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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하나님의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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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증언을 제가 고민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교회현상을 풀어가는 접근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사회학이 사용하는 핵심(key word) 네 개를 상징적 언어로 삼아 한국교회가 가고 있는 흐름부터 보고자 합니다.
종교사회학이 사용하는 그 처음 키워드는 교회성장(church growth)입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를 계수합니다. 이때 한국교회는 5만 교회와 1200만 신도를 얻는 절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미국교회 성장은 1940년대와 1950년대를 계수합니다. 1960년대 초 미국교회는 전인구대비 65%를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이 둘을 세기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교회성장의 절정이었으며,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기독교왕국을 꿈꾸는 여러 가지 징조들이 여기저기에 등장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교회성장의 영광 속에 들떠 있던 바로 그때, 우리 속에는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하였습니다. 성장 이후(After Church Growth)라는 두 번째 키워드입니다. `성장이후기'의 도래는 교회성장이 끝났다는 경고음이었으며, 이 경고는 조용히 그러나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교회 속을 난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1990년에서 2000년까지 10년 동안, 미국교회는 1960년에서 1970년까지 10년 동안 밑으로 슬며시 스며든 세속주의 사조(ethos)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안티들의 조직적인 교회파괴공작도 문제지만, 이때부터 교회는 지식인, 젊은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성장 이후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1990년 이후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 되었습니다.
갑자기 성장이 멈춘 그 순간, 불안해진 한국교회는 대단히 위험한 선택을 모험하고 나섰습니다. 위험한 선택이란 성장이후기의 공백을 `성경'으로 대결해야하는 거룩한 소명을 사실상 포기한 것입니다. 대신 그 자리에 한국교회는 너나할 것 없이 미국 발 유행성프로그램으로 교회성장신화를 되돌려 놓으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소위 구도자예배(seeker's sensitive)로 나타나기도 하고, 갑작스레 유행이 된 극장식교회건축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 과정에 급부상한 것이 대형교회(megachurch)들이었습니다. 메가처치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메가처치의 급부상이 새신자의 영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바꿔치기한다고 해서 종교사회학은 이를 `switch'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Switch라는 용어는 세 번째 키워드입니다. 그러나 `switch'라는 말 한마디가 담고 있는 의미는 한국교회 운명을 갈라놓는 폭음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작은 교회들은 점점 허약한 공동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피나는 survival game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교회는 서서히 기독교왕국화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하나를 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교회성장기로부터 움트기 시작한 기독교왕국의 꿈이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탈바꿈 하면서, 한국교회는 사실상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놓는 무서운 우를 범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설교자의 목소리가 성경의 내면의 말씀보다 더 커졌습니다.
오늘 성경은 설교와 성경공부를 뒷받침하는 `참고서'로 전락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기독교왕국화 되면서, 신앙의 권위가 성경으로부터 기독교왕국으로 전의 되는 동안, 이 틈새에 네 번째 키워드가 등장하여 한국교회를 코너로 계속 몰아가고 있습니다. 종교 사회학에서는 이를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 합니다. “제도화된 교회는 거부하고, 영적인 것을 찾아 나선” 부류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네 번째 흐름, 형식화된 교회를 거부하고 스스로 영적으로 살려고 교회를 떠나는 흐름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 속에 확산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느헤미야 8:1-9절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던 예루살렘성전을 다시 개축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봉헌한 그 이후에 생겨난 `공백'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포로로부터의 해방과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분명 이스라엘에게 제2출애굽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의 예언도, 제2이사야의 꿈 그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않는 예루살렘의 황폐 속에 예루살렘성전의 재건은 유대인들에게 영적인 기쁨을 되찾는 길이었습니다.
BC 520년에서 BC 515년, 5년간의 수고는 제2성전을 완공하고,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봉헌하는 바로 그 자리, `젊은이들은 희망을', `늙은이들은 감격적인 통곡'으로 그 자리를 감사하고 노래하였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나 성전이 봉헌된 그 이후, 그곳에는 와야 했던 영적희 열도, 미래 소망도 오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소중한 제사의 처소이지만, 성전 그 자체는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성전문화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를 드높였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나,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를 우위에 놓아가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눈 여겨 보아야 할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 성전봉헌이 민족적 회심(metanoia)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생겨난 공백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수문 광장에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은 spiritual, but not religious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문화에서 아무런 영적희열을 경험하지 못한 빈공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울게 만든 것은 에스라도, 느헤미야도, 레위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울게 만든 것은 `율법책'(Persia)에서 가져온 율법책, 성경이었습니다.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했다는 말은 종 되었던 선조 이스라엘을 애굽의 사슬로부터 풀어 거룩한 민족으로 태동시키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책을 접하는 그 순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눈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었습니다. 이 눈물은 자기 슬픔의 도취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오는 감사의 눈물 이었으며, 출애굽과 제2출애굽이라는 두 번의 해방을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감격 속에 다가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여기서 민족적인 회개, metanoia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서를 넘어 그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또 동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맺고, 여호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와 함께 온 인류의 죄와 죽음까지도 온몸에 지니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생명을 영원한 생명 안에 품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또 기다리는 이 거룩한 약속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한국교회는 이 구원을 증언하는 성경의 권위를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지구촌에 남겨두신 기독교왕국이 아니라, 성경 속에 펼쳐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을 순례하는 신앙의 회복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 울 수 있는 민족적 metanonia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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