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네 부모를 공경(恭敬)하라
본문
까마귀를 가리켜서 반포조(反哺鳥)라고 합니다.
어미가 늙으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효도(孝道)를 미덕(美德)으로 알고 있는 인간 이 보기에는 상당히 훈훈한 모습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까마 귀에게 효성에 대한 감각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단지 본능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효성은 사람에게만 있는 고급스러운 감정입니다. 효성이 깊은 사람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나라에서 표창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땅에 속한 일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효도하는 것은 효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향기로운 예배로 열납하십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효도도 우리에게만 있는 특권인 셈입니다. 여러분은 이 특권을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부모의 효도로 여호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신앙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 주일만 되면 어버이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버이 노래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어떤 청년이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도 예수님보다 제 여자 친구가 좋습니다. 예수님과 여자 친구 중에 택하라고 하면 목사님께는 죄송합니다만 저는 제 여자 친구를 택하겠습니다. ” 그 청년 얘기가 왜 잘못 되었는지 아시겠습니까 “어떻게 자기 여자 친구를 감히 예수님보다 앞세우느냐 당연히 예수님이 우선이고 여자 친구는 그 다음이라야 한다. ”가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잘못 적용해서 틀렸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신앙은 그렇게 옹색한 것이 아닙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에게는 수능시험을 치루게 됩니다. 미술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 영어나 수학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영어 수학이 학생에게 필요가 없습니까 필수입니다.
학생에게 여자 친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제해야 앞으로 결혼도 하고 자녀 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좋냐 나쁘냐의 기준이 신앙이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여자 친구가 중요하냐 예수가 중요하냐”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모순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 청년의 경우에 “교제를 하되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교제를 하고 있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여자 친구가 중요하냐, 예수가 중요하냐” 하고 따지는 것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소치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집안 일보다는 교회 일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모시고 있는 시어머니 식사를 챙겨드릴 틈도 없이 교회 봉사를 하면 효도보다 신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잘한 일이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는 방법이 성경적이 아니어서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교회 봉사가 먼저냐, 시어머니 식사가 먼저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방법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가”가 기준이어야 합니다.
오늘 부모 공경은 본문은 십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이 있으면 “네 자식을 사랑하라” 라는 말도 있을 법한데,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굳이 계명으로 정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알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있는 본성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다릅니다. 계명으로 정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기독교 신앙에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에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효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계명 중에 제일이 되는 계명은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효도함이 바람직한 것입니까
1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父母)를 주(主) 안에서 순종(順從)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이 약속(約束) 있는 첫 계명이니,
인간은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우리존재의 근본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자식을 선물로 줍니다.
그러나 그 자식을 낳기까지 어머니는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태아를 키워야 합니다. 매사에 음식이나 행동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에 얼마나 고통이 심하겠습니까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자로서 돌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 자기를 미워해도 부모는 우리를 최고로 사랑합니다. 우리가 아파서 신음할 때에도 부모는 같이 아파합니다.
기쁠 때도 함께 기뻐하고 슬프고 절망적일 때도 함께 합니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부모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절 - 3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父母)를 주(主) 안에서 순종(順從)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이 약속(約束)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구약 성경을 요약하는 대표적인 율법입니다. 1-4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간의 행위를 말하고, 5-10계명은 인간과 인간간의 행위를 말합니다. 거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입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부모는 연로하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도 늙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을 천대하는 것은 성경적인 원리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유교적인 원리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성경의 원리에서 말합니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도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땅의 육신의 부모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할 것을 말합니다. 가정의 화평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데서 시작되지만, 부모를 업신여기는 가정은 곧 불행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부모 공경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고종황제의 밀사 역할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통적인 경로사상 이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는 조선이다 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공사로 한국에 와서 근무한 적이 있던 샌즈라
이 사람은 회고록에서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싶다 고 하였습니다.
1884년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이 땅에 입국한 알렌의사
그는 노인사이와 망인(亡人)사이가 단절되지 아니하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 즐거운 노인천국이 조선이다 라고 하였다.
몇 가지 조상들의 경로사상을 소개해 봅니다.
① ‘문성’이라 하는 말은 아침저녁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문안을 받는 전통입니다.
