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가?
본문
서울성암교회 위윤재 목사님이 미국가서 어느 교인집에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자기 밥그릇과 똑같이 생긴 그릇에 개에게도 밥을 주더라는 것이다. 그릇이 같이 사용된다는 생각에 식기도가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어느 교인에게서 초상났다고 전화가 와서 가서 누구 죽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뽀삐가요…. ' 그러더라는 것이다. 부모를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개보다 못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노인학대상담센터에 접수된 내용을 보면 가해자가 아들이 단연 1위입니다. 며느리나 사위보다 훨씬 많습니다. 서강대의 교육학 강의에서 아버지에 대한 단상을 써오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이 제출한 단상에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으로 묘사한 글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남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해 좋게 평가한 남학생은 30명중 3~4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너무 싫다' '아버지가 무섭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다' 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결핍 현상을 지나 아버지 부정 현상이요. 아버지 부재 현상입니다.
출애굽기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신5:16), 에베소서6:1-3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려면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려면 부모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에 대해 울분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때 부모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아들 압살롬과 아버지 다윗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1.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심히 미워했습니다.
사무엘하13-18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내가 있었습니다. 미갈, 아히노암, 마아가, 아비가일, 밧세바가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그들로부터 낳은 여러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맏아들 암논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아가에게서 낳은 아들 압살롬과 딸 다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헤브론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예루살렘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암논이 이복(異腹) 여동생 다말을 탐내었습니다. 꾀를 내어 아픈 척하고는 아버지 다윗이 원하는 것을 물을 때 다말이 과자를 만들어 들어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말은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 다윗이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강간했습니다. 이복 오빠에게 강간을 당한 다말은 옷을 찢고 재를 머리에 무릅쓰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친오빠 압살롬에게로 가서 지냈습니다.
압살롬은 그 일로 인해 암논을 심히 미워하고 암논과 일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암논에게 어떤 처벌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압살롬은 2년 후에 양털을 깎는 잔치날에 왕자들을 청하여 암논을 죽이고 그술 지방으로 도망했습니다. 그술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다윗이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군대장관 요압의 중재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미워하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계획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개인 군사를 양성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로부터 민심을 확보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지 4년 후에 기회를 잡아 고향 헤브론에서 자신이 왕되었습니다. 모사 아히도벨과 군사 200여명과 함께 파죽지세로 예루살렘을 습격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 왕궁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을 지나 요단강을 지나 마하나임까지 도망했습니다. 압살롬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접수하고 다윗의 후궁들을 대낮에 강간합니다. 도망간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 성읍 앞까지 추격합니다. 결국 에브라임 수풀에서 다윗이 보낸 군사와 압살롬의 군사 간에 전투를 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의 군사들이 승리했습니다. 압살롬의 군사 20,000명이 죽었습니다. 압살롬도 요압이 찌른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압살롬은 여동생 다말을 강간한 암논을 징계하지 않은 아버지 다윗이 미웠습니다. 압살롬은 평생 형에 대한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살았습니다. 형을 죽이고 아버지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의 후궁을 강간했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도망한 아버지까지 죽이려고 쫓아갔다가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압살롬은 평생 아버지 때문에 분노하고 고통스러워 울었습니다.
2.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암논과 다른 왕자들을 죽이고 그술 지방으로 도망했을 때 군사를 보내어 잡아와 죄를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압살롬을 그술에서 데려와야 한다는 청을 거부하지 않고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용납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돌아온 압살롬이 군사를 준비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산 일을 알고도 치리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됨을 선포했을 때 진압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200여명을 군사로 예루살렘을 행해 진격해올 때 그와 싸우지 않기 위해 성을 비워 주고 도망했습니다. 마하나임까지 도망하여 더이상 갈 곳이 없자 불가불 추격해온 압살롬 군대와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그때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압장군이 이끄는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자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했고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도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요압은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다윗은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온 두 전령에게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 울었습니다. 본문 사무엘하18:33에 보면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심히 아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는 '떨다' '전율하다'의 뜻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극심한 충격으로 심장을 짜는 듯한 아픔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올라가서"의 히브리어 '알라'는 '오르다'의 뜻으로서 성루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올라 갈"에 해당하는 '얄라크'는 '행하다'의 뜻으로서 성루에 이미 올라간 후 이리 저리 방황하듯이 배회한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하며 울면서 성루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리 저리 미친 듯이 뛰며 비통하게 오열한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 한 모습입니다.
3. 다윗은 자기 죄에 대한 가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11-12장에 보면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왕궁을 걷다가 건너편에서 목욕을 하는 우리야의 아내를 보게 됩니다. 마침 그의 남편 우리야는 전장에 나가 있었습니다. 암몬 족속의 랍바성을 공격하기 위해 대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궁으로 불러 들여 범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야의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장에 있는 우리야를 불러 휴가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집에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대신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 일도 실패로 돌아가자 다윗은 결국 우리야를 죽이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전장에 있는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를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리야 손에 부쳤습니다.
