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본문
행복한 주일입니다. 예배하는 여러분의 심령에 하늘로부터 신령한 감동이 충만
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축복이라는 말은 백 천 번 말하고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입니다.
여러분의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은 평안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건강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감사함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하시는 일들이 어려움도 있겠지만 다 잘되어 번영하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합니다만 여러분의 또 한 주간의 범사는 헛돈 쓰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 뺏기고 분요하지 않고 모든 것들이 잘 풀리어
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세상적으로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가정이 평안하지 못하면
행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믿음으로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비록 넉넉지 못한 생활일지라도 마음 하나만큼은 부자 되기를 바랍니다.
남들만큼 모든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믿음과 인격은 결코 뒤지지 않는 자긍
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
없이 말씀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복된 소리입니다.
복된 소리,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즈음같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불평, 원망, 갈등, 분열, 좌절, 절망의
소리들뿐인데 생명주고 기쁨 주는 복된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소리
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편적으로 至上命令이라 합니다. 마태복음 28:19-20절의 내용과 같은 의미를
지닌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복음이란 ‘유앙겔리온’(εαγγλιον)으로서 원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이 말이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삶과 죽음 및 부활
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사실이 복음의 근본이며 이
복음의 시작이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엊그제 우리교회 금요기도회에 강원화 성도님이 참석해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
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진단을 내린 쓸개 암 환자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그의 어머니 김옥이 집사님의 절규를 듣는 성도들은 하나 같
이 마음 아파하면서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마치 이스마엘을 품에 안고 사막에서
통곡하는 하갈의 절규를 듣는 듯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
사로를 살리듯, 12년 혈루증 여인을 살리듯, 죽어가는 백부장의 하인을 살리듯,
강원화 성도님을 살리실 줄 믿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하
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면서 그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선생님의 암이 치료되어 육신이 건강하게 되는 것 보다 더 귀한 것은 그의
영혼이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육신의 질병으로 좌절감에 빠지는 것은 경험할 수 있으나 내 영혼
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갖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육신의 병을 치료받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 놓을 수 있을 것 같지
만 영혼을 치료받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내 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고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생명
은 귀한 것입니다.
만민에게 전파하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명령임과 동시에 그리스
도인의 사명이고 만민을 살리는 생명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보다 귀한 사역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육신의 생명보다 귀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만민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국제사회가 병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모든 분야를 보면 병들대로 병들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 윤
리와 도덕도 다 병든 상태입니다.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의 복음전파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베드로에게 한 푼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에게 줄 수 있는 돈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금도 없고 은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있는 것으로 당신에게 줍
니다. 내게 있는 것은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줄 것
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
그 순간 그 거지는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고 뛰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 거지에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곧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기쁨입니다.
찬송가 94장 2절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치료자 이십니다.
예수니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특정인에게만 아닙니다. 만민이 다 예수님의 이 사랑과 은혜를 받아야 합니
다. 그것이 복음사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합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나갑니다.
복음, 복된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방송사의 슬픈 것 가운데 하나가 30분 뉴스 시간동안 아름답고 행
복하고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하고 사기치고 폭력적이고 죽이고 죽는 사건에 모든 뉴스 내용을 맞추는
듯 합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그렇기에 그런 것 밖에 전할 것 없다고 하면 어
쩔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을 듣다 보니 국민정서가 이상해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
다.
특히 요즈음에 이르러 어느 하루라도 이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비판과 갈등과
불편함과 짜증스러운 이야기가 들려지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국민화합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지를 못합니다.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 국제화 시대에 세계와 겨루어도 부족할 상황에 청와대
는 날마다 국내 언론과 싸우려고 작정한 듯 합니다.
최소한의 국제이야기지만 일본이 독도를 삼키려하고,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삼키려 하고, 미국이 핵우산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려하고, 21세기는 경제전쟁 이
라는 말이 있듯이 첨단산업을 통한 국제 전략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
리의 현실은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일
이 날마다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짜증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삶에 기쁨과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쁨이 됨을,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됨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어서게 해야 합니다.
희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눈을 열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전파할까
복음전파는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으로도 안 됩니다. 그
래서 사도행전 1:8절에서 복음전도의 근본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복음 전파는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권능
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에게 주의 능력도 임하십니다.
주의 능력이 임하시면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니 주님이 하시는 일
이기에 본문 16절에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
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전할 뿐이지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믿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
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도구적 의미에서 우리는 복음전도의 방법론에 있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5 C 전략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Creative(창조적) 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효과적인 전도전략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로 말하면 엘림홀을 통한 전도전략입니다.
