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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엘리의 자녀양육, 실패

본문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랬기에 사무엘도 기도하는 어머니 밑에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또한 한나는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본을 보여준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서 12절을 보면, 불량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말은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엘리 제사장 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모습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13절부터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철저히 멸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13절 첫 부분을 보니까 습관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레위기 7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제사규례에는 제사를 지낸 후에 제물의 가슴과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의 몫으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백성이 제사를 드릴 때,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제사장의 것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며 다녔습니다. 어떤 성도가 제사를 드린 후에 제물을 가져가라고 하면 억지로 빼앗아 가겠노라 엄포를 놓았습니다. 더욱이 제사장의 몫이 따로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의 아들들은 큰 갈고리를 휘저어 걸려 나오는 부분을 자신들의 것으로 취하였습니다.
그들의 횡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22절 말씀을 보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기까지 했습니다.
사태가 이쯤 다다르자 엘리의 귀에까지 아들들의 악행이 들렸습니다. 그러자 엘리는 아들들에게 '내 아들아 그리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엘리의 아들들은 25절 말씀을 보니까, '아비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러한 아들들에 대해서 죽이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리고 엘리 가문에 대해서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십니다.
30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니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겼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21절 말씀에 나온대로 사무엘 이후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했던 엘리의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왜 엘리의 가족은 이렇게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잘못은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질렀는데, 왜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 가문에 대해서 이리도 철저한 심판을 하시는걸까요 그것은 엘리 제사장이 자녀 교육에 있어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엘리 자세장은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있어서 너무도 안일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삼상 3:13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엘리 제사장은 특별히 두 가지 면에서 자녀 교육에 실패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자기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차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비가 풍부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믿지 못했나 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멸망당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잖습니까 그곳에 의인이 40명이 있으면 어떡하시겠습니까 35명이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서른 명이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러다가 열명이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까지…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 조르고 또 조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조카 롯을 소돔과 고모라의 불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준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엘리 제사장은 참 답답합니다.
심판의 예언을 받았으면 어떡해야 합니까
'아멘,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하고 수긍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죠. 금식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식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 울며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요
자식이 말을 안들으면 몽둥이라도 들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앉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너무도 답답합니다.
삼상 3:18절을 보십시오.
어린 사무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 가문의 멸망을 예언했을 때 어린 사무엘이 그대로 엘리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자 그가 어떻게 나옵니까
18절.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엘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어지는 순간에도 자녀를 위해 중보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이런 부모님이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큼 위대한 양육은 없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것보다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위대한 설교도 없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의 징계에 있어서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아들들이 성전에서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엘리는 딱 한번 다그치고 맙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는 엘리 제사장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좀 더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너무 순했습니다. 자녀의 징계에 있어서 너무 약했습니다.
징계를 너무 과하게 하는 것도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에 안되지만, 징계를 너무 약하게 하는 것또한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또한 조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처벌과 징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구별시켜 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처벌이란 잘못에 대한 형벌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징계란 교정과 성숙을 위한 훈련이다. 따라서 처벌의 초점은 과거의 행위에 있으나, 징계의 초점은 미래의 행위에 있다. 처벌하는 부모에게서 우리는 '분노'를 볼 수 있으나, 징계하는 부모에게서 우리는 '사랑과 관심'을 발견한다. 처벌받는 자녀는 부모에게 공포와 적의, 원망과 죄책의 반응을 나타내나, 징계받는 자녀에게는 결심이 생기고 부모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발생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장려하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바로 사랑과 관심의 표현으로서 징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잠 10:17절에,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2:17절에도,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징계는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우리가 자녀에게 징계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커티스 허트슨은 그의 책, '자녀 양육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자녀를 바로잡는 징계의 일곱단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자기 스스로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기전에는 절대로 징계가 이루어져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을 시인했을 때,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당황함과 외부의 간섭들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자녀와 일대일로 따로 있으라는 것입니다. 공개적인 책망은 자녀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공개적인 반항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징계할 때는 얼굴 표정에 유의하라는 것입니다. 분노의 얼굴, 실망의 얼굴은 자녀에게 매 몇대 맏는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준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자녀의 범죄를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경건한 슬픔을 표현하는 표정은 자녀에게 그 어떤 책망보다도 가장 설득력있는 교훈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자녀의 행동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책임을 느껴야 할 권위는 부모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녀의 잘못은 단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부모 못지 않게, 아니 부모보다 더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가 커가면서 부모가 보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의식하여 죄를 경계하는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꼭 필요할 때 매를 사용할 수는 있으나, 결코 자주 매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고,
여섯째로, 매로 징계할 때는, 징계의 원인이 사랑임을 자녀가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매로 자녀를 징계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잠언 13:24을 보면,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징계가 실행된 이후에 자녀를 절대로 혼자 버려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함께 하면서, 자녀의 실수의 회복을 위해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 보상문제를 함께 토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43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태평양공격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와중에 "올해의 아버지 상" 수상자로 맥아던 장군이 뽑혔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장군은 그 소식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본국으로 즉시 전보를 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국 아버지의 날 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군인으로서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아버지로서 느끼는 자부심은 어느 것에 비길 수 없습니다. 군인은 건설하기 위해 파괴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건설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파괴를 모르지요. 군인은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생명과 창조를 잉태합니다. '죽음'의 군대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생명'의 군대는 더 커다란 힘을 발휘합니다. 제가 가진 조그만 소망 가운데 하나는 제가 이 세상을 뜬 후,(떠나간 후) 제 아이가 저를 전투 지휘관이 아닌 매일 함께 기도하던 아버지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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