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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요베겟의 끝없는 자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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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 모세의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 내었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느냐 하면 그 내력은 이렇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노예민족인 이스라엘의 수가 번성하자 두려운 나머지 출생자체를 억제하기 위하여 남자아이는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의 한 가정에 아들이 출생하였습니다.
어머니 요베겟은 이 아들을 살리려고 몰래 숨겨서 석 달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서 그 울음소리를 감출 수 없게 되자 애굽 군인에게 죽임을 당하게 할 수 없어서 갈대 상자에 역청을 칠하고 그 속에 아이를 넣어서 나일강으로 띄워 보냈습니다.
마침 애굽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그 갈대상자를 발견하고는 시녀에게 건져 오게 하였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 이스라엘 아이가 담겨있고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본 공주는 측은히 여겨서 자기가 기르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한편 아이의 누이인 미리암은 동생이 어떻게 되는가 보려고 그 상자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왔다가 동생이 애굽 공주에게 구출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주에게 달려가 아이에게 젖을 줄 유모를 불러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공주는 그렇게 하라고 명하여 미리암은 아이의 생모인 요베겟을 불러오게 하고 요베겟은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먹여 양육하게 됩니다.
이윽고 아이는 젖을 뗀 후에 공주의 아들이 되고 물에서 건져 낸 자라는 뜻의 모세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라서 비록 신분은 애굽의 왕자이지만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고 노예민족인 히브리인으로 돌아오게 되고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민족을 애굽에서 구해내는 준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2003년 어버이 주일입니다.
이날은 우리를 이 땅에 나게 하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들의 은혜를 기억하고 효도하는 결단을 하게 하시려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주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에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자 모세의 어머니 요베겟의 모세 사랑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요베겟의 행적을 통해서 나의 부모를 생각하고 그분들의 사랑을 감사하고 귀하게 여기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감화 감동 되셔서 부모님의 은혜와 감사하고 효도 잘하시는 북실교회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요베겟은 아들 모세에게 어떤 사랑을 베풀었습니까
1. 놀라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레위 족속중 한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1-2)
요베겟이 아들을 낳아보니 너무도 준수하게 생겼습니다.
물론 모세가 인물이 훌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준수란 말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준수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보면 자기 아이는 다 준수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님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내 자식은 다 천재 같고 잘 생기고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남의 아이가 하면 별것 아닌데 내 아이가 하면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신기한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의 한 가난한 가정에 아이가 5명이나 있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해서 장래는커녕 지금 당장도 배부르게 못 먹이는 집이었습니다.
측은히 여긴 이웃이 아이 중에 하나를 부잣집의 양자로 보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입을 하나 줄이는 것도 큰 도움이 되는 때여서 결심을 하고 누구를 양자로 보낼까 하고 어느 날 밤 아이들이 잠자는 방에서 하나를 고를려고 했습니다.
제일 큰 아들은 장자이니까 안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유난히 약해서 친 엄마인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할 것 같아서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낼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는 성격이 너무 좋아서 형제들의 우애를 커서까지 돈독하게 할 것 같아서 아까워서 안되겠다 했습니다.
넷째는 머리가 비상해서 공부를 잘할 것 같아서 아까웠습니다.
다섯째는 막내이니 그 어린것을 어떻게 남의 집에 보낼수 있는가 그래서 양자로는 못보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있으시고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오늘이 있기까지 살았습니다.
요베겟이 아이가 준수하게 생겨서 석달 동안을 애굽군대에게 들키지 않고 감추며 기를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가 자식을 얼마만큼 사랑하는 가를 묘사해 주는 말입니다.
이 놀라웁고 끝없는 사랑을 모세만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도 똑같이 우리 부모님에게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아는지 아십니까
나의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난 자식으로, 영특한 자식으로, 착한 자식으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고 준수하게 여기며 우리를 낳아 사랑해 주시고 길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사랑을 감사하며 잊지 마시고 그분들에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효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수고와 아픔을 자원하여 감당하였습니다.
요게벳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석 달을 다락방에 숨겨 키웠습니다.
아이는 어리니까 엄마의 이 기막힌 처지를 알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을 것입니다.
