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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선교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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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이 땅에서 처음으로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말씀으로 회개를 외치셨고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까지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부활하신 후 40일 후에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시고 말씀하신 내용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세상 끝까지 북음의 증인이 되여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큰 사명 중에 하나가 선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땅에 전파하고 죄악으로 병들고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살리는 것이 우리 예향교회의 사명이고 우리들을 부르신 것은 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하여 부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안되고 부흥이 안 되는 시대가 되였다고 하여도 우리는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향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향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선교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 우리 모두가 선교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가 이번에 중국선교비전트립을 가졌는데 함께 나눔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왜 선교를 해야 하겠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세상으로 보내셨고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계실 때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여 부르시고 그들을 삼년간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시키시고 세상으로 보내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신다" 하시며 복음을 전파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뒤에 하늘로 승천하시며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성령의 권능을 받고 세상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 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나 성도들의 가장 큰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일 이였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환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왜 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귀한 사명을 받고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선교사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 선교사로 최초로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포 앞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순교한 아펜셀러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분 보다 20여년 전에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순교하신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토마스 목사입니다.
그분은 중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미국의 선교사로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늘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국인이 조선 땅에 들어올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마침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한문으로 된 성경을 가지고 배를 타고 조선 땅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셔먼호가 한강을 타고 서울로 들어오려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대동강을 타고 평양으로 들어갔고 우리나라 관원들이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했다가 관군의 공격으로 셔먼호는 불에 타게 되였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조선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간 한문성경을 육지로 던지고 자신도 육지로 피하였다가 우리나라 관군에게 잡혀서 평양감사 박규순에게 끌려가서 순교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가 참수를 당하면서 목을 치는 박춘금에게 성경을 주었고 순교의 피가 싹이 되여 그들이 나중에는 변화를 받아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해방되기 전에는 평양이 한국의 이스라엘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교회가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코가 크고 눈이 파란 외국인들이 자신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조선 땅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따르고 자신들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받은 복음 증거의 명령을 지키고 따르기 위해서 선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므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 하나가 천하 우주 만물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셨습니다. 한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법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모든 사람에게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명하시며 한가지 더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심판하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마지막이 있으며 마지막 날에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
마 25장에서는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던 주인이 돌아와서 맡겨진 달란트를 가지고 얼마나 충성되게 일하셨는가 회계하신다 하셨으며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불신자를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3:12절에서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정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하셨으며.
히9:27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요5:25이하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심판의 권세를 주셨는데 마지막 날에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영생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20:2에서는 "모든 사람이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 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영생을 얻고 행위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 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지금 아시아의 인구는 세계인구의 절반이 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전체 2%밖에 안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 한국을 택하여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향교회도 선교사를 파송하지는 못하였지만 중국 이바울선교사님과 일본 한빛중앙기도원을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도 우리들이 기도하고 선교헌금을 보낼 때 우리를 대신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과 전도자들이 죄악으로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돕고 열심히 선교헌금을 보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950년 우리 한국 땅에 6. 25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온 만족이 고통을 당할 때 미국인 종군 기자로 온 밥 피얼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원래 목사였는데 한국에 전쟁이 난 것을 보고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은데 미국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습니다. 모든 미국인들을 미국으로 철수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종군 기자가 되는 것이 였고 미국에 있는 작은 기독교 잡지의 기자가 되여 전쟁이 한창일 치열할 때우리 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밥 피얼스 목사님이 서울 영등포역에 들어와서 보니까 수많은 피난 대열 속에 어느 어머니가 아이의 젖을 물리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 아이는 벌써 죽은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피난 중에 아이가 병들어 죽었는데도 그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버리지 못하고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이 였습니다. 그 여인은 어느 목사의 부인인데 남편은 행방불명이 되였고 자기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피난 오다가 아이는 죽었고 어쩔 줄을 몰라서 이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밥 피얼스 목사는 이 사진을 찍어서 미국에 보내서 미국교회가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 사진을 본 많은 미국인들이 감동을 받고 선교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밥 피얼스 목사님은 자신의 재산 중에서 그 때 돈으로 4만 달러를 한국 선명회에 보내 주었습니다. 그 당시 4만 불이면 지금으로 4백만불 이상되는 큰돈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는 32억 이상 되는 돈입니다. 그 돈으로 한국의 선명회는 정부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세운 것입니다. 그 때 전쟁당시 문둥병이 매우 유행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 이 돈으로 문둥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건립하고 그들을 격리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면 지금 한국에는 문둥병자가 2백만명 이상이 되였을 것이라는 학자의 연구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나병퇴치의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그 공로는 밥 피얼스 목사에게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고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한 한 사람의 노력과 헌신은 60배 100 열매를 맺어서 많은 사람들을 육신의 질병에서 구원하고 영혼의 고통에서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외국의 도움만 받던 한국의 여러 교회들이 많은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의 도움으로 시작했던 선교단체들이 이제 도리어 외국에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외국의 도움으로 시작했던 선명회가 이제 외국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외국에 선교비를 보내고 있는데 여러 나라에서 도움의 요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 또한 우리 예향교회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헌금을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며 우리들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하신 명령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직 한번도 선교헌금을 하지 못하신 분은 이번 한 주간 금식하면서라도 기도하시면서 선교헌금 준비하여 다음주에 모두가 선교헌금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교하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입게 될 것입니다.
