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아이-어른의 나라
본문
오늘은 우리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특별한 주일입니다. 오늘 읽은 세 가지 성서 말씀 중에 두 곳에 가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제사장인 엘리의 가정 이야기의 한토막이 나오고, 마가복음에 보면 한 가난한 농부 가정의 얘기가 나옵니다. 두 이야기가 아주 대조적입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이 가정의 가장은 엘리라는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의 선조가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의 첫 제사장인 아론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아론의 직계 자손 중에 엘리라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이 제사장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서 엘리와 그 아들뿐 아니라 그 자손들이 대대로 저주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름 받고 기름 부음 받은 성직자 집안이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손들이 못되는 아주 비참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에 바친 맘과 뜻과 정성을 모은 예물들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너는 바쳐진 예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 골라다가 자식들한테 먹이고 있다. 여기 표현대로 하면 자식들만 살찌운다는 것입니다. ” 백성들을 위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잿밥에 마음이 가 있는 제사장,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지 못한 제사장, 그는 제사장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권을 누리며 여태껏 살 수 있었지만, 바로 특권을 받았던 그 제사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엘리는 큰 처벌을 받습니다.
처벌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제는 네 자손 중에서 제사장을 딱 한 사람만 내겠다. 나머지 형제들은 똑같은 시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앞으로 제사장 직을 이어갈 제3의 인물을 세우겠으며, 네가 낳은 자손 중에서는 딱 한 사람, 그 사람도 잠깐만 제사장으로 쓰고 목숨을 거두어 가겠다. ” 그래서 자식 하나는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만, 단명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후에 엘리 제사장의 법통을 이을 제사장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무엘을 택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십니다. “네 자식들은 사무엘한테 가서 돈 몇 푼 달라, 빵 몇 개 달라고 구걸할 정도로 가난해질 것이고, 겨우 굶지 않을 정도로만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
이제 엘리의 제사장직 가문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할 제사장이 본분이 망각되고 재물에 뜻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엘리는 일찍 제사장직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사표를 못 내고 끝까지 간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엘리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구약 성서의 기록입니다.
복음서 본문은 또다른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예수님 앞에 한 농부, 불쌍한 한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식 하나를 낳았는데, 이 자식이 어려서부터 귀신이 들렸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할 자식 속에 귀신이 들어와서, 이 아이를 못살게 굴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 아이를 귀가 먹게 하고 벙어리로 만들고, 틈만 나면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몸이 뻣뻣해지고 불 속에 들어가고 물 속에 들어가게 만듭니다. 이런 자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심정, 어떻겠습니까
아이 아버지가 제자들한테 찾아와서 아이를 고쳐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자들은 아무리해도 낫지 않아서 이 아이를 예수님 앞에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느냐” “어릴 때부터입니다. ” 그 아버지가 간청합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리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분한테 ‘할 수만 있거든’이 그 무슨 소리냐 조건부 빼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느냐” “믿습니다. ” 그러자 예수께서 그 아이를 고쳐 주십니다. 한 가정은 아버지가 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바르지 못한 믿음 때문에 가정이 파탄당하고, 한 가정은 아버지가 보잘것없는 신분이지만, 그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어린 자식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병을 고쳐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악한 귀신아 이 아이에게서 물러가라. ”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멀게 하고 벙어리로 만들고 거품 내며 이를 갈고 몸이 뻣뻣해지고 불 속이나 물 속에 막 들어가게 하는 것,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질서를 뒤집어엎는 반신적인 세력이 하는 짓입니다. 그 세력을 몰아내는 힘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세력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명령하십니다. “다시는 이 아이 속에 들어오지 말라. ”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면, 단 물음표 없이 진실로 간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두 가지를 주시는데, 하나는 사탄이 물러가게, 질병이 물러나게, 고난이여 끝나게 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이 다시는 범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선물입니다.
엘리의 가정과 이 농부의 가정을 보면서, 우리가 오늘 어린이 주일에 결단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요즘에 어느 책을 읽어봤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들을 낳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보다도 출산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만 자식은 낳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변은 이렇습니다.
