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랑으로 섬깁시다.
본문
5월은 가정의 달이며 효(孝)의 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창조하시고 사랑과 효, 이 둘로 행복을 만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사랑과 효로 가정을 떠받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원리가 사랑이라면 부모님을 모시는 원리는 효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문화에 대한 긍지가 큽니다.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녀 봐도 한국문화만큼 자랑스런 문화가 없습니다. 한국문화가 자랑스럽고 높은 도덕률과 윤리성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가정의 근본을 효에 그 기초를 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효”에 있습니다. 저를 낳아 길러주신 은혜가 감사하여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일으켜 세운 동력이요, 정당성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효의 문화가 도전을 받고 행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 와해되어지는 현상을 바라볼 때 매우 안타깝고 슬플 뿐입니다. 청소년들의 문제, 노인문제, 이혼문제, 가정폭력 등이 모두 가정이 와해되고 효의 문화가 허물어지는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윤리의 기초를 사랑과 효에 두어야 할 것이며, 효를 통해서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되어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제례문화가 기독교에 의해 우상숭배로 치부되면서 조상제례를 교회는 거부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조상제례 문화의 근간이 조상숭배도 있지만, 효의 정신도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자칫 이 효의 정신마저 경히 여기는 듯한 경향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성결(sanctify) 되어지는 기초가 효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레위기 19:1-3의 말씀을 함께 봉독해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1-3)
“거룩하다”는 말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경외하는 이 일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해지고 성별되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잡신들과는 분명히 다른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성별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사람들이요, 성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져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말은 두 가지 행위 때문입니다. 하나는 안식일을 지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부모를 경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교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며 효도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교인들의 의무요,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일입니까
첫째로 부모공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골격은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십계명의 제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둘로 나누면 1-4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5-10계명은 사람들에 대한 계명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지켜야 할 계명 중 으뜸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입니다. 잠언 1:8-9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 1:8-9)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큰 복이요, 영광임을 가르치는 말씀
입니다. 성경에는 목에 금사슬을 받은 사람이 둘 있는데 하나는 요셉이요, 다른 하나는 다니엘입니다. 왕에게 인정을 받아 총리대신이나 큰 직책을 임명받을 때 목에 금사슬을 거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큰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부모공경이 곧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을 잘 지켜 아름다운 면류관과 금사슬의 영광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잘 되고(to go well with you) 장수하는 축복(to enjoy long life on the earth)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부모의 자식사랑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성품(the love from the Christ-like character)에서 나오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이 세상에 살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그 마음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2000년 전에 사셨던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을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느끼고 체험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감나게 체험되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 부모의 마음은 다릅니다. 그것은 피부로 직접 느껴지고 체험됩니다. 아무리 불효자식이라도 부모의 사랑과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자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불효자식일수록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더 많이 웁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유행가가 그래서 히트했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못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이못난 이자식에게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① 오래 참는 사랑이다.
②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다.
③ 무례히 행치 않는 사랑이다.
④ 모든 것을 믿어주는 사랑이다.
⑤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이다.
⑥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사랑이다.
⑦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다.
⑧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다.
⑨ 나에게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섬기게 하는 사랑이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은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요즘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을 통해서 한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술집에서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 김승연씨는 앞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보복폭행을 가했습니다. 자식이 무슨 일로 맞았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피지도 않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때린 폭행자들을 산으로 끌고 가서 보복폭행을 가했습니다. 술집까지 쫓아가서 다른 폭행자들을 또 찾아내어 때렸습니다.
그는 엊그제 구속되면서 “아들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다시는 나 같은(경솔한) 아버지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 후회했습니다. 대그룹 회장으로 한국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사려 깊지 않은 행동을 했으니 비난과 처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정의 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 덮어주고,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사랑하려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랑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본성입니다. 김승연회장은 그 본능적 부모사랑을 좀 더 사려 깊게 했어야 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손주를 보고 온 기쁨이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고, 입을 딱 벌리고 “응아 응아”하는 것도 신비롭고 귀엽습니다. 며칠간 딸네 집에서 머무는 동안 신기한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제 딸인 성혜는 비위가 약했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TV에서 더러운 장면이 나오면 밥을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기를 안고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기저귀를 열어보니 한바탕 쌌는데 젖만 먹었는데도 얼마나 푸짐하게 싸놓았는지 모릅니다.
“얘야, 아기가 똥을 쌌구나!” 딸아이가 즉시 달려오더니 “아이구, 귀여운 것아, 예쁘게도 쌌네, 잘했다. 잘했다. ” 손에 묻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기라도 할 듯이 기저귀를 가는 것이 아닙니까 과연 그 녀석이 제 부모가 치매가 걸렸거나, 뇌졸증으로 쓰러졌을 때 대소변을 그런 마음으로 치우며 닦아드릴까요 그 녀석은 제가 피곤하여 입안에서 냄새만나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녀석인데, 제 자식은 어떤 것도 더럽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갖고(Christ-like character)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은 것(Christ-like love)이요,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때문에 셋째로 오늘 말씀드리려는 핵심이 여기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되 그리스도의 성품(Christ-like character)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공경해야 한다는 당위성입니다.
