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는 복음의 세계화입니다
본문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선교는 인류의 최대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명령과 동시에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동부지역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윌리암스 대학에 사무엘 밀(Samuel Mills)이란 학생이 매일 오후에 강변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몇 명의 기도 동지가 모였습니다. 하루는 갑자기 내리는 폭우를 피하기 위하여 건초더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7-8명의 학생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오후 건초더미(Haystack Meeting)에서 뜨겁게 기도하기를 미국이 세계 선교를 감당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이 나아갈 것을 서원 했습니다. 이들은 윌리암스 대학을 마치고 엔도바 신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이들 멤버는 사무엘 밀(Samuel Mills), 제임스 리차드(James Richard), 프랜시스 로빈스(Francis Robins), 하비 루미스(Harvey Loomis), 골든 홀(Gordon Hall), 루터 라이스(Luther Rice), 사무엘 뉴웰(Samuel Newell), 애도니란 자드슨(Adoniran Judson) 같은 분입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선교 열기에 감동을 받은 기성세대가 1810년에 미국 최초로 미국해외선교회(ABCFMAmerican Board of Commission for Foreign Mission)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선교 정책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의 선교 정책을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선교사의 영성과 자질문제입니다. 선교사는 영혼 구원에 불타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 문화권에 적응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언어와 대상국가의 문화적 풍습을 사전에 알고 익혀서 생활화가 된 후에 가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러한 준비가 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엄밀하게 검정하여 파송해야 합니다. 때로는 국내 목회의 실패자가 해외 피난처로 나가면서 선교사란 칭호를 가지고 나가는 사례가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선교와 그 대상 국가에 대한 모독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함에 있어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파송 지역에 대한 사전에 정보와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첫 선교지를 구브로와 소아시아 지역을 선정한 것은 구브로는 바나바의 출신 지역이요, 소아시아는 바울의 출신 지역으로서 선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예배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보다 16년쯤 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1)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예언도 하고, 설교도 하고, 다스리기도 합니다(행11:27, 15:32, 롬12:6-7). 교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자로서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여 가르치는 자입니다(고전12:28, 엡4:11)
아마 교회 중 다섯분이 천거가 되었습니다. 첫째, 바나바입니다. 그는 구브로 사람으로 레위지파 출신으로 본명은 요한 인데 성도들을 잘 권면하고 위로해서 권위자(바나바)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행4:36). 둘째, 니게르인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란 흑인이란 말인데 아프리카 인으로서 개종한 자입니다. 혹자는 구레네 시몬이라고도 합니다(눅23:26). 셋째,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루기오는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에게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행11:20). 혹은 바울의 친척 누기오라고도 합니다(롬16:21). 넷째,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마나엔의 어머니는 헤롯 안디바의 유모입니다. 그는 궁중 고관으로 복음을 받아 세상 명예와 권세와 부귀를 버리고 안디옥 교회 선지자와 교사가 되었습니다. 다섯째, 사울입니다.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유대교의 바리새인으로서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위 일군이 안디옥 교회의 저력입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에서 잠재된 파워는 다음과 같은 정신입니다. 사해동포(悔同胞)정신이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폐 정신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민족주의가 선민 우월 사상으로 변질되어 세계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좁은 땅에서 지역 감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월정신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초월정신입니다. 피부 색깔의 장벽인 인종차별이 없고, 빈부간의 소외된 자가 없고, 귀족과 천민, 지식인과 무지한 자의 차별이 없는 예수 안에서 하나됨입니다. 봉사와 섬김의 협동정신입니다. 그들은 기근을 당한 어려움 중에서도 멀리 있는 형제들을 위해 구제하고, 세계 선교를 위하여 유능한 일군을 해외로 파견해 보내었으며, 이러한 일에 온 교회가 일치 단결했습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저력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선교사를 어떻게 피택 할 것인가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2) "주를 섬겨"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그 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깨어지지 못한 자아가 살아 있는 자는 선교사역에서 주를 섬기기에 불가능합니다. 바나바는 주님을 자기의 재물을 다 받친 사람이요,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버린 사람입니다. "금식할 때"라고 했습니다. 철저한 기도의 응답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광야의 기도로 시작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로 준비하여 마지막 십자가에서 기도함으로 완성하신 기도의 사람입니다. 모든 문제는 기도로 풀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마21:23). 이때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이 둘을 교회가 파송 했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3) 선교사는 철저하게 세상적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금식하여 피택한 선교사를 "금식하며 기도"하게 한 후에 파송하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굶어 죽을 각오를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따르던 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고 했습니다. 안수하여 보내었습니다. 교회가 합법적으로 인 치신 것입니다. 이들의 뒤에는 안디옥 교회가 있으며 안디옥 교회 위에는 주님의 손이 있습니다.
