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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쉐마 이스라엘

본문

교육의 사전적 정의는 피교육자가 지닌 잠재능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아직 미완전하고 미발달된 상태에 외적인 힘을 가함으로써 보다 완전하고 발달된 상태에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의도적인 작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육은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마땅히 가르칠 바를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찾으시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충격적인 선언
4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히브리어로 ‘쉐마 이스라엘’ 입니다. 이 말은 명령형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들으라”라는 말 자체에 이미 ‘순종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4절에서 중요한 표현은 “한”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 ‘유일한’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고대 근동은 다신론이 지배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뿐인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5절에서 유일하신 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랑은 내면적인 감정뿐만이 아니라 행동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모든 마음을 점령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전적인 충성과 헌신을 뜻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에는 ‘모든’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즉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마음을 다하고, 모든 너의 마음(영혼)을 가지고, 모든 너의 힘을 다하여’로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100%의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6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는데, 그 마음에는 다름 아닌 말씀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을 포함한 모세의 말씀들입니다. 마음에 있다는 것은 항상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돌판에 새겨져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에는 가슴속에 새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들이 마음에 있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설명합니다. 가르친다는 말은 히브리어 ‘사난’으로서, ‘날카롭게 또는 엄하게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엄하게 라는 말은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처럼 반드시 기억 속에 남겨놓아야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사난’이란 단어를 반복이라는 말로도 번역하지만, 결국에는 반복적으로 가르치라는 말이 되므로 의미상 같습니다. 여기서 강론한다는 말은 대화나 암송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말씀들을 말하는 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 누워있을 때나 일어날 때는 서로 짝을 이뤄 비교가 됩니다. 즉, 어느 순간이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이야기하며 암송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8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 두 가지가 소개됩니다. 첫 번째는 사람 몸에 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집에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말씀들을 기호로 손에 묶고 이마에 표로 두는 것은 실제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상징적으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탈무드 시대의 유대인들은 미간 사이의 표를 발전시켰습니다. 그것은 이마에 매달았던 성구함입니다. 네모난 작은 가죽 상자로서 그 속에 성경 구절이 적힌 양피지를 넣고 이마에 매달았습니다. 성경 구절은 4개로 출애굽기 13:1~10, 11~16, 신명기 6:5~9, 11:13-21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십계명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실제로 받아들여 행동했습니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다 동참했던 것은 아닙니다.
9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마지막 실천 사항입니다. 사람이 사는 집의 문에 말씀들을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문은 가족들이 오가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문 기둥과 문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함으로써 가족들이 항상 말씀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입니다. 문은 성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성읍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기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가르칠 유일한 가치입니까?
우리의 생각 제일 위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까? 매번 대학입시를 앞두고서는 기도하시는 분들이 늘어납니다. 아울러 예배에 불참하는 고3 아이들은 늘어납니다. 고3만 그렇습니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시험 1달 전부터 아이들이 예배에 빠지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언제 실천하실 것입니까? 도대체 우리 마음속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삶으로 실천하는 것만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 성숙할 수 있게 가르치시고 배우십시오. 이것을 잃어버리면 나는 구원받았을지 모르지만 내 후손은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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