효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를 기르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부모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참으며 가장 좋은 것으로 섬기는 자세가 기독교 효의 근본입니다.
언젠가 ‘가시고기’라는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본래 가시고기는 조그만 민물고기입니다. 암컷이 알을 낳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면 남은 수컷이 혼자서 알을 돌봅니다. 알을 통째로 먹으려는 다른 침입자들을 사생결단으로 싸워 막습니다. 상처도 입고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자지도 못합니다. 부화하여 작은 가시고기가 될 때까지 열심히 돌봅니다.
가시고기가 자생할 수 있을 만큼 크면 아빠 가시고기를 놔둔 채 뿔뿔이 흩어져 자기 갈 곳으로 가버립니다. 새끼들이 떠나고 나면 늙은 아빠 가시고기는 지치고 힘들어 돌 틈에 머리를 박고 그의 삶을 마감합니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자식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다 바치고는 늙어 죽습니다. 생명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시고 살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같습니다.
이 부모의 사랑이 다시 자녀를 통해 부모에게 전달될 때 그것은 엄청난 축복의 동력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어떤 분이 부모를 잘 공경하는 법을 썼는데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을 그는 효의 실천 프로그램이라고 말합니다.
① 문안인사를 드린다.
②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린다.
③ 표정을 밝게 한다.
④ 궁금증을 풀어드린다.
⑤ 건강을 유지한다.
⑥ 가벼운 일감을 드린다.
⑦ 부모님이 힘들거나 괴로울 때 힘이 되어 드린다.
⑧ 맛있는 음식을 해드린다.
⑨ 용돈을 절약하여 사랑의 선물을 사드린다.
⑩ 등을 긁어드린다.
⑪ 친구들을 만나게 해드린다.
⑫ 부모님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한다.
⑬ 사랑의 표현을 한다.
이와 같은 일들을 모두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들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곧 부모를 경외하고 공경하는 일입니다. 잠언 23:22-25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10:1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이 어버이의 기쁨이 된다. ”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다짐합시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갈 2:15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받았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여기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버리신 사랑,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a Christ-like love)을 가지고 자녀들을 양육할 뿐 아니라 부모를 공경함으로 하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한국문화에 대한 긍지가 큽니다.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녀 봐도 한국문화만큼 자랑스런 문화가 없습니다. 한국문화가 자랑스럽고 높은 도덕률과 윤리성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가정의 근본을 효에 그 기초를 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효”에 있습니다. 저를 낳아 길러주신 은혜가 감사하여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일으켜 세운 동력이요, 정당성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효의 문화가 도전을 받고 행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 와해되어지는 현상을 바라볼 때 매우 안타깝고 슬플 뿐입니다. 청소년들의 문제, 노인문제, 이혼문제, 가정폭력 등이 모두 가정이 와해되고 효의 문화가 허물어지는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윤리의 기초를 사랑과 효에 두어야 할 것이며, 효를 통해서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되어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제례문화가 기독교에 의해 우상숭배로 치부되면서 조상제례를 교회는 거부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조상제례 문화의 근간이 조상숭배도 있지만, 효의 정신도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자칫 이 효의 정신마저 경히 여기는 듯한 경향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성결(sanctify) 되어지는 기초가 효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레위기 19:1-3의 말씀을 함께 봉독해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1-3)
“거룩하다”는 말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경외하는 이 일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해지고 성별되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은 세상의 모든 잡신들과는 분명히 다른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성별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사람들이요, 성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져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말은 두 가지 행위 때문입니다. 하나는 안식일을 지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부모를 경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교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며 효도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교인들의 의무요,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일입니까
첫째로 부모공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골격은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십계명의 제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둘로 나누면 1-4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5-10계명은 사람들에 대한 계명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지켜야 할 계명 중 으뜸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입니다. 잠언 1:8-9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 1:8-9)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큰 복이요, 영광임을 가르치는 말씀
입니다. 성경에는 목에 금사슬을 받은 사람이 둘 있는데 하나는 요셉이요, 다른 하나는 다니엘입니다. 왕에게 인정을 받아 총리대신이나 큰 직책을 임명받을 때 목에 금사슬을 거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큰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부모공경이 곧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을 잘 지켜 아름다운 면류관과 금사슬의 영광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잘 되고(to go well with you) 장수하는 축복(to enjoy long life on the earth)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부모의 자식사랑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성품(the love from the Christ-like character)에서 나오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이 세상에 살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그 마음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2000년 전에 사셨던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을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느끼고 체험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감나게 체험되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 부모의 마음은 다릅니다. 그것은 피부로 직접 느껴지고 체험됩니다. 아무리 불효자식이라도 부모의 사랑과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자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불효자식일수록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더 많이 웁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유행가가 그래서 히트했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못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이못난 이자식에게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① 오래 참는 사랑이다.
