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미독립선언서
본문
오늘은 3. 1절 90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저는 ‘평양 제19인민학교’를 졸업했는데,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모교를 가보고 싶었으나 거절을 당했고 세 번째에야 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던 학교를 가보니 참으로 감개무량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중학교에 다녔던 어느 분이 쓴 글이 있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는 왜놈이 반, 조선 사람이 반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급장, 반장은 하나도 주지 않고 모두 머저리 같은 왜놈들이 차지했습니다. 왜놈들은 우리말과 우리 역사, 우리 국기, 우리 이름까지 못쓰게 하니 젊은 나이에 왜놈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매일 싸우고 왜놈 선생한테 기합을 받았습니다. ” 이 땅의 한국인이라면 누군들 이런 울분이 없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한 것, 해방과 자유를 준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하신 것처럼, 우리도 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것을 잊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한 학기 만에 해방이 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신사참배 문제가 떠오릅니다. 제가 평양에서 다닌 산정현 교회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본거지였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서시던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7년 동안 극심한 고초를 당하다가 안타깝게도 해방되기 몇 달 전에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전도사님도, 방계성 장로님을 비롯한 여러 장로님들도 감옥에 가시고, 제 어머니도 피해 다니셨습니다. 저는 비록 어렸지만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죽도록 충성하리라” 이런 찬송을 부르며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일제는 학생들에게도 동방요배(東方遙拜)를 강요했습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일본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에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하고 배웠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또 한 명이 저 쪽에 서 있는데 제 누이였어요. 우리 둘은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모두 다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들키지 않았습니다.
지금 평양 김일성 동상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 신사(神社)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는 전차는 모두 그 앞에 멈춰서고 승객들이 신사를 향해 절을 하고 나서야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저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교회 어른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 전차 안에서도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서 자기 나라 말을 못하고, 자기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 이름을 쓰지 못하는 것은 매우 기분 나쁜 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과거의 이런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더욱 깨우쳐 다시는 이와 같은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미독립선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독립선언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아주 훌륭한 설교를 들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절마다 기독교적, 성경적,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33명의 서명인 가운데 16명이 목사님, 장로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 선언문에는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 마태복음, 요한복음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그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가 정확하게 들어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문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 만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 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를 두루 펴 밝히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움직임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움이니, 이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지났는지라, 우리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이며, 겨레의 존엄과 영예가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위협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체모가 도리어 짓눌려 시든 것을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이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도록 이끌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고,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물려 온 터전을 식민지로 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적음을 꾸짖으려 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을 갖지 못하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가릴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 때의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으뜸으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의 요구로서 나온 것이 아닌 두 나라의 병합의 결과가 마침내 한때의 위압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한 뜻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 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를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리요?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지난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 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은밀히 우리를 지키며,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공약 3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이 선언문을 읽은 제 반응은 “아멘!”입니다. 이런 훌륭한 생각과 사상을 가진 선조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편적 사상, 성경적 기독교 가치가 분명하게 표현된 이 선언문의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도 너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진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그런 고통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정치는 사색당파가 서로 물고 뜯으면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힘이 없는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막아 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에 정치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네가 하니까 나는 반대야!”라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뭉치고 정당이 협력해서 나라를 강하게 세우려고 함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다른 나라가 보면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100년 전과 똑같습니다. 그때는 그나마 우리나라가 한 덩어리였지만 지금은 두 덩어리에, 북쪽은 북쪽대로 남쪽은 남쪽대로 정부와 국민이 갈등하고 있습니다.