선교하는 자들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은혜를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 선교하면 내 믿음은 자라고 교회는 부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으면 시험이 오고 성장이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교회이고 어려운 교회이지만 이 지역에도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나 외국에도 열심히 선교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선교비를 모아서 보내는 모습은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선교하면 개인적인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가정 큰 상급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 하셨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과 이 예향교회의 사명은 명백한 것이며 대단히 큰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교를 위한 기도와 물질적인 헌신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예향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고 여러분들이 선교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놀라운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중국선교비젼트립보고
8월 7일 아침 7시 30분 열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역에서 내려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여름 휴가철이라 2시간 전에 보딩패스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일찍 나섰습니다. 1시 20분 비행기로 중국 북방지역인 하얼빈에 3시정도 도착을 했습니다. 하얼빈에서 731부대를 방문하였다. 731부대는 일제시대 때에 일본군들이 생체실험을 했던 곳입니다. 731부대를 관람하고 하얼빈 역으로 갔습니다. 하얼빈 역에서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했다. 하얼빈역에서 송하강을 관광했습니다.
이 송하강은 겨울에 얼음이 50센치 두께로 얼어서 얼음축제를 벌리기도 한답니다. 송하강을 관광하고 저녁을 먹으로 갔는데 쪼중왕이라고 하는 만두집인데 거짓말 안보태고 한시간 귀달려서 만두를 먹었습니다. 맛은 짱구만두보다 못했습니다.
하얼빈에 가면은 쪼중왕에 가서 만두 맛을 보아야 하얼빈 갔다 온 것이랍니다.
하얼빈 역에서 우리가 타고 간 15인성 차가 그만 고장이 나서 시동이 안 걸렸습니다.
저녁을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차는 오지를 않았습니다.
중국 사람은 원래 여유가 있답니다. 우리는 빨리 빨리 입니다만 그들은 넓은 대륙의 사람이라서 그런지 바쁜게 없답니다. 중국 주5일 근무제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선교사님이 전화로 길을 가려쳐 주어도 찾아오지를 못했습니다. 할 수 없어 선교사님이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출발을 했는데 10시정도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까지는 두시간 반정도 걸리는 부여현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차가 1시간 정도 달리다가 그만 고장이 나서 길 한가운데 서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정네들이 밀었습니다. 처음에 몇 번은 밀어보았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있다가 운전사가 차에 열이 식으면 시동이 걸릴 수 있다고 했어 힘을 다해서 밀었더니 시동이 걸려서 갔는데 부여현에 도착하니까 새벽 1시반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나서 침대에 누워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 복음성가가 기억이 났습니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주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밀어주셔서 고장나지 않고 지금까지 오게되었음을 감사했습니다.
중국에는 물이 없습니다. 지하수는 석회수가 되어서 먹지 못합니다. 먹는 물은 광청수를 사먹어야 하고 그리고 가물어서 부여현 지역에는 수돗물도 제한 급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호텔에 가니까 호텔에서 받아놓은 물 조금을 가지고 대강 씻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을 해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부여현에 있는 부흥교회에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교회는 서울에 있는 한 교회가 2천여만원을 들여서 새로 교회를 지을려고 기공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미 부지도 구입하였고 현재 교회는 너무 비좁고 해서 새 예배당을 건축할려고 했던 것입니다.
