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본문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우리교회는 1917년에 창립되었습니다. 오늘이 꼭 창립 8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교회 창립일이 있는 매년 1월 마지막 주일을 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주태 선교사님을 비롯 36명의 선교사를 협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멕시코, 필리핀, 캄보디아, 파라과이, 인도네시아, 태국, 중구, 벨기에, 파키스탄 등 많은 나라에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선교주일을 맞아 이시간 이들을 위해서 잠깐 합심기도를 했으면 싶습니다. ….
본문 말씀은 선교하는 교회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이라는 주제로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을 묵상하며 은혜를 사모코자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본문 말씀이 답해줍니다.
첫째,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해야 합니다.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했습니다. 여기 "이 말을 듣고"에서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의 능력있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저마다 어찌할꼬 참회했다는 말입니다. 19세기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어찌할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러시아와 세계를 향하여 한 위대한 물음이 있다면 "어찌할꼬"라는 물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어찌할꼬"의 물음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 허물, 위선, 갈등' 등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꼬 뜻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들인 것을 깨닫고 저마다 어찌할꼬 회개를 했습니다. 그들은 요엘 선지의 말대로 옷을 찢지 아니하고 마음을 찢으며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 아마 이 찬송으로 진동했을 것입니다. 어떤 술 주정꾼 이야기가 있습니다. 육지에서 섬에 있는 집으로 가는데 나룻배를 타야합니다. 그런데 밧줄을 말뚝에 매어놓은 채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아침에 살펴보니 떠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말뚝에 밧줄을 묶어 놓은 체로 노를 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이야기 기억이 날 것입니다. 만일 탕자가 돼지우리에 주저앉아 있는 체로 어찌할꼬 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초대교회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찌할꼬 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 감사, 기도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었는데 명실공히 선교하는 교회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 죄 없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회개하지 아니해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아니할 인생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저지른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하이타이로 씻을 수 있을까요 먹장같이 검은 죄를 원더풀로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 죄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그 죄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 장입니다. 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나의 죄는 물론 이웃의 죄를 생각하며 나아가서 민족의 죄까지를 생각하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인 요청이기도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전에 먼저 내 죄를 어찌할꼬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참회해야 될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전도하지 못한 죄가 있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게으름을 피웠던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죄 하나 하나를 생각하면서 죄를 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옷을 찢지 아니하고 마음을 찢으면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주의 축복이 임할 것이고, 교회의 부흥이 있게 될 것이며, 선교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둘째,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38절에 보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했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성령을 받으면 없었던 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지적인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받으면 탐구하고 이해, 판단,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제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 이기심, 언행 이러한 것들을 자제할 수 있게 됩니다.
영적인 능력입니다. 우리 주변에 유혹, 시험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 능력을 받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가 충만하고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가 있게 됩니다.
전도의 능력입니다. 평소에 수줍은 사람도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면 입을 열어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갈릴리 출신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3년을 동행했지만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다지 확신을 가지고 믿지를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라도 법정 뜰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했고 저주까지를 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교사 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겁이 없다는 것입니다. ♬ 두려울 것 없겠네 ♬ 찬송하면서 예수의 증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환난도 위험, 적신, 칼, 죽음도 겁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전도할 수 있었고 황제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는 부활하셨다고 증언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들어오면서 정문에 세워진 "전도하셨습니까" 이렇게 읽고 들어 왔습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일이요, 합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왜 나같은 죄인을 불러 주시고 세워주시고 중차대한 사명을 맡겨주셨을까요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은혜요,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게 열심히 없음이요, 구령의 열정이 부족함입니다. 함께 따라서 하십시다. 첫째, 항상 기도하라. 눅18:1 말씀입니다. 둘째, 쉬지말고 기도하라. 살전5:17 말씀입니다. 셋째,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 삼상12:23 말씀입니다. 종합하면 열심히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마7:11이 답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눅11:13이 답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왜 성령을 주십니까 행1:8이 답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증인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증인의 자격입니다. 우선 성령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슥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성령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디나 갈 수 있는 자라야 합니다. 저 북방 얼음산과 또 저 남방 모든 나라 개의치 아니하고 아골 골짜기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을만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원래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증인의 사명입니다. 