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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고린도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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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는 B. C. 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 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고 B. 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B. 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택하기로 작정하신 그 백성들 중에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늘 자녀들에게 있듯이.
그래서 그 백성을 위한 기도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을 찾아가는 발길엔 축복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백성을 위한 물 한 그릇도 여호와 하나님은 공수로 보내시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신앙생활을 해야할 때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음란의 도시, 우상의 도시 고린도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 음란의 도성 고린도를 불로 멸하겠노라!'
대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고린도를 살리기 원하십니다. 선교하기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린도를 선교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은 고린도에 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많은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그들을 주시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결심을 말씀 안에서 봅니다.
패역한 성, 니느웨를 생각하시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일으켜서라도 다시스로 가는 요나를 막으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능력있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성중에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땅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성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적용과 도전
우리가 기울이는 많은 삶의 현장이 다시스로 가는 선상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일입니다.
원주민 보호구역들을 찾으면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원주민에게 무관심합니다. 이 성중에 여호와 하나님 백성은 없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 눈은 열려야 합니다. 저도 그러한 좌절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주민 마을들을 찾기 시작한지 6년,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결론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한 결단을 했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말씀을 믿고 복음을 전하자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을 받아 들일른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즞 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바울은 요나가 니느웨 성에서 외치듯이 복음을 외치는 것입니다.
2. 바울사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부모 마음을 아는 사람은 효자(孝子)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 내에서 가르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 설교의 핵심은 항상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17:31).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할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잘아는 사람입니다. 한번 한 것이 아닙니다. 한 주일 하다만 것이 아닙니다. 한 달간을 악으로 버틴 것이 아닙니다.
일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꿈에 적극 참여합니다. 적극 순종합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덴에서의 혈전을 마친지 며칠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덴의 영적 전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곳처럼 핍박과 고난은 없었지만 열매도 없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편했지만, 영적으로는 씁쓸했습니다. 추수한 곡식이 가장 빈약한 곳이 아덴입니다.
그는 이어 곧장 고린도에 뛰어들어갑니다. 당시 그의 생계는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적극 나섰던 것입니다.
3. 동역자들이 합하여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바울에게 만나게 해주신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들의 목을 내놓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칭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굴라의 출생지인 '본도'(Pontus)는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있었습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인데 로마의 기사나 호민관들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gens Prisca)과 관계있는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입니다. 롱게네커(Longenecker)에 따르면, 아굴라에게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게는 돈과 연줄이 있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천막 제조와 가죽 수공 상사(商社)를 소유했고 또 이 상사의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가장 헌신적인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3, 18, 19, 26절;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이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이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있습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힘이 저절로 나는 소식이었습니다.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연보를 가지고 왔습니다(고후 11:9; 빌 4:4, 15).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금은 이 때의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시기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헌금으로 바울은 더 이상 생계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말씀 전파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그들만 보아도, 그들이 곁에만 있어도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힘이 되는 사람들었습니다.
디도 유스도가 있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찾은 곳은 '디도 유스도'(Titus justus)의 집입니다. 디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 사람이 로마 시민임을 나타내 줍니다. 회당 옆에 있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주사령부가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최초 집회장소가 되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있습니다. - 고전 16:15에 의하면 고린도 최초의 신자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고린도의 유대인 사회에 파문(波紋)을 일으켰음직합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이 세례를 베푼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리스보였습니다(고전 1:14). 그리스보의 개심은 고린도 선교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고린도에서의 지속적인 부흥 운동은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온 이후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이것은 공동사역(Team Work)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아덴에서 바울이 홀로 선교하던 것과 고린도에서의 공동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공동 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롬 16:1과 고후 1:1을 살펴보면 고린도와 인접한 아가야와 겐그레아 항구까지 복음이 전과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맺음말
사무엘 스티븐슨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교회가 가득 한 도시
설교자와 유식한 사람도 많고
화려한 음악과 거대한 성가대
이 모든 것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진실하고 열정적인 훌륭한 일꾼들
쉬지않고 열심히 수고하는 사람들
그러나 내 형제여,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은 어디 있는가
교회와 교육!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을 바라며
계획과 준비는 더없이 완전하고
쉴새없이 뛰면서 일하고
재능많은 사람들이 어디나 있어
최선을 다하면서 애를 쓰는데
그러나 내 형제여,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 계신가
많은 시간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지혜로운 학문으로 설교하되
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오히려 빈곤하게 만들고 있구나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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