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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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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사를 보면 루이14세 때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프랑스인들이 성에 갇혀서 최후의 혈전이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성을 사수한 사람들은 프랑스군사들이 아니고 돈에 의해 팔려온 스위스용병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가 장렬하게 전사를 했습니다. 그들이 도망갈 기회도 있었고 투항하라는 권면을 들어서 투항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226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몸을 조국도 아닌 타국에서 바치게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스위스 용병중에 한 사람이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려했든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기에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였습니다. ‘우리가 신의를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음으로서 정부와 계약을 지켜려한다. ’ 하는 내용입니다. 스위스용병들이 조국도 아닌 타국에서 후손들을 생각하는 그 자세가 지금 스위스를 만들게된 것이라 여깁니다. 그 이후로 로마교황청의 경비를 스위스의 경비대로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신의가 높아서 은행도 스위스은행만큼 신의가 높은 곳도 없습니다. 이렇게 스위스후손들이 해택을 받게된 것은 선조들이 후손들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스위스 못지 않게 자손들을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유대인들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요즈음 날로 청소년들의 이탈현상이 생깁니다. 초등학생들이 옛날에 고등학생들이 하는 짓을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임신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원조교제에 초등학생들이 득실거립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술 중독자가 생기고 전매청은 학생들이 담배를 안 피우면 매출이 뚝 떨어지는 그런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씀드린다면 자녀교육의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은 많은데 너무 아이들을 모릅니다. 늘 어른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니까 그기서 나오는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교육에 투자하되 잘 투자해야합니다. 자녀교육에는 필히 투자해야하는데 절대로 투자하지 않고 결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no pain no gain' 고통없이 얻은 것이 없고 투자없는 수확이 없고 훈련없는 결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녀교육의 새로운 원칙을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 입니다.
어떤 아주 존경하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덕망 있는 교수요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분이십니다. 이 장로님의 딸이 지방대학을 다니는데 어느 날 이 딸이 노란 머리로 물을 들여 온 것입니다. 이 장로님은 상당한 충격 이였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제 너는 따로 나가 살 나이가 되었다 따로 나가 살려면 그렇게 해라 단 네가 나와 같이 살려면 노란 머리를 원래의 머리로 바꾸어라 내 집에서 나와 같이 살려면 내 방식에 따라야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 한 처방입니까 사실 이런 것이 문제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사실 이런 행위는 부모와 자식간에 관계가 주종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자관계를 깨는 행위이지요. ‘너는 내 방식대로 살아야된다’하는 이야기는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것이야, 내가 누굴 믿고 살았는데 네가 이럴 수 있냐’하는 이야기로 아이들을 굴레를 씌웁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책임입니다. 고양이도 새끼는 잘 키웁니다.
사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면 그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잘 못된 인격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 아이들을 조정하거나 업압하거나 대리 만족을 누리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부모은혜가 있는 만큼 자식의 은혜도 있습니다. 자식으로 인한 기쁨이 없습니까 자식 때문에 웃음이 있고 가정이 화목하고 삶의 의지가 생기고 하는, 자식으로부터 받은 은혜도 사실 있는 법입니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젊은 이들의 70%가 부모를 미워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느냐하면 자세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른으로 대접할 때부터 아이들은 어른이 됩니다. ‘너가 알면 얼마나 알아!’ 그러면서 아이취급을 하는데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많이 아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른으로 취급하라는 것은 아이들을 신뢰하고 맡겨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착한 아이로 키우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원하는 착한 아이는 어떤 아이입니까 마마보이들입니다. 무조건 엄마 말이라면 아버지 말이라면 자기의견도 없이 따라하는 그런 아이를 우리는 착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은 안습니다. 의식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도 좋습니다. 고집도 좀 있고 말도 잘 안 들어도 그것이 예의에 벗어난다든지 질서를 깨는 일이 아니면 아이들을 신뢰하고 좀 기다려 줄줄 알아야됩니다.
운명과 팔자는 신이 다 한다고 생각하니까 집을 신이 지어주는 것이기에 집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신에게 잘 보여서 정성껏 제사를 드려 집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주셔서 ‘너 마음대로 지어 보아라 그리고 잘 못되면 내가 도우리라’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너 소신껏 해 보아라 그리고 잘 못되면 내가 도와 줄게’ 이런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청소년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있습니다. 1위가 ‘T. V꺼’ 그런데 부모들은 평균 T. V시청시간이 6시간이랍니다. 그리고 2위가 ‘공부해!’ 그런데 부모는 절대로 책 안 읽지요. 통계에 따르면 한 해에 0. 7권의 책을 한국 국민들이 읽는다고 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란 말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말을 부모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소유물로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아이들 장래도 부모가 결정을 합니다. 자기가 못한 것에 대한 대리 만족을 아이들을 통해서 이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절대로 여러분들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무것도 한 것없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면 그것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술 소비가 일년에 소주27병이랍니다. 저는 한 병도 안 마셨는데 누가 저 술까지 다 마신 것입니다. 그리고 술이 소주 밖에 없습니까 굉장한 술 소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술 먹지 말라고요.
