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녀의 성공, 부모에게 달려 있다
본문
솔로몬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특징은, “태평성대”, “성전건축”, 혹은 “지혜” 같은 단어들 입니다. 오늘 본문 5장을 묵상하면서 솔로몬이 이룬 것들을 살펴보니 그는 그의 힘으로, 그의 세대에 이룬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윗이 마련해 놓은 것들이고, 정보를 주었으며, 터를 닦아놓은 길을 갔던 것뿐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특징 중 그의 시대 것은 없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쌓아놓은 공덕 위에 자신의 것이 올려졌습니다. 역시, 자녀의 성공은 부모에게 달려있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성전건축을 살펴보겠습니다. 성전건축의 기본은 태평성대 입니다. 전쟁을 하는 중에는 성전을 건축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내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4절). 이것이 성전 건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솔로몬이 누리고 있지만 그가 이룬 것은 아닙니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는 이 시대는 아버지 다윗이 만들어 놓은 것 입니다. 솔로몬의 생애를 보면 그는 전쟁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주변 국가와 전쟁을 했다는 기록을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왕이 되기 전부터 시작해 죽는 날까지 전쟁을 했습니다.
평안했던 시절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생애가 있었기에 솔로몬은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태평성대에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것을 지속하기 위해 혼인정책을 써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수 많은 이방 신들을 들어오게 하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5장부터 성전건축을 시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두로왕 히람이 등장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하는 계기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두로왕 히람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편지를 보냅니다.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에게 답장을 보내고 성전건축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건축에 필요한 자제를 히람왕이 공급해 주어야 했습니다. 히람왕의 마음을 확인한 솔로몬은 그것을 계기 삼아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백향목 같은 가장 귀한 재목을 히람왕이 공급해 주었습니다. 두로왕 히람이 백향목 같은 귀한 자제를 솔로몬에게 공급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1절). 히람왕은 다윗 생전에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가 맺어놓은 좋은 인간관계 덕분에 성전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다윗의 준비, 유언 그리고 좋은 인간관계가 없었다면 과연 솔로몬의 주관으로 성전건축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솔로몬이 실제적으로 성전건축을 시도했지만 모든 준비는 다윗왕이 마련해 놓은 것 이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솔로몬은 성전건축 이라는 대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 입니다.
본문 5장에 나오는 성전건축의 진행 장면을 보면 솔로몬은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과 방법, 준비와 시작 모든 면에서 그의 지혜에 감탄합니다. 솔로몬왕을 생각하면 우선 제일 먼저 ‘지혜’ 가 떠오릅니다. 그의 통치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도 바로 이 지혜 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직후 감사하는 표현으로 일 천 번의 번제를 쌓았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꿈속에서 그에게 나타나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좀 더 잘 섬기고 싶습니다”. 이 장면만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왕권과 부귀영화 같은 것을 구할 수 도 있었을 겁니다. 군사력을 구할 수 도 있었고 혹은 전쟁이 없는 나라를 구할 수 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지혜부터 구했습니다. 역시 “떡잎부터 다르다” 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묵상을 해보겠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 첫 번째 드리는 기도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과연 본인만의 의지로 불쑥 구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은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다윗왕의 삶과 신앙을 보면서 배우고 느꼈던 무엇인가 있었기 때문에 ‘지혜’를 먼저 구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에게도 살면서 물론 한 두 번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밧세바와의 일, 인구조사 등 몇 가지 삶 속에 실수가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평가 하실 때, “그 마음의 중심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합한 자” 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 중심과 여호와 하나님 백성의 중심적 삶을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좀 더 잘 섬기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은 책을 통하여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아버지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직접 체득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첫 번째 기도에서 지혜를 구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신앙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믿습니다.
