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모세 부모의 자녀양육
본문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 성도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어린이들이 건전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속히 오게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처럼 지혜와 키가 자라고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아파트에 중3의 남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여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걸핏하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부인과 자녀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댔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중1의 여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이 학생의 부모는 자녀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므로 이 여학생은 아주 행복하였습니다.
그 날도 중3 남학생은 아버지로부터 온갖 행패를 당하고는 홧김에 부엌에 있는 과도를 품에 품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중1의 여학생이 친구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오다가 아파트 앞에서 헤어져 자기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중1 여학생을 보는 순간 심술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중3 남학생은 급하게 여학생 뒤를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기가 가지고 간 과도로 그 여학생을 상해하였습니다.
이래서 나온 말이 이 세상에는 문제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녀는 없다고 했습니다.
연어나 은어 같은 물고기들에게는 소위 회귀성이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섬진강이나 남대천 등에서 알을 부화시켜 치어로 키우다가 방류하면 이 물고기들은 크면서 바다로 나가 자라게 됩니다.
다 자란 연어는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알래스카 바다까지도 갑니다.
그러다 자라서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자신들의 모천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합니다.
강한 회귀성 본능을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연어나 은어보다 더 강한 회귀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의 회귀성입니다.
어릴 때의 신앙 교육은 저들의 평생을 신앙의 삶으로 살게 해 줍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잠시 신앙을 잊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막 10:14절에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자기 자녀를 예수께 데려와 기도를 받고 싶었든 어떤 부모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부모를 꾸짖고 제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그 어린이를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시기를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와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 부모들과 어른들에게 주시는 우리 주님의 아주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있었던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를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시켰습니까
1. 2절에 부모가 아기를 보니 "잘 생겼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 털은 부드럽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 자녀 예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탈무드에는 자기 자녀를 아름답게 보는 이 눈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잘 보살피도록 어머니를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만일 내 자식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내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그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겠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사탄이 이런 우리 부모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만도 못한 부모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 2절에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라고 했습니다.
비록 모세의 부모가 아니라도 부모의 눈에는 그 자녀가 잘 생겨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의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눈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한 것은 평범한 말이 아닙니다.
심지어 히11:23에 보면 그 자녀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임금의 명령까지도 무서워 아니 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아름다움에 관한 참된 의미에 대하여 사도행전7:20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 대제사장 앞에서 돌에 맞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친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모세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모세의 외모가 정말 아름다웠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세야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이 아이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그 일을 감당할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는 다름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배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하여 그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께서는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하늘나라 주인공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단지 동물적인 본능으로만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슴도치 정도의 사랑으로만 사랑하는 부모가 되지 말기 바랍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믿음으로 모세를 낳았으며 믿음의 눈으로 자기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자녀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의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양육하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세상에 부모 치고 자기 자녀를 잘 키우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혜롭고 훌륭하게 키우기를 원하고 또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 문제는 지나친 부모들의 기대가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어 오히려 자녀들의 장래를 그르치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골3:21에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낙심케 하지 않도록 하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키울 수 있습니까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했습니까
출2:3에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 사용된 "갈대 상자"라는 말이 옛날 노아의 "방주"라는 말과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방주는 바로 오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열심히 교회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 오면 공부 못하는 줄만 알고 있어요.
지금 저가 구미여고 솔라이트 경건예배 한 달에 두 번씩 인도하고 있는데 약 50여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이쁘고 잘생긴 아이들입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찬양하고 서로 중보하며 기도하고 교제합니다.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갑니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금식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일수록 교회로 보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빗나가지 않죠.
오늘 신약 본문에 부모처럼 여러분의 자녀를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로 데려가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었더니 온갖 장애를 넘어 마침내 바로의 공주의 품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고 어머니 품에서 말씀으로 교육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모세로 모세 되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자녀는 육신의 부모도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자기 부모도 버립니다.
교회를 떠난 자녀는 가정도 우습게 여깁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품에, 그의 인도에 맡깁니다.
그랬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 모세를 통해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예수님께 데려오는 부모를 가로막은 제자들을 우리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혹 여러분이나 여러분 가정에는 우리 주님께 책망 받을 일은 없습니까 "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싶은데 부모는 그 놈의 공부 때문에 책가방 싸서 학원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가 예수님께로 아이들이 가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모세의 부모는 꿈을 심어 키웠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기가 한 일을 자녀도 해야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부모들은 자기는 이루지 못했으나 자녀들이 부모대신 그것을 이루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부모들의 빗나간 기대가 자녀를 노엽게 하고 낙심케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부모 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도록 키우겠습니까
창22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이삭의 나이도 상당했습니다.
