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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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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를 찾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기 전에 후포중앙교회에서 서리집사로 봉사할 때 교회학교에서도 봉사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교회는 바빠집니다. 여름방학 때에 여름성경학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학교를 앞두고 교사 강습회를 노회별로 하는데 포항노회 안에 영덕시찰은 교회가 당시 45개 교회이고 포항하고 거리도 다소 멀고 해서 시찰회에서 교사강습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어느 해인지 모르지만 성민이가 개구쟁이로 설칠 때인데 현재 영덕읍교회가 아닌 구교회에서 강습회를 할 때 성민이가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집사람은 울면서 ‘성민아!’하고 이골목 저골목 다니면서 ‘이런 아이 못봤습니까’하고 다니고 다른 교사들도 찾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지난 여중생 살해사건이 발생했습니다만 처음에는 납치된 줄 알고 부모와 경찰이 얼마나 많이 찾았습니까 그런데 살아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주검으로 된 아이를 찾았을 때 찾은 기쁨보다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통곡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지금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터넷에도 보면 사람 찾는 내용이 자주 올라옵니다. 아무리 하찮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부모의 마음은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자들이 있는데 그것을 찾는데는 인색한 면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 전체 내용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비유를 하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내용은 잃은 양 비유입니다. 재산이 되는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둘째는 잃은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이것은 재물에 대한 잃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못된 둘째 아들의 잃음에 대한 비유입니다. 부모도 세상 떠나지 않았는데 미리 유산을 달라고 해서 해외에 나가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거지로 전락한 아들인데도 아버지는 날마다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에서 보면 무엇이든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찾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보통 찾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찾습니다. 양의 경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다닌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 즉 돈의 경우는 등물을 켜들고 집안을 샅샅이 뒤지면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래서 찾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잃은 아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것은 짐승도 아니요, 돈도 아닌 사람입니다. 자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찾습니까 가는 곳도 알려주지 않고 외국으로 가버렸는데 말입니다. 혼자 즐기는 삶을 살려고 배은망덕하게 불효자식으로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가져가고 소식도 없는 아들을 기다리기는 왜 기다립니까 그런데도 성경에 보면 아버지는 날마다 동구 밖에 나가 아들이 하머나 돌아올까 하여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15장에 나타난 세 가지 잃은 것에 대한 비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잃은 영혼을 얼마나 찾기를 원하시는가를 강조하기 위해 하신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짐승도 그렇게 아흔 아홉 마리를 두도 찾아다니고, 잃은 돈도 찾기 위해 불을 켜도 구석구석 쓸기도 하고 뒤지면서 찾는데,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요, 자기가 낳은 아들인데 찾지 않겠습니까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찾아다니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찾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창세기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여 숨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다 아시면서도 아담과 하와가 숨은 곳으로 찾아가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4장에서는 동생을 죽인 형 가인을 찾아오셔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창세기12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도 찾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우상숭배의 이방종교가 가득한 지방에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가셔서 “네 본토 친척 아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누가복음19:10절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 디모데전서1: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 구원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이렇게 오신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제일 먼저 나가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때 사람을 만나면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사도될 사람들을 직접 일하는 현장으로 찾아가셔서 그들을 불러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불렀습니다. 마태는 세관에서 불어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으로 사도 바울을 다메섹까지 따라가셔서 그를 찾아내었습니다. 주님이 사울을 부르실 때 어떻게 불렀습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때 사울이 대답하기를 “주여 누구시니이까”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여호와 하나님은 시대시대 마다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족장들을 찾아 부르셨고, 사사들을 찾아 부르셨습니다. 선지자를 찾아 불러 세웠습니다. 왕들도 불러 세웠습니다. 예레미야5장에 보면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는 사람, 한 사람이라고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사명을 지금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마태복음10:6절 말씀,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16:15절 말씀,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주님이 세상에 오심의 목적이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그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 가장 핵심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15장입니다. 세 가지 비유가 찾음의 대상이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목적을 갖고 하신 비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잃은 양의 비유를 하면서 잃은 양을 찾으면 이웃을 불러서 즐거운 잔치를 배풀것이라고 하면서,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도 더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양의 비유를 통해서 잃은 영혼을 구원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 이하에 보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도 이웃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하면서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돈을 얘기하면서 역시 잃어버린 영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 이하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는 돈을 가지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방탕자 아들인도 돌아왔을 때 동네잔치를 벌였습니다. 소도 잡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32절의 아버지의 고백을 보세요.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우리 주님이 판단하는 인간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높에 평가합니다. 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집이나 논이나 대지나 저당을 잡아야 합니다. 저장을 잡을 때 평가를 잘해야 합니다. 평가의 가치에 따라서 대출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기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6절 말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렇게 귀한 생명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우리에게 그런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내 생명 다 바쳐서 한 생명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생명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살리면 그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되고 위대한 사람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영국 어느 대학의 예배시간에 생긴 일입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열정적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대학의 예배시간에는 의무적으로 가서 앉아 있어야 하니까 앉아 있는 것이지 진지하게 설교듣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내당교회에 부교역자로 있을 때 신명 여고 안에 여중이 있는데 예배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기독학생이 10%도 채 안되는데 나머지 90%가 그냥 앉아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들에게 설교하기 힘듭니다. 제가 여기 부임해서 몇 년이 지났을 때 계명대학교 간호대학에 채플을 인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대학생은 그래도 조금은 나았습니다.
