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신 여호와
본문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때 사울 왕이 자기 갑옷과 무기를 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을 다 사양했습니다. 그것이 자기 몸에 맞지 않았고, 다윗은 나름대로 비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창이나 칼이나 갑옷이 없어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창이나 칼이나 갑옷은 다윗에게 거추장스런 것이 되어 적을 무찌르는데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좋은 창과 방패와 갑옷이 있다고, 또 많은 수의 군대가 있다고 해서 항상 전쟁의 승리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15:3). ”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 ”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 여호와께서는 전쟁에 능한 신이십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의 책략과 힘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균전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갑자기 불량국가가 생각나십니까? 세균전의 원조가 누군지 아십니까?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특수부대라고요? 그게 아닙니다. 세균전의 원조(?)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 제가 볼 때 이 구절은 유다를 치러 온 앗수르 군대가 간밤에 집단 전염병에 걸려 다 죽은 것을 성경 기자가 이처럼 기록한 것 같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을 병에 걸려 죽게 한 것이지요. 요즘은 과학이 발달하여 기상 상황도 전쟁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주먹만한 우박이 떨어지게 하시어 적군을 무찌르셨습니다. 낮의 길이가 짧아 공격할 시간이 없을 때 그분께서는 하늘을 움직이셔서 태양이 오랜 기간 중천에 떠 있게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기가막힌 우주전이지요. 여호와 하나님께는 공병대가 필요없습니다. 길이 없으면 바다가 갑자기 쩍 갈라지게 하시어 당신의 백성을 그리로 피하게 하시고, 적들이 그 길로 들어섰을 때 물이 합쳐져 그들을 다 수장시키셨습니다. 심리전 하면 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강대국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에게 참패한 것이 가나안 토착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하시어 그들이 미리 겁먹고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라합과 같은 여인이 미리 겁먹고 정탐꾼에게 협조하게 하시어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십니다. 세상에 쉬운 일을 ‘식은죽 먹기다’라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 전쟁은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승리의 여신’이라는 우상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리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의 신은 오직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면 누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 상대입니까?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군이고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적입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우리편이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우리의 적이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적도 아군도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5:13-14). ”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적은 이스라엘도 이방인도 아니라 바로 마귀의 세력입니다. 이스라엘 안에 마귀의 세력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통해 응징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영혼을 빼앗겨 진리와 공의를 짓밟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척하는 세력들을 땅에서 쓸어버리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는 악한 세력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여호수아를 수장으로 하는 이스라엘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 약조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 찬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던 땅, 즉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살고 있던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셔야 합니다. 이에 맞춰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악과 그 배후 세력을 몰아내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려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불러내실 때 “만민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은 그분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이 뭔지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그 택하심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통해 그들을 벌하시고,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키려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류구원계획을 방해하는 그 이방인들을 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쟁을 수행하시나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사용하시되 인간들의 힘은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하여 당신의 공의와 전능함을 그분의 백성들이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옛날에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각 나라와 부족들은 각자의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른 나라를 이기면 자기 신이 다른 나라 신을 이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침략한 앗수르 왕 산헤립의 부하가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왕하18:32-33)”라고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이외의 모든 나라들의 신들은 인간이 만든 우상들이었으나 사람들이 다 전쟁을 신들의 전쟁이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전쟁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전쟁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하여 당신을 신으로 믿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오직 당신께서만 진짜 신이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가급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며 군사나 무기의 수(數)에 의존하지 않게 하십니다. 자신들의 힘을 잔뜩 키워 전쟁에 나가 이기면 자신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착각하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리가 군사와 무기의 수에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이 병력을 줄여 전쟁에 나가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에 나섰을 때의 일입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마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수11:6). ” 말과 병거는 요즘으로 말하면 군대의 탱크(전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인들이 소유한 병거를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힘센 말이 튼튼한 병거를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니며 먼지를 일으키고 굉음을 일으키면 적 보병들은 두려워 벌벌 떨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 벤허에서 말과 병거가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그 흙먼지와 굉음이 아주 대단했지요.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인들을 무찔러 그들의 말과 병거를 빼앗아 소유하면 가나안 정복이 훨씬 더 쉬울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리품으로 취한 말들의 힘줄을 끊어버리고 그것들이 끌던 병거들을 불살라버리라 하십니다. 이후의 승리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것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지요.