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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전쟁을 모르는 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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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독립을 외치며 독립운동을 할 때 우리 민족은 하나였습니다. 영남, 호남이 따로 없고, 아날로그 시대니, 디지털 시대니 하는 세대 간 차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사분오열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입니다.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균열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런 세대에 사사기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져줍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나라가 국가형태와 체계를 갖추기 전, 약 40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사, 요즘 말로 재판관 같은 지도자를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과도기적인 때의 일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 사사기서입니다. 이때는 '전쟁을 아는 세대'와 '전쟁을 모르는 세대' 서로 다른 이 두 세대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아는 시대는 한마디로 일과 전쟁만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낸 세대입니다. 반면에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가나안에서 태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도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부모가 땀과 피를 흘려 뿌린 씨앗을 거두면서 행복하게 자라고, 신나게 인생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이 보기에 신세대야말로 정말 위험하고 불안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기성세대야 말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보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을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신세대 편에 있었습니다. 구세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어서 새로운 역사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시대가 2, 3백 년 흐르면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압니까?
삿2:7-10절에 보면 “전쟁을 경험한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를 섬겼는데, 그들이 다 죽고, 전쟁을 모르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하신일도 모르고 여호와를 섬기지도 않았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패배와 수치 부패의 역사입니다. 속된 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나라를 말아먹은 이야기가 사사기입니다. 우리는 사사기에서 역사적인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평안할 때 타락하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가나안을 다 점령하고 손에서 전쟁무기를 놓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맛보게 되자 조금씩 자기들도 모르게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고,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자꾸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있는 이방 잡족 들과 별로 다름이 없는 수준으로 신앙과 도덕성, 선민의식이 낮아지고 살아지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는 애굽에서 태어나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 11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두지휘할 때는 거의 85세에 가까운 노인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면 가나안에 들어가 약 2, 30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광야에서 태어나 광야에서 2, 30년 살던 사람은 가나안 전쟁을 치를 때 20대, 30대의 장정들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사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110세가 되었을 때는 전쟁을 아는 그들이 5, 60대로 기성세대 나라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그들을 앞에 놓고 이렇게 설교합니다.
수23:16 “만일 너희가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오늘 내일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지도자가 마지막으로 후손들에게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왜 이런 불길한 말을 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볼 때 “전쟁을 아는 기성세대”가 영적으로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평안해지니까 벌써 삶이 해이해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서 냄새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겠기에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는 불안이 여호수아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전쟁을 아는 기성세대는 극심한 가난을 딛고 일어나 경제대국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한 알의 밀알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일만했을 뿐 여가가 없었습니다. 언제 취미생활을 했습니까? 언제 세계를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까? 일만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세대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가 2, 30년 전부터 살만하고, 여유가 생기고, 사는 재미를 맛보자 변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하고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신앙이 유일한 원칙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하겠다는 삶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풍요로워지자 신앙의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생활이 따로 노는 모순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과 배고픈 고생을 모르는 후세들이 볼 때 기성시대는 이중인격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갈등하고 있습니다.

 내 신앙생활이 내 자녀와 후배들이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면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고 혼란해질 때 미스바광장에 모여 금식하며 가슴을 치며 회개한 것처럼 우리들도 회개하고 신앙과 생활을 재건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믿고 무릎 꿇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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