얼마든지 아버지에게 항거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토록 아버지께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은 아브라함은 그 사랑하는 자녀 이삭의 가슴속에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꿈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모리아 산의 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장 실감 있게 예표해 주었습니다.
부모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교회의 목사에 말에 순종하고 늘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 자식도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왜 자기 자녀가 부귀 영광 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습니까
기왕 아들이 애굽 공주의 품에 안기게 되어 출세의 길이 열렸는데 이런 기회를 왜 놓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요게벳은 모세의 가슴속에 세속적인 출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장했을 때 그는 애굽에서 누리는 죄악의 영광을 마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당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이라고 하는 역사상 최대의 드라마를 연출하도록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 아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본 어머니 요게벳은 그 아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들에게 자신의 행복과 영광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노우 대책의 일환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늙어 병들면 자식 득 좀 볼려고 안간힘을 다 써서 돈 벌고 집사고 재산 물려 주고 합니다만 그 놈의 자식이 병든 부모 잘 봉양할까요.
꿈 깨십시오.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내 자신은 안 그럴 거 같다고요.
요게벳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 공주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친어머니 품에서 성장하도록 해 주신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보다 더 아름다운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의 품에 안겨 주신 그 크신 뜻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모세의 어머니처럼 여러분이 그 자녀들의 가슴에 믿음으로 꿈을 심어주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저 바깥의 믿지 않는 부모들처럼 헛된 욕망의 포로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외 한 두 가지 못해도 한 시간이라도 더 교회로 주님께로 데려오고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여건은 저 나일 강의 물결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눈으로 내 자녀를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인줄 알고 신앙으로 양육할 때 여러분의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하여 이 땅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게 됩니다.
위대한 모세의 인생과 그 놀라운 사역 배후에는 위대한 모세의 어머니의 아름다운 양육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키우면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 성도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어린이들이 건전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속히 오게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처럼 지혜와 키가 자라고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아파트에 중3의 남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여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걸핏하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부인과 자녀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댔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중1의 여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이 학생의 부모는 자녀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므로 이 여학생은 아주 행복하였습니다.
그 날도 중3 남학생은 아버지로부터 온갖 행패를 당하고는 홧김에 부엌에 있는 과도를 품에 품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중1의 여학생이 친구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오다가 아파트 앞에서 헤어져 자기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중1 여학생을 보는 순간 심술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중3 남학생은 급하게 여학생 뒤를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기가 가지고 간 과도로 그 여학생을 상해하였습니다.
이래서 나온 말이 이 세상에는 문제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녀는 없다고 했습니다.
연어나 은어 같은 물고기들에게는 소위 회귀성이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섬진강이나 남대천 등에서 알을 부화시켜 치어로 키우다가 방류하면 이 물고기들은 크면서 바다로 나가 자라게 됩니다.
다 자란 연어는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알래스카 바다까지도 갑니다.
그러다 자라서 알을 낳을 시기가 되면 자신들의 모천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합니다.
강한 회귀성 본능을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연어나 은어보다 더 강한 회귀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의 회귀성입니다.
어릴 때의 신앙 교육은 저들의 평생을 신앙의 삶으로 살게 해 줍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잠시 신앙을 잊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막 10:14절에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자기 자녀를 예수께 데려와 기도를 받고 싶었든 어떤 부모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부모를 꾸짖고 제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그 어린이를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시기를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와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 부모들과 어른들에게 주시는 우리 주님의 아주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있었던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를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시켰습니까
1. 2절에 부모가 아기를 보니 "잘 생겼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 털은 부드럽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 자녀 예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탈무드에는 자기 자녀를 아름답게 보는 이 눈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잘 보살피도록 어머니를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만일 내 자식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내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그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겠습니까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사탄이 이런 우리 부모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고슴도치만도 못한 부모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출애굽기 본문 2절에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라고 했습니다.
비록 모세의 부모가 아니라도 부모의 눈에는 그 자녀가 잘 생겨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의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눈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한 것은 평범한 말이 아닙니다.
