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역
본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교회에 대하여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자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 교회를 말할 대부분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교회를 마음속에 그리게 된다. 그러나 좋은 교회란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교회이어야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좋은 교회를 얘기할 때에 큰 교회(Big Church), 대교회(Mega Church) 등을 생각하지만 ‘교회성장학’에서는 좋은 교회란 ‘건강한 교회’(a healthy church)를 말하며, 나아가 건강한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 건강한 교회는 분명한 표적(標的)-the vital signs of a health church- 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의 참 모습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새 성전 시대를 맞이하는 교회 충신교회는 는 성경적 교회 상을 추구하며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1. 안디옥 교회의 이방선교
안디옥교회는 이방전도의 출발점이요 중심지였다. 안디옥교회의 설립 배경을 보면 의미가 깊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 이후에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예루살렘에는 로마에 의한 강한 핍박이 일어났다. 이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자유를 찾아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안디옥이란 도시에도 몇 그리스도인들이 머물게 되었다.
예루살렘서부터 이렇게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외지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 등에까지 뻗어 나갔다(행 11:19). 그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서 함께 예수를 전파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는 큰 전도의 결실을 보았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흩어진 자들이 다시 모여 세운 교회였고, 이방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유대인 전도 즉 디아스포라(Diaspora) 전도의 모체가 되었다. 안디옥교회는 교민들을 함께 모으는 최초의 교포교회가 되었다.
둘째로, 믿음 생활에 큰 모범을 보인 교회였다. 안디옥교회의 소문이 본국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알려지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교회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하게 되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 나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다. 바나바는 회심(悔心)한 사울을 다소에서 불러서 동역하며 함께 교회를 섬기며 힘써 가르쳤다. 그 결과 교회는 부흥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셋째로, 이방인 전도의 산실이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비록 흩어진 자들이 모인 미약한 교회로 출발하였으나 당시의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에 복을 전하는 놀라운 선교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넷째로, 최초로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당시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교의 센터와 같은 역학을 하면서 유럽선교에까지 선교를 지원하며 뻗어나가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2. 좋은 일군을 세우는 사역
한편 안디옥 교회의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군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교회에는 선자자들과 교사들로 구성된 섬기는 일군이 많이 있음이 발견된다. 여기에 보면, 흑인 출신인 시므온, 아주 먼 구레네에서 온 루기오, 헤롯왕의 동생 마엔나, 다메섹에서 회심한 사울 등 특징 있는 자들이 있었다. 성경에 나타나 초대교회를 보면 교회에 일군들을 많이 두었다. 즉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행하는 자, 복음전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다스리는 자, 서로 돕는 자 등이 있었다(고전 12:28, 29, 엡 4:11). 이처럼 초대교회에는 많은 일군들이 있어서 교회를 섬겼고, 충성으로 봉하였다.
건강하지 못하고 병든 교회는 섬기는 일군보다는 주인 노릇하는 교인이 많고,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기보다는 방청객에 앉아 있는 자가 많고, 교회 제반사에 대하여 봉사하기보다는 평가와 비판을 일삼는 교인들도 있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 3:11).
교회에는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유익과 여호와 하나님 사역을 위해서 복음에 협력하는 좋은 일군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경은 교회의 직분에 대한 바른 개념을 교훈해 주고 있다.
먼저, 직분은 주께서 세우는 직책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고전 12:28). 직분을 사람이 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 싶어 하고 탐내기도 하고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다음으로, 직분은 원하는 대로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 직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예) 삼상 13장에 보면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가 제사를 낼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7일을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제사를 스스로 감행 하다가 왕위에서 쫓겨나게 된다(삼상 13:8-14).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며,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는 좋은 일군을 많이 배출하는데 있다. 이상적인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잘 준비되고 훌륭한 섬김이 있는 일군들이 많은 교회가 되도록 힘쓰자!
3.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직분자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소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다. 안디옥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일군을 세우는 방법이 발견되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금식하고 안수하여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 사역을 어떤 자세로 행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행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복음사역을 행하게 될 때에, 철저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감동으로 일을 수행하였다. 구체적으로 안디옥 교회는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시키는 일만을 수행하였다. 이는 다른 사도나 사도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것은 동일하였다.
성경은 직분자가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로, 자원함과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봉사와 섬김의 바른 자세이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둘째로, 평강 중에 감사함으로 행해야 한다. 이는 섬김의 기준이다. 마음에 불편함, 짜증과 원망의 봉사라면 이미 성령의 감화력이 없는 봉사일이다. 자원함과 즐거움이 있는 봉사자는 감사하면서 일하고 화평으로 섬긴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셋째로,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아야 한다.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주장하는 자세’는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양 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고, 직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직분 자는 지배를 하거나 다스리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한 마음과 신성한 모습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
넷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겸허한 자세로 해야 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일을 맡는 청지기 같은 심정으로 섬겨야 한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예)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벨사살 왕이 나온다. 그는 갈대아 왕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군림하지만 치세 3년에 무참히 피살되고 만다(단 5:29,30,8:1).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지 않고 인생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 죄였다(단5:22,23).
