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생명의 말씀
본문
요한일서는 예수님의 제자중의 한 사람인 사도요한이 기록했습니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귀향을 갔다가 돌아와서 에베소 교회에서 노년을 보내며 기록한 말씀입니다. 밧모섬에 귀향을 갔을 때가 80고령이라고 했으니까 에베소에 머무를 때는 거의 90이 다된 연세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또한 요한일서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면 사도요한이 어부로 일할 때에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3년 동안 주님을 모시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양손과 양발에 쇠못이 박히셔서 십자가에 운명하시는 모습을 십자가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사도요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여자여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면서 그 이후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으니까 유일하게 제자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지켜본 제자입니다.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만져도 봤고 그분의 음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었고 그 품에 안겨서 그를 쳐다보았던 사도 요한입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 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을 때에 나타나셔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라 주님의 능력으로 잡히는 고기를 보았습니다. 또 주님과 함께 고기를 같이 먹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보고 만진 사람이 사도요한입니다.
밧모섬에 귀양을 가서는 기도 중에 주일에 하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뒤돌아보니까 이 머리가 양털과 같이 희고 눈이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 같고 긴 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띠셨고 입에서 나오는 그 음성이 큰 물소리와 같고 그 말씀이 이 한 검과 같고 날카로운 칼과 같고 얼굴은 해가 힘차게 비추는 그런 얼굴을 가지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7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사이를 다니시던 그 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한 사도요한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로 눈으로 본 바요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에서도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늘은 그래서 생명의 말씀이라는 제목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사도요한이 주장하는대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가 봐야하고 들어야 하고 친히 만져야 되는 그런 분입니다.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님은 다시 말하면 체험하는 사람이 믿는 바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의 말씀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계십니까? 사도 요한이 체험한 것처럼 체험하셨냐 그 말입니다. 사도 요한이 체험한 것처럼 지금도 생명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고 계시냔 말입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바 되는 그 분, 여러분 예수님을 내가 듣고 보고 만지지 않으면 성도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한 번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려 가는 중에 열 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많은 무리 중에 섞여 가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면 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내 병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예수님의 곁에 가서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밀어 제키는 데 손댄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아니다. 내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내가 아노라"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내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 몸에 손을 댄 줄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 여인이 숨길 수 없어 고백합니다. 내가 십이 년 간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피가 멎지를 않습니다. 약도 먹고 병원도 가보았지만 낫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제가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깨끗이 나았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여러분 이것이 체험한 것입니다. 몸으로 체험했잖아요. 옷자락을 만지니까 자기 몸에 증거가 나타나는 산 체험을 했습니다.
바로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듣고 보고 만져서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몸에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사십년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손을 잡고 일으키니까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주를 찬미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잡은 것은 분명 베드로의 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믿음을 통해서 보여진 예수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예수의 손을 만진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베드로 안에 역사 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았기 때문에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걸어보지 못했던 그 몸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체험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번만 체험해도 안됩니다. 매번 매번 매일매일 내 삶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 생명의 말씀되시는 주님을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언제든지 만질 수 있는 그런 주가 되시기 위해서 그분이 다시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만져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바라 봐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생명의 말씀을 믿는 성도로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와 우리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사귐이 있는 성도, 얼마나 예수님과 여러분 친하게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과 진짜 얼마나 친하세요.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 사귐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이것은 또한 코이노스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사귐에서 더 깊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결합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남녀가 교제를 하다가 서로 사귑니다. 그러다가 아예 결합을 합니다. 한 몸이 되는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귀다가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성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귀고 또 사귀어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와 한 몸이 되셔야 합니다. 아버지와 사귀고 또 사귀다가 그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성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여러분과 한 몸 되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사귀고 또 사귀다가 마침내 한 몸이 되시려고 여러분들이 예수 안에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오셔서 한 몸 되서 살기를 원하셔서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는 날 영원히 한 몸 되어서, 영원히 하나가 되어서 사는 그런 축복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로부터 주시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미국에서 집회를 할 때 김곡례라고 하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집사님이 아침을 대접하셨는데 목사님이 뭐라고 소개를 하냐면 이 김집사님은 우리 교회 전도 왕입니다. 전도를 제일 잘하는 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전도를 잘하는 분이냐 했더니 이분이 얼마나 절을 열심히 다녔는지 사원 초파일날에 절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사월 초파일날 결혼을 한 이유도 사월 초파일날 자녀를 낳으려고 한 것이랍니다. 사월초파일날 결혼하면 사월 초파일날 아들을 낳게 되나요? 