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효(孝)는 향기로운 예물입니다
본문
지난 4월 12일 저녁, 경찰서에 112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서울 중구 방산시장입니다. 전 경비원인데요. 할머니 한 분이 여기 앉아 계세요. ”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짧은 백발의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요구르트 한 병과 옷가지 몇 벌이 조금씩 나뉘어 담긴 쇼핑백 2개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82세의 나이에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자녀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휴대 전화는 모두 꺼져있었습니다.
집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경찰은 갈 곳 없는 할머니를 따뜻한 방이 있는 인근 경찰 지구대로 옮겨 재워드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가까스로 큰딸(50)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런데 딸의 첫마디는 “왜 오빠를 부르지 않고 날 불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작은아들(53)에게 연락을 취하자 그는 “여동생을 불렀다니 난 안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경찰관 3명이 집까지 찾아가 아들을 임의 동행해 온 끝에 아들 부부와 딸 부부가 경찰서에 모였습니다.
할머니는 2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병으로 큰 아들마저 잃은 뒤 딸 둘과 작은아들의 집을 전전해 왔습니다.
정정한 편에 정신이 맑았던 어머니였지만 자식들은 노모를 서로 모셔 가라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3년 전부터는 다툼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지난 12일, 지난해 11월부터 노모를 부양해 온 큰 딸은 이날 오후 노모의 옷가지를 챙겨 들고 방산시장에 있는 작은오빠의 가게로 찾아가 노모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작은아들 부부는 노모를 다시 여동생의 가게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재단사인 작은아들의 가게는 역시 재단사인 큰딸 가게와 50m 떨어져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다시 노모를 데리고 오빠를 찾아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견디다 못한 노모가 작은아들의 가게를 나와 바깥을 떠돌던 중 아들과 딸 부부는 모두 오후 6시경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갈 곳을 잃고 경비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노모를 이날 저녁 경비원이 경찰서에 신고한 것입니다.
이들 남매는 세련된 옷차림에 손가락엔 번쩍이는 보석반지를 끼고 있었고, 경찰 조사 결과 모두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에서 이들은 “서로가 모셔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 간 것이지 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서로에게 “어머니 좀 잘 모셔라”며 욕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작은아들의 아내는 시누이에게 “유산을 나눌 때는 아들딸 구별이 없더니 어머니는 왜 아들 보고 모시라고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노모는 경찰서 의자에 앉아 이 모든 상황을 말없이 지켜봤습니다.
다가간 기자에게 그는 “내가 오래 산 게 죄지 애들은 아무 죄 없다”고 말했습니다.
“버리다니. 자들은 내보고 이래 가라 저래 가라 안 했심더. 아무 일도 없심더. 자, 이 보소. 이것도 애들이 넣어준 기라. ”
할머니는 쇼핑백 속에 들어 있던 요구르트를 손에 쥐고 달게 마셨습니다.
경찰은 작은아들과 큰딸 부부 4명을 존속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80이 넘으신 노모를 자녀들이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길가에 방치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욱 눈물겨운 것은 그 노모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내가 오래 산 게 죄지 애들은 아무 죄 없습니다”
“버리다니. 자들은 내보고 이래 가라 저래 가라 안 했심더. 아무 일도 없심더.
자, 이 보소. 이것도 애들이 넣어준 기라. ”
자기를 길가에 팽개쳐 버린 자식들을 오히려 끝까지 감싸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찌 이 어머니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일년 365일 내내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효를 다하는 것이 자식의 마땅한 도리임에도 그렇지 못하기에 이런 날을 정해 놓고 이날만이라도 잘해보자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분입니까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늙은이(older man)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
2절에는 “늙은 여자(older women)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꾸짖다’는 말은 ‘주인이 노예를 향하여 퍼붓는 거칠거나 우악스런 질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권하다’는 ‘어떤 깨우침을 주기 위해 곁으로 불러내는 것’으로 권면하다, 위로하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아버지나 어머니를 대하듯이 예의를 갖추어 온유한 태도로 돌보라는 의미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
나이가 드신 어른들 앞에서 일어나서 예의를 표하며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어르신 앞에서 일어서기는 커녕 오히려 무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종종 지하철을 타보면 경로석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젊은이들이 앉아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나이드신 어른이 서 있는데도 쳐다보고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책망을 하자 지하철에서 내리는 노인에게 욕설을 퍼붓고, 밀어서 계단에 굴러 떨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사람됨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당연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올바른 효의 모습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여기서 ‘먼저’ 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은 먼저 육신의 부모님을 섬길 줄 아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나를 잘 키웠든지 못 키웠든지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만든 뿌리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부모를 훼방하는 자, 즉 불효하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 27:16에“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했습니다.
