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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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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글을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28살 나이에 자신의 첫아이가 출생하는 날,
아내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14시간의 산고를 지켜보며 피가 마르는 초조함으로 안절부절 하다가 아이울음소리를 듣고 '산모와 아기가 모두 무사함'의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 감격과 기쁨을 잊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합니다. 37살에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처음 상장하나 받아온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하여 그것을 벽에 걸어두고 바라볼 때 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 48살엔 대학입시 시험장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혀 초조하고 불안하여 하였노라고 말합니다.
나이 53살엔 그 아이가 첫발을 딛고 첫월급을 탔다고 내의를 사왔는데 '돈을 쓸데없는데 쓴다'고 나무라곤 방에 들어와 그 내의를 입어보고 만져보고 행복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 61살 환갑나이엔 딸이 시집을 가는데 도둑같이 보이는 사위 녀석에게 곱게 키운 딸을 넘겨주고 자리에 가 앉는데 참고 참은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오늘 어버이날 여러분은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큼 헤아리고 계시고 있습니까
부모의 마음은 오로지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뿐 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아버지의 이미지가 탕자의 아버지에게서 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버지는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품고 계신 아버지이시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아버지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 이였을까 이 아버지는 너무 자식을 아끼는 아버지 이십니다.
어느 날 둘째가 와서는 자기 몫의 재산을 내 놓으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때 아버지가 재산을 안주었다면 가출, 방탕은 상상도 못 할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어쩌자고 달라는 것 다 주어서 자식을 망치고 말았는가 하는 것이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이 '이 아들이 얼마나 보채고 못되게 굴었으면 주어서 내보냈겠나'하는 점입니다.
아버지 심정은 '내가 가진 재산보다 이아들이 더욱 더 귀하다 난 돈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원한다면 달라는 것 다 줄 테니 너는 부디 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다시 돌아와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다오'
아버지는 이 아들 이 돈 가지고 나가면 어떤 길로 가고 어떻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아들은 '줄 것 다 준 아들로' 여기지 않고 '언제든 돌아오기만 하면 다시 맞아들여야 할 아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아버지 마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안다고 하는 것은 효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라도 날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미소 짓게 해 드리고, 기쁨을 얻게 해 드리는 것이 효인 것입니다.
저는 효도는 흉내를 내더라도 좋을 일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임금님이 서울에서 개성엘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행차하신다는 소문 듣고 어느 나이든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길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 나라 임금님을 뵌 적이 없구나. 나 죽기 전에 멀찍이에서 라도 임금님을 좀 뵐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은 임금님 행차에 맞추어 어머니를 등에 업고 수십리 길을 가서 임금님을 뵙게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행차하던 임금님 눈에 이 장면이 들어와 사연을 들은 후 불효자 한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욕심이 나서 억지로 자기 어머니를 들에 없고 임금님 행차 길에 눈에 띄게 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임금님은 '금 백냥과 한 섬'을 하사하였는데 신하들이 이 불효자의 행적을 알아가지고 임금님께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임금님! 이 사람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안 됩니다'
사실은 몹쓸 불효자인데 상을 노리고 자기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임금님이 한 말이 "효는 흉내만 내더라도 좋은 것이니라 그러니 상을 주거라"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불효자도 임금님의 마음에 감동되어 효자가 되었다는 옛날 얘기가 있습니다.
본심이 아니고 흉내만 내더라도 "효는 안하는 것 보다는 정말 좋은 일 잘하는 일인 것이다. "
오늘 본문 잠언 23장 19절 이하에는 "부모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지혜, 부모의 경험, 부모의 관심(그것이 잔소리로 들린다 할지라도) 그 속에 매우 중요한 인생의 교훈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부모의 존재에서 내 인생의 소중한 교훈과 지침을 얻을 줄 안다면 그 마음이 "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 때 '일이 잘 되고 오래오래 장수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운동, 보약 보다 더 정확한 말씀처방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6장 2~3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일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장수의 비결이 성경적으로는 효에 있습니다.