구브로 섬 바보에서
구브로 총독 서기오를 만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실루기아 항구에서 출발해 구브로 섬 살라미에 도착해서 섬 중앙으로 가로질러 바보에 가서 총독 서기오를 만났습니다. 서기오는 어떤 사람인가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7) 그는 구브로 총독입니다. 그 섬의 총 책임자입니다. 이것은 아마 이 지역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바나바에 의한 선교 전략일 것입니다. 그가 복음을 받으면 섬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선교 현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얻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도자가 가는 곳에 필요한 사람을 예비해 두십니다. 그는 말씀을 사모하는 지혜자 였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에, 갈급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곁에 종교적 자문을 두었으나 그 마음에 공허함이 채워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소문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비된 영혼입니다.
그러나 박수 엘루마의 방해가 있습니다. "이 박수 엘루마는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8)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방했는가 궤계입니다. 기만과 속임수를 말합니다. 악행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악입니다. 의의 원수입니다. 매사에 불의를 행하며 나쁜 짓만 골라 가면서 행하는 악당이었습니다. 바른 길을 굽게 합니다. 모든 악이 굽은데서 이루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바로 서면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등을 지고 돌아선 데서 불의를 행합니다. 바울이 주의 이름으로 책망하니 즉시로 소경이 되었습니다. 사단권세는 예수 이름으로 결박해야 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12) 복음은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총독이 박수 엘루마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소경이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선교 현장에 나가면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선교지는 바로 영적 전쟁터입니다. 성령의 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면 사단권세가 정복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가르쳐서 영접을 시킬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구브로에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갔습니다. 구브로 바보에서 떠나 밤빌리아 버가로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회당장들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지극히 규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구속사적입니다. 예정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불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구원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간 애굽에서 종노릇 하다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 출애굽 했습니다. 예수 피로서 우리가 죄와 사망권세에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교회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교회에서 40년간 훈련받았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따라 구름기둥 불기둥의 보호 아래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기업론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언약의 땅이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왕국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을 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한 다윗을 세워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복음이 다윗을 경유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된 것입니다. 부활론입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시작이요 완성입니다. 이전에 나타난 모든 것은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이제 실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설교에는 은혜가 넘쳤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마치고 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간청했습니다. 다음 안식일에도 와 주세요(42) 사실 우리 주변에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 있는 말씀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사모하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삽시다(43). 집회를 마치니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릅니다. 이들은 말씀과 은혜에 굶주린 영혼들입니다. 성도는 말씀과 은혜의 이슬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어떠한 사명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아들 디모데에게 은혜 속에서 강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딤후2:1). 다음 안식에는 온 성이 다 모였습니다(44). 향기를 발하면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말씀이 있는 목장에는 양떼가 몰려옵니다. 영생주기로 작정된 영혼은 다 믿더라(48)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면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영혼을 붙여 줍니다. 이것은 현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전도가 참으로 미련하게 보이나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고전1: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는 웅장한 건물과 풍성한 재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불타는 선교적 사명을 가진 일군이 많아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를 길러서 두 아들을 미국선교사를 보내면서 그 어머니는 "내게 아들 30명이 있으면 모두 선교사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선교는 인류의 최대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명령과 동시에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동부지역 메사츄세츠주에 있는 윌리암스 대학에 사무엘 밀(Samuel Mills)이란 학생이 매일 오후에 강변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몇 명의 기도 동지가 모였습니다. 