가고 있음을
저 역시 내일교회 담임목사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또 다른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른 은혜가 무엇인냐 16절에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것 입니다.
즉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민11:에 보면 메추리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중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만 먹으니
입맛도 없고 정력도 쇠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있어 불평을 시작하니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 불평을 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실컷 먹었는데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고 불평하며 웁니다.
그 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항의를 합니다.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70인 장로들을 회막 내 앞에 세워라 내가 강림하여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지리라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하루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 일만 먹을 뿐만이 아니라 한 달간 코에 냄새가 나도록 먹게 하리라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는 말이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하니
모세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합니다.
모세가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고하고
70인 장로들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들이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아니한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니
시종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저들을 금하게 하소서 합니다.
그때 모세가 하는 말이 신11:29절에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이 말은 구약에서는 특정한 사람만 선지자 사역을 감당했지마는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여호와 하나님 백성은 누구나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에 와서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 역사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다 성령 받아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 리베리아 그보코 사람들에게 성경을 번역하면서
선지자란 말을 어떻게 그들의 말로 번역할 수 있을까 고심을 하는데
점장이, 무당이라는 말은 있어도 선지자란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마을에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 마을의 추장의 비서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큰 소리를 외치며
추장이 명령한 것들을 전하는 데 힌트를 얻어서 선지자란 말을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동네에 와서 소리치는 자 라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사
다 선지자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의 은혜 받아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 하고 봉사하고 친교 하는 것으로 머물지 아니하고
또 다른 성령의 은혜를 받은 교회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선교사로 나가지 못한다 할찌라도
12번째 선수가 되어 응원하고 협력하는 보내는 선교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성숙한 신앙생활로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가 무엇입니까
구약의 제사장 직무는 짐승을 잡아 재물로 바쳐
백성들의 죄를 사함받고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을 했습니다만
신약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는
16절에 이방인을 재물로 드리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선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을 재물로 드렸지마는
신약의 복음의 제사장들은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직무를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선전이라 말, 지난번 주보에 앞면에 제가 글을 실은 적이 있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해설하는 복음의 나레이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복음의 나레이터의 사명을 갖고
세상에서 부름받아 교회로 세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는 자신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고
그리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첫 번째가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고
두 번째가 복음 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선교사가 되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한다 할찌라도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내가 12번째 선수가 되어 선교에 동참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4. 선교에 있어서 바울의 자랑은 무엇입니까(17-18절)
그 자랑이 무엇인냐 하면
18절에 나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5
우리의 긍지와 자부심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혹 세상에 것에 마음을 두고 세상의 것으로 자랑을 삼으력 하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치있는 자랑은 바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라는 것
꼭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
외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꼭 해야할 일이 한가지 있는데 환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꼭 미국돈 달러로 바꾸어 가지고 가야 외국에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달라를 가지고 그 나라 돈으로 바꾸어 쓰다가 남으면
다른 나라로 가면 쓰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달러로 바꾸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 가지고
하늘나라에서도 가치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오직 하늘나라 달러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 나라 달러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 확장과 영혼구원을 위해 투자한 물질입니다.
하늘나라에 부유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입니다.
특히 선교에 긍지를 가지고
선교가 내일교회의 자랑이 되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교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교회가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달러로 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선교를 하는데 얼마를 투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순종하고 돌아오는데
18절에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선교하는데 있어서 돈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말과 일이며 - 즉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력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말과 일로만 된 것이 아니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바울 선교의 동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가 선교의 동력인 것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약 15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로마 제국이 다스리던 식민지 안에서
당시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던
빌립보, 데살로니까, 에베소, 고린도, 지방에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의 성공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교자로서의 그의 능력입니까 6
신학자로서의 그의 지식일까요
노련한 선교사로서의 그의 선교전략 때문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의 필수 부분이었던 강력한 성령의 능력과 기적 때문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 즉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선교학의 권위자 허버트 케인은
로마 제국 시대에 기적이 없었더라면
기독교가 살아남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은 선교사였지마는
오늘날 선교사와 같이 정기적으로 선교 후원을 받지도 못했고
대부분 탠트 메이커로서 자비령 선교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곳마다 여호와 닛시의 승리의 깃발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교의 동력이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권위자 로버트 그로버는
성령은 하늘 군대와 선교 운동의 사령관으로서 세상에 왔고
그 분이 오심으로 선교 사업의 모든 면에 신성이 부여되게 되었다 라고 합니다.
신학자 모트는
성령께서는 위대한 선교사이시며 성령께서 이 선교 사업과 선교사들을 주도하실 때에만 우리는 선교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실 말에도 능한 사람입니다. 설교도 잘한 것 같아요.
행17장에 아테네에서 에비온파 스토익파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는데
얼마나 말을 잘 했던지 그 사람들이 바울보고 하는 말이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이 말장이는 시골약장수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을 잘하고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바울의 선교여행을 따라 가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꼭 기적과 표적이 나타납니다.
