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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베뢰아인들의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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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서주일이기도 합니다. 이 대강절기간에 성서주일이 들어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인류에게 성경이 주어졌다는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하게 읽혀지는 책입니다. 아마 이 지구상에서 성경만큼 오래된 책도 없을 것이고 또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사랑 받는 책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현재 한국의 성서 공회에서는 세계 105개 나라에 148개의 언어로 된 성경을 한 해에 460만 부씩 수출하고 있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250만불어치나 됩니다. 이 양은 현재 전 세계가 찍어내고 있는 성경의 약 20%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참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성도들은 성경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오늘에 와서는 이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쓰는 일이 유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성경을 한 번 읽기도 힘든 일인데 일일이 손으로 전체를 쓴다는 일은 일생의 역사(役 事)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필사본은 가보로 남겨주어도 훌륭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달아오르고 있는데 각 당의 유력한 두 후보들은 성경 읽는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는"나는 일년에 한 번씩 성경을 읽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나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신앙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 지식도 해박하고 스캔들도 없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는 문제 는 대통령 출마자들의 선거 쟁점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뢰아교인들이 성경에 대해서 특별히 애착을 갖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베뢰아에 가서 전도하면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베뢰아인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베뢰아인들은 매우 신사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신사라는 말은 세 가지 인격의 요소가 갖추어져야 신사라고 합니다.
그중 한 가지는 '생각이 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깊다는 것은 심사숙고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생각이 깊지 못하면 경박합니다. 그래서 자꾸 실수하고 속단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베뢰아인들은 생각이 깊어서 판단이 바르고 올바로 결정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마음이 깊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깊다는 말은 온유하고 부드럽다는 말입니다. 아량이 있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마음이 퍽 긍정적이고 사람이나 사건을 대할 때 이해가 넓은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베뢰아인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을 때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신사적인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식으로 알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행동할 줄 알고 실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데살로니가인들은 거칠고 편협하고 생각이 부정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성사시키기보다는 방해하고 어그러뜨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인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을 때 아주 적극적이었고 신사적이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뢰아인들은 날마다 성서를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베뢰아인들은 성경에 대해서 관심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정신이 상당히 성숙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면 성경에 무관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 분 세속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영적으로 미숙하면 성경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베뢰아인들은 성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베뢰아인들은 영적 성장이 빨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소동을 부리면서 방해를 하고 복음 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잘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관심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베뢰아인들의 특징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루에 성경 한 장 읽기가 힘이 듭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더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공허하고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삶에 큰 영향을 미쳐주고 있습니다. 성경 이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 받고 베스트셀러로 유지되어 온 데는 그럴만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영감의 책이라는 점" 입니다.
딤후 3:16딤후 3:16에 보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지니는 값입니다. 기록은 사람들이 했지만 말씀의 출처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합당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고유성이고 가치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 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그 때는 영적으로 암흑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시대를 지적하고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예레미야 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영적 타락시기에 영감을 받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모스도 불의가 가득 찬 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할 때 낙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이사야도 포로생활에 고달프고 지친 백성들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영감으로 받아 전해진 말씀들을 서기관들이 기록해서 전해져 온 것이 이 성경책입니다. 만일 성경책이 한낱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 라면 이 책은 문학서와 역사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된 것은 그것이 "영감의 책"이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서양에서는 바이블(Bible) 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경전"(經 典)이라는 뜻입니다. 경전이라는 말은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교훈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두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표준이 하나일 때 다른 것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상에서 바이블은 오직 이 성경 하나 뿐입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의 최고의 책을 "사서삼경( 書經)"이라고 여겼습니다. 중국인들은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을 사서( 書)라고 하고, 시경(詩經), 서 경(書經), 주역(周易)을 삼경(經)이라고 합니다. 이 일곱 권의 책을 칠서(七書)라고도 부르고 사서삼경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 중국인들에게 이 성경이 들어 왔습니다. 보니까 사서삼경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경(經)"에다 거룩하다는 의미로 "성(聖)"자를 더 붙여서 "성경(聖經)"이라고 붙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는 성경이라는 말은 바로 중국인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성경책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길과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으면 조난 당하기 쉽습니다. 길과 기준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눈사태가 나기라도 하면 길이 없어집니다. 그 때는 대충 가게 됩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웅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기준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길이고 기준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천국은 아무렇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선 길을 알아야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에 이르는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다는 것은 상당한 축복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침공을 당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불에 탔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율법서를 땅 속에 숨기기도 하고 벽 속에 감추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불타버리거나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후 손들은 율법서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삶의 기준을 잃고 자기 좋을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사람이 기준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오랜 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다 성전을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성전 담을 헐고 수리하는 동안 조상들이 벽 속에 율법서를 넣어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약탈당할 때 율법서를 보관하기 위해서 감추어 두었던 것을 후대 사람들이 찾아 낸 것입니다. 그것을 백성들을 모아놓고 에스라가 읽어주었습니다.
들어보니 현재 자신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오늘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모순 투성이였고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에 너무나 멀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일어나 일제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소중한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해 줍니다. 자신의 현재를 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길이고 기준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돌아다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오늘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설교 때 며느리가 생각합니다.
"아이고, 저 말씀은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 하는데". 시어머니도 또 "아이고, 저 말씀은 꼭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하는데"하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처럼 교만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제쳐두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계시록 3장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처음에는 상당히 뜨거웠던 교회입니다. 참신하고 칭찬 받았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부요해지고 여유가 생기게 되니까 아주 감각이 무뎌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깨닫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나는 다 안다" 하고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책망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 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권하노니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 이게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내가 나를 볼 때는 완벽하게 보일런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을 평가하고 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는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스스로 부자라 생각하고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가리켜 가난하다고 했고 벌거벗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뢰아들은 열심히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더 신사적이어 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귀부인들은 문화생활에 선봉장 역할을 하고 노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알고 배우려고 만사를 제쳐두고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실상을 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회개하게 되고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용기와 능력을 준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신앙인들에게 진정한 용기와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위인들을 보면 대개 성경을 통해서 지혜를 배웠고 용기를 얻었고 결단하고 그랬습니다. 루터는 서슬이 퍼렇던 교황청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보름스 의사당 증언대에 서라는 통고였습니다. 그 증언대에 서면 살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가면 죽는다"고 극구 말렸습니다. 그 때 루터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마귀가 의사당 지붕의 기왓장만큼이나 많아도 나는 간다". 그리고 그는 증언대에 서자마자 "오 여호와 하나님, 나 여기 섰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말은 "주여,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성경을 읽다가 얻은 용기입니다. 그런 지혜를 알았기 때문에 루터는 교황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일반인들에게 읽게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위력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힘이고 용기입니다.
영국의 불렛포어라는 사람은 영국 국교가 한창 부패할 때 교회를 공격하다 투옥되었습니다. 그때 영국교 회와 정부가 합세해서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장작더미 위에 십자가를 세어 놓고 매어 달아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 때 불렛포어는 죽어가면서 "영국이 이대로 가면 망한다,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죽어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 의연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분연히 일어나 외쳤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자". 그래서 일어난 운동이 영국의 "청교도 운동"입니다. 결국 이 운동이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영국을 구원시켰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을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천국 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운명을 보고 나의 종말을 보고 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의 역할입니다.
이 지혜를 베뢰아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이 성경을 상고하고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그들은 그만큼 성숙했다는 말이고 비밀을 깨달아 알았다 는 말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장에 서 말씀하기를 "이 성경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 주는 교훈이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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