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본문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요, 질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요, 예수가 없는 사람, 예수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돈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닙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고 죄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불안하고 불행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인류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 명령이 떨어진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마침 원주민 할아버지가 앉아 있어서 복음을 전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혹시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예수' 글쎄,... 우리동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 저쪽 동네에 가서 알아보슈!"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우스운 예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 왔을 때도 만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불려지는 곳, 그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 교회가 많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곳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예수 이름은 듣기만해도 영혼이 살고 민족이 삽니다. 그 ㅁㄴ족이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수'이름을 넘치게 부른 민족입니다. 그 덕분에 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세계도처에 평생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11억이나 된다고 합니다.
10/40창문(The 10/40Window) : 세계지도상 북위 10도와 40도를 잇는 창문형태의 직사각형 지역을 말한다. 10/40창에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약1억2천-1억4천의 사람들이 있으며
세계의 가난과 불우한 지역의 85%와 무슬림, 힌두인, 불교인 중의 95% 그리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많은 미전도 종족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1인 국민소득, 에디오피아-100달러, 소말리아 120달러,아프가니스탄 250달러, 캄보디아 260달러, 미국 34,260달러, 캐나다 21,050달러, 영국24,500달러, 스위스38,120달러
인구의 절반가량인 28억명은 2달러 미만의 돈을 가지고 생활한다고, 그중 12억명은 하루에 1달러를 가지고 생활한다고.
유엔집계 에이즈 환자는 2000년 말에 3,610만명에 달했는데 그 중에 30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개발도상국의 1억 천만명의 어린이가 학교를 못가고 있으며 그 중의 60%는 여자아이라고.
개발도상국의 어른 네명중 한명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텔레비전을 보면 굶주려 죽어가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안타깝습니다.
빵을 주워서 살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복음을 주어서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예기를 들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지 모릅니다.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명령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 큰 교회에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흔히 전도 - 동일 문화권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선교 -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결국 둘 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 우리의 일입니다.
1. 과연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해서만 일을 하시고 계신 것 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역시 이스라엘이 그의 구원사역의 우선 순위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러나 비록 유대인이라는 특정한 민족을 택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통로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민족의 선교사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탕자의 비유처럼 집나간 작은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아들은 돌아올 것입니다. 롬11:13에는 이방인들을 먼저 사용하십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할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인류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시 22: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사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구약에서의 흐름은 세상의 모든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소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모든 민족을 향해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여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선교의 '구심적 방향'에서 '원심적 방향'으로의 전환이라고 합니다.
구원이 이스라엘 바깥으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행10:에서 베드로의 환상과 성령의 음성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그 전까지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법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행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족속을 향한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의 사람은 내교회, 내교파, 내민족의 벽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 우리가 복음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모두 구원시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교의 사람은 자기나라의 문화만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남의 문화를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선교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장기선교사든지 단기선교사든지 그나라에 가면 그나라의 문화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자기문화를 버리고 이방의 문화에 적응하는것이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 내야 선교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세에 복음전하는 자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모두 말세라고 말합니다.
마24에는 말세의 징조들이 니타나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지진, 전쟁, 이단 출현, 인간의 타락 등등이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말세라고 하면서도 자신들도 죄악에 그대로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세의 때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건지는 엄청난 일이 됩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다 보면 자신을 이 세상의 타락에서 지킬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죄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일입니다.
전세계에 24,000종족이 있습니다. 수년전까지 12,000종족이 미전도 종족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8,000종족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000개 언어중 성경번역이 안된 언어가 수년전만해도 3,500개였는데
최근에는 2,500개로 줄었다고 합니다.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즉, 주님 오시는 날이 닥아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종말의 끝이 닥아오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복된 사람은 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눅 12:36-37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님이 오시는 날 복음을 전하고 있다가 주님을 맞는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요
본문은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흔히 '대 위임(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불립니다. 이 말씀에는 앞으로 제자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궁극적 비젼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에 대한 유언을 세계선교에 대한 명령을 주시고 계십니다.
3. 선교하는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복종하는 교회입니다. 진정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있고 자랑하기 위해서 자기 만족을 위해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두렵게 여겨 선교하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합니다.
바울의 계획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마게도냐 사람의 손짓을 보여 주심으로 유럽선교로 방향을 돌리신 것입니다.
행16: 10절에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두렵게 여기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부흥하게 됩니다.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4. 선교하는 교회는 언제나 빚진 자세로 삽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아직 비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의 전도와 선교를 위한 자원과 물질들을 우리나라에 먼저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사실 이 질문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마디 대답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만일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자국의 복음화가 다 이루어지기전 까지 선교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한국 역시 한명의 선교사도 찾아오지 않는 나라였을 것입니다.
