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다윗의 자녀교육
본문
한 때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재벌이었던 이병철씨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은 다 마음대로 되었는데 두 가지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하나는 골프이고 또 하나는 자식이더라는 것입니다.
또 예로부터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농사는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교육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에는 성공한 분들도 이 자녀교육에는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다윗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무척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찮은 목동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되었고, 왕으로서는 연약한 나라를 크게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 남자로서 그렇게까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였지만 자녀들 문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삼하 13장을 보십시오.
1절부터 19절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동생인 다말을 사랑하여 꾀를 부려서 강간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20절부터 22절은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그 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암논을 몹시 미워하여 시비간에 말하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형제간에 반목질시 하는 모습입니다.
23절부터 29절에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여 복수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7절부터 39절에는 압살롬이 도망치고 다윗은 그 아들 때문에 마음이 간절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압살롬이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은 계속 아버지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축출하여 버립니다. 그리고는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여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도망 간 아버지를 잡아죽이려고 쫓아갑니다.
그래서 아들과 아버지가 싸우는 전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은 아들이 아버지의 부하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의 죽음을 심히 슬퍼하는 장면이 뒤에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나중에 다윗이 죽을 때에도 다윗은 왕위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이 때에도 아들들 가운데 아도니야라는 아들이 일어나 스스로 왕이 되려고 모반을 합니다.
그래서 자식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물론 다윗은 원래의 계획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데, 다윗이 살았을 때에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그가 죽은 후에는 결국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손에 죽고 맙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의 가정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 자녀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되었습니까
자식들 사이에 강간사건이 없지 않은가, 살인 사건이 없는가, 아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칼을 드는 반란이 없는가, 자기들끼리 권력 투쟁이 없는가… 온갖 불행한 일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그러니다윗은, 다른 일은 다 잘 되었지만 자녀문제만은 잘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문제라 하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자녀들 때문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던 다윗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녀교육이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것에도 진리입니다만 특히 자녀교육에 있어서 진리입니다.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서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을 위해서 잘하지 못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다윗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잘 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대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에 있어서만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 문제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자녀교육에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의 자녀들이 이렇게 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1.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결혼원리를 벗어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한 결혼원리를 벗어나 그 당시 사람들이 따르는 관습대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결혼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창세기 2:24에 있는 대로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나서 당시 세상 사람들의 원리대로 행합니다.
그 당시는 힘이 있으면 아내를 많이 두는 때였습니다.
특별히 왕이 되면 아내를 많이 두고 자녀를 많이 가짐으로 힘을 과시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당시 사람들의 풍속대로 아내들을 많이 두고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가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여섯 아내에게서 여섯 아들을 얻었고 (삼하 3:2-5), 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다음에는 다른 처첩들을 더 얻어 열 한 명의 아들을 더 낳았다고 했습니다. (5:13-16)
아들만 열일곱 명이고 수를 세지 않은 딸이 많으며, 자식을 낳은 어머니도 많으니 가정이 얼마나 복잡하였겠습니까 서로 다른 어머니를 가진 자식들간에 얼마나 많은 다툼과 시기가 있었겠습니까
이런 가정구조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어떻게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원리를 벗어나서는 바른 자녀교육이 어렵습니다.
많은 문제아들과 사고아들을 조사해 보면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바른 결혼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결혼관계는 한 남자가 한 아내를 얻어 자녀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생활은 내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가장 큰 타격과 상처를 입을 자는 우리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아와 사고아들을 조사해보면 비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잘못된 결혼생활 때문에 내 자녀들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나지 마십시오.
우리가 혹시 이중생활하고, 문란한 생활을 한다면 자녀들의 문제가 생기고 이는 두고 두고 남는 것입니다.
내 결혼생활이 내 한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의 평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평생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결혼의 테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또한 다윗은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아내들과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고 해도 그 낳은 자녀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잘 했다면 그래도 문제는 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은 해도 자녀들을 보살피는 일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처음 결혼했을 때에는 장수로서 늘 전쟁터에 있어야 했고 또 그 후에는 사울 왕에게 늘 쫓겨다녀야만 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돌아 볼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나중에 왕이 된 다음에는 국사에 바빠서 자녀들을 보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많이 낳기는 했어도 그 자녀들에게 아버지 구실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생활이 그의 책임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가정을 잘 돌볼 수 없었던 그의 여건이 이런 가정의 불행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드렸던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는 시간도 정성도 낼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전혀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고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왜 자기 자녀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겠습니까 다윗이 자식을 사랑한 것은 성경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압살롬이 형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 다윗은 비록 암논은 죽었지만 압살롬이 도망간 것 때문에 마음이 몹시 슬펐습니다.