하루에 평균 300여명의 엘림홀 커피숍 애용자 가운데 80-90%가 복음을 믿지 않
는 지역 주민들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주님에게로 인도할까 그것이 저의 자나 깨나 연구내용입니다.
그래서 환경도 바꾸고, 라이브 콘서트도 하고, 주말 영화 상영도 계획하고 시행
합니다.
주님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교회와 관계를 갖게 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
는 전략입니다.
둘째는 Contextual(상황적) 이어야 합니다.
즉 분별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울고 있는 자에게 가서 춤을 출 수 없습니다.
웃고 있는 자에게 가서 울 수 없습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래서 우리교회는 교육선교센터를 건립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략에서 선교대
상 국가의 현지인을 불러와서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재 파송하는 전략을 수립
하여 시행하려는 것입니다.
셋째는 Cooperative(협력적) 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복음 전도하러 보낼 때 둘씩 짝을 지어 보낸 이유를 우리
는 여기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협력했고 누가와 디모데와 함께 협력했습니다.
세계선교지를 방문해서 듣는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 교단이 다르다
고 차송 교회가 다르다고 선교사님들이 협력하지 못하여 선교 상황이 악화되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것은 복음전도의 의미도 내용도 모르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넷째는 Compelling(강렬함) 이어야 합니다.
Compelling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복음전파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사명입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 없이는 전파는 그림의 떡입
니다.
영혼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강렬함이 있어야 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음전
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상최고의 사명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Committed(헌신적) 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삶이란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삶입니다. 그래
서 바울의 삶이 위대하고 돋보이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의 노예 됨을 행복해 했던 바울입
니다.
그것이 진정 복음전도자의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입니다. 기분따라 좌우되는 것
이 아닙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헌신입니다.
찬송가 263장 3절입니다.
죽을 사람 구하라고 예수 너를 부르니
힘이 없어 못한다고 핑계 하지 말리라.
주가 주신 직분맡아 항상 기뻐 지키고
부르실 때 대답할말 나를 보내 주소서. 아멘.
그리고 이 모든 전략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마무리가 되
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복음전도는 효과적이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복음 자체가 66권 성경입니다.
그 전체를 요약하면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심이라. ”
나머지는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며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무장 해야 합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주님의 지상명령입니
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 복음전도의 사명을 살아가기를 바
랍니다. 아멘
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축복이라는 말은 백 천 번 말하고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입니다.
여러분의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은 평안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건강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감사함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하시는 일들이 어려움도 있겠지만 다 잘되어 번영하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합니다만 여러분의 또 한 주간의 범사는 헛돈 쓰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 뺏기고 분요하지 않고 모든 것들이 잘 풀리어
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세상적으로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가정이 평안하지 못하면
행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믿음으로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비록 넉넉지 못한 생활일지라도 마음 하나만큼은 부자 되기를 바랍니다.
남들만큼 모든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믿음과 인격은 결코 뒤지지 않는 자긍
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
없이 말씀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의 생활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복된 소리입니다.
복된 소리,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즈음같이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불평, 원망, 갈등, 분열, 좌절, 절망의
소리들뿐인데 생명주고 기쁨 주는 복된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소리
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편적으로 至上命令이라 합니다. 마태복음 28:19-20절의 내용과 같은 의미를
지닌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복음이란 ‘유앙겔리온’(εαγγλιον)으로서 원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이 말이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삶과 죽음 및 부활
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사실이 복음의 근본이며 이
복음의 시작이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엊그제 우리교회 금요기도회에 강원화 성도님이 참석해서 안수기도를 받았습니
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진단을 내린 쓸개 암 환자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그의 어머니 김옥이 집사님의 절규를 듣는 성도들은 하나 같
이 마음 아파하면서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마치 이스마엘을 품에 안고 사막에서
통곡하는 하갈의 절규를 듣는 듯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
사로를 살리듯, 12년 혈루증 여인을 살리듯, 죽어가는 백부장의 하인을 살리듯,
강원화 성도님을 살리실 줄 믿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하
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면서 그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선생님의 암이 치료되어 육신이 건강하게 되는 것 보다 더 귀한 것은 그의
영혼이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육신의 질병으로 좌절감에 빠지는 것은 경험할 수 있으나 내 영혼
이 병들어 죽어가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갖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육신의 병을 치료받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 놓을 수 있을 것 같지
만 영혼을 치료받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내 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고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생명
은 귀한 것입니다.