한족교회인데 이 교회에 시무하는 분은 손성상장로님이신데 이 바울선교사님의 제자입니다. 원래 차이차고교회에 계시다가 이곳이 이 지역 중심도시이기에 이곳 책임자로 일하시기를 위해서 이 교회를 맡아 계셨는데 이 장로님의 가정에 모든 가족들 동생들까지 모두가 신앙인 되어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동생이 4명이 있었는데 막내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고 둘째 동생은 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공예배를 드리기 전에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분들의 찬양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말씀을 듣는 태도가 얼마나 진지한지 아멘 아멘 하는 이분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부흥교회 기공예배를 마치고 2시가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시골에 위치해 있는 차이차고(최가고을)교회를 방문했는데 마침 그때 각 지역 교회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10일간 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약 80여명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말씀을 학습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옥수수, 오이, 복숭아, 도마토등 맛있는 과일을 주었어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거기에서 약 3시간을 달려서 장춘공항으로 가서 1시간정도 비행기를 타고 연길에 도착했습니다. 연길에는 조선족이 63%라고 합니다.
연변지역은 1937-8년도에 흉년이 들어 특히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이 곳에 왔다고 합니다. 연변지역, 용정같은데의 집 구조는 중국과는 달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양식으로 지은 집을 찾아 볼 수 있었고 아직도 초가집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중국에 조선족은 약 2백만이라고 합니다.
연길에서 하루 밤을 호텔에서 잤는데 여기에 호텔은 시설이 양호했습니다. 새벽 5시 30분 기상 새벽예배를 드리고 6시에 장벽산으로 출발했다.
장백산으로 가는 길에 연길에서 북한사역을 하고 있는 김영철 전도사의 안내로 두망강 상류에서 강을 따라 내려갔는데 강 옆에 중국 조선족 교인 로가교회에 갔는데 그때 마침 어제 밤에 북한 여자 두명이 건너와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그 교회에 시무하는 전도사님이신 김철영전도사님으로부터 북한사역 현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가이드한 김영철 전도사님도 북한을 몇 번 들어갔다 왔는데 지금 상황은 대통령이 만난 이후 북한은 더 상황이 어려워 졌다고 합니다.
지금 3개월 동안 배급을 못 받고 있고, 시골 농부들은 화전을 일구어서 겨우 생명을 연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집단 마을 같은 데는 배급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갈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로가 교회를 지나서 북한의 아시아최강의 철강생산지인 무산을 바라보았는데 인구 8만의 무산이 죽은 도시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성장차이가 10년차이라고 한다면 북한 중국과 50년 차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두망강을 건너온 두 분의 여인은 바짝 말랐고 얼굴이 새깧맣습니다.
김전도사 말은 북한 사람을 만나면 송장냄새가 난답니다.
교회 들어왔다가 나가면 송장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양이 떨어지면 검어진답니다.
김전도사가 지금 자기 집에서 30여명의 북한사람들을 모아놓고 전도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처음에 올 때는 너무 너무 불쌍하답니다. 이틀 먹을 것을 한끼에 다 먹어버린답니다. 10일쯤 밥을 잘 먹이면 검은 얼굴이 하예진다고 합니다.
영양에 따라 얼굴색갈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찾아 간 곳이 순선이라는 곳입니다. 순선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도 북한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이순철전도원). 다리만 건너면 북한 땅이었습니다. 두망강변에는 100m 간격으로 초소를 세워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밤에 건너와서 쌀을 25Kg가져가도 자기에게 돌아오는 얼마 되지 않는답니다.
군인들에게 잡히면 빼앗기고 만다고 합니다.
양강도지역을 거쳐서 9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저녁 7시에 장벽산에 도착해서 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아침 6시 기상 새벽기도회를 갖고 식사 후 백두산에 올랐는데 어제 오면서 선교사님이 선교지에 둘렀다가 간 교회는 백두산 천지 못을 다 보았다고 걱정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빗방울이 떨어지고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부는데 장벽산 꼭대기에 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이건 겨울 날씨였습니다. 얼마나 바람이 불고 춥고 비가 몰아치든지, 천지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앞 가름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목사 왜 혼자 왔노, 교인들과 같이 오지, 다음에 교인들하고 같이 오면 내가 보여주지 그러시는 것 같더라고요.
백두산에 11시에 출발해서 돌아오는데 용정에 일송정(선구자)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고 용정우물과 해란 강을 지나서 용정중학교에 도착해서 윤동주의 서시를 감상하고 박물관에 둘러서 연길에 도착했다. 서울 한교회팀과는 여기에서 헤어지고 밤 10시 기차를 타기 위해서 남은 5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회의한 결과 일단 연길에서 보신탕을 한 그릇 먹고 선교사님과 인터넷 방에 가서 우리 홈페이지에 글을 띄우기도 했습니다.