② 새 과일이나 별식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가 드신 후에 자식이 먹을 수 있습니다.
③ 주부의 권리인 뒤주열쇠가 안방차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에 안주었다.
④ 외출 후에 돌아오면 마을노인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드렸습니다.
⑤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노인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두 손을 읍하고 절을 드렸습니다.
⑥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마을노인을 모셔다가 상석에 앉혔습니다.
⑦ 마을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면 내장을 그 마을노인에게 골고루 나누어야만 했습니다.
⑧ 부모가 늙으면 자식의 벼슬자리를 고향 가까이 옮겨주고 부모를 봉양케 하였고, 부모가 와병하면 그 봉양을 위해서 유급휴직을 시켜 주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노인을 이처럼 우대한 나라가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형편을 보면 사정이 도대체 말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노인 천국이었던 나라가 노인 지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노인이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고층 아파트서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요즘노인들에게 일러주는 말이 있습니다.
1) 이사 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버리고 갈까보아
2) 여행가지 말라! 는 당부입니다. 떼어 놓고 올까보아
3) 병원에 가지 말라! 는 당부입니다. 돈 주고 없는 병을 만들어 놓고 올까보아
이 같은 것들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가 부모를 향하여 순종할 일은 무엇입니까 ‘순종’에는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1) 노예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가 무서워서 억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2) 계산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 순종은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하는 순종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3)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이 있습니다.
4) 그리고 절대적 순종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절대적 순종입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은 좋은 일에만 순종하지 말고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적 순종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순종은 복이 없습니다. ‘순종(順從)’이라는 말의 뜻이 본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잔소리 같은 부모의 말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서 부모님의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순종입니다. 마음으로 공경하는 존경심속에서 순종하는 삶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부모님에게 참견하도록 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부모님은 알고 싶어하고 참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가만히 계셔요, 편안히 계세요, 잠잠히 계십시오. 가만히 계신 것이 저희들을 돕는 것입니다. 하고 온전히 무슨 일이든지 소외시키고 쉬쉬한다. 참으로 불순종하는 자녀들이라 할 수 있다. 부모님들은 알고 싶어하고 참견하고 싶어 합니다.
3 부모 공경에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부모를 버려두는 자식을 세상 사람들은 비난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 역시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를 외면하는 신앙을 여호와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섬기겠습니까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물질의 복과 장수의 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십계명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고 했습니다. 바울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오래 산다는 것보다 자신과 자녀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T. V에 부모를 구타하고, 치매나 질환으로 고통을 당하는 부모를 버리는 자녀들을 가끔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시대가 악의 종착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반으로 나누어서 각각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세워놓고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신명기 27:16에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경홀히 여긴다’는 것의 원뜻은 가볍게 여긴다는 것으로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모독하거나 지독히 경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모독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폭로한 것은 아버지를 지독히 경멸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비신앙적인 행동이 됩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함의 행동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수치를 뒤걸음질하여 덮어주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노아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행동이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수치를 폭로한 함을 저주했지만 자신의 수치를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했습니다. 26-27절에 “또 가로되 ‘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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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작품 "리어 왕"에서 아버지에게 불효한 두 딸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 년들의 혓바닥은 마치 독사처럼 내 가슴을 휘감 았어. 하늘의 쌓인 온갖 복수여, 은혜도 모르는 그 년들의 뻔뻔스런 낯짝 위에 쏟아져라!" 그러나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효도한 막내 딸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우리 둘이서 새장 속의 새들이 되어 노 래를 부르자. 네가 나의 축복을 빌어 주면 나는 무릎을 꿇고 너의 용서를 구하마. 그
렇게 우리는 살아가자. 기도하고 노래하고 옛날 얘기를 나누며 금빛 나비들을 보고 웃고 궁중의 불쌍한 녀석들이 궁중 소식을 퍼뜨리는 것을 들으며 살아가자. 내 딸 코델리아야, 너같은 희생 제물에 대하여 하늘의 신들은 향을 피워 줄 것이다. 내가 너를 붙잡고 있지 않느냐 우리를 떼어 놓으려는 자는 하늘에서 횃불을 가져와야 할 거다. " 효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맺는 말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 니다. 그러니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 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 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것일지 모른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존경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1) 부모님은 공경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3) 효도하는 자녀는 축복을 받습니다