부모는 자식에게 은혜를 따지면서 그리고 너희들 때문에 산다는 말을 서섬없이 하면서 아이들이 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인식에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내 식대로 살아주기를 바라고 내 방법으로 살아주기는 원하는 하나의 소유물로 생각을 하니까 아이들이 빚나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구걸해서 얻은 음식을 가까운 언덕에 올라가서 비빕밥을 해서 먹고 있는데 방금 구걸했든 동네가 불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동네가 아수라장이겠지요 이리 뛰고 저리뛰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아들 거지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바쁘게 뛰어다녀! 참 불쌍하다 우리는 집이 없어서 참 좋다 그지!’ 그러니까 아버지 거지가 아들 뒷 통수를 딱 치면서 하는 말이 ‘이게 다 아비 덕분인줄 알아라’ 우리는 모두가 이런 식으로 아비 잘 만나서 잘 살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왜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보아야하느냐 인격체로 못보고 소유물로 보니까 명령만하고 들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그러니까 대화가 단절되지요. 대화의 단절은 마음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보게되면 부모들은 아이들이 사랑할 때 사랑하고 일할 때 일하는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다시 이야기해서 인간답게 살며 자기하는 일에 의미와 만족을 누리는 삶으로 인정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대한 자세입니다.
두 번째는 자식을 떠나 보내라
이것은 성경말씀입니다. 자 예를 들어 봅시다. 아이가 자궁에서 10달을 큽니다. 그래서 아이가 자궁보다 크면 자궁에서 아이를 내 보냅니다. 아이는 당연히 안 나가려고 하지요 그래서 억지로 내 보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 힘주는 이유는 아이가 자궁에서 빨리나가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궁에서 아이가 떠납니다. 그 다음에 최초로 안기는 데가 엄마 품입니다. 그리고 엄마 품보다 아이가 커지면 아빠어깨로 갑니다. 그 다음 아빠 어깨보다 아이가 커지면 자기 또래에게 갑니다. 5-7살 때 보면 밥만 먹으면 밖에 나가려고 합니다. 또래 보다 커지면 학교로 가지요 아이가 학교보다 커지면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떠나 보내야합니다. 그런데 엄마 품에서 안 나가겠다고 하면 이것은 건강한 아이가 아닙니다. ‘부모들은 좋아서 아이가 엄마만 찾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비정상입니다. 끼고 있으면 안됩니다. 내 보내야 됩니다. 20세가 되었는데도 안 내 보내서 마마보이가 되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을 성인 아이라고 부릅니다.
아빠 품을 떠나지 못하니까 시집가서도 ‘우리 아빠는 안 이랬는데’ 그러면서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또래끼리 모이는 곳을 못 떠나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맨날 친구만나면 1차, 2차, 3차 이렇게 살고 친구하면 부인과 아이들은 뒷전이고 툭하면 부인에게 전화해서 ‘ 누구 누구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전화나 하고 그래서 그 친구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잖아! 그러면 둘째 아버지라나 그리고 학교에 머물러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을 10년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대학원 저 대학원을 전전하는 사람들도 있습있습니다.