증인은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떤 것을 증거해야 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해야 합니다.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도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 우리의 찬송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재림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에누리없이 다가오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따라서 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증인의 축복입니다. 첫째는 마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선교사들이 낙심했다가도 제기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 둘째는 요15:16입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선교사역에는 부족이 없어야합니다. 그 밑천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부족을 보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것이 선교사의 모습입니다. ♬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 우리 모두는 이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계2:10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선교사의 길은 험합니다. 가시밭길, 겟세마네의 길 일 수 있습니다.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의 밑천이 있습니다. ♬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열심히 기도하면서 승리하는 우리여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먼길로 심방을 가다가 갑자기 전도해야 될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이 먼 길이고 심방 중인지라 어쩔 수 없이 심방을 마치게 되었는데 늦게 돌아와서 그 사람을 방문했는데 너무도 깜짝 놀랐습니다. 오후에 그 사람이 투신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때를 놓친 것입니다. 만사에 때가 있는 법인데 더더구나 전도에는 때가 중요합니다. 때를 놓치면 촛대가 옮겨집니다. 구원의 문이 닫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날마다 더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47절을 보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나쁜 것은 더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줄어가야 합니다. 가령 고통, 절망, 슬픔, 질병 따위는 날마다 줄어가야 합니다. IMF로 인한 부도, 실패, 파산, 고난, 눈물 같은 것들은 날마다 줄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날마다 더해가야 합니다. 더하고 더해서 점점 부풀어 가야 합니다. 가령 사랑, 기쁨, 승리, 성공, 부흥 이런 것들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좋은 것으로 날마다 더해가는 교회였습니다. 무엇이 더해갔습니까 본문이 답합니다.
기사와 표적이 날마다 더해갔습니다. 43절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전도행전, 선교행전입니다. 기사와 표적 행전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도행전에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장은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해서 걷게 하지 않았습니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범한 죄를 지적했을 때에 부부가 즉사해버리는 놀라운 표적이 있었습니다. 또 5장에 보면 베드로의 그림자만 덮여도 병자가 나으리라는 확신 때문에 많은 병자가 일어나는 기사가 있습니다. 19장에 보면 바울에게 희한한 능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20장은 3층 다락에 걸터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려낸 기사가 있습니다. 28장에는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기만 하면 기사와 표적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낭패가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탈바꿈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이는 일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모이면 강해지고 기쁨이 생겨나고 교제가 있고, 부흥이 생겨납니다. 모이지 아니하면 약해집니다. 손해를 많이 봅니다. 모이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질 수 있겠습니까. 잘 모이려면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모여야 합니다. 둘째, 정해진 시간마다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셋째, 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넷째, 모여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싸우고 잡담하고 남의 흉이나 본다면 차라지 모이지 아니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성경공부하고 그리고 힘을 얻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 전도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찬송, 감사,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도 했습니다. 그들의 언어, 인격, 생활,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는 내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완전히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10:25이 말합니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열심으로 모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47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또 41절에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큰 부흥의 열쇠가 무엇입니까 42절이 답합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기도가 부흥의 열쇠, 부흥의 바탕, 이적의 근거였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교회의 부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수단으로 어느 정도 교회가 부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무너질 바벨탑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끊어지면 좋아할 자는 마귀뿐입니다. 말세에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거짓말, 도적질 아닙니다. 삼상12:33이 밝힌대로 기도해야 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능력받기를 원합니까 은사, 가정의 부흥을 염원합니까 정말 선교하는 교회를 사모합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기도의 대장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수가 날마다 더해가야 합니다.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와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선교는 기도하면서 해야 하고, 기도는 선교하면서 해야 합니다. 어느 집사님의 미담입니다. 밥을 짓고 그릇에 담기 전에 반드시 짤막한 기도를 하는데 남편을 위한 기도입니다. 뚜껑을 열고 그 밥에 십자가를 얼른 긋는답니다. 그리고는 이 밥을 먹는 남편이 예수님 믿게 해주세요. 낙심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기도를 했는데 결과는 남편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서 신실한 집사가 되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이러한 간증들이 교회에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은 새벽기도에 남편의 잠바를 입고 나온답니다. 그리고는 그 옷을 만지작거리면서 기도하기를 잠바만 교회 나왔습니다. 이 잠바의 주인도 속히 교회에 나오게 해주세요. 기도했다는 미담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마다 사도행전이 신령한 불쏘시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여!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주시옵소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주일을 맞이해서 저마다 전도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보내는 선교사, 가는 선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명실공히 우리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의 경주를 다하는 우리 모두이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은 선교하는 교회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이라는 주제로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을 묵상하며 은혜를 사모코자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본문 말씀이 답해줍니다.