바울 선교의 동력은 바로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행14:3절 이고니온에서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그래서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역사가 나타나니
사람들이 바나바에게는 제우스 신이라 하고
바울에게는 헤르메스 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6장에는 빌립보 감옥에서 착고와 수갑이 풀리어 지고
옥문이 열려지는 기적이 나타나며
행17: 데살로니가 전도 18: 에베소 전도에서 물론 많은 환난도 당합니다만
행19:11절에 고린도 지방에서는 7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환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없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고 합니다.
이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겠습니다.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의 권능을 회복하는
내일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러한 선교의 동력에 힘입어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했다고 합니다
일루리곤은 지금 유고슬라비아 지방을 가르킵니다.
이 말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데는 다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에게는 선교의 기본 원리가 있었습니다.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 말은 선교를 단독으로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선교로 말하자면
우리 총회 선교사들 가운데도
미국이니 영국이니 독일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만
바울의 선교전략은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선교하겠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선교방침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적용한다면
전도해서 교회가 성장해야지 교인뺏기 쟁탈전이나
수평이동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원치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저희 교회도 앞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더라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파송할 계획입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생활에 은혜를 받아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이방인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것
즉 선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교를 돈으로 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은 은과 금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가치를 금으로 평가합니다.
돈 이야기 빼면 세상에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전쟁도 돈으로 한다고 합니다.
축구도 돈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8
이번 월드컵을 위하여 선수단에게 100억을 투자했는데
16강에 들어가므로 200억을 벌이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금 이야기하는 곳이 아닙니다.
금의 위력을 나타내는 곳이 아닙니다.
선교 역시 돈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으나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엄청난 교회를 짓고
땅도 많이 갖고, 사람들도 많지만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잃어 버렸다 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그대로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입니다.
교회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는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교도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3:6절에 베드로의 외침같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는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금번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12번째 선수들의 응원도 반드시 포함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바닥 사건의 주인공들이 선교의 현장에서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만큼
보내는 선교사들의 후원과 응원이 선교의 승패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선교의 동력이 무엇인냐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기독교 유사이래 가장 강력했던 사도 바울의 선교의 동력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 내일교회의 선교의 저력으로 삼을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교회생활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구원하시는 분으로서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바울 자신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선교의 저력이 무엇인가
즉 선교의 동력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바울의 선교관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선교를 어떻게 해 왔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바울이 선교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우리에게 먼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있었지마는
전체적으로 볼 때 신앙의 성숙한 면모가 가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14절에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라고 합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도덕적인 성숙함과 구원의 도리에 있어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아니해도 잘 해 나갈 수 있는 교회임을
바울도 잘 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더 이상 신앙생활에 있어서 2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에 있어서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더 이상 권면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15절에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 고 합니다.
그러니 신앙생활 특히 교회 생활에 있어서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성숙한 면을 보이는 로마교회이지만
그러나 또 다른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성도들을 바라볼 때
오늘 바울이 로마교회에 말하고자 하는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내일교회 교인들 비교적 교회생활에 있어서
성숙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성경을 알려고 하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일성수 하고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직분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며
개발과정을 통하여 성경공부 제자훈련을 받고
교회가 점점 더 성숙해져 가고 있음을
저 역시 내일교회 담임목사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또 다른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른 은혜가 무엇인냐 16절에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것 입니다.
즉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민11:에 보면 메추리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중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만 먹으니
입맛도 없고 정력도 쇠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있어 불평을 시작하니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 불평을 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실컷 먹었는데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고 불평하며 웁니다.
그 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항의를 합니다.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70인 장로들을 회막 내 앞에 세워라 내가 강림하여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지리라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하루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 일만 먹을 뿐만이 아니라 한 달간 코에 냄새가 나도록 먹게 하리라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는 말이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하니
모세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합니다.
모세가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고하고
70인 장로들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들이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아니한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니
시종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저들을 금하게 하소서 합니다.