떠나는 것은 사람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결혼하면 부모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 보내십시오 그래야 덜 서운합니다. 그리고 ‘씨’자 붙은 사람과 사이가 좋아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못삽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자양분을 받을 때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자기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성공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건강한 심리적 구조를 가지려면 두축이 있어야합니다. 건물에 기둥이 주요하듯이 아이들이 형성해야할 두 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두 기둥의 하나가 mirroring 입니다. 이 기둥은 0-3세까지의 아이들에게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이 기둥은 어떻게 형성되느냐하면 칭찬과 사랑을 많이 받을 때 생깁니다. 이것이 엄마의 품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아이들과 피부와 눈 접촉을 많이 하는 엄마들이 75%정도 된다고 봅니다. 25%정도가 애 보다 T. V를 더 좋아하고 , 화토를 더 좋아하고, 동네사람들과 수다떠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 기본적인 축이 사랑과 관심으로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기본적인 축이 형성되지 못합니다. 이 축이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은 칭찬에 굶주린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 심리적인 산소가 엄마의 사랑과 칭찬입니다. 예를 들어 이제 태어난지 몇 개월 안 된 아이가 반응을 합니다. 웃거나 올알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아이가 이렇게 반응을 하니까 상대가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런데 반응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내성적이 되고 좋은 대상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3살 이하의 아이들이 세상이 나를위해 있다, 세상의 중심이 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축을 세우지 못하면 커서 돈이 우상이 됩니다. 돈으로 어릴 때 받지 못한 보상을 받으려 고합니다. 정치병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애정을 달라고 합니다. 왜 못하느냐고 항상 불만이지요. 부모가 사랑을 안하고 반응을 안하니까 자신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깁니다.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돈 위주 권력위주에서 맴돌며 살지요 누가 나를 끊임없이 인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기둥은 idealizer 즉, 이성적 자기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빠의 어깨를 말합니다. 칭찬과 사랑을 받고 난 후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축입니다. 4-5살짜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빠란 즉 아빠의 이미지를 조사한 것입니다. 응답의 1위가 아빠란 고함치는 사람, 2위 술마시는 사람, 3위 잠자는 사람, 4위 신문이나 T. V보는 사람이라고 응답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생생만 엄청나게 내지요, 그런데 아이들의 이상화의 대상이될 수 있어야합니다. 4-6살 아이들은 아빠의 흉내를 그대로 냅니다. 내가 닮고 싶다는 것이지요. 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두 번째 축이 재대로 형성되겠습니까
이 축이 형성되지 않으면 자기에게 이상의 축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섬기는 사람이 많고 권위에 순종적이지요 이런 사람이 이단에 빠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남태평양에 솔로몬군도가 있는데 인류학자들이 솔로몬군도에 갔다와서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사는 원주민들은 나무로 집을 짓는데 생나무가 너무 커서 톱으로 잘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나무들을 어떻게 죽이느냐하면 족장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정수기에 서서 있고 그 나무 밑으로는 청장년들이 나무둘레를 빙 둘러서 있습니다. 강강수월레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나무 꼭대기에서 추장이 증수기를 향해 소를 치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고함을 칩니다. 그렇게 하루에 2-3번씩 일주일만 하면 나무가 죽는답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소리를 지릅니까 그런데도 끄덕도 안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조그만 관심 만가지고 사랑으로 돌보고 자세만 바뀌면 정말 올바른 인격의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여호와 하나님께로 인도해 오라입니다.
지금까지 자녀교육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쉽다고 느끼십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자녀들의 성격에 따라 어떤 아이들은 이 정도는 상처를 안 받는데 어떤 아이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육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기준을 세우기도 어렵습니다. 어떨 때 매를 들어야하고 어떨 때 용서를 해야하는지 구별하기도 힘듭니다.
그리도 자녀를 꾸짖데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들은 꾸짖는다고 하지만 사실 비난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학생이 대학에 낙방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너 그렇 줄 알았어! 너가 대학가면 떨어질 아이 하나도 없지’이렇게 비난을 했습니다. 이 학생이 지금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러고 그 말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습니다. 항상 ‘아버지는 나를 미워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야 만 했습니다. 부모들이 가장 실수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힘든 것입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감정으로 이야기 할 때가 많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자녀에게 굉장히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미 성장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하느냐 하는 문제도 생기지요. 사회로 나온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포함해서 정말 자녀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저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만이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왜 말씀만이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할 수 있는가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부정적인 무의식세계에 고통 당하는 부분을 치유하십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으신 분들이 많은데 그리스도사랑만큼 위대한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은혜를 받으면 먼저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게됩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살아있으면 선이 무엇이며, 효도가 무엇이며,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는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이 살아서 한 사람을 지배하고 인도하고 축복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부모들이 먼저 본을 보일 수 가 있습니다.
본을 보인다는 것만큼 훌륭한 교육은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면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만큼 큰 훈계를 없을 테니까요. 부모님들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열매를 가정에서 실천한다면 자녀들은 그 부모의 모습을 닮아 그리스도안에서 훌륭히 자라는 복된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본을 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합니다.
세 번째,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엘리 제사장을 잘 아시지요 그에게는 두 아들 홉니와 비너하스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상을 읽어보면 홉니와 비너하스에게는 어머니가 기록되어 있지않습니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량자라고 칭할 정도로 잘못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어머니인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겼지요.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구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주안에서 양육하십시오. 꼭 예배에 참석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시며 자녀를위해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기도는 자녀를 따라다닙니다. 어두움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섭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자녀를 24시간 따라다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꼭 따라다닙니다. 적어도 금요심야예배는 꼭 나와서 사명과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면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히 자녀를 책임져 주십니다. 아무리 유산을 많이 물려준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면 망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물려주면 그들은 믿음을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삶을 살 것입니다. 유대인의 교육에 잡은 고기를 주지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이기며 자기가 하는 일에 성역이라고 느끼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시고 늘 기도로 자녀 양육에 승리하는 복된 심령이 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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