보는 것과 경험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서울에 있는 대학 후배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학시절 무척 절친하게 지냈던 후배인데 그는 대학 다닐 때 항상 졸업 후 신학을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그는 신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는 언제나 신학을 하겠다는 갈망이 있었지만 미루다가 드디어 올해 이제 겨우 신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나이 40세나 된 신학교 1학년생 입니다. 지난 연말 그에게서 이메일을 받고 몇 가지 내용으로 답장을 해준 적 있었습니다. 어제 전화 통화 중 그는 그 때 받은 답장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답장을 보낸 장본인인 저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도저히 기억나질 않았습니다. 그에게서 이메일을 받은 기억조차 나질 않았습니다(웃음). 그러다가 대화하는 중에 조금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의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입니다. 그는 나이 사십에 아이가 셋이나 됩니다. 그리고 이제 신학교 1학년생 입니다. 사역을 해야 하는 그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인맥을 따라서 사역 지를 결정하지 말아라. 특별히 신학교 시절 어떤 목회자, 어떤 교회를 보는가는 앞으로 섬길 사역의 질과 양, 그리고 방향과 교회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절대 이것에 의해 결정하지 말아라. 꼭 배워야 하고 훈련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일부러 선택하라. ” 이런 답장을 보낸 이유는 목회는 보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 것 이상 못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우리들 자녀들 삶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범 새끼는 새끼여도 범이다”. 부모가 범이 아닌데 어떻게 자녀가 범이 될 수 있습니까 부모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아닌데 어떻게 자녀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는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은 축복합니다.
이민교회의 사명은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계승 입니다. 이민 1세대의 사명도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계승 입니다. 이민 1세대가 이것을 실패하면 이민세대 존재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단순히 먹고 살기만을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이 먹고 사는 일에만 있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이 신앙계승에 있기 때문에 매달려야 합니다.
1. 5세 사역 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가정이 자녀 교육을 책임 지는 것이지 교회에서 한 시간 남짓 말씀을 듣고 그들의 교육을 책임 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10년 동안 고학생활 하면서 경험했지만 이민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이런 여건을 유지할 수 있는 1세 부모님들이 얼마나 됩니까 알면서도 하지 못합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이 틈을 교회가 매 꾸어야 합니다. 이민교회의 사명 입니다. 부모님들은 알아도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 입니다. 방법도 모르고 시간도 없습니다. 여건도 허락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정신 교감도 힘듭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그냥 포기해야 합니까 절대 그럴 수 는 없습니다. 교회가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십시오. 1세대들은 자녀들을 보면서 통곡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통곡해야 합니다. 교회가 자녀들 본인만의 신앙을 겨우 앞가림할 정도로만 해준다면 우리 세대와 그 다음세대는 누가 책임 집니까 그렇다면 이 시대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습, 한계 때문에 통곡해야 합니다. 고난을 모르고 인물을 나오지 않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인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말은 큰 교회에서는 절대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큰 인물을 내기 위한 조건들이 큰 교회에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인물을 키우는 일은 더 힘듭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는 고민이 없습니다. 고민 없이 사고가 발달하지 않습니다. 사고 없이 인물이 나오지 못합니다. 자신만 아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만 키우기 쉽습니다. 우리의 교회 교육이란 꼭 우리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이 시대를 넘을 수 있는 야성미가 가슴에서부터 이루어 지도록, 가슴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하면 소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아닌 교회가 해야 할 몫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할 수 있도록 뒤 받침은 부모세대가 해야 합니다.
