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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삶으로 보여주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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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아무 댓가없이, 기쁨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면 너무 도전이 된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아버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고 확신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여러분들의 가정과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주시길!
어떤 사람이 정신병원 원장에게 어떻게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하느냐고 물었다.
“먼저 욕조에 물을 채우고 욕조를 비우도록 숟가락과 찻잔과 양동이를 줍니다. ”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인은 숟가락보다는 큰 양동이를 택하겠군요”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구분할 것 같은가요 숟가락, 찻잔, 양동이
그러자 원장이 말했다.
“아닙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욕조 배수구의 마개부터 뺍니다. ”
여러분은 이번에 아버지학교 잘 섬겨야 한다. 먼저 정상인이 되어야지!
사실 정상이 아니면 이렇게 고생하며 안 살죠 예수에 미치고 아버지학교에 미쳤으니
우린 모두 그런 사람들이니까… 우리끼린 정상이라고 인정하며 삽시다.
“당신은 정말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
마시멜로 이야기에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아룬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의 손자다. 마하트마 간디는 20세기의 최고의 성인(聖人)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아룬 간디는 할아버지의 가치관과 신념을 깊이 존경했다. 열 두 살이 되던 해 아룬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 1년 6개월을 살았다. 막 사춘기로 접어든 아룬이었지만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자제하는 법과 평화롭게 힘을 사용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함에 대해 배웠다.
이처럼 할아버지의 깊은 지혜와 사랑 속에서 자라난 아룬은, 열일곱 살 되던 해 그의 아버지에게서도 매우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룬의 아버지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룬에게 집에서 1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사무실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아버지는 아룬에게 말했다. "얘야, 아무래도 차를 수리해야겠구나. 덜덜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걸. 차를 정비소에 맡긴 다음 수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어도 다섯 시까지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너라. "
-네,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다섯 시까지 꼭 돌아와야 한다. "
-걱정하지 마세요.
아룬은 덜덜거리는 차를 끌고 시내 외곽에 자리한 정비소로 향했다. 차를 고치는 동안 무엇을 할지,아룬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저 정보소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는 차를 정비사에게 넘긴 후 간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는 돌아왔다. 그의 차는 정비소 옆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정비사가 그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차를 다 고쳤어. 타고 가도 괜찮단다. "
-벌써 다 고쳤어요
아룬은 시계를 보았다. 이제 경우 12시였다. 아직 다섯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아룬은 오내지 모를 가벼운 흥분에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차를 몰아 시내고 들어갔다. 화려한 간판의 극장이 눈에 띄자 아룬은 곧바로 차를 세운 다음 영화표를 샀다. 두편을 동시상영하는 극장이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동시상영이라.... 한 편만 보고 사무실로 가도 충분하겠구나. '
하지만 아룬은 영화에 푹 빠진 나머지 두 편을 연속해서 보고 말았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가 되어서야 그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다시 시계를 보았다. 6시5분이었다.
아뿔사! 아룬은 벌덕 일어나 극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가 아버지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주위에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석양을 받으며 사무실 밖에 혼자 서 있었다. 알누은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다.
-죄송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아버지의 얼굴에는 근심과 안도감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
"아들아,네게 무슨 사고라도 생기지나 않았는지 무척 걱정했단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룬은 갑자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휴,어리석은 정비사들 땜눈에 이렇게 늦었어오. 그 사람들,고장 원인을 좀처럼 찾지 못하다가 겨우겨우 수리를 끝냈어요. 곧장 달려왔는데,너무 늦었네요. 정말 죄송해요.
아버지는 약간 의아한 표정이었다. 잠시잠깐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으나 다시 침착함을 찾는 듯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룬은 이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열심히 딴전을 피웠다.
-이제 덜덜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을 거예요. 타세요,아버지.
아룬이 운전석에 올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에 타지 않은채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초조해진 아룬은 차의 시동을 걸었다.
-타세요,아버지. 어서 집에 가야죠.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들아,차를 몰고 집으로 가거라. 나는 걸어가겠다. "
-네 아버지,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못 들었느냐 난 집까지 걸어가련다. "
아룬은 몸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15킬로미터가 넘는,걷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아버지,왜 그러세요
아룬은 거의 울상이었지만 아버지는 침착하고 위엄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나는 지난 17년 동안 너를 올바르게 키우고자 노력했단다. 그런데 너에게 신뢰를 심어주지 못했구나. 나는 아버지로서 자격이 없다. 어떻게 해야 더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집까지 걸어가야겠다. 그리고 네가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내가 르렇게 나쁜 아버지였다면,부디나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 "
아버지는 약속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된 나머지,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전후사정을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룬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걷기 시작했다. 아룬은 천천히 차를 몰아 아버지를 뒤따르면서 울먹였지만, 아버지는 잠자코 고개만 저었다. 그는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니다, 아들아! 너 먼저 가거라. 어서 집으로 가라. "
아버지는 끝끝내 아들의 청을 거절했다. 그리고 천천히 밤 거리를 걸었다. 결국 두 사람은 거의 5시간이 지난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아무런 말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순간적인 체벌은 순간적인 효과만을 불러올 뿐이다.
깊은 자제력을 발휘해 아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커다란 교훈을 준 아룬 간디의 아버지 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하며 사는 것이 소중함을 평생 기억했을 것이다.
말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삶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오늘 말씀을 부탁받고 성경에서 삶으로 가르치는 아버지가 누굴까 생각하다가 이삭이 떠올랐다. 이삭의 삶은 특별히 드러난 것이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리웠고 야곱과 에서라는 특별한 두 자녀로 인해 별로 드러나지 않는 면도 있지만 본받고 싶은 점이 있다.