어미가 늙으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효도(孝道)를 미덕(美德)으로 알고 있는 인간 이 보기에는 상당히 훈훈한 모습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까마 귀에게 효성에 대한 감각이 있을 리는 없습니다. 단지 본능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효성은 사람에게만 있는 고급스러운 감정입니다. 효성이 깊은 사람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나라에서 표창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땅에 속한 일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효도하는 것은 효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향기로운 예배로 열납하십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효도도 우리에게만 있는 특권인 셈입니다. 여러분은 이 특권을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부모의 효도로 여호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신앙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 주일만 되면 어버이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버이 노래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어떤 청년이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도 예수님보다 제 여자 친구가 좋습니다. 예수님과 여자 친구 중에 택하라고 하면 목사님께는 죄송합니다만 저는 제 여자 친구를 택하겠습니다. ” 그 청년 얘기가 왜 잘못 되었는지 아시겠습니까 “어떻게 자기 여자 친구를 감히 예수님보다 앞세우느냐 당연히 예수님이 우선이고 여자 친구는 그 다음이라야 한다. ”가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잘못 적용해서 틀렸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신앙은 그렇게 옹색한 것이 아닙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에게는 수능시험을 치루게 됩니다. 미술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 영어나 수학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영어 수학이 학생에게 필요가 없습니까 필수입니다.
학생에게 여자 친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제해야 앞으로 결혼도 하고 자녀 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좋냐 나쁘냐의 기준이 신앙이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여자 친구가 중요하냐 예수가 중요하냐”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모순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 청년의 경우에 “교제를 하되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교제를 하고 있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여자 친구가 중요하냐, 예수가 중요하냐” 하고 따지는 것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소치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집안 일보다는 교회 일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모시고 있는 시어머니 식사를 챙겨드릴 틈도 없이 교회 봉사를 하면 효도보다 신앙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잘한 일이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는 방법이 성경적이 아니어서 틀린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교회 봉사가 먼저냐, 시어머니 식사가 먼저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방법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가”가 기준이어야 합니다.
오늘 부모 공경은 본문은 십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이 있으면 “네 자식을 사랑하라” 라는 말도 있을 법한데,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굳이 계명으로 정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알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있는 본성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다릅니다. 계명으로 정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기독교 신앙에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에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효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계명 중에 제일이 되는 계명은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효도함이 바람직한 것입니까
1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父母)를 주(主) 안에서 순종(順從)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이 약속(約束) 있는 첫 계명이니,
인간은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우리존재의 근본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자식을 선물로 줍니다.
그러나 그 자식을 낳기까지 어머니는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태아를 키워야 합니다. 매사에 음식이나 행동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에 얼마나 고통이 심하겠습니까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자로서 돌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 자기를 미워해도 부모는 우리를 최고로 사랑합니다. 우리가 아파서 신음할 때에도 부모는 같이 아파합니다.
기쁠 때도 함께 기뻐하고 슬프고 절망적일 때도 함께 합니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부모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절 - 3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父母)를 주(主) 안에서 순종(順從)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이 약속(約束)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구약 성경을 요약하는 대표적인 율법입니다. 1-4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간의 행위를 말하고, 5-10계명은 인간과 인간간의 행위를 말합니다. 거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입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부모는 연로하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도 늙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을 천대하는 것은 성경적인 원리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유교적인 원리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성경의 원리에서 말합니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도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땅의 육신의 부모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할 것을 말합니다. 가정의 화평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데서 시작되지만, 부모를 업신여기는 가정은 곧 불행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부모 공경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고종황제의 밀사 역할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통적인 경로사상 이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는 조선이다 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공사로 한국에 와서 근무한 적이 있던 샌즈라
이 사람은 회고록에서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싶다 고 하였습니다.
1884년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이 땅에 입국한 알렌의사
그는 노인사이와 망인(亡人)사이가 단절되지 아니하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 즐거운 노인천국이 조선이다 라고 하였다.
몇 가지 조상들의 경로사상을 소개해 봅니다.
① ‘문성’이라 하는 말은 아침저녁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문안을 받는 전통입니다.
② 새 과일이나 별식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가 드신 후에 자식이 먹을 수 있습니다.
