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스승과 제자(마 9:35-10:8)
본문
오늘은 교회력으로는 성령강림절입니다. 국가적으로는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교회는 오늘 성령강림절과 교사주일로 지킵니다. 성령강림절과 교사주일에 맞추어 오늘 설교의 주제는 좋은 교사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교사들이 본받아야 할 최고의 교사입니다. 어떤 점에서 예수님이 최고의 교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사역 목표를 가지셨습니다(35절). 그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약한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육신도 건강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또 하나 돋보이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아셨다는 것입니다(37절).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3년간만 사역하도록 허락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안에서만 사역하셨습니다. 대신에 자신의 사역을 이어받을 자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훈련하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12사도입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에 헌신해야 할 자들이 사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세계의 복음화와 교회 건설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 등입니다. 그들이 이 충차대한 사명에 충성하도록 예수님께서 그들을 3년간 심혈을 기울여 양육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3년간 제자들을 양육하시기 위해서 공동체 하나를 만드셨다는 점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생활했습니다.
(막 3:14-15)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다는 것은 숙식을 같이 했다는 말씀입니다. 3년가량 동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식이었습니다. 그냥 함께 살다 보면 저절로 제자들이 잘 성장할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우선 숫자가 적어야 합니다. 즉 제자훈련의 가장 좋은 환경은 소그룹입니다. 예수님께서도 12명의 사람들만 선택하셔서 소그룹 공동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소그룹 공동체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가족공동체였습니다. 가족공동체가 되지 않고는 제자들이 충실하게 성장할 수 없음을 예수님이 잘 아셨습니다.
물론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서 성숙한 제자가 되는 것,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주일 공동예배에 빠지지 않고, 목사의 설교를 경청한다고 해서 성숙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소그룹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제자가 되려면 소그룹 안에서 함께 생활해야 합니다. 소그룹 안에서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것 신기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걷는 모습도 같습니다. 목소리도 같습니다. 습관도 닮아갑니다. 특히 못된 것은 더 잘 따라 합니다. 하지만 좋은 것도 보고 배웁니다. 소그룹의 강점은 보고 배우는데 있습니다. 그래야 아주 자연스럽게 자랍니다. 성도가 가장 알차게 자라는 가장 적합한 환경이 소그룹입니다. 소그룹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환경입니다.
목사인 제게 교회를 향한 소원이 무엇인지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되려면 교회의 거룩성과 사회성과 공동체성이 바르게 구현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성이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회의 도덕성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교회의 사회성이란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성 구현을 단순화시키면 영혼구원과 사회봉사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교회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교회의 공동체성이란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공동체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교회의 공동체성이 무너지면 교회의 거룩성과 사회성 구현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콩가루 집안을 생각해보세요. 가족들은 서로에게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하나가 안 됩니다. 항상 이기적으로 자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머리가 산란해지고 피곤한데 가능한 밖에서 돌다가 늦게 들어옵니다. 세상과 다른 바 없는 집안에 꼭 들어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줄만한 그 어떤 것도 집안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무력한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가정의 해체는 사회의 해체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교회가 먼저 하나님의 가족공동체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은 공동체성의 회복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지상대명령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불신자를 구원하여 성숙한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확인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 일에 주력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에 충실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먼저 구비해야 할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공동체는 세계복음화의 기초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가족공동체 없이는 세계의 복음화는 실현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을 이루기 위한 교회의 가장 적절한 환경은 하나님의 가족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나의 참된 제자인 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여 제자 삼기 위해서는 먼저 너희들부터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12명의 제자 공동체는 모든 교회가 추구해야 할 하나님의 가족공동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명으로 구성된 제자공동체에 헌신하셨습니다. 그 공동체의 영적인 부모가 되셨습니다. 교사와 목자가 되셨습니다. 3년 동안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에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아주 투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제자 훈련이었습니다.
오늘 교사주일입니다. 누가 교사입니까?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의 교사입니다. 교회에서의 교사는 교역자, 목자, 교회학교의 교사들입니다. 청년들은 미래의 교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교사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최고의 교사이신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저는 세 가지만 강조하려고 합니다.
1. 교사는 예수님처럼 제자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가장 좋기는 예수님처럼 제자들과 한동안 같이 숙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야말로 가장 좋은 여건을 가진 교사들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도 영적인 부모 역할을 잘 하려면 제자들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주일만 아니라 평일에도 이런저런 건수를 만들어서 만나야 합니다. 만나지 못하면 전화로 대화하든지 카톡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의 수는 소수여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심혈을 기울어야 할 것은 소그룹 목회입니다. 반 목회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은 소그룹의 목자(목사)입니다. 여러분이 반 학생들을 잘 목양한다면 예수님의 목회를 그대로 본받아야 합니다.