120년전에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빚진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복음 때문에 한국은 사고방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세계관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다른 나라교회들에 대해 '복음의 빚진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모르는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꼭 파송받아 가는 선교만 선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성도)이 해외에 선교사로 파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나의 삶터에서, 직장, 사업장에서 소명과 은사에 따라 빛과 소금 역할을 하며 복음을 전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선교사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가 될 수는 있습니다. 선교사역의 후원자가 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예)어떤 젊은 청년이 아프리카로 선교사로 자원하여 그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밀 신체 검사를 받았을 때 그의 아내가 아프리카의 기후에 적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낙담했지만 곧 이런한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버는 돈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세계에 전파되는 데 사용하겠다. ' 그의 아버지는 성찬에 사용할 포도를 경작해서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후에 그 젊은이는 그 사업을 맡아 더 발전 시켰습니다. 그의 이름이 웰치(Welch)였고 후에 그 기업은 세계적인 포도쥬스 생산 업체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수십만 달라의 돈을 선교사업에 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선교사로 가려던 꿈은 좌절되었지만 다른 방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5. 선교의 사람은 삶이 선교적입니다.
선교의 사람은 물질사용을 선교적으로 해야 합니다.
사치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선교적인 물질 사용은 언제나 검소하고 재활용을 하고 재활용을 해서 모은 돈으로 영혼을 구한다는 의식이 언제나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 나가 있는 선교사 못지 않게 뒤에 있는 선교사들이 중요합니다. 후방의 후원부대가 건강하지 않으면 전쟁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1986년 미국 LA 어느 한인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목사님이 우리에게 음료수를 대접했습니다. 캔(콕)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빈깡통을 버릴려고 쓰레기 통을 찾았습니다.
목사님은 자루를 들고 다니시면서 그 깡통을 수거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것을 모아 선교비로 쓴답니다. 한국에 있는 미자립교회들을 돕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교의 사람들은 내게 있는 물질이 내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선교의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바울의 삶은 자기의 자랑과 욕심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따라 드러나 그의 삶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선교의 사람은 시간 사용도 선교적으로 합니다.
선교의 사람은 언제나 선교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선교현장은 언제나 영적전투가 일어나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직접가지는 못해도 무릎선교사가 되는 일이 무엇보다 귀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물질도,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꼭 비행기를 타고 가는 선교가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언제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삶의 목표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말세에 복있는 교회, 복있는 선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돈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닙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고 죄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불안하고 불행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인류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 명령이 떨어진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마침 원주민 할아버지가 앉아 있어서 복음을 전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혹시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예수' 글쎄,... 우리동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 저쪽 동네에 가서 알아보슈!"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우스운 예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 왔을 때도 만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불려지는 곳, 그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 교회가 많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곳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예수 이름은 듣기만해도 영혼이 살고 민족이 삽니다. 그 ㅁㄴ족이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수'이름을 넘치게 부른 민족입니다. 그 덕분에 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세계도처에 평생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11억이나 된다고 합니다.
10/40창문(The 10/40Window) : 세계지도상 북위 10도와 40도를 잇는 창문형태의 직사각형 지역을 말한다. 10/40창에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약1억2천-1억4천의 사람들이 있으며
세계의 가난과 불우한 지역의 85%와 무슬림, 힌두인, 불교인 중의 95% 그리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많은 미전도 종족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1인 국민소득, 에디오피아-100달러, 소말리아 120달러,아프가니스탄 250달러, 캄보디아 260달러, 미국 34,260달러, 캐나다 21,050달러, 영국24,500달러, 스위스38,120달러
인구의 절반가량인 28억명은 2달러 미만의 돈을 가지고 생활한다고, 그중 12억명은 하루에 1달러를 가지고 생활한다고.
유엔집계 에이즈 환자는 2000년 말에 3,610만명에 달했는데 그 중에 30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개발도상국의 1억 천만명의 어린이가 학교를 못가고 있으며 그 중의 60%는 여자아이라고.
개발도상국의 어른 네명중 한명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텔레비전을 보면 굶주려 죽어가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안타깝습니다.
빵을 주워서 살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복음을 주어서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예기를 들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지 모릅니다.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명령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 큰 교회에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흔히 전도 - 동일 문화권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선교 -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결국 둘 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 우리의 일입니다.
1. 과연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해서만 일을 하시고 계신 것 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역시 이스라엘이 그의 구원사역의 우선 순위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러나 비록 유대인이라는 특정한 민족을 택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통로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민족의 선교사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탕자의 비유처럼 집나간 작은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아들은 돌아올 것입니다. 롬11:13에는 이방인들을 먼저 사용하십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할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온 인류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시 22: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사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구약에서의 흐름은 세상의 모든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소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모든 민족을 향해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여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선교의 '구심적 방향'에서 '원심적 방향'으로의 전환이라고 합니다.