하루는 갑자기 내리는 폭우를 피하기 위하여 건초더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7-8명의 학생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오후 건초더미(Haystack Meeting)에서 뜨겁게 기도하기를 미국이 세계 선교를 감당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이 나아갈 것을 서원 했습니다. 이들은 윌리암스 대학을 마치고 엔도바 신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이들 멤버는 사무엘 밀(Samuel Mills), 제임스 리차드(James Richard), 프랜시스 로빈스(Francis Robins), 하비 루미스(Harvey Loomis), 골든 홀(Gordon Hall), 루터 라이스(Luther Rice), 사무엘 뉴웰(Samuel Newell), 애도니란 자드슨(Adoniran Judson) 같은 분입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선교 열기에 감동을 받은 기성세대가 1810년에 미국 최초로 미국해외선교회(ABCFMAmerican Board of Commission for Foreign Mission)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선교 정책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의 선교 정책을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선교사의 영성과 자질문제입니다. 선교사는 영혼 구원에 불타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 문화권에 적응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언어와 대상국가의 문화적 풍습을 사전에 알고 익혀서 생활화가 된 후에 가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러한 준비가 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엄밀하게 검정하여 파송해야 합니다. 때로는 국내 목회의 실패자가 해외 피난처로 나가면서 선교사란 칭호를 가지고 나가는 사례가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선교와 그 대상 국가에 대한 모독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함에 있어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파송 지역에 대한 사전에 정보와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첫 선교지를 구브로와 소아시아 지역을 선정한 것은 구브로는 바나바의 출신 지역이요, 소아시아는 바울의 출신 지역으로서 선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예배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보다 16년쯤 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1)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예언도 하고, 설교도 하고, 다스리기도 합니다(행11:27, 15:32, 롬12:6-7). 교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자로서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여 가르치는 자입니다(고전12:28, 엡4:11)
아마 교회 중 다섯분이 천거가 되었습니다. 첫째, 바나바입니다. 그는 구브로 사람으로 레위지파 출신으로 본명은 요한 인데 성도들을 잘 권면하고 위로해서 권위자(바나바)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행4:36). 둘째, 니게르인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란 흑인이란 말인데 아프리카 인으로서 개종한 자입니다. 혹자는 구레네 시몬이라고도 합니다(눅23:26). 셋째,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루기오는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에게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행11:20). 혹은 바울의 친척 누기오라고도 합니다(롬16:21). 넷째,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마나엔의 어머니는 헤롯 안디바의 유모입니다. 그는 궁중 고관으로 복음을 받아 세상 명예와 권세와 부귀를 버리고 안디옥 교회 선지자와 교사가 되었습니다. 다섯째, 사울입니다.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유대교의 바리새인으로서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위 일군이 안디옥 교회의 저력입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에서 잠재된 파워는 다음과 같은 정신입니다. 사해동포(悔同胞)정신이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폐 정신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민족주의가 선민 우월 사상으로 변질되어 세계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좁은 땅에서 지역 감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월정신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초월정신입니다. 피부 색깔의 장벽인 인종차별이 없고, 빈부간의 소외된 자가 없고, 귀족과 천민, 지식인과 무지한 자의 차별이 없는 예수 안에서 하나됨입니다. 봉사와 섬김의 협동정신입니다. 그들은 기근을 당한 어려움 중에서도 멀리 있는 형제들을 위해 구제하고, 세계 선교를 위하여 유능한 일군을 해외로 파견해 보내었으며, 이러한 일에 온 교회가 일치 단결했습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저력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선교사를 어떻게 피택 할 것인가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2) "주를 섬겨"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그 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깨어지지 못한 자아가 살아 있는 자는 선교사역에서 주를 섬기기에 불가능합니다. 바나바는 주님을 자기의 재물을 다 받친 사람이요,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버린 사람입니다. "금식할 때"라고 했습니다. 철저한 기도의 응답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광야의 기도로 시작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로 준비하여 마지막 십자가에서 기도함으로 완성하신 기도의 사람입니다. 모든 문제는 기도로 풀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마21:23). 이때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이 둘을 교회가 파송 했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3) 선교사는 철저하게 세상적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금식하여 피택한 선교사를 "금식하며 기도"하게 한 후에 파송하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굶어 죽을 각오를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따르던 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고 했습니다. 안수하여 보내었습니다. 교회가 합법적으로 인 치신 것입니다. 이들의 뒤에는 안디옥 교회가 있으며 안디옥 교회 위에는 주님의 손이 있습니다.