첫째,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해야 합니다.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했습니다. 여기 "이 말을 듣고"에서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의 능력있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저마다 어찌할꼬 참회했다는 말입니다. 19세기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어찌할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러시아와 세계를 향하여 한 위대한 물음이 있다면 "어찌할꼬"라는 물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어찌할꼬"의 물음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 허물, 위선, 갈등' 등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꼬 뜻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들인 것을 깨닫고 저마다 어찌할꼬 회개를 했습니다. 그들은 요엘 선지의 말대로 옷을 찢지 아니하고 마음을 찢으며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 아마 이 찬송으로 진동했을 것입니다. 어떤 술 주정꾼 이야기가 있습니다. 육지에서 섬에 있는 집으로 가는데 나룻배를 타야합니다. 그런데 밧줄을 말뚝에 매어놓은 채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아침에 살펴보니 떠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말뚝에 밧줄을 묶어 놓은 체로 노를 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이야기 기억이 날 것입니다. 만일 탕자가 돼지우리에 주저앉아 있는 체로 어찌할꼬 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초대교회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찌할꼬 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 감사, 기도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었는데 명실공히 선교하는 교회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 죄 없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회개하지 아니해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아니할 인생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저지른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를 하이타이로 씻을 수 있을까요 먹장같이 검은 죄를 원더풀로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 죄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그 죄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 장입니다. 5절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나의 죄는 물론 이웃의 죄를 생각하며 나아가서 민족의 죄까지를 생각하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인 요청이기도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전에 먼저 내 죄를 어찌할꼬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참회해야 될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전도하지 못한 죄가 있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게으름을 피웠던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죄 하나 하나를 생각하면서 죄를 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옷을 찢지 아니하고 마음을 찢으면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주의 축복이 임할 것이고, 교회의 부흥이 있게 될 것이며, 선교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둘째,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38절에 보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했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성령을 받으면 없었던 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지적인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받으면 탐구하고 이해, 판단,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제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 이기심, 언행 이러한 것들을 자제할 수 있게 됩니다.
영적인 능력입니다. 우리 주변에 유혹, 시험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 능력을 받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가 충만하고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가 있게 됩니다.
전도의 능력입니다. 평소에 수줍은 사람도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면 입을 열어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갈릴리 출신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3년을 동행했지만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다지 확신을 가지고 믿지를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라도 법정 뜰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했고 저주까지를 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교사 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겁이 없다는 것입니다. ♬ 두려울 것 없겠네 ♬ 찬송하면서 예수의 증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환난도 위험, 적신, 칼, 죽음도 겁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전도할 수 있었고 황제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는 부활하셨다고 증언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들어오면서 정문에 세워진 "전도하셨습니까" 이렇게 읽고 들어 왔습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일이요, 합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왜 나같은 죄인을 불러 주시고 세워주시고 중차대한 사명을 맡겨주셨을까요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은혜요,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내게 열심히 없음이요, 구령의 열정이 부족함입니다. 함께 따라서 하십시다. 첫째, 항상 기도하라. 눅18:1 말씀입니다. 둘째, 쉬지말고 기도하라. 살전5:17 말씀입니다. 셋째,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 삼상12:23 말씀입니다. 종합하면 열심히 기도하라는 내용입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마7:11이 답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눅11:13이 답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성도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왜 성령을 주십니까 행1:8이 답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증인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증인의 자격입니다. 우선 성령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슥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성령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디나 갈 수 있는 자라야 합니다. 저 북방 얼음산과 또 저 남방 모든 나라 개의치 아니하고 아골 골짜기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을만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원래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증인의 사명입니다. 증인은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떤 것을 증거해야 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해야 합니다.