심지어 히11:23에 보면 그 자녀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임금의 명령까지도 무서워 아니 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아름다움에 관한 참된 의미에 대하여 사도행전7:20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 대제사장 앞에서 돌에 맞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친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모세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모세의 외모가 정말 아름다웠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세야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이 아이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그 일을 감당할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는 다름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배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하여 그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께서는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하늘나라 주인공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단지 동물적인 본능으로만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슴도치 정도의 사랑으로만 사랑하는 부모가 되지 말기 바랍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믿음으로 모세를 낳았으며 믿음의 눈으로 자기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자녀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줄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의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양육하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세상에 부모 치고 자기 자녀를 잘 키우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혜롭고 훌륭하게 키우기를 원하고 또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 문제는 지나친 부모들의 기대가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어 오히려 자녀들의 장래를 그르치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골3:21에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낙심케 하지 않도록 하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키울 수 있습니까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했습니까
출2:3에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 사용된 "갈대 상자"라는 말이 옛날 노아의 "방주"라는 말과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방주는 바로 오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열심히 교회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 오면 공부 못하는 줄만 알고 있어요.
지금 저가 구미여고 솔라이트 경건예배 한 달에 두 번씩 인도하고 있는데 약 50여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이쁘고 잘생긴 아이들입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찬양하고 서로 중보하며 기도하고 교제합니다.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갑니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금식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일수록 교회로 보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빗나가지 않죠.
오늘 신약 본문에 부모처럼 여러분의 자녀를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로 데려가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었더니 온갖 장애를 넘어 마침내 바로의 공주의 품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고 어머니 품에서 말씀으로 교육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가 모세로 모세 되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자녀는 육신의 부모도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자기 부모도 버립니다.
교회를 떠난 자녀는 가정도 우습게 여깁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품에, 그의 인도에 맡깁니다.
그랬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 모세를 통해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예수님께 데려오는 부모를 가로막은 제자들을 우리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혹 여러분이나 여러분 가정에는 우리 주님께 책망 받을 일은 없습니까 "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싶은데 부모는 그 놈의 공부 때문에 책가방 싸서 학원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가 예수님께로 아이들이 가는 것은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모세의 부모는 꿈을 심어 키웠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기가 한 일을 자녀도 해야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부모들은 자기는 이루지 못했으나 자녀들이 부모대신 그것을 이루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부모들의 빗나간 기대가 자녀를 노엽게 하고 낙심케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부모 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도록 키우겠습니까
창22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이삭의 나이도 상당했습니다.
얼마든지 아버지에게 항거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토록 아버지께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은 아브라함은 그 사랑하는 자녀 이삭의 가슴속에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꿈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모리아 산의 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장 실감 있게 예표해 주었습니다.
부모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교회의 목사에 말에 순종하고 늘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 자식도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왜 자기 자녀가 부귀 영광 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습니까
기왕 아들이 애굽 공주의 품에 안기게 되어 출세의 길이 열렸는데 이런 기회를 왜 놓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요게벳은 모세의 가슴속에 세속적인 출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장했을 때 그는 애굽에서 누리는 죄악의 영광을 마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당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이라고 하는 역사상 최대의 드라마를 연출하도록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 아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본 어머니 요게벳은 그 아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들에게 자신의 행복과 영광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노우 대책의 일환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늙어 병들면 자식 득 좀 볼려고 안간힘을 다 써서 돈 벌고 집사고 재산 물려 주고 합니다만 그 놈의 자식이 병든 부모 잘 봉양할까요.
꿈 깨십시오.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내 자신은 안 그럴 거 같다고요.
요게벳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 공주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친어머니 품에서 성장하도록 해 주신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보다 더 아름다운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의 품에 안겨 주신 그 크신 뜻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모세의 어머니처럼 여러분이 그 자녀들의 가슴에 믿음으로 꿈을 심어주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저 바깥의 믿지 않는 부모들처럼 헛된 욕망의 포로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외 한 두 가지 못해도 한 시간이라도 더 교회로 주님께로 데려오고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여건은 저 나일 강의 물결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눈으로 내 자녀를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인줄 알고 신앙으로 양육할 때 여러분의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의 자녀를 통하여 이 땅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게 됩니다.
위대한 모세의 인생과 그 놀라운 사역 배후에는 위대한 모세의 어머니의 아름다운 양육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녀로 키우면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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