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전도] 아테네 선교

본문

선교가 잘 되는 곳도 있습니다. 선교가 어려운 곳도 있습니다. 아덴(아테네)은 선교하기에 힘든 곳입니다. '아덴'이라는 이름은 아테네(Athene)를 말합니다. 그 이름은 여신 아테나(Athena)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습니다. 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탐했습니까 왜 알렉산더 빌립이 아테네를 탐했습니까 왜 로마가 아테네를 정복했습니까 아덴은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세워진 곳입니다.
아테네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아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태어나 활약한 헬라 철학의 본산지고요. 그리스 신화의 본거지입니다.
올림픽이 이 아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제패를 노리는 야심가들은 아테네를 탐했습니다.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는 찬란했던 옛 영광이 사위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만은 계속 지속되고 있던 터라 그 도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도 아테네는 인간적으로 생각하자면 더 이상 종교가 필요하지 않은 곳입니다. 페리클레스(B. C. 495-239)에 의해 이 도시는 전성기를 맞아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건축되었습니다. 300여의 우상에 30,000여 신상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에큐메니칼의 입장에서 보면 전도가 필요하지 않은 곳입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아테네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도시였습니다. 다만, 영적으로 볼 때 흑암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일행은 그 사자의 굴에 담대하게 복음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도전하고 있습니까
1. 칭찬함으로 전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아덴에 와서 보니 이건 우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토증이 납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입니까 십계명의 1,2,3 계명이 모두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참습니다. 알지못한 죄지요. 대신 그들의 좋은 측면을 찾아봅니다. 눈을 씻고 좋은 면을 찾아봅니다. 마침내 좋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열정적 종교성향! 신을 향한 열정! 이것이 쓸만하구나! 그리고 좋은 점을 칭찬(Chrysostom, Bruce)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매진합니다. 그러나 그 한 가지 목적만 생각하고 방법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철학에 있어서나 종교에 있어서 어떤 경지에 들어와 있다고 자부하는 아덴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하여 `칭찬'이란 방법을 사용합니다. 좋은 점을 칭찬하는 일은 덕을 세웁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도로시 딕스 여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칭찬에 능숙하게 될 때까지는 절대로 결혼해서는 안된다. 독신으로 있을 때에는 칭찬하든 말든 자유이지만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그날부터 상대의 장점을 칭찬해 주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그것은 자기 안전을 위해서도 불가결하다.
이 말은 공동체 생활을 잘해보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음미해볼 일입니다. 상대를 칭찬하는 것을 습관화할 수만 있으면 대인관계를 바로 세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분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느 택시 회사에 성미가 무척 까다로와서 직장 전체의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드는 한 수리공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 과장이 그 사람의 해고 문제를 사장에게 정식으로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칭찬하면서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사장의 그 이야기는 머지 않아 수리공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유능하고 유모어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칭찬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현명한 칭찬은 꽃과 태양의 관계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꽃은 시듭니다. 태양이 있는 곳에 꽃은 피어납니다. 내가 칭찬함으로 피어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어두운 음지에서 살아온 문제의 사람들을 격려해가며 2차 대전에 큰 공을 세운 일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깡패와 같은 문제아들을 모아서 흔들 수 있는 깃발을 쥐어주었습니다. 칭찬은 분명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칭찬할 만한 모습을 찾아내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다른 사람과 나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회사의 사장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주머니에 동전 다섯 개를 넣고 나옵니다. 직원들을 한 번 칭찬할 때마다 동전 하나를 다른 쪽 주머니로 옮기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몇 주 안 되어 동전 옮기는 일이 익숙해지자 그의 입에선 버릇처럼 칭찬의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사장의 칭찬에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진 직원들은 전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고 회사 분위기도 활기차게 변했습니다.
지나치거나 과장된 칭찬은 주의하되 칭찬할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정도면 좋습니다.
어제로 위로가 8살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볼 때,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그러내 그에게는 감사할 줄 아는 장점이 있습니다. $1어치의 생일 풍선을 사다가 방에 달아주니까 진심으로 감사를 합니다. 나를 꼭 안아줍니다.
“아빠는 우리 위로의 이런 점이 정말 자랑스러워!”
제 아내는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를가졌습니다. 저는 아내의 이런 점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수요일 장지근 목사님은 신학을 함께 공부한 사모가 부엌일을 너무 잘해주니까 고맙다고 했습니다. 우리 중 쓸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의 경우에는 한마디 칭찬이라도 더욱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해 주는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리로이 아임스)
2. 접촉점을 찾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먼저, 복음을 전할 접촉점을 찾았습니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칭찬으로 마음을 연 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접촉점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가진 신에 대한 생각이래야 대부분이 어그러지고 비뚤어져 생각이 잘못되어 있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신에 대한 생각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점을 칭찬한 후, `알지 못하고 섬기는 신'을 접촉점으로 삼아 그들의 생각을 파고듭니다. 유대의 역사를 언급하거나 구약성경을 인용함으로써 그의 설교를 시작하지 않고 아덴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기초로 하여 그와 아덴 사람들과의 접촉점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복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선포했습니다.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다
바울은 자신이 알고 있는 희랍적인 지식들을 복음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철저히 복음적이며 성경적이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드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정해주셨다!' 선포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간 속에 살게 하셨다!' 선포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살 수 있는 공간적인 경계까지 정하셨다!' 선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제우스처럼 여러 신 가운데 있는 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아덴에는 약 300이 넘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그러한 신들 중에 하나로 포함하지 않도록 그분은 유일하신 분이시며 우주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명백히 했습니다.