또 출 21:15-17에는 “그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입니다.
무고하게 사람을 살인한 자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거역하고 불순종한 불효자입니다.
그만큼 율법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7장 10-11절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예수님 당시에도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풍습 가운데 ‘고르반 사상’ 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물건- 고르반 하면 아무도 손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했습니다.
부모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드리기 싫으면 ‘고르반’ 하고 땡쳤다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의 고르반 사상을 악용하여 부모 공경하는 일에 소홀한 것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먼저 자기 가족을 잘 돌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자기 가족, 자녀나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믿음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강조하십니다.
즉 부모님을 먼저 바르게 공경할 때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도 잘 섬길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효도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삶으로 효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 된 자로서 어버이를 공경하고 섬기는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느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중풍기가 있으셔서 식사 때마다 번번히 음식을 흘렸습니다.
이에 짜증이 난 며느리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칩니다.
이를 본 아들이 아내를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어머니를 책망합니다.
식사 시간만 되면 음식물을 흘리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나무를 잘라서 무엇인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짐승의 여물통이었습니다.
이들은 여물통에 음식을 담아서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혀로 핥아서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부부의 아들이 나무 조각으로 무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엄마 묻습니다.
“뭘 그리 열심히 만드니”
그러자 아들이 태연하게 말합니다.
“예, 이 다음에 엄마, 아빠가 늙으시면 사용하게 될 여물통을 만드는 거예요”
그제서야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불효막심함을 깨닫고 어머니를 잘 모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보면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효도한다.
내가 불효하면 그들이 배나 더 불효한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대 밭에 왕대가 납니다.
효자 집안에서 효자가 나고, 불효자 집안에서는 불효자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닮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효를 하면 우리도 늙어서 똑같이 불효를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심는 대로 거두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고, 늙어서 효도받기 원한다면 먼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옛 시인은 말합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후회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공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부모님께 효를 행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본문에서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이 바로 효입니다.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로,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 미국의 어느 시골마을에 한 가난한 어머니와 외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낮에는 양계를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의 등록금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하는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아들은 부지런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수석으로 대통령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졸업식장에 입고 갈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었습니다.
행여나 내 꼴이 자랑스런 내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어머니는 말씀합니다.
"얘야, 내가 네 졸업식장에 가기는 가야겠다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갈 수가 없구나. "
어머니의 치맛자락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은 울며 매달립니다.
"내 어머니 아니 계신 졸업식장, 내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바라봐 주지 않는 금메달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내 목에 걸려진 금메달 어머니 목에 걸어드릴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난 3년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할 수 없이 어머니는 졸업식장에 참여했습니다.
답사를 하고 영광스런 메달을 들고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고 한쪽 모퉁이 남루한 옷차림을 한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서 벗어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립니다.
"이 메달은 어머니의 몫입니다. "
이 아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윌슨이 되었습니다.
그가 재임하던 1914년 그는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서 5월 2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했습니다.
이 땅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어버이 날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효의 시작입니다.
둘째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해드려도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불효입니다.
불순종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청개구리처럼 행동합니다.
돌아가신 후 울어보고 후회한 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화목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말 정도의 학력입니다.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은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이런 모욕을 주고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구두를 벗어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창피하고 무안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 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
링컨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떳떳하게 자랑을 합니다.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무슨 일을 하셨든지 간에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부모님의 직업과 삶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못다 이루신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식의 모습이 바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걸 자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이것은 바로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아 보답하는 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예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부모님을 주 안에서 공경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요 향기로운 예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속에 우리를 땅에서 잘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누리게 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서울 중구 방산시장입니다. 전 경비원인데요. 할머니 한 분이 여기 앉아 계세요. ”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짧은 백발의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요구르트 한 병과 옷가지 몇 벌이 조금씩 나뉘어 담긴 쇼핑백 2개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82세의 나이에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자녀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휴대 전화는 모두 꺼져있었습니다.