③ 주부의 권리인 뒤주열쇠가 안방차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에 안주었다.
④ 외출 후에 돌아오면 마을노인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드렸습니다.
⑤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노인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두 손을 읍하고 절을 드렸습니다.
⑥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마을노인을 모셔다가 상석에 앉혔습니다.
⑦ 마을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면 내장을 그 마을노인에게 골고루 나누어야만 했습니다.
⑧ 부모가 늙으면 자식의 벼슬자리를 고향 가까이 옮겨주고 부모를 봉양케 하였고, 부모가 와병하면 그 봉양을 위해서 유급휴직을 시켜 주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노인을 이처럼 우대한 나라가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형편을 보면 사정이 도대체 말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노인 천국이었던 나라가 노인 지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노인이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고층 아파트서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요즘노인들에게 일러주는 말이 있습니다.
1) 이사 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버리고 갈까보아
2) 여행가지 말라! 는 당부입니다. 떼어 놓고 올까보아
3) 병원에 가지 말라! 는 당부입니다. 돈 주고 없는 병을 만들어 놓고 올까보아
이 같은 것들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가 부모를 향하여 순종할 일은 무엇입니까 ‘순종’에는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1) 노예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가 무서워서 억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2) 계산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 순종은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하는 순종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3)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이 있습니다.
4) 그리고 절대적 순종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절대적 순종입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은 좋은 일에만 순종하지 말고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적 순종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순종은 복이 없습니다. ‘순종(順從)’이라는 말의 뜻이 본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잔소리 같은 부모의 말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서 부모님의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순종입니다. 마음으로 공경하는 존경심속에서 순종하는 삶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부모님에게 참견하도록 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부모님은 알고 싶어하고 참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가만히 계셔요, 편안히 계세요, 잠잠히 계십시오. 가만히 계신 것이 저희들을 돕는 것입니다. 하고 온전히 무슨 일이든지 소외시키고 쉬쉬한다. 참으로 불순종하는 자녀들이라 할 수 있다. 부모님들은 알고 싶어하고 참견하고 싶어 합니다.
3 부모 공경에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부모를 버려두는 자식을 세상 사람들은 비난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 역시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를 외면하는 신앙을 여호와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섬기겠습니까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물질의 복과 장수의 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십계명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고 했습니다. 바울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오래 산다는 것보다 자신과 자녀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T. V에 부모를 구타하고, 치매나 질환으로 고통을 당하는 부모를 버리는 자녀들을 가끔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시대가 악의 종착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반으로 나누어서 각각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세워놓고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신명기 27:16에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경홀히 여긴다’는 것의 원뜻은 가볍게 여긴다는 것으로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모독하거나 지독히 경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모독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폭로한 것은 아버지를 지독히 경멸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비신앙적인 행동이 됩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함의 행동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수치를 뒤걸음질하여 덮어주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노아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행동이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수치를 폭로한 함을 저주했지만 자신의 수치를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했습니다. 26-27절에 “또 가로되 ‘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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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작품 "리어 왕"에서 아버지에게 불효한 두 딸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 년들의 혓바닥은 마치 독사처럼 내 가슴을 휘감 았어. 하늘의 쌓인 온갖 복수여, 은혜도 모르는 그 년들의 뻔뻔스런 낯짝 위에 쏟아져라!" 그러나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효도한 막내 딸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우리 둘이서 새장 속의 새들이 되어 노 래를 부르자. 네가 나의 축복을 빌어 주면 나는 무릎을 꿇고 너의 용서를 구하마. 그
렇게 우리는 살아가자. 기도하고 노래하고 옛날 얘기를 나누며 금빛 나비들을 보고 웃고 궁중의 불쌍한 녀석들이 궁중 소식을 퍼뜨리는 것을 들으며 살아가자. 내 딸 코델리아야, 너같은 희생 제물에 대하여 하늘의 신들은 향을 피워 줄 것이다. 내가 너를 붙잡고 있지 않느냐 우리를 떼어 놓으려는 자는 하늘에서 횃불을 가져와야 할 거다. " 효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맺는 말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 니다. 그러니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 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 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것일지 모른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배운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 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존경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1) 부모님은 공경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3) 효도하는 자녀는 축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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