후에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했을 때에도 부하들에게 제발 아들 압살롬은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후에 압살롬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매우 슬퍼했습니다.
다윗은 자식을 사랑했고 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삶을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했을 것입니다. 가령 아들들을 위해서 왕궁에 좋은 집을 마련해주고, 환경을 조성하며, 좋은 스승을 데려다가 교육도 시키고, 특히 어머니들에게 극진히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 교육은 이런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녀 교육은 부모가 직접 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을 보면 가정을 사랑하고 또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서 늘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 사회적으로 유명해지고 중요한 일을 할수록 더욱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은 없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더 좋은 환경을 이루어 주기도 하며 더 좋은 선생을 들여서 과외를 시키고, 좋은 학교에 보내서 못 다 한 것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바쁜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을 어머니들에게 다 맡겨놓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은 그런 것으로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은 공을 들인 만큼 나옵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돈 이전에 아이들에게는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함께 하는 만남이 있어야 하고, 함께 뒹굴고, 함께 울고 웃는 삶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 없이 왜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잘못 되는가 원망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믿는 부모라고 하면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도 할 것이나 심지어 기도만 갖고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면 다윗만큼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신앙이 좋은 다윗인데도,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지 못하니 실패한 것입니다.
자녀교육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부모인 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직접 아이들을 만나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정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 바르게 살았는데 자녀교육에는 실패한 사람들을 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런 케이스이고 사무엘 선지자도 그런 사람이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다윗도 그런 사람입니다.
성경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일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훌륭한 목사님, 정말 주의 일을 위해서 헌신 봉사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의 자녀들이 비뚤게 나가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는 충실했는데 자녀들 교육에는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생각 같아서는 그런 사람들의 자녀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서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 때문에 돌보지 못한 자녀교육문제를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는 것을 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의 자녀들이 복을 받기도 하고 또 시간적으로 충분히 돌보지 못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경우 있습니다. 저의 경우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의 문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목사이지만 선교사이지만 다른 것 잘했다고 해서 자녀교육문제 그냥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도 의지해야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철저히 인식해야 합니다. 자녀문제는 우리에게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자녀교육 잘못 해 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교육은 여러분이 책임지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녀문제가 잘 되지 않고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내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고 여호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 다음에는 자녀교육이 우리 일생의 우선순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일 손해 보시더라도 절대 자녀교육문제 손해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평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 많이 구원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 많이 한다고 해도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게 맡긴 우리들의 자녀들 바로 교육하지 못하고 무슨 성공이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교육에 더욱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다윗의 자녀 교육의 잘못된 방법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징계할 것을 징계하지 못한 아버지였습니다.
오늘 말씀 21절을 보십시오.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했습니다.
암논이 자기 누이를 강간한 일입니다. 그리고는 그를 미워해서 쫓아버렸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기는 했지만 그 뒤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압살롬으로 하여금 암논을 살해하는 일까지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만일 이때, 아버지가 진상을 알아 암논의 죄를 처리하고 희생당한 다말을 위로해주었더라면 이런 비참한 결말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처하니 압살롬과 다말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형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한 것은 그 때 그 때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 간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도 부모는 그것을 빨리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더 커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때에도 화만 냈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나라 일 같으면 그랬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자녀들의 문제는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37절을 보십시오.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에도 도망간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고만 있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요압 장군이 나서서 그 일을 수습합니다.
자기 자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 일이 결국 나중에는 압살롬으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반란을 도모하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빨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고 오래 놔두면 아이들에게 병이 됩니다.
아이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나중에는 부모를 원망하게 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잘못한 것을 잘못 했다고 하지도 못했고 또 용서도 해 주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소에 자녀들에게 싫은 말을 하기를 꺼려하기도 했습니다.
왕상 1:5,6에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다윗이 자녀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그는 아도니야에게 한번도 섭섭한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도니야에게만 그랬겠습니까 다른 자식들에게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들을 망치게 된 이유입니다.