구원이 이스라엘 바깥으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행10:에서 베드로의 환상과 성령의 음성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그 전까지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법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행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족속을 향한 선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교의 사람은 내교회, 내교파, 내민족의 벽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 우리가 복음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모두 구원시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교의 사람은 자기나라의 문화만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남의 문화를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선교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장기선교사든지 단기선교사든지 그나라에 가면 그나라의 문화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자기문화를 버리고 이방의 문화에 적응하는것이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 내야 선교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세에 복음전하는 자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모두 말세라고 말합니다.
마24에는 말세의 징조들이 니타나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지진, 전쟁, 이단 출현, 인간의 타락 등등이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말세라고 하면서도 자신들도 죄악에 그대로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세의 때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건지는 엄청난 일이 됩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다 보면 자신을 이 세상의 타락에서 지킬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죄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일입니다.
전세계에 24,000종족이 있습니다. 수년전까지 12,000종족이 미전도 종족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8,000종족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000개 언어중 성경번역이 안된 언어가 수년전만해도 3,500개였는데
최근에는 2,500개로 줄었다고 합니다.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즉, 주님 오시는 날이 닥아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종말의 끝이 닥아오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복된 사람은 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눅 12:36-37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님이 오시는 날 복음을 전하고 있다가 주님을 맞는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요
본문은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흔히 '대 위임(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불립니다. 이 말씀에는 앞으로 제자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궁극적 비젼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에 대한 유언을 세계선교에 대한 명령을 주시고 계십니다.
3. 선교하는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복종하는 교회입니다. 진정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있고 자랑하기 위해서 자기 만족을 위해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두렵게 여겨 선교하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합니다.
바울의 계획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마게도냐 사람의 손짓을 보여 주심으로 유럽선교로 방향을 돌리신 것입니다.
행16: 10절에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두렵게 여기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부흥하게 됩니다.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4. 선교하는 교회는 언제나 빚진 자세로 삽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아직 비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의 전도와 선교를 위한 자원과 물질들을 우리나라에 먼저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사실 이 질문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마디 대답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만일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자국의 복음화가 다 이루어지기전 까지 선교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 한국 역시 한명의 선교사도 찾아오지 않는 나라였을 것입니다.
120년전에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빚진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롬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복음 때문에 한국은 사고방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세계관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다른 나라교회들에 대해 '복음의 빚진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모르는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꼭 파송받아 가는 선교만 선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성도)이 해외에 선교사로 파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나의 삶터에서, 직장, 사업장에서 소명과 은사에 따라 빛과 소금 역할을 하며 복음을 전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선교사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가 될 수는 있습니다. 선교사역의 후원자가 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예)어떤 젊은 청년이 아프리카로 선교사로 자원하여 그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밀 신체 검사를 받았을 때 그의 아내가 아프리카의 기후에 적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낙담했지만 곧 이런한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버는 돈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세계에 전파되는 데 사용하겠다. ' 그의 아버지는 성찬에 사용할 포도를 경작해서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후에 그 젊은이는 그 사업을 맡아 더 발전 시켰습니다. 그의 이름이 웰치(Welch)였고 후에 그 기업은 세계적인 포도쥬스 생산 업체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수십만 달라의 돈을 선교사업에 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선교사로 가려던 꿈은 좌절되었지만 다른 방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5. 선교의 사람은 삶이 선교적입니다.
선교의 사람은 물질사용을 선교적으로 해야 합니다.
사치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선교적인 물질 사용은 언제나 검소하고 재활용을 하고 재활용을 해서 모은 돈으로 영혼을 구한다는 의식이 언제나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 나가 있는 선교사 못지 않게 뒤에 있는 선교사들이 중요합니다. 후방의 후원부대가 건강하지 않으면 전쟁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1986년 미국 LA 어느 한인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목사님이 우리에게 음료수를 대접했습니다. 캔(콕)을 마셨습니다. 우리는 빈깡통을 버릴려고 쓰레기 통을 찾았습니다.
목사님은 자루를 들고 다니시면서 그 깡통을 수거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것을 모아 선교비로 쓴답니다. 한국에 있는 미자립교회들을 돕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교의 사람들은 내게 있는 물질이 내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선교의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바울의 삶은 자기의 자랑과 욕심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따라 드러나 그의 삶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선교의 사람은 시간 사용도 선교적으로 합니다.
선교의 사람은 언제나 선교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선교현장은 언제나 영적전투가 일어나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직접가지는 못해도 무릎선교사가 되는 일이 무엇보다 귀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물질도,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꼭 비행기를 타고 가는 선교가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언제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삶의 목표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말세에 복있는 교회, 복있는 선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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