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새생명 전도축제
본문
인류역사에 등장한 인물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살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경속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솔로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무후무하게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의 인생을 즐기며 행복을 누리겠다고 생각하여 그의 인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이나 마음먹은 것은 거침없이 행했고 안 되는 것이나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그렇게 살면서 이 세상에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진리를 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혜가 많기도 각 나라마다에 소문이 파다하여 그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각 나라에서 그를 찾아왔으며, 그는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를 번영의 길로 이끌었고 건축, 무역, 학문 등 그 어느 왕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는 60명의 왕후와 80명의 비빈을 거느렸고 처첩이 많았을 때는 왕후가 700명 비빈이 300명이었습니다. 그의 왕궁과 별궁에서 쓰는 그릇은 모두가 금으로 된 그릇이었으며날마다 각처에서 실어오는 특산물은 산처럼 쌓였습니다. 그가 그 시대에 못 가진 것이나 못해 본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늙어서 한 말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이었습니다.
결국 솔로몬도 노후에는 후회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후회 없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인생인가 오늘 읽은 전도서 12:13절에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다할 때 후회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후회없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후회가 몇 가지씩은 다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회는 적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후회 없는 안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늙기 전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젊음을 자랑하는 청년의 때에 창조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곤곤한 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2절 이하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하신 것은 삶의 황혼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망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 계속됩니다. 비뒤에 구름이 오니까 이런 경우를 설상가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좋은 일은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안 좋은 일만 자꾸 생기는 경우를 말합니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3절 이하의 내용을 보세요. 육체와 정신이 쇠퇴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항우장사라도 늙으면 구부러지고 떨게 됩니다. 치아가 고장이 생겨서 여문 것을 제대로 씹을 수 없고, 눈이 어두워집니다.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이고, 높은 곳은 올라 갈수 없어서 쳐다만봐도 한숨이 나오고, 머리는 백발이 되고 메뚜기도 짐이 됩니다. 그런데 손자 손녀를 연세 많은 어른들께 맡기면 되겠습니까
모든 욕심이 없어집니다. 그래도 욕심이 있다는 것은 젊다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욕심도 사라집니다.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이 말씀의 내용은 친구들의 부고 소리가 들리고 문상해야 할 일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육이 풀리고 얼굴 모양이 일그러지고 모든 것이 고장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영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결론적으로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벤자민 디즈레일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청춘은 실수의 시기이며, 장년은 투쟁의 시기이며, 노년은 후회의 시기이다”
말기 암환자들을 진료하던 일본의 의사인 오츠 슈이치 박사가 1000명을 대상으로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을 조사해서 25가지를 책으로 발표했습니다. 전체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첫 번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한 것,
네 번째, 친절을 베풀지 못한 것,
다섯 번째, 나쁜 짓을 많이 한 것,
여섯 번째,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못한 것,
열 번째, 죽도록 일만한 것,
열한 번째,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하지 못한 것,
열두 번째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지 못한 것,
스무 번째, 내 장례식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
스물한 번째 건강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
스물다섯 번째, 신의 가르침을 알지 못한 것, 즉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혹시라도 후회되는 삶은 없습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 후회를 하지는 살펴볼까요. 어느 방송(放送)사에서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10대에서 50대까지는 ‘공부 좀 할걸’이 1위였습니다. 다음으로 ‘말 잘들을 걸’, ‘돈 모을 걸’이 다음 순으로 나왔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남자 70대에서 1위는 ‘아내 눈에 눈물 나게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고, 여자는 2위에 ‘먼저 간 남편에게 잘해 줄 걸’이었습니다.
부모나 배우자가 죽으면 잘해 준 것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못 해 준 것만 생각난다고 하듯이, 후회(後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참으로 후회해서는 안 될 일을 후회하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연세가 많아지면 벌써 후회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합니다.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 쥐어 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 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다음으로 후회를 하는 것은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았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더라면 삶이 달라졌을 후회입니다.
끝으로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에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하는 후회입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룬다면 우리도 후회할 수 있습니다. 후회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하여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매일 매일 던져봄이 어떨까요
지금 이시간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 때 참았더라면, 그 때 잘 했더라면, 그 때 알았더라면,
그 때 조심했더라면.
오늘은 저희교회가 여러분을 초청한 것은 여러분에게 보다 적게, 그리고 덜 후회하는 인생의 삶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을 아무리 많이 누려보아도 솔로몬 왕처럼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고백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한 마디의 말을 할 때 당신은 어떤 말을 하면서 가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마지막에 이 말 하고 떠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 고백을 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세상을 살 때 힘든 일이 많습니다. 바로 이런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를 쉬게 하시려고 당신이 오히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마지막 말입니까 여기에는 후회함이 전혀 없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 살았던 분들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보시겠습니까
19세기 유명한 미국의 전도자 무디는 죽음 직전에 환희의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이 물러나고 천국이 열리는구나. 오!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도다. ”
종교 개혁자 루터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하며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주의 손에 내 영을 바치오니 진리의 주가 나를 구원하였습니다. ”
감리교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레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
존 장로교 창시자인 칼빈은 죽음 직전에 이렇게 주위 사람들을 권면했습니다.