3. 1절 이 날, 우리나라의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독립선언문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꿈을 꾸고 새로운 비전을 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힘, 경제적인 힘, 교육적인 힘, 과학적인 힘, 군사적인 힘, 윤리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슴속에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 분이 우리의 가슴을 펴 주시고 넓혀 주시고 높고 깊게 하셔서 우리 속에서
3. 1운동 당시 솟구쳤던 엄청난 새로운 힘들이 솟아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 정도 된 것은 사실 교육의 힘이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기틀을 세운 세대가 누구입니까? 우리 세대입니다. 우리 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6. 25사변을 겪으며 학교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시절에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를 팔고 논을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바로 교육의 힘입니다. 이 땅에 무슨 자원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 국민의 두뇌요 우리 젊은 자녀들의 두뇌입니다. 두뇌를 개발하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부모들도 열심히 시켜서 이 땅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세계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우수한 리더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았을 때 모란봉에서 군인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동강 모래사장에서는 비행기 폭격 훈련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저 ‘군사훈련 하나 보다’하고 재미있게 구경했습니다. 남한을 침략할 준비인 줄은 전혀 몰랐지요. 북쪽은 완전무장이 되어 있었지만 남쪽은 어땠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미국인들이 6. 25 당시에 찍은 필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군은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되자 한국 땅에서 철수했다고 합니다. 왜?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미국이 쏘련, 중공, 북쪽과 한바탕 또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남한에 미군과 무기가 없으면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 생각을 못할 것이라 여기고 철수해버렸다고 합니다. 남쪽은 미군도 없고 무기도 없는 맨손이 되었습니다. 북한이 그것을 알지요. 그것은 마치 침략 초청장과 같은데 왜 침략을 안 하겠습니까! 미군은 철수하고 남한에 남은 무기는 하나도 없으니 북한에게 통일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도록 여건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때도 6. 25때도 우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힘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근에 아부다비에 원자력 수출을 시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부의 이동을 통하여 더 많은 축복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독립선언문에서 말하는 힘은 아직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변국가인 중국은 경제와 군사대국으로, 일본 역시 경제와 군사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역사적인 안목을 주셔서 이 나라를 강력하게 만드는 새로운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적이 우리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가 침략을 합니다. 독립선언서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는 일본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길 정도로 허약한 나라를 만들어서 온 민족을 고생하게 했으니 스스로 채찍질해야 합니다.
3. 1절을 맞이한 지금도 우리의 지도자들과 국민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부다비의 원전수출로 인하여 100만대의 현대 소나타 차를 파는 효과가 있다고 떠드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슬람교가 모래사막의 여우처럼 달려들어 우리의 기독교를 허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일본 대신 아랍입니다. 우리의 태도를 바꿔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와 후손들이 이 땅에서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살면서 외세에 무릎을 꿇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자유와 진리와 사랑 속에서 힘차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권을 빼앗긴 결과는 죽도록 고생하는 것입니다.
독립선언문에도 “생존권을 빼앗겼다”, “정신상의 발전의 장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창의력이 말살됩니다. 노예근성이 생기고 정신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비가시적이지만 정신이 발달 돼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제대로 발전합니다. “민족의 존엄성과 명예에 손상을 입었다”,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억울했다”, “눈앞에 고통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국권을 잃은 민족의 모습입니다. “가엾은 아들 딸들”이라 했고 “부끄럽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약하고 사분오열되었기 때문에 민족과 국가와 자손들에게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정치적인 참된 자유는 영적인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사탄이 인간을 침략하여 죄성과 파괴를 심어 놓았고, 그 결과 인간은 사탄의 독재, 죄성의 독재 아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도 영적인 문제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심을 아는 우리의 가슴에 영적인 자유의 운동이 일기를 원합니다. 영적 쇠사슬, 지적 쇠사슬, 정서적 쇠사슬, 관계의 쇠사슬, 육체적, 환경적 이 모든 사슬에서 벗어서 영적, 육적, 정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건강한 개인과 나라가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십시다. 그 중심에 진리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참된 자유를 누리면 속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활짝 열리면서 우리 속에서 창의력과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원자폭탄은 나쁜 것이지만 원자력 에너지는 고마운 것입니다. 이제
