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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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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의 신하 목현의 식객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인 화씨지벽을 원상태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에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3년 후(B. C. 280),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습니다. 인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에 올랐다. 그리하여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을 쳐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 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 테다. ’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습니다. 그는 병을 핑계 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지요. 이 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 인사를 하로 왔습니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로 소양왕이지요. ’ ‘나는 그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위기를 생각하고 염파장군을 피하는 거야. ’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염파는 곧 윗통을 벗은 다음 태형에 쓰이는 형장을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가 미욱해서(의미: 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다)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 ’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습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합니다. 염파장군이 인상여의 진심을 알지 못하여 오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이처럼 크게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 사이에서 오해가 없도록 서로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복된 신앙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코 평탄하지 않은 인생길입니다.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장애물과 시련이 있었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장애물도 있고, 아멜렉과 같은 원수들의 공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칼을 들고 싸우는 군인도 있고, 모세처럼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의 손이 올라갈 때 여호수아가 승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즉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로 여호수아는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성도의 영원한 승리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습니다. 아멜렉과 같은 마귀는 성도를 영원한 패배자로 지옥으로 끌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영생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인생도 성공적으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도 축복도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잘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부터 이미 성경에서 예언되었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약속하시고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에 간접적인 표현까지 포함하면 약 450여회나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2 이 복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2-4)’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깊이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들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함께 상고해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는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생활을 거치면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으로 주신 만나를 하찮은 식물로 여겼습니다. 광야에서 필요한 물을 여호와 하나님께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물을 마시기보다 불평하면서 스스로 물을 찾았습니다. 그 불신앙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고생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21:8)’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뱀에 물려 고생하는 자들이 이 놋뱀을 쳐다만 보아도 치유 받았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든 뱀을 보는 자들이 구원을 얻었듯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바로 영생입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영생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영생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 곧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지니는 것입니다. 영생을 성경에서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정의하신 영생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있는 부활과 영생을 보았습니다.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에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도 외쳤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3, 6)’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체험적인 지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알게 되는 신지식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을 앎으로서 영생과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성경은 예수에 증거요, 증언의 결국은 영생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합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곤고함이 있습니다. 영적인 갈증을 느끼지만 참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은 바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빠진 인생은 어느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비록 삶의 환경이 부족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곧 예수를 알 때 만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예수님 안에 기쁨과 행복함이 있습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이러한 만족함과 기쁨은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의 축복입니다.

 둘째,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혼돈과 흑암 속에 있는 하늘과 땅의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셨습니다. 물을 나누셨습니다. 육지 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수중생물과 육상동물을 만드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빚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제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도 제7일은 안식하도록 하셨습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십계명 중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안식일 준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안식일의 준수는 생명과 죽음의 시금석이었습니다. 순종하여 생명을 얻느냐 혹은 불순종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죽느냐의 갈림길이었습니다. 믿음과 불신의 시험지였습니다.

현대인들은 안식을 단순하게 하루를 쉬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주일 성수만을 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식에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 안에서 누리는 안식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며 여호와 하나님 안에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삶이 진정한 안식입니다. 이러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셋째,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은 축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조 아담을 만드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노아를 불러서도 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러서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축복하였습니다. 이삭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약속으로 야곱을 축복하였습니다. ‘:27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7-29)’ 축복기도는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분입니다. 건강과 영생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안식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까지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예비하신 분입니다. 영원하고 복된 나라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 주심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며 나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기대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주실 축복을 간구하며 주님 앞에 나갑시다. )

나가는 말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0, 13)’영생뿐만 아니라 참된 안식과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축복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증언입니다. 말씀을 성령님의 비추심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광맥을 찾아 마음껏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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