우리야는 그 편지 내용을 모른채 전장으로 돌아가 요압 장군에게 주었습니다. 요압 장군이 그 편지를 보니 적군과 싸울 때 우리야를 가장 선봉에 세워 적의 손에 죽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압 장군은 다윗 왕의 명에 따라 랍바성의 용사들이 있는 곳으로 전진배치 시켰습니다. 적이 나와 싸움이 벌어질 때 요압이 후퇴하므로 우리야가 고립되어 적의 손에 죽게 됩니다. 다윗은 우리야가 죽은 후 우리야의 아내를 궁으로 불러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를 악하게 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경고했습니다.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기 때문에 다윗의 집에 재앙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집에서 칼이 영영히 떠나지 않을 것이고, 다윗의 처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므로 그 사람이 다윗의 처들로 더불어 대낮에 동침할 것이고, 다윗이 낳은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하12:10-15).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죽게 되자 그것이 자기의 죄값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아들 암몬이 이복 동생 다말을 범하는 일이 일어나자 그것이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암몬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그술 지방으로 망명했을 때에도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를 잡아 오지 않습니다. 압살롬이 요압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 대한 상처 때문에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행동을 하면서 군사를 준비한 것을 알면서도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를 질책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예루살렘으로 진격할 때에도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진압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왕궁에 진입하여 자기 후궁들을 대낮에 욕보이는 것을 들으면서 도망을 합니다. 울면서 맨발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 비탈로 내려갑니다.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 왕가의 시므이가 저주하며 능욕하는 데도 여호와 하나님이 시킨 것이니 내버려 두라고 말한 것도 자기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하나임까지 추격해 온 압살롬의 군대와 불가불 전쟁을 해야 하는 때에도 요압 장군에게 압살롬은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더 울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침상에 요가 뜨도록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나 아들이 죽을 것이며 집안에서 칼이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강간했을 때 징계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간음죄를 지었었기 때문에 징계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을 때 자기의 죄값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압살롬을 추격하게 하거나 붙잡아 오게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올 때 압살롬과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했고 마하나임 앞까지 추격해온 압살롬 군대와 전투를 할 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러 쫓아온 압살롬이 죽었을 때 심장을 찢는 아픔으로 울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삼하12:10-14).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에게 상처받아 운 것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자기 때문에 상처받아 고통스러워 분노의 모습을 보면서 더 울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죽었더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합니다. 압살롬이 평생 분노로 살다가 결국 죽게 된 것이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압살롬은 평생 아버지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왕위를 찬탈하고 후궁들을 대낮에 욕보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모병을 데리고 마하나임까지 추격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결국 창에 찔려 죽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의 죄와 잘못에 대한 심한 가책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아들 압살롬에 고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갈등과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압살롬이 분노로 잘못 나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큰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눅15:11-24).
노인학대상담센터에 접수된 내용을 보면 가해자가 아들이 단연 1위입니다. 며느리나 사위보다 훨씬 많습니다. 서강대의 교육학 강의에서 아버지에 대한 단상을 써오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이 제출한 단상에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으로 묘사한 글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남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해 좋게 평가한 남학생은 30명중 3~4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너무 싫다' '아버지가 무섭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다' 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결핍 현상을 지나 아버지 부정 현상이요. 아버지 부재 현상입니다.
출애굽기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신5:16), 에베소서6:1-3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려면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려면 부모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에 대해 울분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때 부모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아들 압살롬과 아버지 다윗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1.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심히 미워했습니다.
사무엘하13-18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내가 있었습니다. 미갈, 아히노암, 마아가, 아비가일, 밧세바가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그들로부터 낳은 여러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맏아들 암논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아가에게서 낳은 아들 압살롬과 딸 다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헤브론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예루살렘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암논이 이복(異腹) 여동생 다말을 탐내었습니다. 꾀를 내어 아픈 척하고는 아버지 다윗이 원하는 것을 물을 때 다말이 과자를 만들어 들어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말은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 다윗이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강간했습니다. 이복 오빠에게 강간을 당한 다말은 옷을 찢고 재를 머리에 무릅쓰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친오빠 압살롬에게로 가서 지냈습니다.
압살롬은 그 일로 인해 암논을 심히 미워하고 암논과 일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암논에게 어떤 처벌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어떤 처벌도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압살롬은 2년 후에 양털을 깎는 잔치날에 왕자들을 청하여 암논을 죽이고 그술 지방으로 도망했습니다. 그술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다윗이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군대장관 요압의 중재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미워하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계획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개인 군사를 양성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로부터 민심을 확보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지 4년 후에 기회를 잡아 고향 헤브론에서 자신이 왕되었습니다. 모사 아히도벨과 군사 200여명과 함께 파죽지세로 예루살렘을 습격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 왕궁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을 지나 요단강을 지나 마하나임까지 도망했습니다. 압살롬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접수하고 다윗의 후궁들을 대낮에 강간합니다. 도망간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 성읍 앞까지 추격합니다. 결국 에브라임 수풀에서 다윗이 보낸 군사와 압살롬의 군사 간에 전투를 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의 군사들이 승리했습니다. 압살롬의 군사 20,000명이 죽었습니다. 압살롬도 요압이 찌른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압살롬은 여동생 다말을 강간한 암논을 징계하지 않은 아버지 다윗이 미웠습니다. 압살롬은 평생 형에 대한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살았습니다. 형을 죽이고 아버지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의 후궁을 강간했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도망한 아버지까지 죽이려고 쫓아갔다가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압살롬은 평생 아버지 때문에 분노하고 고통스러워 울었습니다.