그러므로 우리 모든 직분 자들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움으로 교회를 섬기며,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않는 겸허한 태도가 요구된다.
톨스토이 “공손한 사람보다 힘이 강한 사람은 없다. 공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떠나서 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 능력이 나타난 교회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선교사 바나바는 사도들의 설교에 의하여 개종된 자로 예루살렘에 있다가 안디옥으로 와서 헬라파 유대인 즉 교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다소에서 바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동역하게 된다.
바울은 이스라엘 정통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써 당대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등 기독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을 서다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1년 동안 안디옥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교회에 큰 부흥을 일으켰다.
바나바와 바울은 최초의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위하여 이방 나라에 파송 받게 된다. 그들은 실루기아 구브로 살라미 바보에 이르는 선교여행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선교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본문에는 그들이 만나 두 사람을 소개해 주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당시 총독 서기오 바울이라는 자였다.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 다음은 바 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였다. 이 사람은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심히 방해하였다. 복음전파의 현장에는 복음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는 방해하는 자 등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박수 엘루마를 주목하고 성령의 충만하여 강하게 명령한다.
(행 13:10,11)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바울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큰 기적이 일어났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목격한 총독 서기오 바울은 그 능력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가르침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은 때로 강한 능력을 동반하여 의심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 주시기도 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가르침과 치유사역을 병행하였다. 제자들의 사역이나 이후 바울의 사역에서도 병자를 일으키는 등 기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현대 사회의 복음의 사역의 특징은 당시의 현상과는 같을 수 없고, 좀 다른 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슥 4:6)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전 4:20)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결 론
기독교회의 초대교회는 지금의 교회보다 훨씬 간소했다. 그들은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땅 끝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주신 직분을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체험한 것에 대하여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과연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는가 그것은 건강한 교회의 이상적 모습이요, 초대 교회가 추구하는 성경적 교회일 것이다. 우리는 큰 교회(Big Church), 대교회(Mega Church) 보다는 선교할 수 있는 일군이 많고, 충성과 헌신으로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이상적인 교회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많은 일군들을 배출하였으며, 그 일군들은 제 마음대로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받는 일에 있어서 철저하였고, 그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타나났다. 이런 모법적인 교회 사역이 우리 충신교회에서도 펼쳐지길 바란다.
한편 사람들은 좋은 교회를 얘기할 때에 큰 교회(Big Church), 대교회(Mega Church) 등을 생각하지만 ‘교회성장학’에서는 좋은 교회란 ‘건강한 교회’(a healthy church)를 말하며, 나아가 건강한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 건강한 교회는 분명한 표적(標的)-the vital signs of a health church- 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의 참 모습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새 성전 시대를 맞이하는 교회 충신교회는 는 성경적 교회 상을 추구하며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1. 안디옥 교회의 이방선교
안디옥교회는 이방전도의 출발점이요 중심지였다. 안디옥교회의 설립 배경을 보면 의미가 깊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 이후에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예루살렘에는 로마에 의한 강한 핍박이 일어났다. 이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자유를 찾아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안디옥이란 도시에도 몇 그리스도인들이 머물게 되었다.
예루살렘서부터 이렇게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외지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 등에까지 뻗어 나갔다(행 11:19). 그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서 함께 예수를 전파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는 큰 전도의 결실을 보았다.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흩어진 자들이 다시 모여 세운 교회였고, 이방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유대인 전도 즉 디아스포라(Diaspora) 전도의 모체가 되었다. 안디옥교회는 교민들을 함께 모으는 최초의 교포교회가 되었다.
둘째로, 믿음 생활에 큰 모범을 보인 교회였다. 안디옥교회의 소문이 본국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까지 알려지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교회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하게 되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 나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다. 바나바는 회심(悔心)한 사울을 다소에서 불러서 동역하며 함께 교회를 섬기며 힘써 가르쳤다. 그 결과 교회는 부흥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셋째로, 이방인 전도의 산실이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비록 흩어진 자들이 모인 미약한 교회로 출발하였으나 당시의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에 복을 전하는 놀라운 선교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넷째로, 최초로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당시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교의 센터와 같은 역학을 하면서 유럽선교에까지 선교를 지원하며 뻗어나가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2. 좋은 일군을 세우는 사역
한편 안디옥 교회의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군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교회에는 선자자들과 교사들로 구성된 섬기는 일군이 많이 있음이 발견된다. 여기에 보면, 흑인 출신인 시므온, 아주 먼 구레네에서 온 루기오, 헤롯왕의 동생 마엔나, 다메섹에서 회심한 사울 등 특징 있는 자들이 있었다. 성경에 나타나 초대교회를 보면 교회에 일군들을 많이 두었다. 즉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행하는 자, 복음전하는 자, 병 고치는 자, 다스리는 자, 서로 돕는 자 등이 있었다(고전 12:28, 29, 엡 4:11). 이처럼 초대교회에는 많은 일군들이 있어서 교회를 섬겼고, 충성으로 봉하였다.