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과 무기가 거추장스러웠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해 계신 전쟁에서 많은 수의 군사는 그분께 거추장스런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전쟁이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이 전쟁이 왜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디안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던 당신의 백성들을 구하시려 기드온을 군대장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군사를 모집하자 삼만 이천 정도가 모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군사 수가 너무 많다고 하시며 겁먹은 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이에 이만 이천 명이 떠나고 만 명만 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만 명도 너무 많다. 더 추려내라. ” 기드온은 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물가로 갔습니다. 거기서 300 대 9700으로 나뉘는 일이 발생합니다. 300명은 손으로 물을 떠서 먹고 나머지는 엎드려 소가 물을 먹듯 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300명만 데리고 전쟁에 나가라 명하십니다. 여러분,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 자를 택하셨나요? 별다른 이유 없습니다. 만 명 중에 9700명은 집에 돌려보내고 300명만 데리고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2절). ”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3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수만의 적을 물리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의로운 자의 피를 흘리기를 좋아하는 손과 바로 교만한 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교만은 너무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티끌 같은 인간, 아침 안개와 같은 인간, 고릴라보다도 힘없는 인간, 눈꼽만큼의 지식을 가진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뭘 자랑한다는 게 정말 웃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인간의 모든 업적의 뒤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손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겸손이 아름답습니다. 겸손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겸손할 때 우리는 능력이 없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드온처럼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 때 우리는 절대 인생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때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가진 유용한 수단들을 내려놓으라 명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적으로부터 빼앗은 말과 병거를 없애버렸고 기드온이 많은 군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우리가 가진 수단들을 내려놓아야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장점과 강점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와 신실하심을 의지할 때 우리는 전폭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쟁취한 승리에 대한 공로를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돌릴 때 우리는 장래의 승리도 약속받을 수 있습니다. 항상 모든 영광과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300명의 군사들이 보여준 믿음도 대단합니다. 지도자 기드온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 많은 군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고작 300명만 남겨 두고 전쟁을 하려 할 때 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지도자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일 때 그의 지도력에 이의를 제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겸손한 자,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자, 철저히 순종하는 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철저히 순종하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의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는 대원들을 통해 100% 승리를 이끌어내십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충성스런 군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항상 승리를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15:3). ”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 ”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 여호와께서는 전쟁에 능한 신이십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의 책략과 힘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균전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갑자기 불량국가가 생각나십니까? 세균전의 원조가 누군지 아십니까?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특수부대라고요? 그게 아닙니다. 세균전의 원조(?)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 제가 볼 때 이 구절은 유다를 치러 온 앗수르 군대가 간밤에 집단 전염병에 걸려 다 죽은 것을 성경 기자가 이처럼 기록한 것 같습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을 병에 걸려 죽게 한 것이지요. 요즘은 과학이 발달하여 기상 상황도 전쟁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주먹만한 우박이 떨어지게 하시어 적군을 무찌르셨습니다. 낮의 길이가 짧아 공격할 시간이 없을 때 그분께서는 하늘을 움직이셔서 태양이 오랜 기간 중천에 떠 있게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기가막힌 우주전이지요. 여호와 하나님께는 공병대가 필요없습니다. 길이 없으면 바다가 갑자기 쩍 갈라지게 하시어 당신의 백성을 그리로 피하게 하시고, 적들이 그 길로 들어섰을 때 물이 합쳐져 그들을 다 수장시키셨습니다. 심리전 하면 또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강대국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에게 참패한 것이 가나안 토착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하시어 그들이 미리 겁먹고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라합과 같은 여인이 미리 겁먹고 정탐꾼에게 협조하게 하시어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십니다. 세상에 쉬운 일을 ‘식은죽 먹기다’라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 전쟁은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승리의 여신’이라는 우상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리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의 신은 오직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면 누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 상대입니까?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군이고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적입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우리편이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우리의 적이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적도 아군도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5:13-14). ”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적은 이스라엘도 이방인도 아니라 바로 마귀의 세력입니다. 이스라엘 안에 마귀의 세력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통해 응징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영혼을 빼앗겨 진리와 공의를 짓밟고 여호와 하나님을 배척하는 세력들을 땅에서 쓸어버리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는 악한 세력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여호수아를 수장으로 하는 이스라엘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 약조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 찬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던 땅, 즉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살고 있던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셔야 합니다. 