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참된 자유
본문
한강 물에 수녀하고 국회의원 둘이 빠졌는데 구조 대원이 들어가더니 약한 수녀를 먼저 건질 줄 알았는데 국회의원을 먼저 건졌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국회의원을 물에 오래 놔 두면 한강물이 심각하게 오염됩니다”
해마다
3. 1절이 되면 많이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유관순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속에 갇혀서도 만세부르다 푸른하늘 그리며 숨이졌대요.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불러봅니다.
지금도 그목소리 들릴듯하여 푸른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의 노래입니다.
3. 1절이 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유관순 누나죠?
유관순 누나는 1902년 3월 15일 천안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금 나이가 105살이 되셨나요?
할머니도 한참 할머니이신데, 영원한 우리의 누나가 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일생
1902. 3. 15 천안군 병천면 용두리 출생
1916. 3. 5 이화학당 보통과 입학
1919. 3 이화학당 고등과 입학
1919. 3. 1 3. 1독립만세운동 참가
1919. 4. 1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일본관헌에게 체포,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 구속 (수형번호 91번), 공주감옥으로 송치
1919. 8. 1 서대문형무소로 이감 (법정모독죄 가중으로 7년형)
1920. 10. 12 수감중 옥중에서 고문에 순국
1920. 10. 14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
1962. 3. 1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추서
유관순 누나는 1919년 3월 1일에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삼일절 만세 운동을 했고 4. 1일 아우네장터에서 만세 운동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서 수인번호 371번을 가슴에 달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1920년 10월 12일, 옥중에서 수많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을 했습니다.
88주년 3. 1절 기념주일로 지키면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당시 미국 기독교연합회 동양문제연구회 보고에 의하면 기독교인만이 참혹한 식민정책에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1600만 인구 중에 20만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1. 5%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민족지도자로 훌륭하게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임진왜란때부터 시작된 일본의 침략근성은 드디어 1876년 한일 수호조약으로 시작하여 그후 1904년에 한일의정서 교환이라는 것을 통해서 더욱더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일본군의 작전편리를 위해서 토지와 인력을 징발 당했습니다. 그 후 1년후인 1905년 11월28일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외무대신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우리의 국왕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또 대신들을 매수해서 체결한 늑약입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해 준다는 명분아래 이 나라 외교의 행정 일체를 다 간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을사조약을 을사보호조약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 후 5년후인 1910년 소위 한일합병을 통해서 이 나라를 완전히 식민지화했습니다. 국토, 국권, 국어도 다 빼앗았습니다. 그 후 부터 우리 민족을 향한 일본의 만행은 너무도 잔혹했습니다.
무자비한 인권탄압이며, 곡물과 노동수탈 등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 백성들은 드디어 1919년 3월1일에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마침 고종황제가 승하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계기로 해서 나라 잃은 이 백성은 거룩한 분노를 폭발합니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에 항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자비한 살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과 애국지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 운동은 일본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독립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독립운동의 정신과 열기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계속 불타 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해에 망명정부를 세웠습니다. 독립군을 조직해서 끈질기게 일본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온 세계와 유엔에 독립을 호소해서 마침내 1945년에 광복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8. 15광복은 이 민족이 3. 1운동 때 뿌렸던 애국의 씨앗이 맺은 아름다운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으로 나오다가도 태도를 돌변하여 망언을 일삼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에 대하여 사죄나 반성보다 오히려 왜곡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 시네마현 스미타 노부요시 지사가 2001년2월27일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 고 주장했습니다.
스미타 지사는 이 날 “시네마현 의회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우리(일본)의 영토이며 시네마현 5개 촌에 속해 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해 일본이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은 진정으로 유감이다” 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2007년 3월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시 우리가 일본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반성과 민족적 단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당했던 그 이유를 살펴보고 다시는 불행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국경일 중에서도 3. 1절과 8. 15광복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3. 1운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한국교회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국교회가 애국의 선봉에 서 있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문과 죽음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두 국경일이 자유와 해방이라는 기독교 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3. 1운동은 민족의식과 신앙이 맞물려 있습니다.
예배의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지, 일본의 천왕이 아니며,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불의의 세력과 싸우며 자유를 얻기 위하여 항거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본만 물러가면, 자유가 성취되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자유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눅4:18에 나사렛회당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며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이 일이 오늘 너희에게 성취되었다고 하셨습니다.
88주년 3. 1절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참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 보며 은혜 받겠습니다.
1. 속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요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찬송가383장 2절에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를 얻었네” 즉 겉사람은 부자유하나, 속사람은 자유하다는 말입니다.