교사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큰 꿈, 위대한 꿈을 꾸십시오!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방식은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의 작은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모여 큰 꿈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작은 실천이 없다면 그 꿈은 허황된 꿈입니다.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꿈입니다. 오늘의 작은 실천 가운데 교사 여러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그룹 목회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소그룹 목회에 헌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다면 여러분도 따라야 합니다. 건강한 소그룹 목회에 생명을 거십시오! 건강한 소그룹 목회란 그냥 제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입니다.
2. 교사는 예수님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자들을 잘 양육하는 좋은 교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라는 뜻인 동시에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하셨던 성령님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당시 성경박사들이었던 서기관들보다도 훨씬 뛰어나셨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약한 자들을 고치셔서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역 면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셨을 뿐 아니라 성품 면에서도 충실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즉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 중에 으뜸가는 열매가 사랑인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오늘 본문 9:36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고 기진한 것을 보시고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목자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보고 배운 것은 사랑의 목양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목양의 결정적인 사건이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같이 사랑의 목양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성령님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교사들도 예수님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좋은 부모 좋은 교사가 됩니다. 그럴 때 자녀들과 제자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습니다.
3. 교사는 예수님처럼 기도생활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충만을 간구하도록 도전할 수 있습니다.
(눅 6:12-13)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2명의 제자를 사도로 세우시기 전날 밤에 날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3년간 같이 지낼 제자들을 선택하는 일이 아주 중요했을 뿐 아니라 그 제자들이 함께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훌륭한 일꾼들이 되도록 간구하셨을 것입니다.
4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기도의 중요성에 관해 자주 교훈하셨을 뿐 아니라 몸소 기도생활에 헌신하셨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성령님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 간구의 내용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제자공동체가 건실하게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제자공동체가 초대교회의 기초석이 되었고 세계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부모와 교사도 자녀들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들과 더불어 자녀들과 제자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성령님으로 충만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에 생명력과 활력이 상실될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의 미래가 암울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세우려면 반드시 기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상의 말씀을 교회교육의 세 가지 기초 원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교회교육의 목표: 교회교육의 목표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입니다(마 28:19-20).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와 교사들이 주님을 닮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 교회교육의 방식: 가장 효과적인 교회교육의 방식은 소그룹 안에서 보고 배우게 하는 데 있습니다(막 3:14-15). 그러므로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교사들도 반 목회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부모와 교사가 섬김의 본을 보일 때 자녀들과 제자들이 전인격적으로 가장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가정의 행복, 교회의 부흥, 다음 세대들의 건강한 성장은 부모와 교사들의 헌신적인 섬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모와 교사들이 앞장서서 섬길 때 가정과 교회의 미래는 희망찹니다.
- 교회교육의 원동력: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모와 교사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부모와 교사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부모와 교사들이 먼저 예수님을 본받아 자녀들과 제자들을 섬기면, 자녀들과 제자들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하늘의 능력을 간구하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부모와 교사가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가정과 교회에서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의 위력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 여러분, 언제 여러분들이 최고로 행복할까요? 여러분보다 더 훌륭한 자녀와 제자들을 볼 때 최고로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여러분부터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부모와 교사가 되십시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가장 신나는 일은 우리 자신부터 예수님을 닮는 것이며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컴퓨터 켠 후에 바탕화면을 보면 여러 개의 아이콘(형상)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콘을 클릭하면 그 아이콘의 실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실체를 알고자 우리를 클릭할 때 우리에게서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아이콘(형상,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님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님의 제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뜻입니다. 거듭 강조합니다. 부모와 교사가 가장 먼저 이루어야 할 과제는 자녀들과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녀들과 제자들이 우리를 보고 신령한 꿈을 꾸고 거룩한 도전을 받습니다. 하늘의 복과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우리의 자녀들과 제자들에게로 흘러갑니다. 그래야 행복한 부모요 교사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들과 제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열 두 제자의 명단이 실려 있는데 그 명단의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10:2-4). 마태복음은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신 후 약 3-4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기록되었습니다. 대체로 신약성경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여기 열거된 이름의 순서에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초대교회의 건강한 성장에 얼마나 공헌했느냐, 얼마나 복음사역에 진력했느냐, 얼마나 복음 때문에 고난을 감수했느냐에 따라 이름을 나열했다는 것입니다. 동의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회적 위치나 명망을 따라 이름의 순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에 대한 헌신, 복음과 함께 받은 고난의 정도를 따라 그 이름의 순서가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순서입니다. 세상 사람이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아십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른 순서를 보고 많이 놀랄 것입니다. 그 순서는 다름 아니라 얼마나 충실하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실하게 가족들과 교회와 이웃을 섬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훌륭한 부모와 선생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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