하여튼 그렇게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12월 25일날 낳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마음에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정성을 드리고 그렇게 마음을 쏟아 부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여기에는 또 다른 신의 섭리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믿으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도대체 무엇인지 보고 배워보려고 나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 예수를 혼자만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나가서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교회의 전도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생활 하면서 진짜 예수님과 사귀어야 됩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귀고 사귀다가 마침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거하는 그런 산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예수의 사랑 그 예수의 능력 예수의 은총이 내 안에서 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산 믿음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뿐만 아니라 그분 앞에 내 모든 문제를 내놓고 내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에 그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동행하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들이고 그리고 내 무거운 모든 짐들을 그분께 다 내어 맡기고 그분과 동행할 때 체험할 수가 있고 주님과 하나가 되는 역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깨닫고 나도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은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뜨거운 사랑이 물밀 듯 밀려들어옵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결합하는 데 있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결합하고 아버지와 결합하는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왜? 당신이 겸손하시니까. 죽기까지 낮아지시고 겸손해지셔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주님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주님과 결합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결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럼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5절로 10절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성화 되어 가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점점 성화가 되어가야 합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바로 거룩해져 가는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고 바로 그 사람이 성도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난 예수 믿고 나서 얼마나 거룩해졌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예수 믿고 나서 많이 변했어. 정말 기적과 같이 변했어. 이 사람은 진짜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난 예수 믿고 나서도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문제가 좀 있지요.
여러분 예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주님이 내게 임하면 내 어두운 모습이 들어 납니다. 아이고, 내가 이것을 잘못했구나. 저것을 잘못했구나. 시간도 잘못 썼구나 돈도 잘못 썼구나 내 자녀도 잘못 기르고 있구나. 내 자신도 잘못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 자꾸 들추어져야 합니다. 어두운 모습이 들어 나야 합니다. 왜? 빛이오니까 어두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게 들어 나야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도 안 들어 나면 빛이 내게 임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두움의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잘못된 부분들이 들어 나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된 사람입니다.
전에 한번 제가 우리 성도 어느 가정에 예배를 인도하러 갔더니 같이 갔던 분이 그렇게 예기를 합니다. 목사님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신 설교 말씀들은 저 가정이요, 저 남편이 틀림없이 무언가 정리 할겁니다. 뭘 고칠 겁니다. 그 얘기를 듣는 저의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아 그래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잘못한 것을 정말 정리하고 고쳐나가는구나. 어두움이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이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생명의 말씀되시는 주님을 만나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거룩해 집니다. 그리고 마치 포도나무에 잘못된 열매를 못 맺는 그 불필요한 가지가 정리되듯이 내 인생의 삶이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영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잘못된 것들이 조정되고 정리가 되어나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거룩한 길을 가는 사람이고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게 그렇게 감사되더라구요. 여호와 하나님 내 자신의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시고 정리하게 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정리되는 것을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내 삶이 예수로 말미암아 깨끗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내 자신의 잘못된 것들이 청소가 되고 정리가 되고 깨끗케 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도전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번은 시골에서 소녀하나가 친구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시골에 있어봐야 아무런 희망이 없으니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친구 따라서 가방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가방공장에 들어가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합니다. 그 안에는 먼지가 자욱하고 본드냄새가 진동을 하며 형편없는 곳입니다. 거기서 바느질과 미싱을 하며 보냅니다. 한 달에 이틀을 쉽니다. 그러니까 28일을 일을 하고 봉급을 받았는데 8만4천원의 봉급을 받았습니다. 5만원을 시골로 송금을 하고 그 동안 친구에게 빌린 돈 만원을 갚고 이만사천원으로 한 달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공장에 다니는데 하루를 빠지면 나흘치 임금을 삭감합니다. 그리고 지각을 세 번하면 하루 빠지는 것으로 칩니다. 아무리 고생을 해도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혹이 옵니다. 더러운 돈이라도 돈이나 실컷 벌었으면 좋겠다. 술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것을 참고 견딥니다. 자기 또래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눈물이 납니다. 나도 저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주님께서 그 마음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접하였습니다. 주님을 모셔들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기의 그 아픈 모든 것을 터놓고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싸안으면서 내가 너를 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마.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분을 마음속에 영접해 들이면 그분은 내 안에 오십니다. 그리고 내 모든 문제를 그분에게 내어 맡기면 그분은 언제든지 그 짐을 맡아주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한 몸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닮는 사람, 거룩한 길을 가는 사람, 성화 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며 처음 믿을 때와 나중 믿을 때가 점점 달라지며 변화가 되는 그런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요한일서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면 사도요한이 어부로 일할 때에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3년 동안 주님을 모시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양손과 양발에 쇠못이 박히셔서 십자가에 운명하시는 모습을 십자가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사도요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여자여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면서 그 이후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으니까 유일하게 제자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지켜본 제자입니다.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만져도 봤고 그분의 음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었고 그 품에 안겨서 그를 쳐다보았던 사도 요한입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 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을 때에 나타나셔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라 주님의 능력으로 잡히는 고기를 보았습니다. 또 주님과 함께 고기를 같이 먹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보고 만진 사람이 사도요한입니다.