“사람은 다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Soli Deo Gloria) 을 목표로 살아야 해”라고 하였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유명한 문학가 ‘빅토르 위고’는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무덤에 들어갈 때에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고 말할지언정, 내 일생을 마쳤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 다음 날에도 여전히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통로이다. ”
빅토리 위고가 자신의 죽음을 이토록 감동적인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해 줄 수 있었던 것 역시, 생전의 삶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삶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김동길 박사의 누님이었던 이 땅의 크리스천인 김활란 박사의 유언을 아십니까
“내가 죽거든 눈물을 흘리거나 슬픈 찬송가를 부르지 말아라. 그 순간은 내가 천국에 입성하는 순간이다. 모두 기쁘게 승리의 찬송가를 불러 다오. ”
그래서 그분의 장례식에서는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 가 울려 퍼졌습니다. 자칫 패배로 각인되기 쉬운 죽음이 어찌 이처럼 위대한 승리의 메시지로 승화될 수 있었겠습니까 고인이 살아 있는 동안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삶, 이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이요,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먼저 구하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이 같은 삶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삶이 아름답기에 죽음 또한 감동적인 메시지로 남는 것은 사필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모르면서 죽은 자 중 대표적인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62세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마지막이 이렇습니다. “이슬처럼 떨어졌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게 인생이련가! 세상만사 일장춘몽이로세”
이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이, 이 땅에서 숨을 쉬던 그 어느 순간보다 더 위대하고 더 감동적이며 더 아름다운 메시지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그 순간,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뵙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후회만 하나가 결국 마침표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떠나시렵니까 예수님처럼 위대한 신앙인들처럼 감동적이면서도 ‘다 이루었다’고 마침표를 잘 찍을 수 있는 삶을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우물쭈물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아름다운 자만 그 죽음이 아름다운 메시지로 승화될 수 있고, 이 땅에서의 아름다운 삶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추구할 때,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삶이 됩니다. 그분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 이름하여 ‘구원자’입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합니다.
지금도 세상의 온갖 무거운 짐을 지고 사시는 여러분!
아직도 죄악에서 허덕이며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부르시고 찾아오신 여러분을 향하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예수님께 당신의 인생을 맡겨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가 원하는 것이나 마음먹은 것은 거침없이 행했고 안 되는 것이나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그렇게 살면서 이 세상에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진리를 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혜가 많기도 각 나라마다에 소문이 파다하여 그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각 나라에서 그를 찾아왔으며, 그는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를 번영의 길로 이끌었고 건축, 무역, 학문 등 그 어느 왕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는 60명의 왕후와 80명의 비빈을 거느렸고 처첩이 많았을 때는 왕후가 700명 비빈이 300명이었습니다. 그의 왕궁과 별궁에서 쓰는 그릇은 모두가 금으로 된 그릇이었으며날마다 각처에서 실어오는 특산물은 산처럼 쌓였습니다. 그가 그 시대에 못 가진 것이나 못해 본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늙어서 한 말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이었습니다.
결국 솔로몬도 노후에는 후회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후회 없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인생인가 오늘 읽은 전도서 12:13절에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다할 때 후회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후회없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후회가 몇 가지씩은 다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회는 적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후회 없는 안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늙기 전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젊음을 자랑하는 청년의 때에 창조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곤곤한 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2절 이하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하신 것은 삶의 황혼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망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 계속됩니다. 비뒤에 구름이 오니까 이런 경우를 설상가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좋은 일은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안 좋은 일만 자꾸 생기는 경우를 말합니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3절 이하의 내용을 보세요. 육체와 정신이 쇠퇴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항우장사라도 늙으면 구부러지고 떨게 됩니다. 치아가 고장이 생겨서 여문 것을 제대로 씹을 수 없고, 눈이 어두워집니다.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이고, 높은 곳은 올라 갈수 없어서 쳐다만봐도 한숨이 나오고, 머리는 백발이 되고 메뚜기도 짐이 됩니다. 그런데 손자 손녀를 연세 많은 어른들께 맡기면 되겠습니까
모든 욕심이 없어집니다. 그래도 욕심이 있다는 것은 젊다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욕심도 사라집니다.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이 말씀의 내용은 친구들의 부고 소리가 들리고 문상해야 할 일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육이 풀리고 얼굴 모양이 일그러지고 모든 것이 고장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영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결론적으로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벤자민 디즈레일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청춘은 실수의 시기이며, 장년은 투쟁의 시기이며, 노년은 후회의 시기이다”
말기 암환자들을 진료하던 일본의 의사인 오츠 슈이치 박사가 1000명을 대상으로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을 조사해서 25가지를 책으로 발표했습니다. 전체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첫 번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한 것,
네 번째, 친절을 베풀지 못한 것,
다섯 번째, 나쁜 짓을 많이 한 것,
여섯 번째,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못한 것,
열 번째, 죽도록 일만한 것,
열한 번째,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하지 못한 것,
열두 번째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지 못한 것,
스무 번째, 내 장례식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
스물한 번째 건강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
스물다섯 번째, 신의 가르침을 알지 못한 것, 즉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혹시라도 후회되는 삶은 없습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 후회를 하지는 살펴볼까요. 어느 방송(放送)사에서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10대에서 50대까지는 ‘공부 좀 할걸’이 1위였습니다. 다음으로 ‘말 잘들을 걸’, ‘돈 모을 걸’이 다음 순으로 나왔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남자 70대에서 1위는 ‘아내 눈에 눈물 나게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고, 여자는 2위에 ‘먼저 간 남편에게 잘해 줄 걸’이었습니다.
