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나라를 위한 기도, 무릎으로 하는 애국
본문
바울은 자기 민족에게 영적 구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민족의 내일을 결코 낙관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자기 민족에게 주시고자 했던 최고의 선물이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6. 25전쟁이 남긴 인류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교훈을 전파하고 있는 중심 장소가 6. 25전쟁이 일어난 이 한반도가 아니라, 미합중국의 수도인 워싱턴 D. C. 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기념공원을 해마다 평균 32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미국인들과 세계의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조각가 프랭크 게일로드의 조각 작품인 판초, 우의를 입고 행군하는 육, 해, 공군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여기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 “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
그리고 그 아래에 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불멸의 메시지가 바로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입니다.
두 동강난 이 작은 한반도 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로운 국가로서 민족적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 희생된 미군 사망자만 5만 4,246명(지금까지 이라크전 미군 사망자가 약 3,000명, 이라고 함)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사망자가 모두 62만 8,833명, 부상자는 미군만 10만 3,284명, 유엔군 전체는 106만 4,453명, 미군 실종자만 8,177명, 유엔군 실종자는 47만 267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아들일 잃었고, 벤프리트 장군과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으며,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24 사단 딘 소장은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릇된 이념의 영향을 받은 이 땅의 젊은 전후 세대들 가운데 종종 북침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만일 6. 25전쟁이 남한에서 먼저 준비되고 의도된 북침이었다면 6. 25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고 40일 만인 7월 말까지 낙동강 하류의 부산만 남게 되는 일방적 전쟁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남한은 총병력이 10만 4,993명, 북한은 20만 3,480명으로 북한이 갑절이나 많은 병력을 소유했고, 남한에는 탱크나 자주포가 단 한 대도 없었음에 반하여 북한은 탱크만 242대, 자주포만 176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항공기는 남한의 경우 연락기를 포함하여 총 22대가 고작이었지만 북한은 211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런 병력의 열세로 어떻게 남한 이 북한에 대한 침공을 시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열세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자유로운 국가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이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기도한 분들의 기도응답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크리스천에게는 조국이 있고 백성으로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한 책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망해 가는 조국 이스라엘과 수도 예루살렘의 내일을 예견하고 탄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큰 제자 바울 사도는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우리는 구체적으로 민족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민족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민족의 육체적인 구원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첫 번째 기도 제목에서 ‘자유’와 ‘안전’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함께 사용했습니다. 자유한데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자유 자체가 불안한 자유일 수밖에 없고, 안전한데 자유하지 못하다면 그 안전은 비굴한 생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조국이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인 다음 세대들이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8절에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러진 바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4장 2절에서는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역사 속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AD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문자 그대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렸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분들은 서쪽 벽 하나만을 볼 수 있고, 그 벽에서 유태인들이 자기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 누가복음 19장 41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서는 예수님께서 슬피 우시며 이 말씀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41-42절 말씀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
실제로 로마의 디도 장군은 4개 군단 약 8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을 무너뜨렸고, 그때 약 110 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수십만 명은 노예로 로마에 끌려가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미리 아시고 눈물을 흐리며 우신 것입니다. 이때 뜻 있는 유대인 애국자들 한 무리(어린아이들 까지 약 967명)가 예루살렘 남쪽, 사해 서쪽 약 4km 지점에 있는 헤롯의 천연 요새 산성인 맛사다(해발 450m)로 도피하여 로마인들과 최후의 항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3년 만에 실바 장군이 이끄는 10군단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자 그들은 로마 노예가 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의합니다. 이때 유대인 지도자 엘리아살 벤 야일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을 남깁니다. “동지들이여, 우리는 지금까지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굴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방인 로마의 손에 죽거나 하니면 항복하여 그들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동지들이여,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합시다. 자유의 몸으로 이 세상을 선택합시다. ”