아이를 낳기도, 기르기도 힘들다. 또 학교 보내면서 과외까지 시켜야 되는데,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다. 아이도 고생이고 부모도 고생이다. 뼈 빠지게 일해서 아이를 대학 졸업까지 시킨들 취직하기도 힘이 들지 않느냐. 취직 시험도 힘들고, 취직을 어렵사리 했다고 하더라도 40세만 넘으면 또 강제 퇴직을 당해야 하고. 조기 은퇴에 사업이라도 벌여야 되고. 이렇게 부모가 들일 한없는 노력, 자식이 당할 끝없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낫다. 차라리 우리 부부끼리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하자.
상당히 솔직한 고백인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주신 것이 정말 귀한 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차라리 안 주시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린아이들도 사탄은 타깃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어른들한테만 사탄이 오는 게 아니고 어린 아이한테도 옵니다. 왜냐 이런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 못 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사탄의 최대 목표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 가는 것을 막는 것일 테니, 사탄은 어른만 아니라 어린아이까지도 공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을 귀먹게 만들고 눈도 멀게 만들고 활동도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사실 사탄은 어린아이냐, 어른이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들어갈 틈만 있으면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 처방을 주십니다. 어린아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 없이, 의문부호 없이 믿는 사람, 악을 박멸하는 데 있어서도 의문부호 없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사람에게는 해법을 주십니다. 왜 나이 먹은 어른들이 고생하느냐 하면, 긴가, 민가 하는 물음표 때문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의문부호를 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 할 수 있습니까 소위 지성인들에게 묻습니다. 의문부호 없이 여호와 하나님한테 호소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길을 열어 주실 것이고, 의문부호를 달고 있으면 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한번, 우리 깊이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기대치는 이렇습니다. 최소한 부모들만큼은 되거나, 아니면 부모들보다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혹시 신앙적으로도 훨씬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 두십시오. 역시 어린이와 어른은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낳은 어린이들 백 명의 두뇌를 합하면 한 어른의 두뇌와 같아집니까 만 명을 모아 놓으면 어른과 같아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와 생각에서 어린이는 어린이지, 어린이가 천 명, 만 명 모아 놓는다고 어른 같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를 어른처럼 만들 생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귀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어른의 잣대로 규정하고 구박하지 마십시다. 애들을 어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맘대로 조작하지 마십시다. 저도 아이 구박을 많이 했습니다. “너는 이놈아 최소한 아빠처럼은 되어야지. 모범생이 되어야지. ” 저도 강요하고 구박했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혹시 저도 부모님께 구박받고 자랐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자유롭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어린이들 속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보고 즐거워하십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를 많이 모아 놓는다고 어른이 안 되듯이, 어른을 십분의 일로, 여러 조각으로 잘라 놓으면 어린이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은 어른이고 애들은 애들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어른은 어른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존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이들 가운데 있는 믿음만을 보십니다. 어른인 여러분에게서도, 사회적 지위나 부나 명망이 아니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하나만 보시겠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직책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의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어린이 같은 믿음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대를 이어가면서 천국에 갈 만하다는 어린이 같은 믿음 하나를 전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서양에서는 교회가 잘 안 됩니다. 옛날에는 서양 교회, 미국 교회도 유럽 교회도 가득 찼습니다. 가난할 때, 어려울 때에 교회당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텅텅 빈 교회가 많습니다. 사람들 말은, 배가 부르니까 교회가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교회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세속화가 되다 보니 교회와 종교는 멀어지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만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과거에 어린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렸을 때는 교회에 잘 다녔고, 이제 자라서 어른이 되자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문명의 차이 때문입니까 천만에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좋은 학용품도 사주었고 컴퓨터 사주었고 비싼 학비도 대주었고 부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못 준 것이 있습니다. 배고프거나 배부르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그 어떤 경우에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라는 믿음을 전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지 무슨 외형적인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창조주요 구주라는 것, 그것 하나만은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의 가슴에 깊이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인 인격으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물음표 없는 믿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부모의 믿음 때문에 자식을 고쳐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 창조주이시라는 믿음 하나만 전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태가 변해도 상황이 변해도 믿음으로 계보를 이루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라는 것,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귀한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이 가정의 가장은 엘리라는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의 선조가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의 첫 제사장인 아론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아론의 직계 자손 중에 엘리라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이 제사장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서 엘리와 그 아들뿐 아니라 그 자손들이 대대로 저주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름 받고 기름 부음 받은 성직자 집안이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손들이 못되는 아주 비참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에 바친 맘과 뜻과 정성을 모은 예물들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너는 바쳐진 예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 골라다가 자식들한테 먹이고 있다. 여기 표현대로 하면 자식들만 살찌운다는 것입니다. ” 백성들을 위로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잿밥에 마음이 가 있는 제사장,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지 못한 제사장, 그는 제사장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권을 누리며 여태껏 살 수 있었지만, 바로 특권을 받았던 그 제사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엘리는 큰 처벌을 받습니다.
