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님(마 4:23-25)
본문
내일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고, 오늘은 우리가 스승의 주일로 지키고 있다. 우리 스승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자. 우리가 스승의 은혜를 고맙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분들의 가르침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었고, 또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키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이만한 인격과 성품을 갖추게 된 것이다. 스승은 우리에게 지식만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삶의 지혜도 가르쳐주셨고, 사랑도 가르쳐주셨고, 용기도 가르쳐주셨다.
학창시절, 학교 선생님이 들려주신 말씀 가운데 몇 마디는 아직까지 평생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의 한 마디 가르침은 평생토록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내가 주일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선생님은 장로님이셨는데, 나는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과를 가르치실 때 앞자리에 앉은 내 얼굴에 침이 튈 정도로 열심히 가르쳤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학생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젊은 신사가 묻더란다. “너는 이 다음에 뭐가 되고 싶니?” 이 질문을 받은 학생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때 자신이 왜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는지 본인도 잘 몰랐다는 거다. 그런데 그때 신사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좋은 꿈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한의사가 되는 것은 어떻겠니? 동양의 한의는 아주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처방법만 알면 가난한 사람도 약초를 캐서 쉽게 치료해줄 수 있단다.” 그 신사의 말 한 마디가 이 학생의 마음에 깊이 남아서 훗날 훌륭한 한의사가 되었다는 사연을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다.
스승의 말 한 마디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제자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승은 누구인가? 학교 선생도 우리의 스승이요, 부모도 스승이요, 주일학교 선생도 스승이다. 어떤 면에서는 목자목녀도 스승이요, 교회 목사야말로 영적 스승이다. 뿐만 아니라 앞의 예를 보면 길을 가다가 스쳐 만나는 낯선 사람도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길을 지나다가 우리 아이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너 아주 착하구나!”, “아주 씩씩하네!” 하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던져주는 이름 모를 아저씨 아주머니도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 따뜻함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평소에 우리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훌륭한 스승의 몫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아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참 스승의 모델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스승의 역할은 가르치는 데에 있다.
1.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가르치셨다.
우리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천국복음을 가르치셨고, 진리를 가르치셨고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v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천국복음이었다. 구원의 복음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 학교 선생님도 계시고, 요즘은 학원 선생님도 계시고, 인터넷 강의 선생님들도 계시다. 어린이집 교사가 우리 교회에는 유달리 참 많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사도 있고, 중고등학교 교사도 있고, 대학 교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주일학교 선생님들이야말로 어떤 훌륭한 선생님들보다도 더 훌륭한 분들이시다.
왜 그런지 아는가? 교회 선생님들은 어린 영혼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세상 지식은 배울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천국 복음,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만이 할 수 있다. 목사가 예수영접모임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 주일학교 설교자나 교사가 천국 복음을 전해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의 교사들은 이 세상에 사는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지만, 저들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살 길을 가르쳐주는 복음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선생님들인가! 학교 선생님만 챙기지 말고 교회 선생님도 챙겨라. 누군지도 모르고 1년간 맡기지 있지는 않는가? 영원을 책임지는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져라. 담임교사에 관심을 가져라.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성경구절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생명의 말씀을 가르친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이 말씀은 아이들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용기와 소망과 믿음을 심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학교 선생님도 훌륭하고 여러 선생님들도 훌륭하지만,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지도하는 교회 선생님들이야말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스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분명한 것은 교회 선생님이 들려주신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우리 아이의 가슴 깊이 자리 잡아서, 이 아이들이 인생을 헤쳐나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주고 등대가 되어주고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아 학교 선생님들의 은혜를 감사할 뿐만 아니라, 교회 선생님들의 은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2. 예수님은 행하면서 가르치신 스승이셨다.
스승의 역할은 가르치는 데 있다. 그러나 어떤 자세로 가르치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동창들을 만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꼭 찾아 뵙고 싶은 선생님이 계시다. 만나 뵙고 큰 절을 올리고 싶은 선생님, 가슴에 평생 자리잡은 고마운 선생님이 계시다. 반면에 만나 뵙고 싶지 않은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이 욕 저 욕 다 듣는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가르친다고 다 교육이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말로 가르친다고 교육이 아니고 지식을 가르친다고 교육이 아니다. 반드시 선생된 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가 있다. 그것은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행함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언행일치의 가르침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은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고들 말한다. 참다운 스승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왜냐하면 스승은 제자를 길러내야 스승이다. 제자를 길러내지 못하고 지식인을 길러내는 것은 학원 선생과 수강생의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란 스승의 인격과 삶과 사역을 배워서 그것을 그대로 자기의 제자에게 전수하는 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제자란 “배우고 전수하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님은 참 스승이 되셔서 12제자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계시다. 지금도 계속 제자를 만들고 계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명렁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만들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9:19-20)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는 특별히 행하며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 행하면서 가르치는 것과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언행불일치는 현격히 다르다. 그 결과는 천양지차가 날 것이 분명하다. 목사가 말은 하면서 자신은 행동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그 말씀을 믿고 따르겠는가! 참된 스승은 가르친 대로 자신이 살기를 힘쓴다.
약 2:15-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우리 주님은 생명을 내어주시면서 사랑을 가르치셨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 주님은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섬김을 가르치셨다. 언제나 몸소 실천하시면서 진리의 도를 가르치셨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을 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파워가 나온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무엇을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그렇게 직접 실천하셨든지, 그분의 성품이 그러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그분은 선한 스승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가르치시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강력하게 명령하신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골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이게 성경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스승의 주일을 맞아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요,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이다. 부디 가르치는 일에 여러분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분들이 되길 바란다. 지각이나 결석하지 않는 교사, 공과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교사,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사, 사랑의 마음을 가진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과 학생들을 지도하기를 바란다.
주일학교 학생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서 3~40년 지나서 살아계실 분들은 별로 많지 않다. 한 세대는 가고 다음 세대가 오는 것이다. 오늘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가 되어서 이끌어갈 주자가 된다. 그들을 잘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이다! 지금 울면서 씨를 잘 뿌리면 언젠가 기쁨으로 거둘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
어디 교회 선생님들 뿐이겠는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부모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는 자들인 목사, 목자목녀, 집사, 권사 모두가 새가족들에게는 보고 배우게 되는 신앙의 스승이다. 여러분 모두 무엇이 신앙이고, 무엇이 사랑이며, 무엇이 용서이고, 무엇이 헌신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며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을 감당하기 바란다. 여러분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자녀들과 새가족들이 그 신앙을 그대로 보고 배우고 따라하게 되어 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스승은 없다. 왜냐하면 교회 선생님이나 목사나 목자목녀는 일주일에 한두 시간, 서너 시간을 만나는 관계이지만, 부모는 매일 만나는 관계가 아닌가! 다른 분들은 인생의 일부를 함께 하지만, 부모는 평생을 같이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실천을 보일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치신 스승이시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없는 교육은 훌륭한 인성을 길러낼 수 없다. 사랑을 먹이는 교육이야말로 아이를 훌륭한 인품으로 자라게 한다. 예수님은 온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천국복음을 가르치시고 전도하셨다. 예수님은 가르치되 사랑으로 가르치셨다. 아니 주님은 사랑 그 자체를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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