그리하여 극적으로 죽음을 면한 2명의 여인과 5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맛사다 언덕에 올랐던 전원이 장렬한 자결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임관할 때 이 언덕에 올라 “우리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라”, “다시는 맛사다의 비극이 없기를!”하고 외치며 충성을 맹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예루살렘과 맛사다 못지 않는 비극의 현장이 바로 한반도였음을 젊은 세대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북한 군인 사상자가 모두 약 300만 명, 민간인 사상자도 모두 약 300만명, 함계 약 600만명이 죽고 다쳤으며, 전쟁 미망인만 약 20만명, 전쟁 고아가 약 10만명, 파괴된 가옥이 60만채, 북한 월남민이 약 300만명, 이산 가족이 약 1000만명 발생했습니다. 또한 산업 생산력의 약 80퍼센트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산군 점령지에서 그 어떤 계층보다 핍박받고 투옥되고 고문당한 사람들이 기독교 지도자들과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실로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비극적 전쟁이 바로 한반도의 6. 25전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는 우리라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미래의 조국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두 번째 기도제목은 민족의 영적인 구원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23장 37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구약 선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오실 메시아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오실 메시아를 영접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민족이 된다면 그 자체가 민족의 번영을 약속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를 민족의 위기라고 보셨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자신의 날개 아래 품듯 자기 민족을 품고자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기 민족이 정치,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위기에 처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1절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증언합니까?
“자기 당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러나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주로 영접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이 예수님을 대부분 거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며 예수님의 가장 큰 제자가 된 바울 사도는 이 때문에 가장 큰 기도 제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
이것이 얼마나 절실한 바울의 기도 제목이었는가를 같은 로마서 9장 1-3절에서도 느껴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무슨 말입니까? 자기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내 자신이 버림을 받고서라도 내 민족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인 희생적인 마음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에게 영적 구원 없이는 민족의 내일을 결코 낙관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자기 민족에게 주시고자 했던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6. 25는 비극이었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의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1907년 평양 대부흥 이후 한국 교회가 본격적으로 부흥을 경험하게 된 때가 6. 25직후였기 때문입니다. 1950년 6. 25가 발발하던 그날 주일 저녁 한국 교회가 존경하는 영락교회 한격직 목사님은 매우 예언적인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불행이라도 의로운 사람에게는 그것이 행복으로 바뀌도록 하십니다. 지금 38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행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큰 영광의 결과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할 때일수록 더욱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6. 25의 불행 속에서 한 목사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붙들었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교회는 부흥되었고 민족은 재건되었습니다.
6. 25전쟁 속에 리더십을 발휘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러거지로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분은 민족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했는데, 한 경직 목사님 등의 청원을 수용하여 우리나라 군대 안에 군목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고 군과 학교 등에서 신앙 강연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 그것입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이런 제도가 민족 복음화를 앞당기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 민족이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이 그들의 종교적 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여호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0장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여호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언젠가 인천에서 일단의 그릇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6. 25의 영웅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시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 맥아더를 우상화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이들은 마치 맥아더가 생각 없는 전쟁광이요 살인광인 것처럼 오도된 선전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적 관점에서 그를 평가할 때 맥아더가 얼마나 선교사의 마인드를 가진 사나님의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그가 일본에 대하여 가진 가장 큰 관심은 일본의 복음화였습니다. 1947년 당시 일본 내 선교사의 총수가 315명이었는데 맥아더 장군이 미국 교계에 직접 호소한 결과 1950년, 일본 선교사 총수는 2,500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록펠러 재단에 직접 연락하여 일본에 기독교 대학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1,000만 권의 일본어 번역 성경이 일본에 전해지게 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전 참전을 결심하면서 그는 이런 기도를 남깁니다.