②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다.
③ 무례히 행치 않는 사랑이다.
④ 모든 것을 믿어주는 사랑이다.
⑤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이다.
⑥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사랑이다.
⑦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다.
⑧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다.
⑨ 나에게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섬기게 하는 사랑이다.
이런 예수님의 사랑은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요즘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을 통해서 한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식이 술집에서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 김승연씨는 앞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보복폭행을 가했습니다. 자식이 무슨 일로 맞았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피지도 않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때린 폭행자들을 산으로 끌고 가서 보복폭행을 가했습니다. 술집까지 쫓아가서 다른 폭행자들을 또 찾아내어 때렸습니다.
그는 엊그제 구속되면서 “아들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다시는 나 같은(경솔한) 아버지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 후회했습니다. 대그룹 회장으로 한국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사려 깊지 않은 행동을 했으니 비난과 처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정의 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 덮어주고, 무조건 용서하고, 무조건 사랑하려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랑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본성입니다. 김승연회장은 그 본능적 부모사랑을 좀 더 사려 깊게 했어야 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손주를 보고 온 기쁨이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고, 입을 딱 벌리고 “응아 응아”하는 것도 신비롭고 귀엽습니다. 며칠간 딸네 집에서 머무는 동안 신기한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제 딸인 성혜는 비위가 약했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TV에서 더러운 장면이 나오면 밥을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기를 안고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기저귀를 열어보니 한바탕 쌌는데 젖만 먹었는데도 얼마나 푸짐하게 싸놓았는지 모릅니다.
“얘야, 아기가 똥을 쌌구나!” 딸아이가 즉시 달려오더니 “아이구, 귀여운 것아, 예쁘게도 쌌네, 잘했다. 잘했다. ” 손에 묻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기라도 할 듯이 기저귀를 가는 것이 아닙니까 과연 그 녀석이 제 부모가 치매가 걸렸거나, 뇌졸증으로 쓰러졌을 때 대소변을 그런 마음으로 치우며 닦아드릴까요 그 녀석은 제가 피곤하여 입안에서 냄새만나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녀석인데, 제 자식은 어떤 것도 더럽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성품을 갖고(Christ-like character)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은 것(Christ-like love)이요,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때문에 셋째로 오늘 말씀드리려는 핵심이 여기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되 그리스도의 성품(Christ-like character)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공경해야 한다는 당위성입니다.
효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를 기르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부모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참으며 가장 좋은 것으로 섬기는 자세가 기독교 효의 근본입니다.
언젠가 ‘가시고기’라는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본래 가시고기는 조그만 민물고기입니다. 암컷이 알을 낳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면 남은 수컷이 혼자서 알을 돌봅니다. 알을 통째로 먹으려는 다른 침입자들을 사생결단으로 싸워 막습니다. 상처도 입고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자지도 못합니다. 부화하여 작은 가시고기가 될 때까지 열심히 돌봅니다.
가시고기가 자생할 수 있을 만큼 크면 아빠 가시고기를 놔둔 채 뿔뿔이 흩어져 자기 갈 곳으로 가버립니다. 새끼들이 떠나고 나면 늙은 아빠 가시고기는 지치고 힘들어 돌 틈에 머리를 박고 그의 삶을 마감합니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자식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다 바치고는 늙어 죽습니다. 생명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시고 살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같습니다.
이 부모의 사랑이 다시 자녀를 통해 부모에게 전달될 때 그것은 엄청난 축복의 동력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어떤 분이 부모를 잘 공경하는 법을 썼는데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을 그는 효의 실천 프로그램이라고 말합니다.
① 문안인사를 드린다.
②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린다.
③ 표정을 밝게 한다.
④ 궁금증을 풀어드린다.
⑤ 건강을 유지한다.
⑥ 가벼운 일감을 드린다.
⑦ 부모님이 힘들거나 괴로울 때 힘이 되어 드린다.
⑧ 맛있는 음식을 해드린다.
⑨ 용돈을 절약하여 사랑의 선물을 사드린다.
⑩ 등을 긁어드린다.
⑪ 친구들을 만나게 해드린다.
⑫ 부모님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한다.
⑬ 사랑의 표현을 한다.
이와 같은 일들을 모두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들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곧 부모를 경외하고 공경하는 일입니다. 잠언 23:22-25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10:1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이 어버이의 기쁨이 된다. ”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다짐합시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갈 2:15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받았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여기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버리신 사랑,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a Christ-like love)을 가지고 자녀들을 양육할 뿐 아니라 부모를 공경함으로 하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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