밧모섬에 귀양을 가서는 기도 중에 주일에 하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뒤돌아보니까 이 머리가 양털과 같이 희고 눈이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 같고 긴 옷을 입고 허리에 띠를 띠셨고 입에서 나오는 그 음성이 큰 물소리와 같고 그 말씀이 이 한 검과 같고 날카로운 칼과 같고 얼굴은 해가 힘차게 비추는 그런 얼굴을 가지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7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사이를 다니시던 그 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한 사도요한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로 눈으로 본 바요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에서도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늘은 그래서 생명의 말씀이라는 제목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사도요한이 주장하는대로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가 봐야하고 들어야 하고 친히 만져야 되는 그런 분입니다.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님은 다시 말하면 체험하는 사람이 믿는 바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의 말씀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계십니까? 사도 요한이 체험한 것처럼 체험하셨냐 그 말입니다. 사도 요한이 체험한 것처럼 지금도 생명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고 계시냔 말입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바 되는 그 분, 여러분 예수님을 내가 듣고 보고 만지지 않으면 성도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한 번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려 가는 중에 열 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많은 무리 중에 섞여 가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면 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내 병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예수님의 곁에 가서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밀어 제키는 데 손댄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아니다. 내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내가 아노라"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내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 몸에 손을 댄 줄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 여인이 숨길 수 없어 고백합니다. 내가 십이 년 간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피가 멎지를 않습니다. 약도 먹고 병원도 가보았지만 낫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제가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깨끗이 나았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여러분 이것이 체험한 것입니다. 몸으로 체험했잖아요. 옷자락을 만지니까 자기 몸에 증거가 나타나는 산 체험을 했습니다.
바로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듣고 보고 만져서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몸에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사십년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손을 잡고 일으키니까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주를 찬미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잡은 것은 분명 베드로의 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믿음을 통해서 보여진 예수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예수의 손을 만진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베드로 안에 역사 하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았기 때문에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걸어보지 못했던 그 몸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체험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번만 체험해도 안됩니다. 매번 매번 매일매일 내 삶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 생명의 말씀되시는 주님을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언제든지 만질 수 있는 그런 주가 되시기 위해서 그분이 다시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만져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바라 봐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생명의 말씀을 믿는 성도로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와 우리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사귐이 있는 성도, 얼마나 예수님과 여러분 친하게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과 진짜 얼마나 친하세요.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 사귐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이것은 또한 코이노스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사귐에서 더 깊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결합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남녀가 교제를 하다가 서로 사귑니다. 그러다가 아예 결합을 합니다. 한 몸이 되는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귀다가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성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귀고 또 사귀어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와 한 몸이 되셔야 합니다. 아버지와 사귀고 또 사귀다가 그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성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여러분과 한 몸 되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사귀고 또 사귀다가 마침내 한 몸이 되시려고 여러분들이 예수 안에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오셔서 한 몸 되서 살기를 원하셔서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는 날 영원히 한 몸 되어서, 영원히 하나가 되어서 사는 그런 축복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게로부터 주시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미국에서 집회를 할 때 김곡례라고 하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집사님이 아침을 대접하셨는데 목사님이 뭐라고 소개를 하냐면 이 김집사님은 우리 교회 전도 왕입니다. 전도를 제일 잘하는 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전도를 잘하는 분이냐 했더니 이분이 얼마나 절을 열심히 다녔는지 사원 초파일날에 절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사월 초파일날 결혼을 한 이유도 사월 초파일날 자녀를 낳으려고 한 것이랍니다. 사월초파일날 결혼하면 사월 초파일날 아들을 낳게 되나요? 하여튼 그렇게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12월 25일날 낳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마음에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정성을 드리고 그렇게 마음을 쏟아 부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여기에는 또 다른 신의 섭리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믿으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도대체 무엇인지 보고 배워보려고 나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 예수를 혼자만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나가서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교회의 전도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생활 하면서 진짜 예수님과 사귀어야 됩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귀고 사귀다가 마침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거하는 그런 산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예수의 사랑 그 예수의 능력 예수의 은총이 내 안에서 주로 말미암아 역사 하는 산 믿음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뿐만 아니라 그분 앞에 내 모든 문제를 내놓고 내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에 그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과 동행하면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들이고 그리고 내 무거운 모든 짐들을 그분께 다 내어 맡기고 그분과 동행할 때 체험할 수가 있고 주님과 하나가 되는 역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깨닫고 나도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은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뜨거운 사랑이 물밀 듯 밀려들어옵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결합하는 데 있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결합하고 아버지와 결합하는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왜? 당신이 겸손하시니까. 죽기까지 낮아지시고 겸손해지셔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이 주님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주님과 결합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결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럼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5절로 10절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성화 되어 가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말씀되시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점점 성화가 되어가야 합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바로 거룩해져 가는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고 바로 그 사람이 성도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난 예수 믿고 나서 얼마나 거룩해졌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예수 믿고 나서 많이 변했어. 정말 기적과 같이 변했어. 이 사람은 진짜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난 예수 믿고 나서도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문제가 좀 있지요.
