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둘이 한 몸되어
본문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명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바다에 가려느냐 한번 기도하라. 네가 전쟁에 나가느냐 두번 기도하라. 네가 결혼하려느냐 세번 기도하라. 결혼은 이 세상에 온 남자와 여자는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바다에 나가려는 사람이 바다에 나가는 불안을 씻기 위하여서는 한번 기도하라고 했고 전쟁에 나가면 그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두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바다에 나가는 것에 비해서 결코 불안한 것도 아니고 전쟁에 나가는 것같이 목숨을 잃는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세번씩이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결혼은 참 즐거운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바다에 나가는 것 보다도 전쟁에 나가는 것보다도 더 굳은 결심과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톨스토이는 그렇게 부탁했는 것 같습니다.
흔히 그런 말을 합니다. 결혼을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결혼하게 하기까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인내하는 것이 더 그 결혼을 지속케 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30%의 사랑과 70%의 인내로 구성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한 정의가 펼쳐지는데 제일 먼저 나온 정의가 무엇인가 하면 "사랑은 오래 참으며.. " 였습니다. 성서는 결혼은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것이고 사람이 결코 나눌 수 없는 신적인 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8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시면서 만족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한 사람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보기 민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시고 그와 함께 거하게 하시면서 비로소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첫째는 남성과 여성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창조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혼자서는 완전할 수가 없도록 지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부부는 둘이 한 몸이 된다고 말씀했는데 이는 뒤바꿔서 말하면 둘은 독립해서 존재하는 한 반쪽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나와 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너로 인하여 비로소 하나가 되고 너는 나로 인하여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결혼한 부부는 혼자 있으면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지워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소유하는 종속의 개념이 없고 서로는 서로가 있어야지만 비로소 완성되는 평등한 동반자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는 두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부터는 아내의 아픔이 동시에 나의 아픔이지 아내의 아픔만이 아닙니다. 이제 부터는 남편의 고난이 동시에 나의 고난이지 남편만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아픔뿐만 아니라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이며 모든 것을 가장 유기적으로 화합해 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이 사회에서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장 최소의 단위이자 완전한 단위입니다. 부부의 사이에는 한 국가가 하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면에서 심지어 UN이 할 수 있는 일도 바로 부부간에서 이루어지는 일과 그 형태는 같습니다. 부부의 성공적 삶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세계의 밑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삶은 단순하게 획일적으로 지탱되지 않습니다. 부부는 젊어서는 정열의 대상으로서 중년에는 사업의 동반자로서 노년에는 좋은 말벗과 친구로서 그 사랑의 질을 달리해 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앞에 이를 때까지 길게 살아갑니다. 이제 이 순간부터 이 세상의 삶을 다 마칠 때까지 한 몸된 둘이 그대로 한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앞에 서기를 바라고 살아가면서 점점 성숙한 사랑이 두 분의 존재를 하나로 묶어 아름다운 사랑의 꽃다발을 최후에 완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흔히 그런 말을 합니다. 결혼을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결혼하게 하기까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인내하는 것이 더 그 결혼을 지속케 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30%의 사랑과 70%의 인내로 구성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한 정의가 펼쳐지는데 제일 먼저 나온 정의가 무엇인가 하면 "사랑은 오래 참으며.. " 였습니다. 성서는 결혼은 여호와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것이고 사람이 결코 나눌 수 없는 신적인 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8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시면서 만족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한 사람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보기 민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시고 그와 함께 거하게 하시면서 비로소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첫째는 남성과 여성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창조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혼자서는 완전할 수가 없도록 지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부부는 둘이 한 몸이 된다고 말씀했는데 이는 뒤바꿔서 말하면 둘은 독립해서 존재하는 한 반쪽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나와 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너로 인하여 비로소 하나가 되고 너는 나로 인하여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결혼한 부부는 혼자 있으면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지워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소유하는 종속의 개념이 없고 서로는 서로가 있어야지만 비로소 완성되는 평등한 동반자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는 두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부터는 아내의 아픔이 동시에 나의 아픔이지 아내의 아픔만이 아닙니다. 이제 부터는 남편의 고난이 동시에 나의 고난이지 남편만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아픔뿐만 아니라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이며 모든 것을 가장 유기적으로 화합해 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이 사회에서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장 최소의 단위이자 완전한 단위입니다. 부부의 사이에는 한 국가가 하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면에서 심지어 UN이 할 수 있는 일도 바로 부부간에서 이루어지는 일과 그 형태는 같습니다. 부부의 성공적 삶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세계의 밑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삶은 단순하게 획일적으로 지탱되지 않습니다. 부부는 젊어서는 정열의 대상으로서 중년에는 사업의 동반자로서 노년에는 좋은 말벗과 친구로서 그 사랑의 질을 달리해 가면서 여호와 하나님앞에 이를 때까지 길게 살아갑니다. 이제 이 순간부터 이 세상의 삶을 다 마칠 때까지 한 몸된 둘이 그대로 한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앞에 서기를 바라고 살아가면서 점점 성숙한 사랑이 두 분의 존재를 하나로 묶어 아름다운 사랑의 꽃다발을 최후에 완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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