웰빙을 외치고 먹는 것 건강관리 잘 하고 운동하는 것에서 장수의 비결을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복 받는 비결 역시 효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부모에게 잘못하면서 세상 성공 바라지 말 것이고 부모에게 잘 못하고 오래 살길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어떤 권사님이 찜질방에서 들으신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뜨끈뜨끈한 찜질방에 누워 땀을 빼는데 이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젊은 새댁들이 서너 명 들어와 나란히 앉아서 하는 말 서로 시어머니 모시는 고충들을 토로하더랍니다.
"야, 너희 시어머니 몇 날까지 살고 돌아가셨지" "응 살만큼 살고 죽었어. " "몇 살 사셨는데-" "예순다섯" 이 말 듣고 70넘은 이 권사님이 기가 딱 막히셨다고 합니다.
'살만큼 살고 죽은 나이가 예순다섯이라'
모든 며느리들이 자기 시부모 살만큼만 살다가 얼른 가주길 바라는 건 결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요즘 세대가 얼마나 철없고, 생각 없는 새댁들에 의하여 주도되어 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아주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를 우습게 알고 박대하면서 자기 자신과 자손들은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은 성경 원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자녀가 성공하길 바랍니까
효도하시길 바랍니다.
자녀에게서 진심어린 '효'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과거에 자식이 보는 앞에서 내 부모를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모셨는가를 가슴에 손을 얹고 회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서로 안 모시겠다'고 떠밀고, '나만 아들이냐', '나만 자식이냐'하면서 어찌하든 늙고 병든 부모를 안 모시려고만 하는 사람이 나중엔 자기 자식에게 '불효한다. ', '야속하다'는 소리를 어찌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좀 모시는 것이 큰 위세가 되듯 자신이 형제들 중 제일 큰 희생을 하는 듯 여기는 것도, 수고는 하면서도 복은 못 받을 마음자세입니다.
부모는 구제대상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길 대상이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하기를 "효"를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부모님의 마음을 이렇습니다.
"얘야, 난 공부가 부족하였다. 너만은 공부를 열심히 해다오. 난 의롭지 못하게 살아왔다. 너만은 부디 의롭게 살아다오. "
이것이 부모마음이면, "효"는 의롭게 사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보상'해 드리는 것이 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혜로운 자"로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효"가 됩니다.
이 지혜는 청종하는 지혜, 귀 기울여 잘 듣는 지혜를 말합니다.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종합하면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한 사람은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부모의 가슴에 실망을 안긴 자녀'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게 정욕에 따라 살던 사람입니다.
지혜롭게 신앙인의 자기 관리를 잘 감당한 사람이 '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내 부모의 길을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길은, 부모가 걸어간 그 인생길을 그 선택을 그 이상과 철학을, 그렇게 살아온 그 날의 삶을 자녀가 기쁘게 여기는 일입니다.
부모는 수시로 말할 것입니다.
"얘야,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난 바보처럼 살아왔단다. "
하지만 자녀가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은 정말 잘 살아오셨습니다. 저희가 본받아야 할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 할 때, 진정 보람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늦둥이 자녀를 1학년 입학 시키는 엄마가 1학년 학부형들 속에서 창피를 느꼈다느니, 얼마 행색이 초라하여서 자기 친구들에게 창피하니까 빨리 가라고 한 아들이 있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링컨은 그 아버지가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링컨은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겨우 다녔을 정도였습니다.
이 링컨이 미국 대통령이 되니 좀 있는 집안 출신들이 자꾸 트집을 잡고 헐뜯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첫 의회연설을 했는데 잘난 상원의원이 일어나 ' 당신같이 무식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나라의 불행입니다.
겨우 구두수선공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되었군. '하였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이 구두는 저 대통령아버지가 만든 것이라오. '하였습니다
온 의회가 웃음바다가 되었는데 링컨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 말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어 그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가 생각나게 된 것 감사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구두수선을 배웠습니다.
당신 전혀 내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난 오히려 날 이렇게 키워내신 그분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이 소릴 할 수 있는 게 "효"이고 이 소릴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노릇입니다.
특히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 자식을 자랑할 수 있게끔 자랑거리가 되도록 살아가는 그것이 "효"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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