건강하지 못하고 병든 교회는 섬기는 일군보다는 주인 노릇하는 교인이 많고,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기보다는 방청객에 앉아 있는 자가 많고, 교회 제반사에 대하여 봉사하기보다는 평가와 비판을 일삼는 교인들도 있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 3:11).
교회에는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유익과 여호와 하나님 사역을 위해서 복음에 협력하는 좋은 일군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경은 교회의 직분에 대한 바른 개념을 교훈해 주고 있다.
먼저, 직분은 주께서 세우는 직책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고전 12:28). 직분을 사람이 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 싶어 하고 탐내기도 하고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다음으로, 직분은 원하는 대로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 직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필요에 따라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예) 삼상 13장에 보면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가 제사를 낼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7일을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제사를 스스로 감행 하다가 왕위에서 쫓겨나게 된다(삼상 13:8-14).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며, 성장하는 건강한 교회는 좋은 일군을 많이 배출하는데 있다. 이상적인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잘 준비되고 훌륭한 섬김이 있는 일군들이 많은 교회가 되도록 힘쓰자!
3.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직분자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소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다. 안디옥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일군을 세우는 방법이 발견되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금식하고 안수하여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 사역을 어떤 자세로 행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행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복음사역을 행하게 될 때에, 철저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감동으로 일을 수행하였다. 구체적으로 안디옥 교회는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시키는 일만을 수행하였다. 이는 다른 사도나 사도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것은 동일하였다.
성경은 직분자가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로, 자원함과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봉사와 섬김의 바른 자세이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둘째로, 평강 중에 감사함으로 행해야 한다. 이는 섬김의 기준이다. 마음에 불편함, 짜증과 원망의 봉사라면 이미 성령의 감화력이 없는 봉사일이다. 자원함과 즐거움이 있는 봉사자는 감사하면서 일하고 화평으로 섬긴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셋째로,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아야 한다.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주장하는 자세’는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양 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고, 직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직분 자는 지배를 하거나 다스리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한 마음과 신성한 모습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
넷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겸허한 자세로 해야 한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일을 맡는 청지기 같은 심정으로 섬겨야 한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예)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벨사살 왕이 나온다. 그는 갈대아 왕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군림하지만 치세 3년에 무참히 피살되고 만다(단 5:29,30,8:1).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지 않고 인생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 죄였다(단5:22,23).
그러므로 우리 모든 직분 자들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움으로 교회를 섬기며,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않는 겸허한 태도가 요구된다.
톨스토이 “공손한 사람보다 힘이 강한 사람은 없다. 공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떠나서 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 능력이 나타난 교회
(행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선교사 바나바는 사도들의 설교에 의하여 개종된 자로 예루살렘에 있다가 안디옥으로 와서 헬라파 유대인 즉 교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다소에서 바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동역하게 된다.
바울은 이스라엘 정통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써 당대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등 기독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을 서다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1년 동안 안디옥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교회에 큰 부흥을 일으켰다.
바나바와 바울은 최초의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위하여 이방 나라에 파송 받게 된다. 그들은 실루기아 구브로 살라미 바보에 이르는 선교여행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선교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본문에는 그들이 만나 두 사람을 소개해 주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당시 총독 서기오 바울이라는 자였다.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이어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 다음은 바 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였다. 이 사람은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심히 방해하였다. 복음전파의 현장에는 복음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또는 방해하는 자 등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박수 엘루마를 주목하고 성령의 충만하여 강하게 명령한다.
(행 13:10,11)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바울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큰 기적이 일어났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목격한 총독 서기오 바울은 그 능력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가르침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은 때로 강한 능력을 동반하여 의심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 주시기도 한다.
특별히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가르침과 치유사역을 병행하였다. 제자들의 사역이나 이후 바울의 사역에서도 병자를 일으키는 등 기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현대 사회의 복음의 사역의 특징은 당시의 현상과는 같을 수 없고, 좀 다른 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슥 4:6)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전 4:20)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결 론
기독교회의 초대교회는 지금의 교회보다 훨씬 간소했다. 그들은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땅 끝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주신 직분을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체험한 것에 대하여 증인이 되는 것, 이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과연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는가 그것은 건강한 교회의 이상적 모습이요, 초대 교회가 추구하는 성경적 교회일 것이다. 우리는 큰 교회(Big Church), 대교회(Mega Church) 보다는 선교할 수 있는 일군이 많고, 충성과 헌신으로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이상적인 교회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많은 일군들을 배출하였으며, 그 일군들은 제 마음대로 일하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받는 일에 있어서 철저하였고, 그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타나났다. 이런 모법적인 교회 사역이 우리 충신교회에서도 펼쳐지길 바란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