처벌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제는 네 자손 중에서 제사장을 딱 한 사람만 내겠다. 나머지 형제들은 똑같은 시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앞으로 제사장 직을 이어갈 제3의 인물을 세우겠으며, 네가 낳은 자손 중에서는 딱 한 사람, 그 사람도 잠깐만 제사장으로 쓰고 목숨을 거두어 가겠다. ” 그래서 자식 하나는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만, 단명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후에 엘리 제사장의 법통을 이을 제사장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무엘을 택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십니다. “네 자식들은 사무엘한테 가서 돈 몇 푼 달라, 빵 몇 개 달라고 구걸할 정도로 가난해질 것이고, 겨우 굶지 않을 정도로만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
이제 엘리의 제사장직 가문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할 제사장이 본분이 망각되고 재물에 뜻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엘리는 일찍 제사장직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사표를 못 내고 끝까지 간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엘리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구약 성서의 기록입니다.
복음서 본문은 또다른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예수님 앞에 한 농부, 불쌍한 한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식 하나를 낳았는데, 이 자식이 어려서부터 귀신이 들렸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할 자식 속에 귀신이 들어와서, 이 아이를 못살게 굴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 아이를 귀가 먹게 하고 벙어리로 만들고, 틈만 나면 거품을 물고 이를 갈고 몸이 뻣뻣해지고 불 속에 들어가고 물 속에 들어가게 만듭니다. 이런 자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심정, 어떻겠습니까
아이 아버지가 제자들한테 찾아와서 아이를 고쳐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자들은 아무리해도 낫지 않아서 이 아이를 예수님 앞에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느냐” “어릴 때부터입니다. ” 그 아버지가 간청합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리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분한테 ‘할 수만 있거든’이 그 무슨 소리냐 조건부 빼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느냐” “믿습니다. ” 그러자 예수께서 그 아이를 고쳐 주십니다. 한 가정은 아버지가 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바르지 못한 믿음 때문에 가정이 파탄당하고, 한 가정은 아버지가 보잘것없는 신분이지만, 그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어린 자식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병을 고쳐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악한 귀신아 이 아이에게서 물러가라. ”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멀게 하고 벙어리로 만들고 거품 내며 이를 갈고 몸이 뻣뻣해지고 불 속이나 물 속에 막 들어가게 하는 것,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질서를 뒤집어엎는 반신적인 세력이 하는 짓입니다. 그 세력을 몰아내는 힘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세력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명령하십니다. “다시는 이 아이 속에 들어오지 말라. ”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면, 단 물음표 없이 진실로 간구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두 가지를 주시는데, 하나는 사탄이 물러가게, 질병이 물러나게, 고난이여 끝나게 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이 다시는 범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선물입니다.
엘리의 가정과 이 농부의 가정을 보면서, 우리가 오늘 어린이 주일에 결단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요즘에 어느 책을 읽어봤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들을 낳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보다도 출산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만 자식은 낳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변은 이렇습니다.