밤 기차를 타고 새벽 5시 15분에 길림시 옆에 있는 광일봉역에 도착 광일봉교회로 갔습니다. 광일봉교회는 최춘식장로라는 분이 계셨는데 고향이 고령인데 아주 그 지역에서 깡패였는데 이 분이 변화되어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를 새워서 지금까지 교회를 이끌어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 전도사님 한 분을 모시고 계셨습니다. 3백여명의 교인이 모인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2층으로 지어 졌는데 1층에는 주로 피아노교실, 컴퓨터 교실 등을 만들어 놓고 그 주변 지역에서 교회 반주자로 봉사할 사람들이 일년동안 이 교회에 머물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저희 집사람이 15년의 피아노학원원장의 실력을 가지고 몇 시간 지도하였고 저는 이 교회의 청년중심으로 3시간 정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기에는 조선족 교회라서 말도 통하고 너무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오후 2시에 이 교회를 떠나서 선교사님 제자가 사역하고 있는 한족 교회를 들렸습니다. 이 교회는 지금 새로 건축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얼마나 핍박이 심한지 공안당국이 상시근무를 하면서 감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교회 주변만 두 박구 돌고 기도하고 왔습니다.
장춘비행장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왔습니다. 장춘에서 북경까지는 비행기로 약 2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북경 중심에 한 호텔에 묵었는데 얼마나 냄새나고 지저분한지 뜬눈으로 새우고 고궁(자금성)을 관광하고 만리장성을 관광했습니다.
북경에서 지난밤에 잤던 호텔은 도저히 못 잘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서 하루 밤을 자고 주일 아침에 5시 30분에 일어나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북경에서 광주까지 24시간 열차를 탔습니다.
북경까지 가니까 주머니 돈이 다떨어졌습니다.
원래 북경에서 선교관에서 자기로 했는데 휴가철이라 선교관이 꽉차버렸습니다.
선교사님에게 이미 2000원을 빌렸는데 그것마져도 동이 났습니다.
열차를 타고 가는데 3층 침대였습니다. 열차안에서 세수하고 밥먹고 자고 그렇게 하루동안 가는 것입니다. 밥먹을 때가 되니까 밥장수가 지나가는데 닭발을 팔드라고요. 그래서 선교사님에게 선교사님 닭발좀 사주십시오. 정목사 돈이 없다. 닭발 사먹으면 걸어가야 된다. 그 먹고싶었던 닭발도 못사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기차가 가는데 기차 불통을 세 번 바꿔어서 가드라고요.
세계 문명발상지인 황하강을 지나고 양쯔강을 지나서 광활을 옥수수 밭을 지나 지나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미련함과 저력을 배웠다고 할까요.
광주에 내려서 또 기차를 타야하는데 마침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3시간정도 가니까 심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심천 까지 오는 데 30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이 심천은 중국에서 특별경제구역으로 정해서 홍콩과 같이 관리하는 지역인데 여기는 지금까지 보았던 중국과는 딴판이었습니다.
너무 너무 잘 사는 것있죠. 가로수 조경이 너무 너무 멋있었고요. 고층건물양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요. 야 중국도 이런데가 있구나.
선교사님은 지금 10년째 사역을 하시다가 안식년을 하신다고 중국 다른 곳보다 자유로운 이 심천에 와서 안식년을 보내시고 계셨습니다.
말은 안식년이지만 좀 안전하다고 하는 것뿐이지 계속되는 사역들, 사역지를 둘러보는 것, 제자들 양육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이라 계속되는 비로 인해 습기가 많아서 불쾌지수가 너무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여기서 민속촌에도 가보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3일을 지내고 홍콩으로 건너왔습니다. 홍콩은 섬인데 농사도 없고 공장도 없고 어떻게 먹고사는지 물어보았더니 모두들 상업을 해서 먹고사는 특이한 나라랐고 했습니다.
홍콩제일교회에 시무하시는 김성복목사님이 이 바울선교사님과 지금 중국선교를 협력해서 하시는데 김성복 목사님의 안내로 네들란드 카알 라이어트 선교사님을 통해서 70여명의 스님이 같은 날 세례를 받게 했던 도풍산을 관강했습니다.
그리고 홍콩을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높은 산을 올라갔다가 저녁을 먹고 그 유명한 홍콩을 야경을 보았습니다.
홍콩제일교회 선교관에서 하루 밤을 묵고 그 다음날 아침을 맛있게 얻어 먹고 한국을 돌아 왔습니다.
워취 쭝국 쎈죠 뤼싱 - 저가 중국 선교 비전트립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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