이에 맞춰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악과 그 배후 세력을 몰아내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려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불러내실 때 “만민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은 그분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이 뭔지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그 택하심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통해 그들을 벌하시고,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키려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류구원계획을 방해하는 그 이방인들을 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쟁을 수행하시나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사용하시되 인간들의 힘은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하여 당신의 공의와 전능함을 그분의 백성들이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옛날에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각 나라와 부족들은 각자의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른 나라를 이기면 자기 신이 다른 나라 신을 이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침략한 앗수르 왕 산헤립의 부하가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왕하18:32-33)”라고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이외의 모든 나라들의 신들은 인간이 만든 우상들이었으나 사람들이 다 전쟁을 신들의 전쟁이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전쟁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전쟁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하여 당신을 신으로 믿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오직 당신께서만 진짜 신이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가급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며 군사나 무기의 수(數)에 의존하지 않게 하십니다. 자신들의 힘을 잔뜩 키워 전쟁에 나가 이기면 자신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착각하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리가 군사와 무기의 수에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이 병력을 줄여 전쟁에 나가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에 나섰을 때의 일입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마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수11:6). ” 말과 병거는 요즘으로 말하면 군대의 탱크(전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인들이 소유한 병거를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힘센 말이 튼튼한 병거를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니며 먼지를 일으키고 굉음을 일으키면 적 보병들은 두려워 벌벌 떨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 벤허에서 말과 병거가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그 흙먼지와 굉음이 아주 대단했지요.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인들을 무찔러 그들의 말과 병거를 빼앗아 소유하면 가나안 정복이 훨씬 더 쉬울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리품으로 취한 말들의 힘줄을 끊어버리고 그것들이 끌던 병거들을 불살라버리라 하십니다. 이후의 승리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것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지요.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과 무기가 거추장스러웠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해 계신 전쟁에서 많은 수의 군사는 그분께 거추장스런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전쟁이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이 전쟁이 왜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디안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던 당신의 백성들을 구하시려 기드온을 군대장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군사를 모집하자 삼만 이천 정도가 모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군사 수가 너무 많다고 하시며 겁먹은 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이에 이만 이천 명이 떠나고 만 명만 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만 명도 너무 많다. 더 추려내라. ” 기드온은 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물가로 갔습니다. 거기서 300 대 9700으로 나뉘는 일이 발생합니다. 300명은 손으로 물을 떠서 먹고 나머지는 엎드려 소가 물을 먹듯 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300명만 데리고 전쟁에 나가라 명하십니다. 여러분,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 자를 택하셨나요? 별다른 이유 없습니다. 만 명 중에 9700명은 집에 돌려보내고 300명만 데리고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2절). ”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3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수만의 적을 물리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의로운 자의 피를 흘리기를 좋아하는 손과 바로 교만한 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교만은 너무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티끌 같은 인간, 아침 안개와 같은 인간, 고릴라보다도 힘없는 인간, 눈꼽만큼의 지식을 가진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뭘 자랑한다는 게 정말 웃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인간의 모든 업적의 뒤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손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겸손이 아름답습니다. 겸손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겸손할 때 우리는 능력이 없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드온처럼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 때 우리는 절대 인생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때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가진 유용한 수단들을 내려놓으라 명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적으로부터 빼앗은 말과 병거를 없애버렸고 기드온이 많은 군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우리가 가진 수단들을 내려놓아야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장점과 강점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와 신실하심을 의지할 때 우리는 전폭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쟁취한 승리에 대한 공로를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돌릴 때 우리는 장래의 승리도 약속받을 수 있습니다. 항상 모든 영광과 감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300명의 군사들이 보여준 믿음도 대단합니다. 지도자 기드온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 많은 군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고작 300명만 남겨 두고 전쟁을 하려 할 때 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지도자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일 때 그의 지도력에 이의를 제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겸손한 자,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자, 철저히 순종하는 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철저히 순종하는 지도자와 그 지도자의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는 대원들을 통해 100% 승리를 이끌어내십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충성스런 군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항상 승리를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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