이 소리가 밖에 들리면 아이는 잡혀가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니 요베겟은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아이를 달랬을 것이고 아마도 같이 소리 죽여 울면서 아이를 달래어 석달을 키웠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돈을 받고 할수 있겠습니까
이 찢어진 마음을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보상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할수 있었던 것은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아픔의 소고를 수고로 여기지도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더 이상은 아이의 울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수 없이 아이를 갈대 상자에 담아서 강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물에 띄워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갈대 상자를 만들며 하염없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 상자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을 정성을 다하여 칠하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어머니의 기가 막힌 가슴에 가슴을 찢으며 '아가야 아가야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거라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거라' 하고 수도 없이 울고 되뇌이며 갈대 상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는 아기를 그 갈대 상자에 넣고 두껑을 닫고 강물에 띄워 보내는 어미의 마음을 이 시간 부족한 종의 둔한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수도 없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수도 없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이 아이를 지켜 주시옵소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원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결혼식에 간 적이 있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 신부가 신부측 부모님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동안 잘 키워 주셔서 오늘 결혼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열심히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신부도 울고 신부 어머니도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집가는 딸을 보고도 눈물이 나올진대 요베겟은 아들이 강물에 빠져 죽을지, 아니면 물에서는 구원을 받더라도 애굽 군인의 손에 죽을지, 아니면 다행히 그의 생명을 구해줄 자의 손에 가게될지 모르기 때문에 감당하며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띄워 보냈을 것입니다.
이 아픔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기꺼이 이 아픔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만 어머니 요베겟의 이 폭포 같은 사랑을 받고 살았겠습니까
우리도 똑같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오늘에 이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수고와 사랑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넉넉히 우리에게 하실수 있으시고 지금 어린이를 기르는 어머니도 할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을 기억하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놀라운 사랑을 나에게 아낌없이 주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여 효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습니다.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며 살수 있었고 나중에 잘되면 애굽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장성한 후에 이 모든 부귀영화와 장래의 권세를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왕자의 자리, 대접받는 영화의 자리, 부귀와 호의 호식과 권세가 보이는 그 귀한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나와 노예민족인 히브리인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한번 노예이면 대를 이어 노예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독립한다는 것은 정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예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민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애굽인을 공격하게 됩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11-12)
모세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수 있었을 까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호의 호식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배하는 애굽인이라도 노예 노릇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 보다는 못하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 모든 권세자들 보다 낫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자의 자리를 아낌없이 박차고 현실은 노예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의 지리로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시편 84편의 기자입니다. 그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여호와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굽 왕자의 자리보다 노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가 더 낫다는 믿음을 누구에게 배웠겠습니까 애굽 궁정에서 배웠겠습니까 아니면 양모인 애굽 공주에게 배웠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어머니 요베겟에게서 배웠습니다.
모세는 젖 땔 때까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그 기간은 불과 1-2년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어쩔수 없어서 애굽공주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아들이고 레위 지파의 후손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 지파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세를 현실상황에 묻어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젖을 먹일 때마다 '너는 히브리 인이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의 지파이다' 하며 젖을 먹였을 것이고 자장가를 부를 시간마다 자장가 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을 불러 주었고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옹아리를 할 때는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며 여호와 하나님이 너의 여호와 하나님임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그의 머리에는 이 귀한 믿음의 진리가 입력되었을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의 가치와 귀중성을 아는 영적 지혜를 머리와 가슴에 간직하였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왕궁을 박차고 나와 히브리인들과 함께 흙벽돌을 찍는 노예의 자리로 돌아오게 한줄로 믿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어머니의 손을 따라 엘리 제사장에게 인도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엄마를 떠나 제사장 엘리 밑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설경은 분명히 아이가 어리더라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인 사무엘이 엄마의 이 기막힌 소리를 듣고 싫다고 하거나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듣고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그 어머니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 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1:27-28)
그러면 사무엘은 특별한 아이여서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도 젖 땔 때까지의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모세도 사무엘도 이런 어머니의 신앙교육으로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가 되고 민족을 구원하며 성경에 부러운 준경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신앙을 물려 받은 성도 여러분!
나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신앙을 물려준 부모님에게 감사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나도 이 신앙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 주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좋은 부모님께 이 복된 어버이 주일 아침에 감사하고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효도하시는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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