이 속사람은 그 누구도 속박할 수 없고, 스스로 자유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는 죄와 사망과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고 따르면 진리를 알게 되며, 그 진리가 자유케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자유한데 무슨 자유를 또 주느냐?” 고 반발하는 유대인에게 말씀을 하셨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또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케 해야 참으로 자유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IS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엄한 율법을 받으면, 죄를 안 짓고 의롭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롬7:9~10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 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오늘날도 법이 약해서 죄가 많다고 해서 법이 강화되면, 죄가 없어질 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율법과 동시에 속죄제사 제도를 주셨습니다.
요1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 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라” 고 했다.
성도는 양심의 자유를 누림으로, 그 속사람이 자유케 됩니다. 그러나 이 양심이 죄를 물리치거나, 이겨내는 능력은 미약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가 연약함으로 죄에서 넘어지는 것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신을 좇아 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게 되고, 성령충만 하여 성령인도를 받을 때 그 때 비로소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할렐루야!
2. 그 겉사람도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 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우리 몸이 자유를 누리는 생활을 하려면,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삼하23:13~18 말씀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 다윗의 군대는 산성에 진쳤고, 적군은 베들레헴에 진을 쳤습니다.
다윗은 자기 고향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누구가 내 고향 저 성문 곁의 우물물을 내게 마시게 할까?” 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왕의 심복 중 3인의 용사가 많은 상처를 입고 기진한 채 한 병의 물을 가져왔습니다.
‘산성에 물이 떨어져 진중이 목마른데 웬 물인가?’ 하고 감짝 놀랐습니다.
“왕의 말씀을 듣고 적진을 격돌하여 베들레헴 성문 옆 우물물을 길어 온 것입니다”
3명의 병사들은 다윗왕의 혼자말을 듣고 자원하여 베들레헴까지 가서 물을 길어왔습니다.
왕은 떨리는 손으로 그 물병을 받아 들고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악한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는 물이 아니오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3인의 피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여호와 하나님의 단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는 모든 군인들은 사기가 진작되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 임금에 그 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만약 왕이 3인의 용사에게 물을 떠오라고 명령하였다면, 그리고 만약 3명의 용사가 생명을 걸고 떠온 물을 왕이 혼자 다 마셔 버렸다면 어떠했을까?
사람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자발적으로 봉사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에 매어 있을 때, 우리의 생활은 부자유스럽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먼저 위해주고 내가 먼저 희생 봉사할 마음이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남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속박하고 있는 죄와 저주와 사망과 율법에서 해방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진실한 회개가 이루어져야합니다. 그때 양심의 자유와 영혼의 진정한 자유가 찾아 오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인의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종된 자세가 되어 남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평안과 자유를 줍니다. 뺏고 손해 끼치고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해마다
3. 1절이 되면 많이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유관순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속에 갇혀서도 만세부르다 푸른하늘 그리며 숨이졌대요.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불러봅니다.
지금도 그목소리 들릴듯하여 푸른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의 노래입니다.
3. 1절이 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유관순 누나죠?
유관순 누나는 1902년 3월 15일 천안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금 나이가 105살이 되셨나요?
할머니도 한참 할머니이신데, 영원한 우리의 누나가 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일생
1902. 3. 15 천안군 병천면 용두리 출생
1916. 3. 5 이화학당 보통과 입학
1919. 3 이화학당 고등과 입학
1919. 3. 1 3. 1독립만세운동 참가
1919. 4. 1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일본관헌에게 체포,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 구속 (수형번호 91번), 공주감옥으로 송치
1919. 8. 1 서대문형무소로 이감 (법정모독죄 가중으로 7년형)
1920. 10. 12 수감중 옥중에서 고문에 순국
1920. 10. 14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
1962. 3. 1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추서
유관순 누나는 1919년 3월 1일에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삼일절 만세 운동을 했고 4. 1일 아우네장터에서 만세 운동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서 수인번호 371번을 가슴에 달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1920년 10월 12일, 옥중에서 수많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을 했습니다.
88주년 3. 1절 기념주일로 지키면서,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당시 미국 기독교연합회 동양문제연구회 보고에 의하면 기독교인만이 참혹한 식민정책에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1600만 인구 중에 20만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1. 5%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민족지도자로 훌륭하게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임진왜란때부터 시작된 일본의 침략근성은 드디어 1876년 한일 수호조약으로 시작하여 그후 1904년에 한일의정서 교환이라는 것을 통해서 더욱더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일본군의 작전편리를 위해서 토지와 인력을 징발 당했습니다. 그 후 1년후인 1905년 11월28일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외무대신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우리의 국왕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또 대신들을 매수해서 체결한 늑약입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해 준다는 명분아래 이 나라 외교의 행정 일체를 다 간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을사조약을 을사보호조약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 후 5년후인 1910년 소위 한일합병을 통해서 이 나라를 완전히 식민지화했습니다. 국토, 국권, 국어도 다 빼앗았습니다. 그 후 부터 우리 민족을 향한 일본의 만행은 너무도 잔혹했습니다.