부모나 배우자가 죽으면 잘해 준 것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못 해 준 것만 생각난다고 하듯이, 후회(後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참으로 후회해서는 안 될 일을 후회하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연세가 많아지면 벌써 후회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합니다.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 쥐어 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 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다음으로 후회를 하는 것은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았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더라면 삶이 달라졌을 후회입니다.
끝으로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에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하는 후회입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일로 미룬다면 우리도 후회할 수 있습니다. 후회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하여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매일 매일 던져봄이 어떨까요
지금 이시간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 때 참았더라면, 그 때 잘 했더라면, 그 때 알았더라면,
그 때 조심했더라면.
오늘은 저희교회가 여러분을 초청한 것은 여러분에게 보다 적게, 그리고 덜 후회하는 인생의 삶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을 아무리 많이 누려보아도 솔로몬 왕처럼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고백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한 마디의 말을 할 때 당신은 어떤 말을 하면서 가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마지막에 이 말 하고 떠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 고백을 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세상을 살 때 힘든 일이 많습니다. 바로 이런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를 쉬게 하시려고 당신이 오히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마지막 말입니까 여기에는 후회함이 전혀 없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 살았던 분들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보시겠습니까
19세기 유명한 미국의 전도자 무디는 죽음 직전에 환희의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이 물러나고 천국이 열리는구나. 오!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도다. ”
종교 개혁자 루터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하며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주의 손에 내 영을 바치오니 진리의 주가 나를 구원하였습니다. ”
감리교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레는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
존 장로교 창시자인 칼빈은 죽음 직전에 이렇게 주위 사람들을 권면했습니다.
“사람은 다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Soli Deo Gloria) 을 목표로 살아야 해”라고 하였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유명한 문학가 ‘빅토르 위고’는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무덤에 들어갈 때에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고 말할지언정, 내 일생을 마쳤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 다음 날에도 여전히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통로이다. ”
빅토리 위고가 자신의 죽음을 이토록 감동적인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해 줄 수 있었던 것 역시, 생전의 삶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삶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김동길 박사의 누님이었던 이 땅의 크리스천인 김활란 박사의 유언을 아십니까
“내가 죽거든 눈물을 흘리거나 슬픈 찬송가를 부르지 말아라. 그 순간은 내가 천국에 입성하는 순간이다. 모두 기쁘게 승리의 찬송가를 불러 다오. ”
그래서 그분의 장례식에서는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 가 울려 퍼졌습니다. 자칫 패배로 각인되기 쉬운 죽음이 어찌 이처럼 위대한 승리의 메시지로 승화될 수 있었겠습니까 고인이 살아 있는 동안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삶, 이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이요,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먼저 구하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이 같은 삶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삶이 아름답기에 죽음 또한 감동적인 메시지로 남는 것은 사필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모르면서 죽은 자 중 대표적인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62세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마지막이 이렇습니다. “이슬처럼 떨어졌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게 인생이련가! 세상만사 일장춘몽이로세”
이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이, 이 땅에서 숨을 쉬던 그 어느 순간보다 더 위대하고 더 감동적이며 더 아름다운 메시지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그 순간,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뵙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후회만 하나가 결국 마침표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떠나시렵니까 예수님처럼 위대한 신앙인들처럼 감동적이면서도 ‘다 이루었다’고 마침표를 잘 찍을 수 있는 삶을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우물쭈물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아름다운 자만 그 죽음이 아름다운 메시지로 승화될 수 있고, 이 땅에서의 아름다운 삶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추구할 때,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삶이 됩니다. 그분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 이름하여 ‘구원자’입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합니다.
지금도 세상의 온갖 무거운 짐을 지고 사시는 여러분!
아직도 죄악에서 허덕이며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부르시고 찾아오신 여러분을 향하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예수님께 당신의 인생을 맡겨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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