그때 모세가 하는 말이 신11:29절에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이 말은 구약에서는 특정한 사람만 선지자 사역을 감당했지마는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여호와 하나님 백성은 누구나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에 와서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성령강림 역사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다 성령 받아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 리베리아 그보코 사람들에게 성경을 번역하면서
선지자란 말을 어떻게 그들의 말로 번역할 수 있을까 고심을 하는데
점장이, 무당이라는 말은 있어도 선지자란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마을에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 마을의 추장의 비서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큰 소리를 외치며
추장이 명령한 것들을 전하는 데 힌트를 얻어서 선지자란 말을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동네에 와서 소리치는 자 라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사
다 선지자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의 은혜 받아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 하고 봉사하고 친교 하는 것으로 머물지 아니하고
또 다른 성령의 은혜를 받은 교회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선교사로 나가지 못한다 할찌라도
12번째 선수가 되어 응원하고 협력하는 보내는 선교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성숙한 신앙생활로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가 무엇입니까
구약의 제사장 직무는 짐승을 잡아 재물로 바쳐
백성들의 죄를 사함받고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을 했습니다만
신약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는
16절에 이방인을 재물로 드리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선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을 재물로 드렸지마는
신약의 복음의 제사장들은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직무를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선전이라 말, 지난번 주보에 앞면에 제가 글을 실은 적이 있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해설하는 복음의 나레이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복음의 나레이터의 사명을 갖고
세상에서 부름받아 교회로 세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는 자신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고
그리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첫 번째가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고
두 번째가 복음 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선교사가 되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한다 할찌라도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내가 12번째 선수가 되어 선교에 동참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4. 선교에 있어서 바울의 자랑은 무엇입니까(17-18절)
그 자랑이 무엇인냐 하면
18절에 나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5
우리의 긍지와 자부심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혹 세상에 것에 마음을 두고 세상의 것으로 자랑을 삼으력 하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치있는 자랑은 바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라는 것
꼭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
외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꼭 해야할 일이 한가지 있는데 환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꼭 미국돈 달러로 바꾸어 가지고 가야 외국에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달라를 가지고 그 나라 돈으로 바꾸어 쓰다가 남으면
다른 나라로 가면 쓰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달러로 바꾸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 가지고
하늘나라에서도 가치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오직 하늘나라 달러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 나라 달러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 확장과 영혼구원을 위해 투자한 물질입니다.
하늘나라에 부유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입니다.
특히 선교에 긍지를 가지고
선교가 내일교회의 자랑이 되는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교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교회가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달러로 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선교를 하는데 얼마를 투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순종하고 돌아오는데
18절에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선교하는데 있어서 돈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말과 일이며 - 즉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력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말과 일로만 된 것이 아니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바울 선교의 동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가 선교의 동력인 것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약 15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로마 제국이 다스리던 식민지 안에서
당시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던
빌립보, 데살로니까, 에베소, 고린도, 지방에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의 성공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교자로서의 그의 능력입니까 6
신학자로서의 그의 지식일까요
노련한 선교사로서의 그의 선교전략 때문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역의 필수 부분이었던 강력한 성령의 능력과 기적 때문입니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 즉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선교학의 권위자 허버트 케인은
로마 제국 시대에 기적이 없었더라면
기독교가 살아남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은 선교사였지마는
오늘날 선교사와 같이 정기적으로 선교 후원을 받지도 못했고
대부분 탠트 메이커로서 자비령 선교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곳마다 여호와 닛시의 승리의 깃발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교의 동력이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권위자 로버트 그로버는
성령은 하늘 군대와 선교 운동의 사령관으로서 세상에 왔고
그 분이 오심으로 선교 사업의 모든 면에 신성이 부여되게 되었다 라고 합니다.
신학자 모트는
성령께서는 위대한 선교사이시며 성령께서 이 선교 사업과 선교사들을 주도하실 때에만 우리는 선교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실 말에도 능한 사람입니다. 설교도 잘한 것 같아요.
행17장에 아테네에서 에비온파 스토익파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는데
얼마나 말을 잘 했던지 그 사람들이 바울보고 하는 말이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이 말장이는 시골약장수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을 잘하고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바울의 선교여행을 따라 가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꼭 기적과 표적이 나타납니다.
바울 선교의 동력은 바로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행14:3절 이고니온에서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그래서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역사가 나타나니
사람들이 바나바에게는 제우스 신이라 하고
바울에게는 헤르메스 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6장에는 빌립보 감옥에서 착고와 수갑이 풀리어 지고
옥문이 열려지는 기적이 나타나며
행17: 데살로니가 전도 18: 에베소 전도에서 물론 많은 환난도 당합니다만
행19:11절에 고린도 지방에서는 7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환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없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고 합니다.
이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겠습니다.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의 권능을 회복하는
내일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러한 선교의 동력에 힘입어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했다고 합니다
일루리곤은 지금 유고슬라비아 지방을 가르킵니다.
이 말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데는 다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에게는 선교의 기본 원리가 있었습니다.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 말은 선교를 단독으로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선교로 말하자면
우리 총회 선교사들 가운데도
미국이니 영국이니 독일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만
바울의 선교전략은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선교하겠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선교방침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적용한다면
전도해서 교회가 성장해야지 교인뺏기 쟁탈전이나
수평이동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원치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저희 교회도 앞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더라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파송할 계획입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생활에 은혜를 받아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이방인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것
즉 선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교를 돈으로 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은 은과 금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가치를 금으로 평가합니다.
돈 이야기 빼면 세상에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전쟁도 돈으로 한다고 합니다.
축구도 돈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8
이번 월드컵을 위하여 선수단에게 100억을 투자했는데
16강에 들어가므로 200억을 벌이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금 이야기하는 곳이 아닙니다.
금의 위력을 나타내는 곳이 아닙니다.
선교 역시 돈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으나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엄청난 교회를 짓고
땅도 많이 갖고, 사람들도 많지만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잃어 버렸다 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그대로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입니다.
교회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는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교도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3:6절에 베드로의 외침같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는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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