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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청년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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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자 5월 셋째주일인 청년 주일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부활주일로부터 50일째 되는 주일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주일이 3월 달에 있느냐 4월 달에 들어있느냐에 따라 성령강림주일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성령강림주일과 청년주일이 겹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과 청년주일을 맞이하여 본문에 나타난 "청년의 때"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청년의 때는 어떠한 때입니까
1) 청년기는 위기의 시기입니다.
교육학에서는 청년시기를 폭풍우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청년시기에는 고민도 많고 갈등도 많은 시기입니다. 폭풍우와 같은 고민과 갈등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번민의 시기 또는 근심과 방황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마19:16-22 -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까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 것이니라. 십계명중에 이웃사랑에 대한 부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청년은 이 모든 것을 지켰습니다. 아직 무엇이 부족합니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게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이때 청년이 재물이 많음으로 이 말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청년들은 결단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경험이 적기 때문에 자연히 망설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도 요단을 건넌 청년들에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든 신이든지 혹 너희의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했습니다. 청년의 시기는 결단력이 부족한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우왕 자왕 하기도 합니다. 또한 청년의 시기는 선택하고 결단해야할 일이 많아 근심하며 방황하는 시기입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생계수단을 삼으며 보람되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배우자를 만나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하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놓고 심각한 선택을 하는 일등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인생과제를 해결하는데는 부모와 스승과 그리고 목회자와 친구들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은 결국 자기가 져야하기 때문에 더욱더 심각한 고민과 갈등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청년의 시기를 잃어버린 시기라고도 합니다. 청년의 시기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시기이기 때문에 아이로서의 귀여움도 받지 못하고 보호도 받지 못하며 어른으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설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슨 도움을 요청하면 네가 어린애냐고 하고 좀 버릇없이 굴면 젊은 놈이 건방지게 군다고 치부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기를 위기의 시기 또는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청년의 때에 좌절하기도 하고 탈선하기도 하는 위기의 때라고 합니다.
2) 제2의 탄생기
청년기는 지금까지 말한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무엇이라 해도, 희망의 시기입니다. 청년기는 위기의 시기일 뿐아니라 기회의 시기요 찬스의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청년시기를 제 2의 탄생기라고도 말합니다. 정신적으로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흑인민권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는 젊은 학생시절에 양화점에 들어갔다가 그 양화점 주인인 흑인이 남의 눈이 두려워 커튼을 치고 얼굴을 가리우고 발을 재는 것을 보았습니다. 청년 마틴 루터킹은 그 커튼을 열어제치면서 외쳤습니다. 나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커튼을 없애는데 내 생애를 받치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 뒤에 킹 목사의 생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는 청년기에 제 2의 인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로마의 영웅 시저는 "나는 왔노라" "나는 보았노라" "정복했노라"라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여러분은 어디로 갑니까 무엇을 보고있습니까 무엇을 정복하기 위해 힘과 열정을 쏟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여러분의 시대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너는 일어나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지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십시요.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눈에 세계가 보입니까 여러분은 세계를 믿음과 사랑으로 정복할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가족, 내 형제, 내 몸만 보입니까 대통령의 아들로서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하는 청년에게 고작 호화로운 집, 몇 십억의 돈밖에 안보이더란 말입니까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야망의 등불은 꺼지고만 것입니까
젊은 니체가 한번만 섬광을 보여달라 꼭 한번만 그 어떤 섬광을 보야 달라고 절규하는 동안 젊은 존 녹스는 타락하고 부패한 스코틀랜드를 내려다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게 죽음을 주옵소서 라고 생명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 우리 한국교회의 청년들은 무엇을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방초교회 청년들은 지금 어떠한 비젼을 보고 있습니까
젊음의 시기는 금속에 비유하면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금속과 같습니다. 식기 전에 어떠한 틀에 부어야 합니다. 식어지고 굳어진 다음에 정교한 조각물이나 예술품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틀에 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안됩니다. 금속은 식어지면 다시 용광로에 녹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식어진 다음에 다시는 용광로에 들어가 녹일 수 없습니다. 뜨거운 열기가 있는 젊은 때 좋은 틀에 부어지지 않고 식어지면 결코 좋은 작품과 예술품이 되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여러분의 열기 있는 인생을 좋은 틀에 부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기는 식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한 것입니다.