3. 1절을 보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자력 수출을 통하여 잃어버린 광개토대왕 시대의 영토를 살 수 있을 만큼 700조원의 부의 이동을 남한에 주신다고 하니 예수 십자가의 사랑의 생각이 분명해지고 앞이 보이고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우리 모두 진리 안에서 참된 내면의 자유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내면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워 빙그레 웃는 얼굴에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창의력이란 지식기반을 사용해야 합니다. 인도의 타고르 시성이 말한 대로 동방의 등불로서 원자력 에너지가 전 세계로 넘쳐 대체 에너지가 개발될 때까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 나라가 어질게 이웃과 화합하는 초일류 대한민국으로 당당한 나라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중학교에 다녔던 어느 분이 쓴 글이 있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는 왜놈이 반, 조선 사람이 반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급장, 반장은 하나도 주지 않고 모두 머저리 같은 왜놈들이 차지했습니다. 왜놈들은 우리말과 우리 역사, 우리 국기, 우리 이름까지 못쓰게 하니 젊은 나이에 왜놈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매일 싸우고 왜놈 선생한테 기합을 받았습니다. ” 이 땅의 한국인이라면 누군들 이런 울분이 없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한 것, 해방과 자유를 준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하신 것처럼, 우리도 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것을 잊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한 학기 만에 해방이 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신사참배 문제가 떠오릅니다. 제가 평양에서 다닌 산정현 교회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본거지였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서시던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7년 동안 극심한 고초를 당하다가 안타깝게도 해방되기 몇 달 전에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전도사님도, 방계성 장로님을 비롯한 여러 장로님들도 감옥에 가시고, 제 어머니도 피해 다니셨습니다. 저는 비록 어렸지만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죽도록 충성하리라” 이런 찬송을 부르며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일제는 학생들에게도 동방요배(東方遙拜)를 강요했습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일본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에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하고 배웠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또 한 명이 저 쪽에 서 있는데 제 누이였어요. 우리 둘은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모두 다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들키지 않았습니다.
지금 평양 김일성 동상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 신사(神社)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는 전차는 모두 그 앞에 멈춰서고 승객들이 신사를 향해 절을 하고 나서야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저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교회 어른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 전차 안에서도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서 자기 나라 말을 못하고, 자기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 이름을 쓰지 못하는 것은 매우 기분 나쁜 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과거의 이런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더욱 깨우쳐 다시는 이와 같은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미독립선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독립선언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아주 훌륭한 설교를 들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절마다 기독교적, 성경적,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33명의 서명인 가운데 16명이 목사님, 장로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 선언문에는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 마태복음, 요한복음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그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가 정확하게 들어있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문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반 만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 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를 두루 펴 밝히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움직임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움이니, 이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지났는지라, 우리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이며, 겨레의 존엄과 영예가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위협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체모가 도리어 짓눌려 시든 것을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이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도록 이끌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고,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물려 온 터전을 식민지로 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적음을 꾸짖으려 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을 갖지 못하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가릴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 때의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으뜸으로 돌아오게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의 요구로서 나온 것이 아닌 두 나라의 병합의 결과가 마침내 한때의 위압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한 뜻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 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를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리요?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지난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 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 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은밀히 우리를 지키며,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공약 3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이 선언문을 읽은 제 반응은 “아멘!”입니다. 이런 훌륭한 생각과 사상을 가진 선조들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편적 사상, 성경적 기독교 가치가 분명하게 표현된 이 선언문의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도 너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진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그런 고통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정치는 사색당파가 서로 물고 뜯으면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힘이 없는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막아 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에 정치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네가 하니까 나는 반대야!”라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뭉치고 정당이 협력해서 나라를 강하게 세우려고 함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다른 나라가 보면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100년 전과 똑같습니다. 그때는 그나마 우리나라가 한 덩어리였지만 지금은 두 덩어리에, 북쪽은 북쪽대로 남쪽은 남쪽대로 정부와 국민이 갈등하고 있습니다.