이삭에겐 가장 충격적이고 일생 기억되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 한 일이다. 모리아산에 바쳐졌을 때, 이삭은 반항하지 않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가만히 자신을 내어놓았다. 성경에서 정확히 묘사하지 않아 이삭의 마음은 잘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순간적으로 죽을 뻔한, 그것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칼에 찔려 죽임당할 뻔한 이 사건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똑똑히 경험했다고 본다. 아하. “여호와 하나님은 말도 안되는 시험 문제를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냈지만, 끝까지 믿고 순종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이레로 준비하시고, 그때부터 복을 주시는구나. ” 끄덕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삭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온유한 삶...
온유(프라우스)란 말은 야생동물을 길들인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고개숙이고 사는 것도, 힘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대로 힘의 방향이 조정된 것뿐이다. 왜 믿음의 축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삭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오늘의 말씀이다.
이삭이 그랄에 있는 블레셋왕 아비멜렉의 땅에 살 때의 일이다. (26:1)
이삭이 어려웠을 땐 그랄 사람이 동정했으나, 이삭이 잘 되자 경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삭은 웃으며 버텼다. 여호와 하나님을 붙들고 버텼다.
그러자 더 강하게 나온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워 버렸다.
우린 너무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어 이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마을에 우물이 군데 군데 있어서 물지개로 물을 길어다가 먹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의 상황이다. 이 당시에 우물을 파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땅을 판다고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에서 우물을 막는다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이며, 간접적인 추방명령으로 간주되었다. 그래도 버티자 블레셋왕인 아비멜렉이 찾아와 떠나라(16절)고 요구한다.
이삭은 텃세에 못 이겨 사람들이 없는 그랄골짜기로 옮겨갔다. 참 처량한 신세이다.
그곳에서도 힘들게 땅을 파서 샘근원, 좋은 생수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그랄의 목자들이 자기들의 우물이라고 우겼다. 이삭의 목자들과 그랄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이삭은 그들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에섹(다툼)이라 우물의 이름을 지어주고 다시 땅을 팠다. 여호와 하나님은 또 우물을 주셨다. 그런데 또 다툼이 일어났다. 이 우물의 이름은 싯나(대적함)인데 사탄(원수같이 기다리고 있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람들도 있다니... 이번에 못 참겠다.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런데 이삭은 한번 웃으며 ‘싯나’라고 이름을 지어 주고는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우물을 팠다. 그제야 다툼이 끝났다. 아마 그들도 더 이상 다툴 꺼리가 없었을 것 같다. 아니 자신들의 황당한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이삭이 무섭게 느껴졌을 것 같다. 어쨌든 이삭은 4번째로 판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Rehoboth/장소가 넓다)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과 가축들을 위해 넓은 장소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온유한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신 말씀이 이렇게 성취된다.
세상의 방법은 ‘더 이상 안돼’‘한번 양보하면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얕잡아보니까 절대 봐주면 안돼’라고 생각하는 핍절의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은 ‘우물을 팔 수 있는 땅은 얼마든지 있다. 가나안땅이 다 내 땅인데... ’라고 말하며 개척하고 정복해 나가는 풍부의식을 갖는다. 여러분의 태도는 어떤가 안된다는 핍절의식인가 해보자. 얼마든지 된다는 풍부의식인가 여호와 하나님은 풍부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경을 넓히시지만, 핍절의식을 가진 사람은 안된다고 말한대로 안된다.
따라해 보자. 르호봇 “여호와께서 나의 지경을 넓게 하셨으니 내가 번성하리라”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경쟁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라. 이것이 블루오션이다.
이삭이 머무는 땅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이삭이 복된 자이기에 땅이 복을 받고 주변의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이다. 이삭은 이렇게 쫓겨다니기만 한 것 같은데 사실은 가장 강한 자다.
그래서 26절 이하에 보면 아비멜렉이 찾아와 사정을 한다. “제발 우리를 해치지 말아주세요. (29절) 약속을 해야 돌아가겠다. ”한번도 안 싸우고 이겼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신앙의 능력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보여주게 된다. (28절)
이렇게 준비되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삭에 복을 주신 것이다.
12~13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30배, 60배도 아니고 100배의 축복을 주셨다. 여기서 100배는 씨앗 하나를 심어 100개를 거두었다고 보면 안된다. 보통 벼 한 이삭에 130~140개의 알이 달리게 된다고 한다. 그럼 이것은 농사가 잘되었다고 정도 밖에 안된다. 학자들은 이삭이 동일한 경작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족속에 비해 100배의 수확을 얻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결과이다.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잘된다고. 하지만 비교해보자.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을까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까 온유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사람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버틸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 유연한 사람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복을 부어 주신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 마디 하였다.
“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
“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
“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 지는
옷걸이들을 그 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있는 자리, 내가 갖고 있는 무엇 때문에 교만해지면 안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버틸 줄 알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옷걸이 되기 바란다.
그런데 왜 이삭의 자녀, 에서와 야곱은 그렇게 되었는가
이삭은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하는 편애가 가정을 깨트렸다.
집안에 편가르기가 생기면 믿음의 가정이라도 비극이 생김을 보여준다.
나는 일부러 교육을 시킨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게”
가정이 제일 행복해지는 비결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사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부가 행복해 하면 자녀들도 그 속에서 행복해진다.
어제가 무슨 날인지 아는가 5월 21일. 둘이 하나되는 부부의날이었다.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삶으로 보여주는 아버지가 되자.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하고 끝내려 한다.
자랑이 될 것 같아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마음을 품도록!
예)대학졸업하며 멋진 인생을 계획한 것 중 하나-제 배에는 20cm 되는 상처가 있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해준다. 이 마음으로 살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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