영국의 이 대학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반은 떠들고 잡담하고 절반은 졸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강사 목사님은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시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몇 명 학생들이 깊이 잠들어 있던 친구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야! 너 나오랜다’ 이 학생은 자다가 깨어서 영문도 모른 채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이 스탠리 존스라는 사람입니다. 전설적인 인도 선교사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너무도 이상한 방법의 회심은 인도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일본 동경에 19세 된 소녀가 홀아버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처녀는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 아버지는 강도질을 하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처녀는 시간 있는 대로 아버지에게 전도하며 예수 믿으면 죄를 다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권면하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결심하고 유서를 써서 호주머니에 넣고 기다리다가 아버지가 칼을 가슴에 품고 나가는 것을 알고 뒤를 따라갔습니다. 시부야 공원으로 가서 숲 속에 숨은 것을 보고 변장하고 가방에 유서를 집어넣고 보자기를 쓰고 아버지가 숨어 있는 앞을 구두소리를 내면서 지나갔습니다. 숨어있던 강도는 그 여자를 찌르고 가방을 낚아채 가지고 도망쳤습니다. 집에 와서 가방을 뒤져보니 딸의 유서장이었습니다.
“아버지 이 불효한 여식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오늘 밤 아버지가 죽인 것은 바로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여 천당으로 모시는 길은 이길 밖에 없는 줄 알고 남에 자식을 죽이면 그 부모의 가슴 아픈 것을 얼마나 고통인가를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지요. 나는 지금 죽어도 천당에 갈 준비가 되어 있사옵기에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사오니 저를 자식으로 아시거든 불쌍하다 마시고 회개하시고 예수 믿으시고 천당에서 기쁜 낯으로 만납시다. 안녕히”
이 유서를 읽은 아버지 강도는 입술을 깨물고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움켜쥐고 경찰서로 뛰어가 ‘그 동안 강력 범행을 한자가 바로 나입니다’ 하고 딸의 사연과 같이 자수를 하게 되어 회개하고 무기징역을 받아서 20년간 복역하고 모범수로 나와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친 귀한 믿음의 딸의 모습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생명 걸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의 생명 걸고 찾아야 할 잃어버린 영혼은 누구입니까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부시는 56세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40세까지 탕자였다고 합니다. 20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여 극심한 알콜 중독자, 바람둥이에다 마약까지 복용했다고 합니다. 부시가 40세 되던 해,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는데 한 친구가 전도를 했습니다.
부시는 그 자리에서 교회에 한번 나가 보겠다고 술에 취해 약속했습니다. 부시는 그 약속대로 다음 주에 교회에 나갔는데, 그 후 술을 마시면 온몸이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부시는 한 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술을 끊게 되었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부시는 “내가 끊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마시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끊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내 힘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부시는 교회에 나와 새사람이 되었고, 탕자에서 대통령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제대로 찾았을 때 역사를 변화시킬만한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읍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6절에 보면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고 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도 보면.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22-23절).
이런 잔치를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이런 엄청난 기쁨의 파티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2010 새생명초청잔치를 ‘2010새생명축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 영혼을 찾으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정말 좋아하십니다. 우리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 어버린 한 영혼’을 살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010 새생명축제’를 기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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