집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경찰은 갈 곳 없는 할머니를 따뜻한 방이 있는 인근 경찰 지구대로 옮겨 재워드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가까스로 큰딸(50)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런데 딸의 첫마디는 “왜 오빠를 부르지 않고 날 불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작은아들(53)에게 연락을 취하자 그는 “여동생을 불렀다니 난 안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경찰관 3명이 집까지 찾아가 아들을 임의 동행해 온 끝에 아들 부부와 딸 부부가 경찰서에 모였습니다.
할머니는 2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병으로 큰 아들마저 잃은 뒤 딸 둘과 작은아들의 집을 전전해 왔습니다.
정정한 편에 정신이 맑았던 어머니였지만 자식들은 노모를 서로 모셔 가라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3년 전부터는 다툼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지난 12일, 지난해 11월부터 노모를 부양해 온 큰 딸은 이날 오후 노모의 옷가지를 챙겨 들고 방산시장에 있는 작은오빠의 가게로 찾아가 노모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작은아들 부부는 노모를 다시 여동생의 가게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재단사인 작은아들의 가게는 역시 재단사인 큰딸 가게와 50m 떨어져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다시 노모를 데리고 오빠를 찾아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견디다 못한 노모가 작은아들의 가게를 나와 바깥을 떠돌던 중 아들과 딸 부부는 모두 오후 6시경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해 버렸습니다.
갈 곳을 잃고 경비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노모를 이날 저녁 경비원이 경찰서에 신고한 것입니다.
이들 남매는 세련된 옷차림에 손가락엔 번쩍이는 보석반지를 끼고 있었고, 경찰 조사 결과 모두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에서 이들은 “서로가 모셔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 간 것이지 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서로에게 “어머니 좀 잘 모셔라”며 욕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작은아들의 아내는 시누이에게 “유산을 나눌 때는 아들딸 구별이 없더니 어머니는 왜 아들 보고 모시라고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노모는 경찰서 의자에 앉아 이 모든 상황을 말없이 지켜봤습니다.
다가간 기자에게 그는 “내가 오래 산 게 죄지 애들은 아무 죄 없다”고 말했습니다.
“버리다니. 자들은 내보고 이래 가라 저래 가라 안 했심더. 아무 일도 없심더. 자, 이 보소. 이것도 애들이 넣어준 기라. ”
할머니는 쇼핑백 속에 들어 있던 요구르트를 손에 쥐고 달게 마셨습니다.
경찰은 작은아들과 큰딸 부부 4명을 존속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80이 넘으신 노모를 자녀들이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길가에 방치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욱 눈물겨운 것은 그 노모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내가 오래 산 게 죄지 애들은 아무 죄 없습니다”
“버리다니. 자들은 내보고 이래 가라 저래 가라 안 했심더. 아무 일도 없심더.
자, 이 보소. 이것도 애들이 넣어준 기라. ”
자기를 길가에 팽개쳐 버린 자식들을 오히려 끝까지 감싸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찌 이 어머니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일년 365일 내내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효를 다하는 것이 자식의 마땅한 도리임에도 그렇지 못하기에 이런 날을 정해 놓고 이날만이라도 잘해보자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분입니까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늙은이(older man)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
2절에는 “늙은 여자(older women)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꾸짖다’는 말은 ‘주인이 노예를 향하여 퍼붓는 거칠거나 우악스런 질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권하다’는 ‘어떤 깨우침을 주기 위해 곁으로 불러내는 것’으로 권면하다, 위로하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아버지나 어머니를 대하듯이 예의를 갖추어 온유한 태도로 돌보라는 의미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
나이가 드신 어른들 앞에서 일어나서 예의를 표하며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어르신 앞에서 일어서기는 커녕 오히려 무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종종 지하철을 타보면 경로석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젊은이들이 앉아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나이드신 어른이 서 있는데도 쳐다보고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책망을 하자 지하철에서 내리는 노인에게 욕설을 퍼붓고, 밀어서 계단에 굴러 떨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사람됨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당연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올바른 효의 모습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여기서 ‘먼저’ 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은 먼저 육신의 부모님을 섬길 줄 아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나를 잘 키웠든지 못 키웠든지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만든 뿌리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부모를 훼방하는 자, 즉 불효하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 27:16에“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했습니다.