자녀들과 말이 통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는 것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부모의 삶에 우선순위가 되어있으면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우선순위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소망이 됩니다. 희망이 됩니다. 유일한 탈출구가 됩니다. 우리교회에는 2000여명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대학 청년 부는 거의 1500명을 돌파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나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3500여명의 교육부 자녀들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기도해 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자신만을 아는 인간이 아니라 ‘우리’ 와 ‘교회’ 와 ‘시대’를 고민하며 자라나는 인간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는 동안 어른 세대는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 시대의 눈물을 보시고 다음 세대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소망입니다. 솔로몬이 다윗 때문에 복을 받았듯이 저와 여러분 때문에 다음 세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좋은 세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윗이 마련해 놓은 것들이고, 정보를 주었으며, 터를 닦아놓은 길을 갔던 것뿐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특징 중 그의 시대 것은 없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쌓아놓은 공덕 위에 자신의 것이 올려졌습니다. 역시, 자녀의 성공은 부모에게 달려있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성전건축을 살펴보겠습니다. 성전건축의 기본은 태평성대 입니다. 전쟁을 하는 중에는 성전을 건축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내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4절). 이것이 성전 건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솔로몬이 누리고 있지만 그가 이룬 것은 아닙니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는 이 시대는 아버지 다윗이 만들어 놓은 것 입니다. 솔로몬의 생애를 보면 그는 전쟁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주변 국가와 전쟁을 했다는 기록을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왕이 되기 전부터 시작해 죽는 날까지 전쟁을 했습니다.
평안했던 시절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생애가 있었기에 솔로몬은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태평성대에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것을 지속하기 위해 혼인정책을 써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수 많은 이방 신들을 들어오게 하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5장부터 성전건축을 시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두로왕 히람이 등장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하는 계기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두로왕 히람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편지를 보냅니다.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에게 답장을 보내고 성전건축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건축에 필요한 자제를 히람왕이 공급해 주어야 했습니다. 히람왕의 마음을 확인한 솔로몬은 그것을 계기 삼아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백향목 같은 가장 귀한 재목을 히람왕이 공급해 주었습니다. 두로왕 히람이 백향목 같은 귀한 자제를 솔로몬에게 공급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1절). 히람왕은 다윗 생전에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가 맺어놓은 좋은 인간관계 덕분에 성전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다윗의 준비, 유언 그리고 좋은 인간관계가 없었다면 과연 솔로몬의 주관으로 성전건축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솔로몬이 실제적으로 성전건축을 시도했지만 모든 준비는 다윗왕이 마련해 놓은 것 이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솔로몬은 성전건축 이라는 대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 입니다.
본문 5장에 나오는 성전건축의 진행 장면을 보면 솔로몬은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과 방법, 준비와 시작 모든 면에서 그의 지혜에 감탄합니다. 솔로몬왕을 생각하면 우선 제일 먼저 ‘지혜’ 가 떠오릅니다. 그의 통치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도 바로 이 지혜 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직후 감사하는 표현으로 일 천 번의 번제를 쌓았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꿈속에서 그에게 나타나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좀 더 잘 섬기고 싶습니다”. 이 장면만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왕권과 부귀영화 같은 것을 구할 수 도 있었을 겁니다. 군사력을 구할 수 도 있었고 혹은 전쟁이 없는 나라를 구할 수 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지혜부터 구했습니다. 역시 “떡잎부터 다르다” 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묵상을 해보겠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 첫 번째 드리는 기도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과연 본인만의 의지로 불쑥 구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은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다윗왕의 삶과 신앙을 보면서 배우고 느꼈던 무엇인가 있었기 때문에 ‘지혜’를 먼저 구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에게도 살면서 물론 한 두 번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밧세바와의 일, 인구조사 등 몇 가지 삶 속에 실수가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평가 하실 때, “그 마음의 중심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합한 자” 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 중심과 여호와 하나님 백성의 중심적 삶을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좀 더 잘 섬기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은 책을 통하여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아버지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직접 체득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첫 번째 기도에서 지혜를 구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신앙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믿습니다.
