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아버지의 마음
본문
우리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공의라는 대칭된 개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크고도 아름다운 사랑 때문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아버지의 사랑은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비록 어머니와 같이 항상 자상하게 표현되어지는 사랑은 못되어도 그 나타난 사랑과 감춰진 사랑을 비교한다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 흐르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교회만 하더라도 수많은 훌륭하고 좋은 아버지들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땀 흘리며, 자녀들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들을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스스로를 좋은 아버지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 원래의 마음, 그리고 다 표현하지 않았던 숨겨진 마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은 이 아버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그리고 이 야곱이 생각하고 믿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그가 믿고 생각했던 것처럼 정확했습니다. 들에서 돌아 온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기도를 받기를 위하여 왔을 때 그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 37절 부분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창 27:37) 『`내가 이미 그를 네 주인이 되게 하고 그의 모든 친척들을 그의 종이 되게 하였으며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를 주었으니 이제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무엇을 뜻합니까 아버지의 마음은 같은 복을 다른 이에게 또 빌어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확실하고, 유일한 복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아버지의 편견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우리 자녀 하나하나가 모두 이러한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오직 우리 자신 하나하나에게만 전념하시는 사랑을 뜻합니다.
단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장자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장자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장자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장자처럼 생각하고 장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반드시 장자가 받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한 마디로 아버지는 우리가 종이 되지 않고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신명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 28:) 1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곧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주는 사랑입니다. 주시되 흐르고 넘치도록 채워주기를 원하시는 넉넉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여호와 하나님 얘기로 바뀌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아버지의 마음을 감히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비교할 수도 없고 또한 비교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들 아버지가 가져야 할 마음의 표상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까 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건강해야 가정이 건강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비로소 교회다워집니다.
우리가 강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하지가 않고 복합적인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정체성이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가 세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축복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을 주는 아버지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더 강합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려는 사람은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소외를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는 사람은 상처를 잘 받지 않습니다. 그의 내면과 영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코 소외되지 않습니다. 그는 어둠에서도 빛을 뿜어냅니다. 절망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냅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합니다..
첫 목회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천과 충주 사이에 있는 박달재 계곡 깊은 산중 농촌에서 목회할 때 어느 날 집에 아내와 어린 아들 하나만을 두고 외부에서 몇 날을 지냈습니다. 새벽에 방문만 열어도 마당에 산짐승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무서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없을 때 어린 새댁이 아기 하나만을 데리고 교회와 집을 지키려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아내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없을 때 애기만 있어도 두려운 생각이 없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가서 그 진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남편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때도 두려움이 극복될 수 있겠지만 내가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분명한 대상이 있을 때 그 때도 두려움이 극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더 강렬한 에너지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 보다 사랑을 줄 때 더 보람되고 더 강해집니다. 사랑을 주기만 해도 기쁜 것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려고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약한 증거입니다.
채우려고만 하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지만 퍼 주고 베푸는 사랑은 진정한 부자의 마음이고 거부의 마음이고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비록 어머니와 같이 항상 자상하게 표현되어지는 사랑은 못되어도 그 나타난 사랑과 감춰진 사랑을 비교한다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 흐르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교회만 하더라도 수많은 훌륭하고 좋은 아버지들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땀 흘리며, 자녀들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할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들을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스스로를 좋은 아버지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 원래의 마음, 그리고 다 표현하지 않았던 숨겨진 마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은 이 아버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그리고 이 야곱이 생각하고 믿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그가 믿고 생각했던 것처럼 정확했습니다. 들에서 돌아 온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기도를 받기를 위하여 왔을 때 그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 37절 부분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창 27:37) 『`내가 이미 그를 네 주인이 되게 하고 그의 모든 친척들을 그의 종이 되게 하였으며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를 주었으니 이제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무엇을 뜻합니까 아버지의 마음은 같은 복을 다른 이에게 또 빌어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확실하고, 유일한 복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아버지의 편견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우리 자녀 하나하나가 모두 이러한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오직 우리 자신 하나하나에게만 전념하시는 사랑을 뜻합니다.
단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장자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장자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장자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장자처럼 생각하고 장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반드시 장자가 받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한 마디로 아버지는 우리가 종이 되지 않고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신명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 28:) 1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곧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주는 사랑입니다. 주시되 흐르고 넘치도록 채워주기를 원하시는 넉넉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여호와 하나님 얘기로 바뀌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아버지의 마음을 감히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비교할 수도 없고 또한 비교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들 아버지가 가져야 할 마음의 표상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까 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건강해야 가정이 건강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비로소 교회다워집니다.
우리가 강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하지가 않고 복합적인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정체성이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가 세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축복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을 주는 아버지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더 강합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려는 사람은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소외를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는 사람은 상처를 잘 받지 않습니다. 그의 내면과 영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코 소외되지 않습니다. 그는 어둠에서도 빛을 뿜어냅니다. 절망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냅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합니다..
첫 목회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천과 충주 사이에 있는 박달재 계곡 깊은 산중 농촌에서 목회할 때 어느 날 집에 아내와 어린 아들 하나만을 두고 외부에서 몇 날을 지냈습니다. 새벽에 방문만 열어도 마당에 산짐승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무서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없을 때 어린 새댁이 아기 하나만을 데리고 교회와 집을 지키려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아내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없을 때 애기만 있어도 두려운 생각이 없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 말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가서 그 진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남편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때도 두려움이 극복될 수 있겠지만 내가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분명한 대상이 있을 때 그 때도 두려움이 극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더 강렬한 에너지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 보다 사랑을 줄 때 더 보람되고 더 강해집니다. 사랑을 주기만 해도 기쁜 것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려고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약한 증거입니다.
채우려고만 하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지만 퍼 주고 베푸는 사랑은 진정한 부자의 마음이고 거부의 마음이고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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