“여호와 하나님, 또 하나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 작은 한반도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저를 써 주소서. ”
저는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쓰셔서 우리 민족을 구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는 1950년 9월 19일 수도 서울을 회복한 후 있었던 환도 행사에서 “이 행사에 요구하실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주기도문을 함께 드릴 것을 제안합니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금이야 말로 민족의 영적 부흥과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아니, 나라를 위한 기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6. 25전쟁이 남긴 인류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교훈을 전파하고 있는 중심 장소가 6. 25전쟁이 일어난 이 한반도가 아니라, 미합중국의 수도인 워싱턴 D. C. 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기념공원을 해마다 평균 32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미국인들과 세계의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조각가 프랭크 게일로드의 조각 작품인 판초, 우의를 입고 행군하는 육, 해, 공군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여기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 “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
그리고 그 아래에 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불멸의 메시지가 바로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입니다.
두 동강난 이 작은 한반도 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로운 국가로서 민족적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 희생된 미군 사망자만 5만 4,246명(지금까지 이라크전 미군 사망자가 약 3,000명, 이라고 함)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사망자가 모두 62만 8,833명, 부상자는 미군만 10만 3,284명, 유엔군 전체는 106만 4,453명, 미군 실종자만 8,177명, 유엔군 실종자는 47만 267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아들일 잃었고, 벤프리트 장군과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으며,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24 사단 딘 소장은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릇된 이념의 영향을 받은 이 땅의 젊은 전후 세대들 가운데 종종 북침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만일 6. 25전쟁이 남한에서 먼저 준비되고 의도된 북침이었다면 6. 25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고 40일 만인 7월 말까지 낙동강 하류의 부산만 남게 되는 일방적 전쟁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남한은 총병력이 10만 4,993명, 북한은 20만 3,480명으로 북한이 갑절이나 많은 병력을 소유했고, 남한에는 탱크나 자주포가 단 한 대도 없었음에 반하여 북한은 탱크만 242대, 자주포만 176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항공기는 남한의 경우 연락기를 포함하여 총 22대가 고작이었지만 북한은 211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런 병력의 열세로 어떻게 남한 이 북한에 대한 침공을 시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열세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자유로운 국가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이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기도한 분들의 기도응답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크리스천에게는 조국이 있고 백성으로 조국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한 책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망해 가는 조국 이스라엘과 수도 예루살렘의 내일을 예견하고 탄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큰 제자 바울 사도는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우리는 구체적으로 민족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민족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민족의 육체적인 구원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첫 번째 기도 제목에서 ‘자유’와 ‘안전’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함께 사용했습니다. 자유한데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자유 자체가 불안한 자유일 수밖에 없고, 안전한데 자유하지 못하다면 그 안전은 비굴한 생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조국이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인 다음 세대들이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8절에서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러진 바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4장 2절에서는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역사 속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AD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문자 그대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렸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분들은 서쪽 벽 하나만을 볼 수 있고, 그 벽에서 유태인들이 자기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 누가복음 19장 41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서는 예수님께서 슬피 우시며 이 말씀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41-42절 말씀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
실제로 로마의 디도 장군은 4개 군단 약 8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을 무너뜨렸고, 그때 약 110 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수십만 명은 노예로 로마에 끌려가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미리 아시고 눈물을 흐리며 우신 것입니다. 이때 뜻 있는 유대인 애국자들 한 무리(어린아이들 까지 약 967명)가 예루살렘 남쪽, 사해 서쪽 약 4km 지점에 있는 헤롯의 천연 요새 산성인 맛사다(해발 450m)로 도피하여 로마인들과 최후의 항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3년 만에 실바 장군이 이끄는 10군단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자 그들은 로마 노예가 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의합니다. 이때 유대인 지도자 엘리아살 벤 야일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을 남깁니다. “동지들이여, 우리는 지금까지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굴복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방인 로마의 손에 죽거나 하니면 항복하여 그들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동지들이여,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합시다. 자유의 몸으로 이 세상을 선택합시다. ”
그리하여 극적으로 죽음을 면한 2명의 여인과 5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맛사다 언덕에 올랐던 전원이 장렬한 자결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임관할 때 이 언덕에 올라 “우리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라”, “다시는 맛사다의 비극이 없기를!”하고 외치며 충성을 맹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예루살렘과 맛사다 못지 않는 비극의 현장이 바로 한반도였음을 젊은 세대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북한 군인 사상자가 모두 약 300만 명, 민간인 사상자도 모두 약 300만명, 함계 약 600만명이 죽고 다쳤으며, 전쟁 미망인만 약 20만명, 전쟁 고아가 약 10만명, 파괴된 가옥이 60만채, 북한 월남민이 약 300만명, 이산 가족이 약 1000만명 발생했습니다. 또한 산업 생산력의 약 80퍼센트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산군 점령지에서 그 어떤 계층보다 핍박받고 투옥되고 고문당한 사람들이 기독교 지도자들과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실로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비극적 전쟁이 바로 한반도의 6. 25전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는 우리라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미래의 조국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두 번째 기도제목은 민족의 영적인 구원을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23장 37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
구약 선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오실 메시아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오실 메시아를 영접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민족이 된다면 그 자체가 민족의 번영을 약속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를 민족의 위기라고 보셨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자신의 날개 아래 품듯 자기 민족을 품고자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기 민족이 정치,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위기에 처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1절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증언합니까?