2.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암논과 다른 왕자들을 죽이고 그술 지방으로 도망했을 때 군사를 보내어 잡아와 죄를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압살롬을 그술에서 데려와야 한다는 청을 거부하지 않고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용납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돌아온 압살롬이 군사를 준비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산 일을 알고도 치리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됨을 선포했을 때 진압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200여명을 군사로 예루살렘을 행해 진격해올 때 그와 싸우지 않기 위해 성을 비워 주고 도망했습니다. 마하나임까지 도망하여 더이상 갈 곳이 없자 불가불 추격해온 압살롬 군대와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그때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압장군이 이끄는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자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했고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도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요압은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다윗은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온 두 전령에게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 울었습니다. 본문 사무엘하18:33에 보면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심히 아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는 '떨다' '전율하다'의 뜻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극심한 충격으로 심장을 짜는 듯한 아픔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올라가서"의 히브리어 '알라'는 '오르다'의 뜻으로서 성루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올라 갈"에 해당하는 '얄라크'는 '행하다'의 뜻으로서 성루에 이미 올라간 후 이리 저리 방황하듯이 배회한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하며 울면서 성루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리 저리 미친 듯이 뛰며 비통하게 오열한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 한 모습입니다.
3. 다윗은 자기 죄에 대한 가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11-12장에 보면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왕궁을 걷다가 건너편에서 목욕을 하는 우리야의 아내를 보게 됩니다. 마침 그의 남편 우리야는 전장에 나가 있었습니다. 암몬 족속의 랍바성을 공격하기 위해 대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궁으로 불러 들여 범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야의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장에 있는 우리야를 불러 휴가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집에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대신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 일도 실패로 돌아가자 다윗은 결국 우리야를 죽이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전장에 있는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를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리야 손에 부쳤습니다.
우리야는 그 편지 내용을 모른채 전장으로 돌아가 요압 장군에게 주었습니다. 요압 장군이 그 편지를 보니 적군과 싸울 때 우리야를 가장 선봉에 세워 적의 손에 죽게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압 장군은 다윗 왕의 명에 따라 랍바성의 용사들이 있는 곳으로 전진배치 시켰습니다. 적이 나와 싸움이 벌어질 때 요압이 후퇴하므로 우리야가 고립되어 적의 손에 죽게 됩니다. 다윗은 우리야가 죽은 후 우리야의 아내를 궁으로 불러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를 악하게 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경고했습니다.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기 때문에 다윗의 집에 재앙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집에서 칼이 영영히 떠나지 않을 것이고, 다윗의 처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므로 그 사람이 다윗의 처들로 더불어 대낮에 동침할 것이고, 다윗이 낳은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하12:10-15).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죽게 되자 그것이 자기의 죄값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아들 암몬이 이복 동생 다말을 범하는 일이 일어나자 그것이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암몬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그술 지방으로 망명했을 때에도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를 잡아 오지 않습니다. 압살롬이 요압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 대한 상처 때문에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행동을 하면서 군사를 준비한 것을 알면서도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를 질책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예루살렘으로 진격할 때에도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진압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왕궁에 진입하여 자기 후궁들을 대낮에 욕보이는 것을 들으면서 도망을 합니다. 울면서 맨발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 비탈로 내려갑니다.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 왕가의 시므이가 저주하며 능욕하는 데도 여호와 하나님이 시킨 것이니 내버려 두라고 말한 것도 자기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하나임까지 추격해 온 압살롬의 군대와 불가불 전쟁을 해야 하는 때에도 요압 장군에게 압살롬은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더 울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침상에 요가 뜨도록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나 아들이 죽을 것이며 집안에서 칼이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강간했을 때 징계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간음죄를 지었었기 때문에 징계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을 때 자기의 죄값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압살롬을 추격하게 하거나 붙잡아 오게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올 때 압살롬과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했고 마하나임 앞까지 추격해온 압살롬 군대와 전투를 할 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러 쫓아온 압살롬이 죽었을 때 심장을 찢는 아픔으로 울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삼하12:10-14).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에게 상처받아 운 것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자기 때문에 상처받아 고통스러워 분노의 모습을 보면서 더 울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자기가 죽었더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합니다. 압살롬이 평생 분노로 살다가 결국 죽게 된 것이 자기 죄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압살롬은 평생 아버지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왕위를 찬탈하고 후궁들을 대낮에 욕보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모병을 데리고 마하나임까지 추격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결국 창에 찔려 죽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의 죄와 잘못에 대한 심한 가책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아들 압살롬에 고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갈등과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압살롬이 분노로 잘못 나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큰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눅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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