3. 1절 이 날, 우리나라의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독립선언문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꿈을 꾸고 새로운 비전을 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힘, 경제적인 힘, 교육적인 힘, 과학적인 힘, 군사적인 힘, 윤리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슴속에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 분이 우리의 가슴을 펴 주시고 넓혀 주시고 높고 깊게 하셔서 우리 속에서
3. 1운동 당시 솟구쳤던 엄청난 새로운 힘들이 솟아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 정도 된 것은 사실 교육의 힘이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기틀을 세운 세대가 누구입니까? 우리 세대입니다. 우리 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6. 25사변을 겪으며 학교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시절에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를 팔고 논을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바로 교육의 힘입니다. 이 땅에 무슨 자원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 국민의 두뇌요 우리 젊은 자녀들의 두뇌입니다. 두뇌를 개발하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부모들도 열심히 시켜서 이 땅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세계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우수한 리더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살았을 때 모란봉에서 군인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동강 모래사장에서는 비행기 폭격 훈련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저 ‘군사훈련 하나 보다’하고 재미있게 구경했습니다. 남한을 침략할 준비인 줄은 전혀 몰랐지요. 북쪽은 완전무장이 되어 있었지만 남쪽은 어땠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미국인들이 6. 25 당시에 찍은 필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군은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되자 한국 땅에서 철수했다고 합니다. 왜?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미국이 쏘련, 중공, 북쪽과 한바탕 또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남한에 미군과 무기가 없으면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 생각을 못할 것이라 여기고 철수해버렸다고 합니다. 남쪽은 미군도 없고 무기도 없는 맨손이 되었습니다. 북한이 그것을 알지요. 그것은 마치 침략 초청장과 같은데 왜 침략을 안 하겠습니까! 미군은 철수하고 남한에 남은 무기는 하나도 없으니 북한에게 통일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도록 여건을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때도 6. 25때도 우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힘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근에 아부다비에 원자력 수출을 시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부의 이동을 통하여 더 많은 축복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독립선언문에서 말하는 힘은 아직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변국가인 중국은 경제와 군사대국으로, 일본 역시 경제와 군사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역사적인 안목을 주셔서 이 나라를 강력하게 만드는 새로운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적이 우리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가 침략을 합니다. 독립선언서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는 일본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길 정도로 허약한 나라를 만들어서 온 민족을 고생하게 했으니 스스로 채찍질해야 합니다.
3. 1절을 맞이한 지금도 우리의 지도자들과 국민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부다비의 원전수출로 인하여 100만대의 현대 소나타 차를 파는 효과가 있다고 떠드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슬람교가 모래사막의 여우처럼 달려들어 우리의 기독교를 허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일본 대신 아랍입니다. 우리의 태도를 바꿔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와 후손들이 이 땅에서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살면서 외세에 무릎을 꿇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자유와 진리와 사랑 속에서 힘차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권을 빼앗긴 결과는 죽도록 고생하는 것입니다.
독립선언문에도 “생존권을 빼앗겼다”, “정신상의 발전의 장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창의력이 말살됩니다. 노예근성이 생기고 정신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비가시적이지만 정신이 발달 돼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제대로 발전합니다. “민족의 존엄성과 명예에 손상을 입었다”,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억울했다”, “눈앞에 고통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국권을 잃은 민족의 모습입니다. “가엾은 아들 딸들”이라 했고 “부끄럽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약하고 사분오열되었기 때문에 민족과 국가와 자손들에게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정치적인 참된 자유는 영적인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사탄이 인간을 침략하여 죄성과 파괴를 심어 놓았고, 그 결과 인간은 사탄의 독재, 죄성의 독재 아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도 영적인 문제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심을 아는 우리의 가슴에 영적인 자유의 운동이 일기를 원합니다. 영적 쇠사슬, 지적 쇠사슬, 정서적 쇠사슬, 관계의 쇠사슬, 육체적, 환경적 이 모든 사슬에서 벗어서 영적, 육적, 정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건강한 개인과 나라가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십시다. 그 중심에 진리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참된 자유를 누리면 속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활짝 열리면서 우리 속에서 창의력과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원자폭탄은 나쁜 것이지만 원자력 에너지는 고마운 것입니다. 이제
3. 1절을 보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자력 수출을 통하여 잃어버린 광개토대왕 시대의 영토를 살 수 있을 만큼 700조원의 부의 이동을 남한에 주신다고 하니 예수 십자가의 사랑의 생각이 분명해지고 앞이 보이고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우리 모두 진리 안에서 참된 내면의 자유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내면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워 빙그레 웃는 얼굴에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창의력이란 지식기반을 사용해야 합니다. 인도의 타고르 시성이 말한 대로 동방의 등불로서 원자력 에너지가 전 세계로 넘쳐 대체 에너지가 개발될 때까지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 나라가 어질게 이웃과 화합하는 초일류 대한민국으로 당당한 나라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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