“자기 당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러나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주로 영접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이 예수님을 대부분 거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며 예수님의 가장 큰 제자가 된 바울 사도는 이 때문에 가장 큰 기도 제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
이것이 얼마나 절실한 바울의 기도 제목이었는가를 같은 로마서 9장 1-3절에서도 느껴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무슨 말입니까? 자기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내 자신이 버림을 받고서라도 내 민족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인 희생적인 마음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에게 영적 구원 없이는 민족의 내일을 결코 낙관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자기 민족에게 주시고자 했던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6. 25는 비극이었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의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1907년 평양 대부흥 이후 한국 교회가 본격적으로 부흥을 경험하게 된 때가 6. 25직후였기 때문입니다. 1950년 6. 25가 발발하던 그날 주일 저녁 한국 교회가 존경하는 영락교회 한격직 목사님은 매우 예언적인 설교를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불행이라도 의로운 사람에게는 그것이 행복으로 바뀌도록 하십니다. 지금 38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행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큰 영광의 결과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할 때일수록 더욱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6. 25의 불행 속에서 한 목사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붙들었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교회는 부흥되었고 민족은 재건되었습니다.
6. 25전쟁 속에 리더십을 발휘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러거지로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분은 민족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했는데, 한 경직 목사님 등의 청원을 수용하여 우리나라 군대 안에 군목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고 군과 학교 등에서 신앙 강연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 그것입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이런 제도가 민족 복음화를 앞당기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 민족이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이 그들의 종교적 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여호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0장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여호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언젠가 인천에서 일단의 그릇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6. 25의 영웅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시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 맥아더를 우상화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이들은 마치 맥아더가 생각 없는 전쟁광이요 살인광인 것처럼 오도된 선전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적 관점에서 그를 평가할 때 맥아더가 얼마나 선교사의 마인드를 가진 사나님의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그가 일본에 대하여 가진 가장 큰 관심은 일본의 복음화였습니다. 1947년 당시 일본 내 선교사의 총수가 315명이었는데 맥아더 장군이 미국 교계에 직접 호소한 결과 1950년, 일본 선교사 총수는 2,500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록펠러 재단에 직접 연락하여 일본에 기독교 대학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1,000만 권의 일본어 번역 성경이 일본에 전해지게 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전 참전을 결심하면서 그는 이런 기도를 남깁니다.
“여호와 하나님, 또 하나의 전쟁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 작은 한반도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저를 써 주소서. ”
저는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쓰셔서 우리 민족을 구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는 1950년 9월 19일 수도 서울을 회복한 후 있었던 환도 행사에서 “이 행사에 요구하실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주기도문을 함께 드릴 것을 제안합니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금이야 말로 민족의 영적 부흥과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아니, 나라를 위한 기도,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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