자식을 그렇게 기르니까 압살롬같은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도니야 같은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암논 같은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다윗은 자녀에게는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정이 많아서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잘 해야 합니다.
섭섭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합니다.
징계할 것은 징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때릴 때 때리지 못하고 바로 잡아야 할 때 바로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 나가면 호랑이 같은 상사이면서 집에 들어오면 자식들 눈치보고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 13:24을 봅시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가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또 잠 23:13,14에는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엘리 제사장의 아이들도 그래서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그 아들들이 잘못 하는 것을 알고도 그냥 한 두 마디 왜 그러느냐고 하는 것 외에 그들에게 엄격한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섭섭해 할까봐 그랬겠지요.
그렇게 엄격한 말을 하지 못하고 성실히 징계치 않으니까 그들이 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못할 짖을 하고 저주를 자청했습니다.
결국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을 이렇게 그냥 내 버려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여호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부모님들 공경할 줄을 모릅니다. 제 맘대로 살아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옛날 한국 가정에는 규율과 질서가 너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풀어져서 걱정이 많습니다. 벌써부터 가정에 문제가 많습니다.
특별히 요즘 입시를 치르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그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냐 오냐 하며 기르는 경향을 봅니다. 고3 수험생이 있으면 온 가족이 그 아이 눈치를 보고 벌벌 떨면서 공부 치닥거리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독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섭섭한 말이라도 할 때는 해야 합니다. 채찍이라도 들 때는 들어야 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합니다.
대학입시가 다 입니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대학에 못가더라도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고 징계할 것을 징계하면서 아이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순종하는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성실한 부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일들은 다윗의 잘못된 모범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가 말한 대로 살지 않고 우리가 행한 대로 삽니다.
여기 나오는 다윗의 자녀들의 행위를 보십시오.
그것이 다 다윗이 저질렀던 행위 아닙니까
암논이 자기 누이를 강건했습니다만 그 앞서 다윗도 남의 아내 특별히 자기의 충신의 아내, 힘없는 여자 밧세바를 권력으로 불러들여 동침하지 않았습니까
또 압살롬이 자기 형을 죽였습니다만 자기도 자기 충신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을 볼 때 그의 아들들의 행위는 자기의 축소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를 본받습니다.
우리가 잘못하고 회개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지만, 두고 두고 자녀들이 나쁜 모범으로 본받게 됩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잘 하는 것은 잘 본받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것은 금방 배운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흉년을 만나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지내니까 나중에 그의 아들 이삭도 그 아버지를 본받아 똑같은 죄를 범합니다. 자신도 남쪽으로 이사갔을 때,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부전자전입니다.
또 이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다른 것은 잘 했는데 여자 문제는 복잡했습니다.
결국 그것을 누가 본받습니까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것을 그대로 본받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왕후들을 둡니다.
그의 후비의 수가 700명, 빈장의 수가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왕상 11:3) 도합 천명입니다.
한 여자와 하룻 밤만 자도 3년이 걸릴 정도입니다.
결국은 그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켜서 나중에는 이방의 신을 섬기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든 잘못이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겠습니까
그 아버지 다윗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지만 우리 자녀들은 우리들이 산대로 삽니다.
우리가 가르친 대로 살기 보다 우리가 사는 대로 답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바로 살아야 하지만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바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이 우리들의 잘못 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녀들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소상하게 밝혀 주신 목적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에게는 부끄러운 일들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고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면 이런 잘못된 점은 다 덮어주시지, 속속들이 다 파헤쳐서 보여주십니까
이것은 그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람 다윗, 여호와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이었지만 그가 잘못한 자녀교육에 대한 대가는 다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생활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나면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아십시오.
자녀교육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다른 일에 바쁘고 다른 일에만 몰두하면 자녀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평생 사는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자식 농사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일을 줄여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자녀들 곱다고 오냐 오냐 하며 섭섭한 말을 하지 않고 징계를 게을리 하면 그 자녀들 때문에 욕을 받을 때가 온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은 우리들이 말한 대로 살지 않고 우리가 보여준 대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에 이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던 이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값비싸게 가르쳐 주신 이 교훈들을 마음에 새기고 부모의 책임을 인식하면서 부모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자녀교육에 성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은 다 마음대로 되었는데 두 가지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하나는 골프이고 또 하나는 자식이더라는 것입니다.