무자비한 인권탄압이며, 곡물과 노동수탈 등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 백성들은 드디어 1919년 3월1일에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마침 고종황제가 승하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계기로 해서 나라 잃은 이 백성은 거룩한 분노를 폭발합니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에 항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자비한 살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과 애국지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 운동은 일본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독립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독립운동의 정신과 열기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계속 불타 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해에 망명정부를 세웠습니다. 독립군을 조직해서 끈질기게 일본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온 세계와 유엔에 독립을 호소해서 마침내 1945년에 광복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8. 15광복은 이 민족이 3. 1운동 때 뿌렸던 애국의 씨앗이 맺은 아름다운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으로 나오다가도 태도를 돌변하여 망언을 일삼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에 대하여 사죄나 반성보다 오히려 왜곡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 시네마현 스미타 노부요시 지사가 2001년2월27일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 고 주장했습니다.
스미타 지사는 이 날 “시네마현 의회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우리(일본)의 영토이며 시네마현 5개 촌에 속해 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해 일본이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은 진정으로 유감이다” 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2007년 3월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시 우리가 일본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반성과 민족적 단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당했던 그 이유를 살펴보고 다시는 불행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국경일 중에서도 3. 1절과 8. 15광복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3. 1운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한국교회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국교회가 애국의 선봉에 서 있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문과 죽음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두 국경일이 자유와 해방이라는 기독교 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3. 1운동은 민족의식과 신앙이 맞물려 있습니다.
예배의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지, 일본의 천왕이 아니며,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불의의 세력과 싸우며 자유를 얻기 위하여 항거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본만 물러가면, 자유가 성취되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자유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눅4:18에 나사렛회당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며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이 일이 오늘 너희에게 성취되었다고 하셨습니다.
88주년 3. 1절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참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 보며 은혜 받겠습니다.
1. 속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요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찬송가383장 2절에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를 얻었네” 즉 겉사람은 부자유하나, 속사람은 자유하다는 말입니다.
이 속사람은 그 누구도 속박할 수 없고, 스스로 자유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는 죄와 사망과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고 따르면 진리를 알게 되며, 그 진리가 자유케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자유한데 무슨 자유를 또 주느냐?” 고 반발하는 유대인에게 말씀을 하셨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또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케 해야 참으로 자유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IS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엄한 율법을 받으면, 죄를 안 짓고 의롭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롬7:9~10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 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오늘날도 법이 약해서 죄가 많다고 해서 법이 강화되면, 죄가 없어질 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율법과 동시에 속죄제사 제도를 주셨습니다.
요1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 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라” 고 했다.
성도는 양심의 자유를 누림으로, 그 속사람이 자유케 됩니다. 그러나 이 양심이 죄를 물리치거나, 이겨내는 능력은 미약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가 연약함으로 죄에서 넘어지는 것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신을 좇아 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게 되고, 성령충만 하여 성령인도를 받을 때 그 때 비로소 양심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할렐루야!
2. 그 겉사람도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 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우리 몸이 자유를 누리는 생활을 하려면,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삼하23:13~18 말씀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 다윗의 군대는 산성에 진쳤고, 적군은 베들레헴에 진을 쳤습니다.
다윗은 자기 고향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누구가 내 고향 저 성문 곁의 우물물을 내게 마시게 할까?” 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왕의 심복 중 3인의 용사가 많은 상처를 입고 기진한 채 한 병의 물을 가져왔습니다.
‘산성에 물이 떨어져 진중이 목마른데 웬 물인가?’ 하고 감짝 놀랐습니다.
“왕의 말씀을 듣고 적진을 격돌하여 베들레헴 성문 옆 우물물을 길어 온 것입니다”
3명의 병사들은 다윗왕의 혼자말을 듣고 자원하여 베들레헴까지 가서 물을 길어왔습니다.
왕은 떨리는 손으로 그 물병을 받아 들고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악한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는 물이 아니오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3인의 피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여호와 하나님의 단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는 모든 군인들은 사기가 진작되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 임금에 그 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만약 왕이 3인의 용사에게 물을 떠오라고 명령하였다면, 그리고 만약 3명의 용사가 생명을 걸고 떠온 물을 왕이 혼자 다 마셔 버렸다면 어떠했을까?
사람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자발적으로 봉사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이기적인 생각에 매어 있을 때, 우리의 생활은 부자유스럽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먼저 위해주고 내가 먼저 희생 봉사할 마음이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남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속박하고 있는 죄와 저주와 사망과 율법에서 해방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진실한 회개가 이루어져야합니다. 그때 양심의 자유와 영혼의 진정한 자유가 찾아 오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인의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종된 자세가 되어 남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평안과 자유를 줍니다. 뺏고 손해 끼치고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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