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말씀의 능력
본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보통 '영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욥기 23:12에 보면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도 욥과 같이 육의 양식보다도 영의 양식을 더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19:20에도 보면 '주의 율례를 항상 사모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을 사모하는데 어떤 때는 싫증이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시편 19:9,10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영혼을 소성시켜 줍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7절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린다는 것입니다. '소생한다'는 것은 새로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용기도 살아나고, 믿음도 살아나며, 병든 육체도 고침 받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죽은 영혼도 살려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마 4:4마 4:4)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귀하고 아름답고 또 사랑하는 대상이 많이 있지만 사실 가장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미모와 조건도 귀하지만 더 귀한 것은 그 영혼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인격적인 사람일수록 육체보다도 그 마음을 중히 여깁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마음보다도 그 영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두루 다니며 찾기까지 애쓰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과 긍휼과 용서를 베풀고 또 그를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면서 애쓰는 분들을 볼 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15:7에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3서 2절에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육체보다도 영혼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안다면 영혼이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항상 주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은 도덕 철학 윤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갈 때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얼마 전에 논산훈련소에서 4961명의 장병들이 진중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538명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흰 가운을 입고 그들에게 집례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맡아서 너무 너무 감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니까 무릎 꿇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알고, 말씀이 들어가니까 '할렐루야'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는데, 만약에 그 청년들에게 말씀이 없었다면 방탕할 수도 있고, 세상의 악한 일을 즐겨 도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인생의 소중함과 가치관을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해주심으로 그 영혼을 위하여 살게 되고, 영혼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운 축복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절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지혜가 임합니다. 지혜에는 육성에 의한 지혜가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성에 의한 지혜가 있습니다. 육성에 의한 지혜란 '인생의 종합적인 사리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악한지 선한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업을 경영하는데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 잘못 선택해서 길러놓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입고, 어떤 사람은 성공시켜줌으로 평생 인연이 되어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존경하는 이런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알아야 되며, 또 영분별의 은사도 있어야 됩니다.
이 신령한 지혜는 어떤 강의를 받거나 어떤 수양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참 놀라운 깨달음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놀라운 지혜가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시편 37:31에 보면 "그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떤 학문을 통달했다고 해서 그 머리 속에 자기 삶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는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어떤 곳이 안전한 곳인지 어떤 곳이 위험한 곳인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한 발자국 사이에 삶과 죽음이 좌우되는 사실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고 승리하는 발걸음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8절상) 사람이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기쁘고 즐겁게 사는 이것은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쁨이 있어지기를 원하시면 '아멘'하십시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얼굴에 미소가 있게 됩니다.
욥기 8:21에 보면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웃는 모습은 마치 꽃이 만개되어 피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마음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넘치는 기쁨이 있을 때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해보세요. 주님이 여러분 마음 속에 넘치는 기쁨과 소망과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 살고, 하루를 살아도 만족할 줄 알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잠언 17:1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투정하는 것보다도 소찬이라도 기쁘게 감사함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입니까?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이런 참 행복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9:2에 보면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인한 기쁨을 말한 것입니다. 또 시편 16:11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N. 프라이어는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거든 즐거워하기를 배우라'고 말했고, 스펄젼 목사는 '은사 중에 최대의 은사는 웃는 은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증거는 감사와 기쁨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넷째, 신령한 눈을 뜨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8절하) 눈에는 육신의 눈도 있고, 지혜의 눈도 있고, 마음의 눈도 있고, 영의 눈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음 눈'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땅에 살고 있지만 신령한 주님의 세계를 항상 마음속에 그려보고 간직하며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에베소서 1:18, 19에 보면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 눈이 밝을 때 부르심의 소망을 바라보게 되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바라보게 되며,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천국의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선악간에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9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다시 살게 해주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해주며,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신령한 눈을 뜨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19:20에도 보면 '주의 율례를 항상 사모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을 사모하는데 어떤 때는 싫증이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시편 19:9,10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영혼을 소성시켜 줍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7절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린다는 것입니다. '소생한다'는 것은 새로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용기도 살아나고, 믿음도 살아나며, 병든 육체도 고침 받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죽은 영혼도 살려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마 4:4마 4:4)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귀하고 아름답고 또 사랑하는 대상이 많이 있지만 사실 가장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미모와 조건도 귀하지만 더 귀한 것은 그 영혼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인격적인 사람일수록 육체보다도 그 마음을 중히 여깁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마음보다도 그 영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두루 다니며 찾기까지 애쓰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과 긍휼과 용서를 베풀고 또 그를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면서 애쓰는 분들을 볼 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15:7에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3서 2절에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육체보다도 영혼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안다면 영혼이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항상 주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은 도덕 철학 윤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갈 때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얼마 전에 논산훈련소에서 4961명의 장병들이 진중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538명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흰 가운을 입고 그들에게 집례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맡아서 너무 너무 감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니까 무릎 꿇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알고, 말씀이 들어가니까 '할렐루야'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는데, 만약에 그 청년들에게 말씀이 없었다면 방탕할 수도 있고, 세상의 악한 일을 즐겨 도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인생의 소중함과 가치관을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해주심으로 그 영혼을 위하여 살게 되고, 영혼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아름다운 축복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절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지혜가 임합니다. 지혜에는 육성에 의한 지혜가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성에 의한 지혜가 있습니다. 육성에 의한 지혜란 '인생의 종합적인 사리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악한지 선한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업을 경영하는데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 잘못 선택해서 길러놓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입고, 어떤 사람은 성공시켜줌으로 평생 인연이 되어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존경하는 이런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알아야 되며, 또 영분별의 은사도 있어야 됩니다.
이 신령한 지혜는 어떤 강의를 받거나 어떤 수양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참 놀라운 깨달음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놀라운 지혜가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시편 37:31에 보면 "그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떤 학문을 통달했다고 해서 그 머리 속에 자기 삶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는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어떤 곳이 안전한 곳인지 어떤 곳이 위험한 곳인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한 발자국 사이에 삶과 죽음이 좌우되는 사실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고 승리하는 발걸음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8절상) 사람이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기쁘고 즐겁게 사는 이것은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쁨이 있어지기를 원하시면 '아멘'하십시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얼굴에 미소가 있게 됩니다.
욥기 8:21에 보면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웃는 모습은 마치 꽃이 만개되어 피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마음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넘치는 기쁨이 있을 때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해보세요. 주님이 여러분 마음 속에 넘치는 기쁨과 소망과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 살고, 하루를 살아도 만족할 줄 알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잠언 17:1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투정하는 것보다도 소찬이라도 기쁘게 감사함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입니까?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이런 참 행복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9:2에 보면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인한 기쁨을 말한 것입니다. 또 시편 16:11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N. 프라이어는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거든 즐거워하기를 배우라'고 말했고, 스펄젼 목사는 '은사 중에 최대의 은사는 웃는 은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증거는 감사와 기쁨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넷째, 신령한 눈을 뜨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8절하) 눈에는 육신의 눈도 있고, 지혜의 눈도 있고, 마음의 눈도 있고, 영의 눈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음 눈'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땅에 살고 있지만 신령한 주님의 세계를 항상 마음속에 그려보고 간직하며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에베소서 1:18, 19에 보면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 눈이 밝을 때 부르심의 소망을 바라보게 되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바라보게 되며,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천국의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선악간에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9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다시 살게 해주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해주며,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신령한 눈을 뜨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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