또 출 21:15-17에는 “그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입니다.
무고하게 사람을 살인한 자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거역하고 불순종한 불효자입니다.
그만큼 율법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7장 10-11절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예수님 당시에도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풍습 가운데 ‘고르반 사상’ 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물건- 고르반 하면 아무도 손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했습니다.
부모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드리기 싫으면 ‘고르반’ 하고 땡쳤다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의 고르반 사상을 악용하여 부모 공경하는 일에 소홀한 것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먼저 자기 가족을 잘 돌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자기 가족, 자녀나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믿음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강조하십니다.
즉 부모님을 먼저 바르게 공경할 때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도 잘 섬길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효도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삶으로 효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 된 자로서 어버이를 공경하고 섬기는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느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중풍기가 있으셔서 식사 때마다 번번히 음식을 흘렸습니다.
이에 짜증이 난 며느리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칩니다.
이를 본 아들이 아내를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어머니를 책망합니다.
식사 시간만 되면 음식물을 흘리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나무를 잘라서 무엇인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짐승의 여물통이었습니다.
이들은 여물통에 음식을 담아서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혀로 핥아서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부부의 아들이 나무 조각으로 무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엄마 묻습니다.
“뭘 그리 열심히 만드니”
그러자 아들이 태연하게 말합니다.
“예, 이 다음에 엄마, 아빠가 늙으시면 사용하게 될 여물통을 만드는 거예요”
그제서야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불효막심함을 깨닫고 어머니를 잘 모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보면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효도한다.
내가 불효하면 그들이 배나 더 불효한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대 밭에 왕대가 납니다.
효자 집안에서 효자가 나고, 불효자 집안에서는 불효자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닮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지금 우리가 불효를 하면 우리도 늙어서 똑같이 불효를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심는 대로 거두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고, 늙어서 효도받기 원한다면 먼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옛 시인은 말합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후회할 때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공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부모님께 효를 행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본문에서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이 바로 효입니다.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로,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 미국의 어느 시골마을에 한 가난한 어머니와 외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낮에는 양계를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의 등록금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하는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아들은 부지런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수석으로 대통령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졸업식장에 입고 갈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었습니다.
행여나 내 꼴이 자랑스런 내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어머니는 말씀합니다.
"얘야, 내가 네 졸업식장에 가기는 가야겠다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갈 수가 없구나. "
어머니의 치맛자락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은 울며 매달립니다.
"내 어머니 아니 계신 졸업식장, 내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바라봐 주지 않는 금메달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내 목에 걸려진 금메달 어머니 목에 걸어드릴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난 3년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할 수 없이 어머니는 졸업식장에 참여했습니다.
답사를 하고 영광스런 메달을 들고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고 한쪽 모퉁이 남루한 옷차림을 한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서 벗어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립니다.
"이 메달은 어머니의 몫입니다. "
이 아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윌슨이 되었습니다.
그가 재임하던 1914년 그는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서 5월 2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했습니다.
이 땅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어버이 날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효의 시작입니다.
둘째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해드려도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불효입니다.
불순종하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청개구리처럼 행동합니다.
돌아가신 후 울어보고 후회한 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화목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말 정도의 학력입니다.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은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혔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이런 모욕을 주고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구두를 벗어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창피하고 무안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 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
링컨은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떳떳하게 자랑을 합니다.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무슨 일을 하셨든지 간에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부모님의 직업과 삶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못다 이루신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식의 모습이 바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걸 자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이것은 바로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아 보답하는 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예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부모님을 주 안에서 공경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요 향기로운 예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속에 우리를 땅에서 잘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누리게 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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