또 예로부터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농사는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교육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에는 성공한 분들도 이 자녀교육에는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다윗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무척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찮은 목동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되었고, 왕으로서는 연약한 나라를 크게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 남자로서 그렇게까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였지만 자녀들 문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삼하 13장을 보십시오.
1절부터 19절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동생인 다말을 사랑하여 꾀를 부려서 강간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20절부터 22절은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그 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암논을 몹시 미워하여 시비간에 말하지 않는 장면이 나옵니다. 형제간에 반목질시 하는 모습입니다.
23절부터 29절에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여 복수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7절부터 39절에는 압살롬이 도망치고 다윗은 그 아들 때문에 마음이 간절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압살롬이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은 계속 아버지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축출하여 버립니다. 그리고는 대낮에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여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도망 간 아버지를 잡아죽이려고 쫓아갑니다.
그래서 아들과 아버지가 싸우는 전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은 아들이 아버지의 부하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의 죽음을 심히 슬퍼하는 장면이 뒤에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나중에 다윗이 죽을 때에도 다윗은 왕위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이 때에도 아들들 가운데 아도니야라는 아들이 일어나 스스로 왕이 되려고 모반을 합니다.
그래서 자식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물론 다윗은 원래의 계획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데, 다윗이 살았을 때에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그가 죽은 후에는 결국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손에 죽고 맙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의 가정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 자녀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되었습니까
자식들 사이에 강간사건이 없지 않은가, 살인 사건이 없는가, 아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칼을 드는 반란이 없는가, 자기들끼리 권력 투쟁이 없는가… 온갖 불행한 일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그러니다윗은, 다른 일은 다 잘 되었지만 자녀문제만은 잘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문제라 하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자녀들 때문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던 다윗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녀교육이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것에도 진리입니다만 특히 자녀교육에 있어서 진리입니다.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서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을 위해서 잘하지 못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다윗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잘 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대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에 있어서만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 문제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자녀교육에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의 자녀들이 이렇게 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1.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결혼원리를 벗어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한 결혼원리를 벗어나 그 당시 사람들이 따르는 관습대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결혼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창세기 2:24에 있는 대로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나서 당시 세상 사람들의 원리대로 행합니다.
그 당시는 힘이 있으면 아내를 많이 두는 때였습니다.
특별히 왕이 되면 아내를 많이 두고 자녀를 많이 가짐으로 힘을 과시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당시 사람들의 풍속대로 아내들을 많이 두고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가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여섯 아내에게서 여섯 아들을 얻었고 (삼하 3:2-5), 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다음에는 다른 처첩들을 더 얻어 열 한 명의 아들을 더 낳았다고 했습니다. (5:13-16)
아들만 열일곱 명이고 수를 세지 않은 딸이 많으며, 자식을 낳은 어머니도 많으니 가정이 얼마나 복잡하였겠습니까 서로 다른 어머니를 가진 자식들간에 얼마나 많은 다툼과 시기가 있었겠습니까
이런 가정구조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어떻게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원리를 벗어나서는 바른 자녀교육이 어렵습니다.
많은 문제아들과 사고아들을 조사해 보면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바른 결혼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결혼관계는 한 남자가 한 아내를 얻어 자녀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생활은 내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가장 큰 타격과 상처를 입을 자는 우리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아와 사고아들을 조사해보면 비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잘못된 결혼생활 때문에 내 자녀들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나지 마십시오.
우리가 혹시 이중생활하고, 문란한 생활을 한다면 자녀들의 문제가 생기고 이는 두고 두고 남는 것입니다.
내 결혼생활이 내 한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의 평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평생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결혼의 테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또한 다윗은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아내들과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고 해도 그 낳은 자녀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잘 했다면 그래도 문제는 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은 해도 자녀들을 보살피는 일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처음 결혼했을 때에는 장수로서 늘 전쟁터에 있어야 했고 또 그 후에는 사울 왕에게 늘 쫓겨다녀야만 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돌아 볼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나중에 왕이 된 다음에는 국사에 바빠서 자녀들을 보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많이 낳기는 했어도 그 자녀들에게 아버지 구실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생활이 그의 책임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가정을 잘 돌볼 수 없었던 그의 여건이 이런 가정의 불행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드렸던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는 시간도 정성도 낼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전혀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고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왜 자기 자녀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겠습니까 다윗이 자식을 사랑한 것은 성경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압살롬이 형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 다윗은 비록 암논은 죽었지만 압살롬이 도망간 것 때문에 마음이 몹시 슬펐습니다.