여러분 예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주님이 내게 임하면 내 어두운 모습이 들어 납니다. 아이고, 내가 이것을 잘못했구나. 저것을 잘못했구나. 시간도 잘못 썼구나 돈도 잘못 썼구나 내 자녀도 잘못 기르고 있구나. 내 자신도 잘못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 자꾸 들추어져야 합니다. 어두운 모습이 들어 나야 합니다. 왜? 빛이오니까 어두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게 들어 나야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도 안 들어 나면 빛이 내게 임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두움의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잘못된 부분들이 들어 나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된 사람입니다.
전에 한번 제가 우리 성도 어느 가정에 예배를 인도하러 갔더니 같이 갔던 분이 그렇게 예기를 합니다. 목사님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신 설교 말씀들은 저 가정이요, 저 남편이 틀림없이 무언가 정리 할겁니다. 뭘 고칠 겁니다. 그 얘기를 듣는 저의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아 그래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않고 말씀을 듣고 잘못한 것을 정말 정리하고 고쳐나가는구나. 어두움이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이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생명의 말씀되시는 주님을 만나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거룩해 집니다. 그리고 마치 포도나무에 잘못된 열매를 못 맺는 그 불필요한 가지가 정리되듯이 내 인생의 삶이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영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잘못된 것들이 조정되고 정리가 되어나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거룩한 길을 가는 사람이고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게 그렇게 감사되더라구요. 여호와 하나님 내 자신의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시고 정리하게 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정리되는 것을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내 삶이 예수로 말미암아 깨끗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내 자신의 잘못된 것들이 청소가 되고 정리가 되고 깨끗케 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도전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번은 시골에서 소녀하나가 친구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시골에 있어봐야 아무런 희망이 없으니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친구 따라서 가방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가방공장에 들어가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합니다. 그 안에는 먼지가 자욱하고 본드냄새가 진동을 하며 형편없는 곳입니다. 거기서 바느질과 미싱을 하며 보냅니다. 한 달에 이틀을 쉽니다. 그러니까 28일을 일을 하고 봉급을 받았는데 8만4천원의 봉급을 받았습니다. 5만원을 시골로 송금을 하고 그 동안 친구에게 빌린 돈 만원을 갚고 이만사천원으로 한 달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공장에 다니는데 하루를 빠지면 나흘치 임금을 삭감합니다. 그리고 지각을 세 번하면 하루 빠지는 것으로 칩니다. 아무리 고생을 해도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혹이 옵니다. 더러운 돈이라도 돈이나 실컷 벌었으면 좋겠다. 술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것을 참고 견딥니다. 자기 또래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눈물이 납니다. 나도 저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주님께서 그 마음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접하였습니다. 주님을 모셔들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기의 그 아픈 모든 것을 터놓고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싸안으면서 내가 너를 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마.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분을 마음속에 영접해 들이면 그분은 내 안에 오십니다. 그리고 내 모든 문제를 그분에게 내어 맡기면 그분은 언제든지 그 짐을 맡아주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한 몸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닮는 사람, 거룩한 길을 가는 사람, 성화 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며 처음 믿을 때와 나중 믿을 때가 점점 달라지며 변화가 되는 그런 삶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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