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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다시 생각해 보는 어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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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동요 어머니 은혜의 노랫말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니 은혜/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어머니의 사랑을 저 높은 하늘과 저 넓은 바다에다 비유해 보았지만, 그보다 더 높고 넓은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이미 육신의 어머니를 뵙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생전에는 효도를 못하다가도 죽으면 다 효자가 된다는 말은 안 계신 부모에 대한 감정이 더 깊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또 장수하기를 바랍니다. 잘되어 장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요, 행복이라고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약속하실 때 조건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먼저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숨겨진 계시의 뜻이 있습니다. 즉 보이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로써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는 창조의 질서를 계속적으로 이어가게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는 과정이 없었던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감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식이 커서 부모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고,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 준 사랑입니다.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성인이 되어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머니의 피와 살이 내 몸을 형성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 준 사랑! 그러기에 그 사랑은 자신을 떼어 준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 중에 해산의 고통이 제일 크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런 아픔을 치르고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고통의 결과들입니다.
어머니는 열 달 동안 무거운 배를 이끌면서, 아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자식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모든 힘든 것을 참아 주었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에게 자기 자식이 제일 귀여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피와 살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왜 어머니의 사랑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비유하게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스스로 육신을 입고 이 땅위에 오셨고, 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 주어 우리를 구속해 준 사랑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다 별 볼일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산 존재들이기 때문에 귀한 자녀들입니다. 할렐루야!모든 것을 희생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있으나 주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뿐입니다. 주면서도 모자라 하고, 아쉬워하고, 주고 또 주고, 주어도 못내 아쉬워하는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자식을 위해 주고 또 주어도 아쉬워하는 사랑은 오직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이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아무리 방탕한 자식들도 어머니의 사랑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러다 가신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이요,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참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전적으로 희생적인 사랑이었기에 감히 주님의 사랑과 견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마치 태양의 열처럼 식을 줄을 모릅니다. 자식이 잘 되어도, 자식이 못 되어도 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자식 편에 있지, 자식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 사랑이 너무 깊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등한히 하기 쉬우나, 어머니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녀를 잃은 어머니는 봄이 되어 새싹을 보아도, 가을이 되어 낙엽이 져도, 비가 올 때도, 추운 겨울에도, 맛있는 것이 생겼을 때도 언제나 잃어버린 자녀의 생각으로 간절해집니다. 이처럼 변함없는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들의 마음에 깊이 박히고, 그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6. 25 전쟁 당시의 일입니다. 어느 날 전투가 뜸해지자 한 국군 부대의 군목이 병사들을 방문했습니다. 병사들은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고, 전쟁이란 상황도 잊은 채 서로 떠들고 웃고 난폭하게 굴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희롱과 음담패설을 늘어놓았습니다. 도무지 이런 분위기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없음을 파악한 군목은 병사들에게 몇 차례 조용하라고 했으나 마이동풍이었습니다. 군목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고향에 계시는 여러분들의 어머니를 생각하라! 대문을 나설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 그 얼굴! 그 눈물을 기억하라.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라! 교회 제단 아래서 혹은 뒤뜰 정자나무 아래서 여러분을 위해 밤잠도 자지 않고 기도하고 있을 어머니를 기억하라!”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은 이상하게 조용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그때서야 군목은 비로소 저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지금도 나를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열두 번 변하고, 강산이 스무 번이 변해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남편은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도 “여인이 어찌 그 자식을 잊겠는가”라고 했듯이 어머니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머니의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계시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십계명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이를 잘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더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의 약속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점차 퇴색되어 가는 데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데, 요즘 자식들은 어머니의 사랑도 물질로 보상하면 되는 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말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물질적인 의미에서의 공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언약의 계명이기에(다른 계명들은 그렇지 않다), 꼭 자신이 한 만큼 대우를 받게 됩니다.
이는 변치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부모에게 한 만큼, 이다음에 자신의 자식에게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움직이지 않는 우주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사랑하고 예뻐하는 아들딸들처럼, 여러분의 어머니들이 우리들을 키울 때도 꼭 그렇게 키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자식들로부터 언젠가 소외당할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피와 살을 나누어 주신 분입니다. 전적으로 모든 것을 주고 희생하신 분입니다. 강산이 변해도 변치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 주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드러내는 사랑이란 말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올바른 자녀교육을 위해서 이 한마디를 꼭 덛 붙여 말씀드립니다. 잠12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미국의 식물학자 바아 뱅크는 선인장의 전문가이다. 선인장은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이나 사막에서도 잘 자라고 사막의 짐승들 사이에서도 잘 견뎌낸다. 왜냐하면 자기를 보호하는 많은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선인장을 한 토막 잘라 내어 땅에 심어 보면 쉽게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한다. 바아 뱅크는 아주 색다른 실험을 했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물도 주고 짐승도 없는 좋은 환경에서 선인장을 키웠다.
그렇게 바아 뱅크는 16년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인장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래서 얻은결론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선인장에서는 날카로운 가시가 아니라 흘러내릴 만큼 부드러운 수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인장의 가시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생긴 자기보호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 여섯 살 된 어린이 100명에게 TV와 아버지 중에서 누가 집에 있는 것이 더 좋으냐는 질문에 92명이 TV를 택했다고 한다.
방금 소개한 13절에 아이를 체벌을 해서라도 아이를 훈계하여 그 영혼이 잘 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체벌이 완벽한 교육 수단은 아니지만, 영혼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체벌이 꼭 필요한 수단임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자녀들을 가시 달린 선인장처럼 키워야 합니다. 부모가 갖춰 놓은 환경 속에서 자라는 것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선인장과 같이 세상을 이겨 내며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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