2 구원의 주를 선포했습니다.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만민에게 생명 주시는 자!' 범죄한 백성 대신 죽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고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들도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몸의 부활에 관한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들, 특히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육체를 속되고 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고 마련하신 부활 또한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고전1:18).
3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신 심판의 주를 선포했습니다.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우상 숭배를 그치고 만유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우상 숭배 행위마저 참고 견디셨습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아셨고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연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14:16;롬3:25). 또 심판보다는 가급적 회개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범죄한 백성 대신 죽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시려고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 숭배를 계속해야합니까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삶의 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그치고 만유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3. 아덴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말쟁이로 생각했습니다. `기롱' 했습니다. 극단적인 조롱과 멸시를 했습니다. 그 철학자들이 바울을 사기꾼이나 떠벌이 같은 인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복음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잘못되었습니까 메시지는 충분하게 복음적이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가 너무 철학적이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메시지는 충분히 성경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아덴 사람들이 갈라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지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에 봉헌할 때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왕상8:27). 천지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국한될 수가 없으십니다. 그분은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아덴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국가와 또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많은 신전과 사원 안에 수많은 신들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소유될 수 있는 분도 아니며 그러한 신들과 같은 부류와 혼동되어서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심으로 인간의 희생 제사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무엇이 필요하다 생각될 때 우리의 도움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얻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하고 충만하사 자신 안에서 모든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을만큼 충족하신, 이른바 유복적 속성(有福的屬性)을 지닌 분이기 때문입니다(딤전1:11;6:15).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 후손이란 사실이 교만해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을 많이 안다는 것도 교만해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많았으나 그들의 창조주는 없어요. 그들을 구원할 수도 없었습니다. 선악간에 그들을 심판하실 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주 여호와 하나님! 심판하실 주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절대자로 모신 백성이 복이 있습니다. 이런 절대자 여호와 하나님을 주로 모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여자가 많아도 절대적인 여자가 있습니다. 아내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남자가 많아도 절대적인 남자가 있습니다. 남편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위험한 시대입니다. 아내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절대적인 여자로, 남편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절대적인 남자로 모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교회는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절대적인 교회로 알고 충성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친구는 많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절대적인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아덴 사람들은 많은 신을 섬겼지만 절대적 신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신 저 신을 찾아 전전하고 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 갈급하기만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막연한 신관'을 가진 아덴 사람들에게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창조주(24절), 구속주(25-30절), 부활의(31절) 절대자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을 받지 못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복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게 하는 교만한 마음을 경계할 일입니다.
맺음말
예화
미국 노스다코타 주 그랜드 폭스시에 "그랜드 폭스 해럴드"지라는 지방신문이 있다. 이 신문은 1백 18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발행부수 3만 7천부라는 자그만한 신문사이다. 하지만 이 신문사는 올해 미국의 내노라하는 언론계를 누르고 당당하게 퓰리처상(공익보도 부문)을 받았다. 꼭 1년전에 내린 홍수를 힘차게 이기고 소식을 전하겠다는 사명감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홍수가 나서 그 도시가 하루 아침에 물바다가 되었던 적이있었다. 그 때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기계들이 잠기고 신문사 직원들의 집도 홍수 속에 사라졌다. 또 불까지 나서 신문사 건물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화재 다음날, 신문사 직원들은 모였고 인근 주립대학교의 빈 공간을 빌려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넋을 잃은 시민들에게 홍수, 화재 피해 속보와 주정부의 대책, 이재민 소식들을 계속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신문은 무료 배포됐고 시민들은 새 소식과 함께 희망을 건네 받았다. (출처:조선일보, 1998.4.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조건을 무릅쓰고 복음을 아덴에 전한 바울 일행의 중심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여호와 하나님을 보라하라. " (사 40 : 9)
악조건을 무릅쓰고 복음을 아덴에 전한 그 중심을 이 시대 우리 안에 꽃피우소서 !
맺음말
변론하니(, 디엘레게토) - 2절의 '강론하며'와 같은 뜻으로 바울이 회당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세히 증거하고 시장과 길거리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설파'에비구레오'는 '에피큐로스 학파'를 뜻하며, '스도이고'는 '스토아 학파'를 뜻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