구브로 섬 바보에서
구브로 총독 서기오를 만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실루기아 항구에서 출발해 구브로 섬 살라미에 도착해서 섬 중앙으로 가로질러 바보에 가서 총독 서기오를 만났습니다. 서기오는 어떤 사람인가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7) 그는 구브로 총독입니다. 그 섬의 총 책임자입니다. 이것은 아마 이 지역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바나바에 의한 선교 전략일 것입니다. 그가 복음을 받으면 섬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선교 현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얻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도자가 가는 곳에 필요한 사람을 예비해 두십니다. 그는 말씀을 사모하는 지혜자 였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에, 갈급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곁에 종교적 자문을 두었으나 그 마음에 공허함이 채워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소문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비된 영혼입니다.
그러나 박수 엘루마의 방해가 있습니다. "이 박수 엘루마는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8)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방했는가 궤계입니다. 기만과 속임수를 말합니다. 악행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악입니다. 의의 원수입니다. 매사에 불의를 행하며 나쁜 짓만 골라 가면서 행하는 악당이었습니다. 바른 길을 굽게 합니다. 모든 악이 굽은데서 이루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바로 서면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등을 지고 돌아선 데서 불의를 행합니다. 바울이 주의 이름으로 책망하니 즉시로 소경이 되었습니다. 사단권세는 예수 이름으로 결박해야 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12) 복음은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총독이 박수 엘루마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소경이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선교 현장에 나가면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선교지는 바로 영적 전쟁터입니다. 성령의 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면 사단권세가 정복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가르쳐서 영접을 시킬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구브로에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갔습니다. 구브로 바보에서 떠나 밤빌리아 버가로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회당장들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지극히 규례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구속사적입니다. 예정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불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구원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간 애굽에서 종노릇 하다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 출애굽 했습니다. 예수 피로서 우리가 죄와 사망권세에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교회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교회에서 40년간 훈련받았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따라 구름기둥 불기둥의 보호 아래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기업론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언약의 땅이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왕국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을 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한 다윗을 세워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복음이 다윗을 경유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된 것입니다. 부활론입니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시작이요 완성입니다. 이전에 나타난 모든 것은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이제 실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설교에는 은혜가 넘쳤습니다. 바울의 말씀을 마치고 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간청했습니다. 다음 안식일에도 와 주세요(42) 사실 우리 주변에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 있는 말씀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사모하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삽시다(43). 집회를 마치니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릅니다. 이들은 말씀과 은혜에 굶주린 영혼들입니다. 성도는 말씀과 은혜의 이슬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어떠한 사명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아들 디모데에게 은혜 속에서 강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딤후2:1). 다음 안식에는 온 성이 다 모였습니다(44). 향기를 발하면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말씀이 있는 목장에는 양떼가 몰려옵니다. 영생주기로 작정된 영혼은 다 믿더라(48)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면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영혼을 붙여 줍니다. 이것은 현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전도가 참으로 미련하게 보이나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고전1: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는 웅장한 건물과 풍성한 재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불타는 선교적 사명을 가진 일군이 많아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를 길러서 두 아들을 미국선교사를 보내면서 그 어머니는 "내게 아들 30명이 있으면 모두 선교사로 보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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