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도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 우리의 찬송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재림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에누리없이 다가오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따라서 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증인의 축복입니다. 첫째는 마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선교사들이 낙심했다가도 제기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 둘째는 요15:16입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선교사역에는 부족이 없어야합니다. 그 밑천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부족을 보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것이 선교사의 모습입니다. ♬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 우리 모두는 이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계2:10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선교사의 길은 험합니다. 가시밭길, 겟세마네의 길 일 수 있습니다. 환난이 있고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의 밑천이 있습니다. ♬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열심히 기도하면서 승리하는 우리여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먼길로 심방을 가다가 갑자기 전도해야 될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이 먼 길이고 심방 중인지라 어쩔 수 없이 심방을 마치게 되었는데 늦게 돌아와서 그 사람을 방문했는데 너무도 깜짝 놀랐습니다. 오후에 그 사람이 투신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때를 놓친 것입니다. 만사에 때가 있는 법인데 더더구나 전도에는 때가 중요합니다. 때를 놓치면 촛대가 옮겨집니다. 구원의 문이 닫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날마다 더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47절을 보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나쁜 것은 더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줄어가야 합니다. 가령 고통, 절망, 슬픔, 질병 따위는 날마다 줄어가야 합니다. IMF로 인한 부도, 실패, 파산, 고난, 눈물 같은 것들은 날마다 줄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날마다 더해가야 합니다. 더하고 더해서 점점 부풀어 가야 합니다. 가령 사랑, 기쁨, 승리, 성공, 부흥 이런 것들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좋은 것으로 날마다 더해가는 교회였습니다. 무엇이 더해갔습니까 본문이 답합니다.
기사와 표적이 날마다 더해갔습니다. 43절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전도행전, 선교행전입니다. 기사와 표적 행전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도행전에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장은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해서 걷게 하지 않았습니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범한 죄를 지적했을 때에 부부가 즉사해버리는 놀라운 표적이 있었습니다. 또 5장에 보면 베드로의 그림자만 덮여도 병자가 나으리라는 확신 때문에 많은 병자가 일어나는 기사가 있습니다. 19장에 보면 바울에게 희한한 능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20장은 3층 다락에 걸터앉아 졸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려낸 기사가 있습니다. 28장에는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기만 하면 기사와 표적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낭패가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탈바꿈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이는 일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모이면 강해지고 기쁨이 생겨나고 교제가 있고, 부흥이 생겨납니다. 모이지 아니하면 약해집니다. 손해를 많이 봅니다. 모이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질 수 있겠습니까. 잘 모이려면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모여야 합니다. 둘째, 정해진 시간마다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셋째, 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넷째, 모여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싸우고 잡담하고 남의 흉이나 본다면 차라지 모이지 아니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성경공부하고 그리고 힘을 얻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 전도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찬송, 감사,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도 했습니다. 그들의 언어, 인격, 생활,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는 내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완전히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10:25이 말합니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열심으로 모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47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또 41절에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큰 부흥의 열쇠가 무엇입니까 42절이 답합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기도가 부흥의 열쇠, 부흥의 바탕, 이적의 근거였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교회의 부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수단으로 어느 정도 교회가 부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무너질 바벨탑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소리가 끊어지면 좋아할 자는 마귀뿐입니다. 말세에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거짓말, 도적질 아닙니다. 삼상12:33이 밝힌대로 기도해야 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능력받기를 원합니까 은사, 가정의 부흥을 염원합니까 정말 선교하는 교회를 사모합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기도의 대장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수가 날마다 더해가야 합니다.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와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선교는 기도하면서 해야 하고, 기도는 선교하면서 해야 합니다. 어느 집사님의 미담입니다. 밥을 짓고 그릇에 담기 전에 반드시 짤막한 기도를 하는데 남편을 위한 기도입니다. 뚜껑을 열고 그 밥에 십자가를 얼른 긋는답니다. 그리고는 이 밥을 먹는 남편이 예수님 믿게 해주세요. 낙심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기도를 했는데 결과는 남편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서 신실한 집사가 되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이러한 간증들이 교회에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은 새벽기도에 남편의 잠바를 입고 나온답니다. 그리고는 그 옷을 만지작거리면서 기도하기를 잠바만 교회 나왔습니다. 이 잠바의 주인도 속히 교회에 나오게 해주세요. 기도했다는 미담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마다 사도행전이 신령한 불쏘시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여! 또 하나의 사도행전을 주시옵소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주일을 맞이해서 저마다 전도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보내는 선교사, 가는 선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명실공히 우리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의 경주를 다하는 우리 모두이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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