만민에게 전파하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명령임과 동시에 그리스
도인의 사명이고 만민을 살리는 생명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보다 귀한 사역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육신의 생명보다 귀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만민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국제사회가 병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모든 분야를 보면 병들대로 병들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 윤
리와 도덕도 다 병든 상태입니다.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의 복음전파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베드로에게 한 푼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에게 줄 수 있는 돈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금도 없고 은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있는 것으로 당신에게 줍
니다. 내게 있는 것은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줄 것
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
그 순간 그 거지는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고 뛰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 거지에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곧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기쁨입니다.
찬송가 94장 2절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치료자 이십니다.
예수니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특정인에게만 아닙니다. 만민이 다 예수님의 이 사랑과 은혜를 받아야 합니
다. 그것이 복음사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합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나갑니다.
복음, 복된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방송사의 슬픈 것 가운데 하나가 30분 뉴스 시간동안 아름답고 행
복하고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하고 사기치고 폭력적이고 죽이고 죽는 사건에 모든 뉴스 내용을 맞추는
듯 합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그렇기에 그런 것 밖에 전할 것 없다고 하면 어
쩔 수 없지만 그런 것들을 듣다 보니 국민정서가 이상해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
다.
특히 요즈음에 이르러 어느 하루라도 이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비판과 갈등과
불편함과 짜증스러운 이야기가 들려지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국민화합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지를 못합니다.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 국제화 시대에 세계와 겨루어도 부족할 상황에 청와대
는 날마다 국내 언론과 싸우려고 작정한 듯 합니다.
최소한의 국제이야기지만 일본이 독도를 삼키려하고,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삼키려 하고, 미국이 핵우산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려하고, 21세기는 경제전쟁 이
라는 말이 있듯이 첨단산업을 통한 국제 전략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
리의 현실은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일
이 날마다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짜증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삶에 기쁨과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쁨이 됨을,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됨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어서게 해야 합니다.
희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눈을 열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전파할까
복음전파는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으로도 안 됩니다. 그
래서 사도행전 1:8절에서 복음전도의 근본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복음 전파는 인간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권능
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에게 주의 능력도 임하십니다.
주의 능력이 임하시면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니 주님이 하시는 일
이기에 본문 16절에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
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전할 뿐이지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믿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
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도구적 의미에서 우리는 복음전도의 방법론에 있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5 C 전략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Creative(창조적) 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효과적인 전도전략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로 말하면 엘림홀을 통한 전도전략입니다.
하루에 평균 300여명의 엘림홀 커피숍 애용자 가운데 80-90%가 복음을 믿지 않
는 지역 주민들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주님에게로 인도할까 그것이 저의 자나 깨나 연구내용입니다.
그래서 환경도 바꾸고, 라이브 콘서트도 하고, 주말 영화 상영도 계획하고 시행
합니다.
주님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교회와 관계를 갖게 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
는 전략입니다.
둘째는 Contextual(상황적) 이어야 합니다.
즉 분별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울고 있는 자에게 가서 춤을 출 수 없습니다.
웃고 있는 자에게 가서 울 수 없습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래서 우리교회는 교육선교센터를 건립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략에서 선교대
상 국가의 현지인을 불러와서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재 파송하는 전략을 수립
하여 시행하려는 것입니다.
셋째는 Cooperative(협력적) 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복음 전도하러 보낼 때 둘씩 짝을 지어 보낸 이유를 우리
는 여기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협력했고 누가와 디모데와 함께 협력했습니다.
세계선교지를 방문해서 듣는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 교단이 다르다
고 차송 교회가 다르다고 선교사님들이 협력하지 못하여 선교 상황이 악화되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것은 복음전도의 의미도 내용도 모르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넷째는 Compelling(강렬함) 이어야 합니다.
Compelling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복음전파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사명입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 없이는 전파는 그림의 떡입
니다.
영혼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강렬함이 있어야 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음전
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상최고의 사명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Committed(헌신적) 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삶이란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삶입니다. 그래
서 바울의 삶이 위대하고 돋보이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주님의 노예 됨을 행복해 했던 바울입
니다.
그것이 진정 복음전도자의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입니다. 기분따라 좌우되는 것
이 아닙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헌신입니다.
찬송가 263장 3절입니다.
죽을 사람 구하라고 예수 너를 부르니
힘이 없어 못한다고 핑계 하지 말리라.
주가 주신 직분맡아 항상 기뻐 지키고
부르실 때 대답할말 나를 보내 주소서. 아멘.
그리고 이 모든 전략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마무리가 되
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복음전도는 효과적이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복음 자체가 66권 성경입니다.
그 전체를 요약하면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심이라. ”
나머지는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며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무장 해야 합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주님의 지상명령입니
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 복음전도의 사명을 살아가기를 바
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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