후에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했을 때에도 부하들에게 제발 아들 압살롬은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후에 압살롬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매우 슬퍼했습니다.
다윗은 자식을 사랑했고 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삶을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했을 것입니다. 가령 아들들을 위해서 왕궁에 좋은 집을 마련해주고, 환경을 조성하며, 좋은 스승을 데려다가 교육도 시키고, 특히 어머니들에게 극진히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 교육은 이런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녀 교육은 부모가 직접 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을 보면 가정을 사랑하고 또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서 늘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 사회적으로 유명해지고 중요한 일을 할수록 더욱 가정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은 없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더 좋은 환경을 이루어 주기도 하며 더 좋은 선생을 들여서 과외를 시키고, 좋은 학교에 보내서 못 다 한 것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바쁜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을 어머니들에게 다 맡겨놓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은 그런 것으로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은 공을 들인 만큼 나옵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돈 이전에 아이들에게는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함께 하는 만남이 있어야 하고, 함께 뒹굴고, 함께 울고 웃는 삶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 없이 왜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잘못 되는가 원망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믿는 부모라고 하면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도 할 것이나 심지어 기도만 갖고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면 다윗만큼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신앙이 좋은 다윗인데도,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지 못하니 실패한 것입니다.
자녀교육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부모인 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직접 아이들을 만나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정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 바르게 살았는데 자녀교육에는 실패한 사람들을 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런 케이스이고 사무엘 선지자도 그런 사람이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다윗도 그런 사람입니다.
성경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일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훌륭한 목사님, 정말 주의 일을 위해서 헌신 봉사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의 자녀들이 비뚤게 나가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는 충실했는데 자녀들 교육에는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생각 같아서는 그런 사람들의 자녀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서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 때문에 돌보지 못한 자녀교육문제를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는 것을 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의 자녀들이 복을 받기도 하고 또 시간적으로 충분히 돌보지 못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경우 있습니다. 저의 경우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의 문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목사이지만 선교사이지만 다른 것 잘했다고 해서 자녀교육문제 그냥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도 의지해야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철저히 인식해야 합니다. 자녀문제는 우리에게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인식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자녀교육 잘못 해 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교육은 여러분이 책임지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녀문제가 잘 되지 않고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내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고 여호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는 것 다음에는 자녀교육이 우리 일생의 우선순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일 손해 보시더라도 절대 자녀교육문제 손해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평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 많이 구원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 많이 한다고 해도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게 맡긴 우리들의 자녀들 바로 교육하지 못하고 무슨 성공이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교육에 더욱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다윗의 자녀 교육의 잘못된 방법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징계할 것을 징계하지 못한 아버지였습니다.
오늘 말씀 21절을 보십시오.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했습니다.
암논이 자기 누이를 강간한 일입니다. 그리고는 그를 미워해서 쫓아버렸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기는 했지만 그 뒤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압살롬으로 하여금 암논을 살해하는 일까지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만일 이때, 아버지가 진상을 알아 암논의 죄를 처리하고 희생당한 다말을 위로해주었더라면 이런 비참한 결말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처하니 압살롬과 다말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형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한 것은 그 때 그 때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 간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도 부모는 그것을 빨리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더 커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때에도 화만 냈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나라 일 같으면 그랬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자녀들의 문제는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37절을 보십시오.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에도 도망간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고만 있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요압 장군이 나서서 그 일을 수습합니다.
자기 자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 일이 결국 나중에는 압살롬으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반란을 도모하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빨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고 오래 놔두면 아이들에게 병이 됩니다.
아이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나중에는 부모를 원망하게 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잘못한 것을 잘못 했다고 하지도 못했고 또 용서도 해 주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소에 자녀들에게 싫은 말을 하기를 꺼려하기도 했습니다.
왕상 1:5,6에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다윗이 자녀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그는 아도니야에게 한번도 섭섭한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도니야에게만 그랬겠습니까 다른 자식들에게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들을 망치게 된 이유입니다.