보는 것과 경험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서울에 있는 대학 후배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학시절 무척 절친하게 지냈던 후배인데 그는 대학 다닐 때 항상 졸업 후 신학을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그는 신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는 언제나 신학을 하겠다는 갈망이 있었지만 미루다가 드디어 올해 이제 겨우 신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나이 40세나 된 신학교 1학년생 입니다. 지난 연말 그에게서 이메일을 받고 몇 가지 내용으로 답장을 해준 적 있었습니다. 어제 전화 통화 중 그는 그 때 받은 답장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답장을 보낸 장본인인 저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도저히 기억나질 않았습니다. 그에게서 이메일을 받은 기억조차 나질 않았습니다(웃음). 그러다가 대화하는 중에 조금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의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입니다. 그는 나이 사십에 아이가 셋이나 됩니다. 그리고 이제 신학교 1학년생 입니다. 사역을 해야 하는 그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인맥을 따라서 사역 지를 결정하지 말아라. 특별히 신학교 시절 어떤 목회자, 어떤 교회를 보는가는 앞으로 섬길 사역의 질과 양, 그리고 방향과 교회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절대 이것에 의해 결정하지 말아라. 꼭 배워야 하고 훈련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일부러 선택하라. ” 이런 답장을 보낸 이유는 목회는 보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 것 이상 못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우리들 자녀들 삶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범 새끼는 새끼여도 범이다”. 부모가 범이 아닌데 어떻게 자녀가 범이 될 수 있습니까 부모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아닌데 어떻게 자녀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는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은 축복합니다.
이민교회의 사명은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계승 입니다. 이민 1세대의 사명도 다음 세대를 위한 신앙계승 입니다. 이민 1세대가 이것을 실패하면 이민세대 존재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단순히 먹고 살기만을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이 먹고 사는 일에만 있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이 신앙계승에 있기 때문에 매달려야 합니다.
1. 5세 사역 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가정이 자녀 교육을 책임 지는 것이지 교회에서 한 시간 남짓 말씀을 듣고 그들의 교육을 책임 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10년 동안 고학생활 하면서 경험했지만 이민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이런 여건을 유지할 수 있는 1세 부모님들이 얼마나 됩니까 알면서도 하지 못합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이 틈을 교회가 매 꾸어야 합니다. 이민교회의 사명 입니다. 부모님들은 알아도 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 입니다. 방법도 모르고 시간도 없습니다. 여건도 허락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정신 교감도 힘듭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그냥 포기해야 합니까 절대 그럴 수 는 없습니다. 교회가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십시오. 1세대들은 자녀들을 보면서 통곡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통곡해야 합니다. 교회가 자녀들 본인만의 신앙을 겨우 앞가림할 정도로만 해준다면 우리 세대와 그 다음세대는 누가 책임 집니까 그렇다면 이 시대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습, 한계 때문에 통곡해야 합니다. 고난을 모르고 인물을 나오지 않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인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말은 큰 교회에서는 절대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큰 인물을 내기 위한 조건들이 큰 교회에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인물을 키우는 일은 더 힘듭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경에서는 고민이 없습니다. 고민 없이 사고가 발달하지 않습니다. 사고 없이 인물이 나오지 못합니다. 자신만 아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만 키우기 쉽습니다. 우리의 교회 교육이란 꼭 우리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이 시대를 넘을 수 있는 야성미가 가슴에서부터 이루어 지도록, 가슴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하면 소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아닌 교회가 해야 할 몫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할 수 있도록 뒤 받침은 부모세대가 해야 합니다.
자녀들과 말이 통하지 않고 의사소통이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는 것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부모의 삶에 우선순위가 되어있으면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우선순위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소망이 됩니다. 희망이 됩니다. 유일한 탈출구가 됩니다. 우리교회에는 2000여명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대학 청년 부는 거의 1500명을 돌파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나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3500여명의 교육부 자녀들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기도해 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자신만을 아는 인간이 아니라 ‘우리’ 와 ‘교회’ 와 ‘시대’를 고민하며 자라나는 인간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는 동안 어른 세대는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 시대의 눈물을 보시고 다음 세대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소망입니다. 솔로몬이 다윗 때문에 복을 받았듯이 저와 여러분 때문에 다음 세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좋은 세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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