아이를 낳기도, 기르기도 힘들다. 또 학교 보내면서 과외까지 시켜야 되는데,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다. 아이도 고생이고 부모도 고생이다. 뼈 빠지게 일해서 아이를 대학 졸업까지 시킨들 취직하기도 힘이 들지 않느냐. 취직 시험도 힘들고, 취직을 어렵사리 했다고 하더라도 40세만 넘으면 또 강제 퇴직을 당해야 하고. 조기 은퇴에 사업이라도 벌여야 되고. 이렇게 부모가 들일 한없는 노력, 자식이 당할 끝없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낫다. 차라리 우리 부부끼리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하자.
상당히 솔직한 고백인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주신 것이 정말 귀한 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차라리 안 주시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린아이들도 사탄은 타깃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어른들한테만 사탄이 오는 게 아니고 어린 아이한테도 옵니다. 왜냐 이런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 못 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사탄의 최대 목표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 가는 것을 막는 것일 테니, 사탄은 어른만 아니라 어린아이까지도 공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을 귀먹게 만들고 눈도 멀게 만들고 활동도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사실 사탄은 어린아이냐, 어른이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들어갈 틈만 있으면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 처방을 주십니다. 어린아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의심 없이, 의문부호 없이 믿는 사람, 악을 박멸하는 데 있어서도 의문부호 없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사람에게는 해법을 주십니다. 왜 나이 먹은 어른들이 고생하느냐 하면, 긴가, 민가 하는 물음표 때문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의문부호를 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 할 수 있습니까 소위 지성인들에게 묻습니다. 의문부호 없이 여호와 하나님한테 호소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길을 열어 주실 것이고, 의문부호를 달고 있으면 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한번, 우리 깊이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기대치는 이렇습니다. 최소한 부모들만큼은 되거나, 아니면 부모들보다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혹시 신앙적으로도 훨씬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 두십시오. 역시 어린이와 어른은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낳은 어린이들 백 명의 두뇌를 합하면 한 어른의 두뇌와 같아집니까 만 명을 모아 놓으면 어른과 같아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와 생각에서 어린이는 어린이지, 어린이가 천 명, 만 명 모아 놓는다고 어른 같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를 어른처럼 만들 생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귀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어른의 잣대로 규정하고 구박하지 마십시다. 애들을 어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맘대로 조작하지 마십시다. 저도 아이 구박을 많이 했습니다. “너는 이놈아 최소한 아빠처럼은 되어야지. 모범생이 되어야지. ” 저도 강요하고 구박했습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혹시 저도 부모님께 구박받고 자랐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자유롭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어린이들 속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보고 즐거워하십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를 많이 모아 놓는다고 어른이 안 되듯이, 어른을 십분의 일로, 여러 조각으로 잘라 놓으면 어린이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은 어른이고 애들은 애들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어른은 어른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존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이들 가운데 있는 믿음만을 보십니다. 어른인 여러분에게서도, 사회적 지위나 부나 명망이 아니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하나만 보시겠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직책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의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어린이 같은 믿음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대를 이어가면서 천국에 갈 만하다는 어린이 같은 믿음 하나를 전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서양에서는 교회가 잘 안 됩니다. 옛날에는 서양 교회, 미국 교회도 유럽 교회도 가득 찼습니다. 가난할 때, 어려울 때에 교회당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텅텅 빈 교회가 많습니다. 사람들 말은, 배가 부르니까 교회가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교회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세속화가 되다 보니 교회와 종교는 멀어지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만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과거에 어린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렸을 때는 교회에 잘 다녔고, 이제 자라서 어른이 되자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문명의 차이 때문입니까 천만에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좋은 학용품도 사주었고 컴퓨터 사주었고 비싼 학비도 대주었고 부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못 준 것이 있습니다. 배고프거나 배부르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그 어떤 경우에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라는 믿음을 전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지 무슨 외형적인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창조주요 구주라는 것, 그것 하나만은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의 가슴에 깊이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인 인격으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물음표 없는 믿음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부모의 믿음 때문에 자식을 고쳐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 창조주이시라는 믿음 하나만 전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태가 변해도 상황이 변해도 믿음으로 계보를 이루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라는 것,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귀한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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