자식을 그렇게 기르니까 압살롬같은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도니야 같은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암논 같은 자녀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다윗은 자녀에게는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정이 많아서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잘 해야 합니다.
섭섭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합니다.
징계할 것은 징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때릴 때 때리지 못하고 바로 잡아야 할 때 바로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 나가면 호랑이 같은 상사이면서 집에 들어오면 자식들 눈치보고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 13:24을 봅시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가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또 잠 23:13,14에는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엘리 제사장의 아이들도 그래서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그 아들들이 잘못 하는 것을 알고도 그냥 한 두 마디 왜 그러느냐고 하는 것 외에 그들에게 엄격한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섭섭해 할까봐 그랬겠지요.
그렇게 엄격한 말을 하지 못하고 성실히 징계치 않으니까 그들이 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못할 짖을 하고 저주를 자청했습니다.
결국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을 이렇게 그냥 내 버려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여호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부모님들 공경할 줄을 모릅니다. 제 맘대로 살아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옛날 한국 가정에는 규율과 질서가 너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풀어져서 걱정이 많습니다. 벌써부터 가정에 문제가 많습니다.
특별히 요즘 입시를 치르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그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냐 오냐 하며 기르는 경향을 봅니다. 고3 수험생이 있으면 온 가족이 그 아이 눈치를 보고 벌벌 떨면서 공부 치닥거리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독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섭섭한 말이라도 할 때는 해야 합니다. 채찍이라도 들 때는 들어야 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합니다.
대학입시가 다 입니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대학에 못가더라도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고 징계할 것을 징계하면서 아이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순종하는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성실한 부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일들은 다윗의 잘못된 모범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가 말한 대로 살지 않고 우리가 행한 대로 삽니다.
여기 나오는 다윗의 자녀들의 행위를 보십시오.
그것이 다 다윗이 저질렀던 행위 아닙니까
암논이 자기 누이를 강건했습니다만 그 앞서 다윗도 남의 아내 특별히 자기의 충신의 아내, 힘없는 여자 밧세바를 권력으로 불러들여 동침하지 않았습니까
또 압살롬이 자기 형을 죽였습니다만 자기도 자기 충신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을 볼 때 그의 아들들의 행위는 자기의 축소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를 본받습니다.
우리가 잘못하고 회개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지만, 두고 두고 자녀들이 나쁜 모범으로 본받게 됩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잘 하는 것은 잘 본받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것은 금방 배운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흉년을 만나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지내니까 나중에 그의 아들 이삭도 그 아버지를 본받아 똑같은 죄를 범합니다. 자신도 남쪽으로 이사갔을 때,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부전자전입니다.
또 이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다른 것은 잘 했는데 여자 문제는 복잡했습니다.
결국 그것을 누가 본받습니까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것을 그대로 본받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왕후들을 둡니다.
그의 후비의 수가 700명, 빈장의 수가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왕상 11:3) 도합 천명입니다.
한 여자와 하룻 밤만 자도 3년이 걸릴 정도입니다.
결국은 그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켜서 나중에는 이방의 신을 섬기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든 잘못이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겠습니까
그 아버지 다윗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지만 우리 자녀들은 우리들이 산대로 삽니다.
우리가 가르친 대로 살기 보다 우리가 사는 대로 답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바로 살아야 하지만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바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이 우리들의 잘못 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녀들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소상하게 밝혀 주신 목적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에게는 부끄러운 일들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고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면 이런 잘못된 점은 다 덮어주시지, 속속들이 다 파헤쳐서 보여주십니까
이것은 그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람 다윗, 여호와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이었지만 그가 잘못한 자녀교육에 대한 대가는 다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생활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나면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아십시오.
자녀교육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다른 일에 바쁘고 다른 일에만 몰두하면 자녀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평생 사는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자식 농사는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일을 줄여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자녀들 곱다고 오냐 오냐 하며 섭섭한 말을 하지 않고 징계를 게을리 하면 그 자녀들 때문에 욕을 받을 때가 온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은 우리들이 말한 대로 살지 않고 우리가 보여준 대로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에 이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던 이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값비싸게 가르쳐 주신 이 교훈들을 마음에 새기고 부모의 책임을 인식하면서 부모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자녀교육에 성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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