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전도] 선교하는 교회

본문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에 50대의 사업가가 예수를 영접하고 다음과 같이 간증하였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교회 예배에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 에도 내가 존경하던 선배가 그 교회의 장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에 게 '형님은 어째서 나하고 23년 동안이나 교제를 나누면서 한 번도 나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행실이 방 정하고 양심적인 인간이었으므로 구태여 예수를 안믿어도 이 선배처럼 훌륭 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즉, 이 선배는 예수를 안믿어도 된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없이 워낙 훌륭하게 살았기 때문에 예수를 안믿어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

그러니까 이 장로는 23년이나 사귀는 후배에게 자기가 믿는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한 번도 증거한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교회 에서는 훌륭한 장로였고 직장에서도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어서 존경받을만 한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자격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를 증거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증거하는 사람들 에 의해서 확장되어 갑니다.

우리 나라 선교 초기에 언더우드와 함께 선교사로 들어온 아펜젤러는 26세의 약관의 나이에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을 심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결단하였던 그는 44세가 되었을 때 목포로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선박 충돌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가 나자 그는 익사 직전에 있던 이화학당 학생 두 명을 구하고서 자기는 그 만 익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앞이 창창한 44세의 나이로 그는 한국교회의 제물이 되어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고 난 후에 미 국의 많은 사람들은 회고하기를 "그의 당당한 풍모와 지식과 영성이 미국교 회에 꼭 필요했는데 너무 애석하다"고 하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아 그의 피값이 오늘의 한국교회로 열매 를 맺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어떤 위기가 닥쳐도 주님의 증인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복음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 함이요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사는 목적도 주의 복음을 증거하며 생명을 구 원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 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도 복음의 증인으로 권능을 덧입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1. 확신에 차서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참 재미있는 성격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는 실패와 성공의 두 극단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사람입니다. 풍 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뵙고는 자기도 바다 위를 걷게 해달라고 간청하고서 바다 위를 걷는가 하면 불어오는 바람에 금방 두려운 마음이 들어 바다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그는 성공과 실패의 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제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제자였던 것만은 사실이었 습니다. 가이샤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는 예수를 그저 훌륭한 선생 정도로 알지 않고 신앙의 대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로부터 '반석,' 즉, 베드로라는 이름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는 "그러지 마소서"라고 만류하다가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을 들었지만 그 뒤로는 예수의 최측근으로서 따랐습니다. 그는 또 예수께서 재판을 받을 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할 정도로 신앙이 흔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유대 대제사장과 로마 권력이 무섭기는 하지만 자기 신앙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이었습 니다. 그보다도 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그 순간을 기다리다 못해 배와 그물을 가지고 고기잡 이에 나갈 정도로 성급하고 가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의 바로 앞부분에 나와 있는 그의 설교를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베드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제사장의 비속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던 비겁한 겁쟁이 베드로가 여기서 는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예수의 부활하심과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해 박한 성경 지식과 권위를 가지고 도전적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를 듣노라면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이 전 달되어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베드로의 이런 믿음이 어디에서 생긴 것입니까 무엇이 베드로를 이 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성령에 충만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인용하여 전한 요엘 2:28-32의 말씀에 나와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 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그러니까 베드로가 성령에 충만하여 예언하고 환상과 꿈을 꾸고 말 씀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곧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붙잡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 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능력있는 말씀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성령에 충만하지 않고서는 전할 수 없는 권능의 말 씀이었습니다. 베드로 자신의 말이라기 보다는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하 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담대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예언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극악해져 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말세가 다되었다고 말합니다. 악한 영들이 판을 친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말세일수록 비전을 가진 이들이 많아야 합니다. 세상의 악하고 혼미한 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 라 성령에 붙잡힌 바 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이런 성령에 취 한 사람들이 있어야 우리 나라가 새로워집니다. 민족이 부활하는 환상을 보 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입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언 과 환상과 꿈을 말하며 베드로처럼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베드로의 증거를 듣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자 이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실상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사 람들은 예수를 신성모독 죄로 죽이는 편에 들었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회개 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유대 율법에 정통한 이들이었는데 어찌 베드 로 같이 무식한 갈릴리 어부의 말을 듣고서 회개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 나 베드로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와 같이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는 성령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전하는 설교는 그 의 말이 아니라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 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있는 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증거를 듣고 마음이 찔려서 "어찌할꼬" 하며 베드 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 같은 갈릴리 촌부에게 물을 사람들이 아 니었지만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의 영적 권위에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 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리더쉽에 겸손히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마 음에 찔려"는 희랍어로 " "이라고 하는데 "찢어지다, 상처를 입 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의 미입니다. 이 말씀이 창세기 34:7에는 "근심하고"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니 까 그들이 자기들이 예수에 대해서 지금까지 생각한 것, 말한 것, 행동한 것 을 근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성경에 약속한 대로 이 땅에 오신 메시 아 예수를 그들이 믿지 않고서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은 잘못을 근심하였다 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할꼬" 하며 물었습니다. 이 말은 희랍어로 " - "인데 "우리가 어찌 행하여야 하겠습니까"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가 어떻게 행하 여야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한 그 엄청난 죄악의 사실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회개하고 세례를 받 고 죄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죄악 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 다. 회개한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주님으로부터 듣지 않는 신앙 은 관념적인 신앙이요 형이상학적인 신앙입니다. 그것은 또한 행함이 없는 신앙이요 죽어 있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사 회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마음에 찔림을 받아 회개한 이들에게 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괴로워해 야 합니다. 마음을 아파해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인격이 새로워 지고 우리를 통해서 가정과 사회가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 음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3. 회심한 사람들은 교회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베드로의 능력있는 설교를 통해서 회개하고 세례 를 받은 사람이 그날에 3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열두 사도는 아마도 이들을 위해 기드온 시내나 실로암 못에서 성심 성의껏 세례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이 3천 명은 예루살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서 오순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복음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전도자들이 되었 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정규적으로 모여 교회를 세우는 기초가 되었습 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최초의 신앙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하게 되었 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는 흩어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곧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그의 몸인 교회를 세우게 하신 최초의 사건입 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은 함께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사도"란 말은 복수로 되어 있는데 "가르침"이란 말은 단수로 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사도들이 예수 그 리스도의 말씀만을 가르쳤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도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가 르치는 내용은 오직 하나, 복음의 내용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 의 말씀만이 가르쳐져야 됩니다.

또한 그들은 "서로 교제"를 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교제를 말합 니다. 먼저 그리스도와의 종적인 교제와 성도 서로간에 횡적인 교제가 있었 습니다. 이렇듯 최초의 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는 영육간에 뜨거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성도의 교제는 말씀과 봉사와 함께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 3요소의 하나로 정착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하기에 전혀 힘썼습니다. '전혀'라는 말은 '전념으 로, 일심으로'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기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 므로 기도는 교회를 키우는 젖줄과 같습니다. 주께 매달리는 교회는 계속 발 전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이들로 이 루어진 훌륭한 교회공동체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로 창립된 지 만 29년이 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의 교회, 그리고 기도하는 교회로써 우뚝 서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같이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7개의 교회를 개척하시 고 외국인 노동자 선교, 인도네시아에 두 분의 의료선교사를 파송한 우리 교 단에서 우뚝 선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주 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더욱 성장하고 인재를 키우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 7천 만 을 복음화하고 그 여세를 몰아 아시아와 아프리카 선교에 이바지하는 교회 가 되도록 기도하고 힘써 우리 모두 21세기에 선교의 주역이 되어야 하겠습 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