청년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청년의 때는 긴장하고 정신차려야 할 때입니다. 비젼을 가지고 달리고 뛰어야 할 때입니다.
2. 여호와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시기
젊은 청년의 때를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게 보내고 제 2의 탄생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1) 청년의 때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할 때입니다.
전도자가 여기서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청년의 때가 방종과 육체적 정욕을 자기만을 만족시키는 때가 아니라 오히려 청년의 때의 힘과 능력과 재능과 열성을 가지고 창조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시기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젊음의 시기에서부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을 위한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막을 떠나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같이(출33:11) 성전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며 혹시 교회를 떠났더라도 성전으로 다시 돌아와 믿음중심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청년의 때는 나의 주인이 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의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젊은 청년의 때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할 때만이 그의 삶은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늦기 전에 삶의 방향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2)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년의 시기는 사랑이라는 말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배우고 깨달아 그 사랑으로 충만케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기를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기를 구하노라(엡3:18-19)고 했습니다.
여기서 ① 사랑의 넓이란 전 인류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피조물인 만물까지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폭넓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청년의 시기는 사랑의 넓이를 확장해야 할 시기입니다.
② 사랑의 길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청년의 시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자비가 한이 없으신 사랑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사랑은 연필로 써주세요" 하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사랑은 결코 연필로 써서 않됩니다.
③ 사랑의 높이란 그의 소망을 주시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④ 사랑의 깊이란, 희생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을 배워서 청년기에서부터 희생적 사랑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나를 희생하여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참 행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는 우리로서는 측량할 수 없고 상상을 초월합니다.
청년의 때에 이러한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고, 인간을 존중히 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고 남의 인격과 권익을 나의 것 못지 않게 소중히 여기는 삶을 길러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사리에 밝고 공정심이 강해야 하며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사회적 존재로서 서로 협동하는 조직생활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의식을 길러야 합니다.
청년의 때 남의 은혜에 감사히 여기고 기회가 있을 때에 이를 보답할 줄 아는 미덕을 갖춘 인격으로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청년의 때에는 마음을 넓혀 많은 것을 포옹하고 창의적이고 진취적 사고를 길러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이러한 청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시119:9 -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고 했으며,
시119:101 -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라고 했습니다.
시119:11 -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했고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19:7-11)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라고 했습니다.
청년의 시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도움을 받을 때만이 온전하고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청년의 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해야 할 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한결같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청년 야곱도 돌 베개를 베고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를 놓고 오르락 내리락하며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웅대한 비젼을 보았으며(창28:10-15) 청년 요셉은 여호와의 신이 감동된 자로서(창46:37) 모든 시련과 유혹을 극복하고 애굽 총리대신이 되어 지혜롭고 공정한 통치자의 본문을 다하여 자기가족과 애굽백성을 7년 기근으로부터 구원했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성령충만한 자로서(신34:9) 모세의 후계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자기민족을 가나안땅에 인도하여 정착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30세 청년으로 성령 충만하여 이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소 십자가에서 구원을 대업을 성취하였습니다. 주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고 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 청년의 때의 위기와 시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3) 심판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장에 보면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희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고 했습니다.
청년기부터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것은 사회나 기성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또는 법관에서 법에 의해서 심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행위를 공정하게 심판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은밀한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젊어서부터 기억하고 살아야 올바른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심판하신다함은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일한 대로 갚아주시고 믿음대로 되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요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청년의 때는 위기와 희망과 찬스의 제 2의 탄생기입니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가 되시고 사랑과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하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영적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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