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기의 자녀를 지키시는 하나님
본문
지난주, 저는 이가 아파서 치과를 찾았었습니다. ‘치과’무서운()곳 아닙니까 엘리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온 어머니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치과는 디따() 아프지' 그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안에 '두려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이어서,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어금니 신경치료가 제일 아프답니다' ... 그리고는 ‘윙~’하는 기계음... '
저는 속으로 시편을 암송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라" (시23) ..
이어서 의사선생님의 치료는 부드러워졌답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을 둘러싼 소리(!)에 예민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요동합니다. 힘들어 합니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상황, 상황의 소리는 어떤 것입니까 30%의 사람들이 저축이 아닌, 빚으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또한 그만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마지노선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안해 하며 한 달, 한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저 나락으로 떨어질런지를 걱정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어려운 것도 힘들지만, 내일도 그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데에 그 답답함과 불안함은 더해 갑니다.
힘든 사람앞에 서있습니다. 힘든 현실앞에 서있습니다. 때로는 난감한 처지임을 발견하게됩니다. 당신은 어떤 상황이십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안에 서있습니까 불안하십니까 분노가 일어납니까...
사람은 상황에 약합니다.
보이는 것에 크게 요동합니다. 그것들에 의해서 하루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좋다가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애인을 만나는 기분과 직장 상사를 만나는 기분의 교차’..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을 경험하며 삽니다. 상황! 그것이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사람은 마치, ‘상황의 노예’같습니다.
베드로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배 밖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물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성난 파도를 보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두려움이 임했고 그 두려움이 그자신 전체를 물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상황에 시선(마음)을 빼앗기면 장사가 없습니다’. 상황은 종종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무너뜨립니다.
사단은 이러한 인간들의 약점을 잘압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상황을 보게 하지요. 상황에 인생을 메몰시키고자 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그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모두가 다 상황에 약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안은 소극적으로는, 상황이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본질적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단은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상황을 볼 때 무너진다는 것을!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또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어떤 곳에라도 함께 계셔서 그의 자녀들을 건지시고 붙드시고 힘주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그러므로 신앙이란 행위이전에 ‘see action!’ 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을 병에 걸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놋뱀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믿음은 보는 것입니다. 믿는 것을 우러러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보는 것에 따라서 살기도 죽기도 합니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키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번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번성을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너뜨리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이스라엘의 남자가 태어나면 다 죽여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음 세대를 만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치 바람앞에 촛불처럼..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오직 딸만 낳아야 살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모세라는 남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의 부모는 어찌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식을 죽는 데에 내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숨겨야 하는지, 그런데 숨길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아들, 모세를 숨길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최악의 상황속에 있습니다! 도저히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아래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가지 길을 택합니다. 아이를 역청을 발라 물이 새어들지 않는 갈대 상자에 넣어서 하숫가에 띄우는 것이었습니다. '하숫가의 흐름에 맡긴 것'입니다.
믿음은 종종 이렇게 최후에 발휘됩니다. 나의 두 손을 들 즈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그 때(!)에, 거기(!)에는 애굽왕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하필 그녀는 왜 거기서! 그 때에! ... 그리고 그녀가 갈대 상자의 아기, 모세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그 애굽의 공주의 마음에 히브리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확~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갈대상자 속의 아이를 ‘애굽의 궁’으로, 이스라엘 남자아기를 다 죽이라고 명한 그 ‘바로의 궁’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히브리 아이를 위하여 히브리 여인을 불러다가 양육을 시키라고 합니다. 양육비까지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그 역할을 누가 했을까요 그 갈대상자 안에 있던 ‘아기의 어머니’ 모세의 어머니 였습니다! 놀랍지않습니까! 세상에, 자기 자식을 자기가 키우면서 양육비까지 챙기()다니요~
자, 보십시오. 그 아이는 태어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가운데서 났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곳’에서 ‘최고의 조건속에서’ 양육을 받게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위태한 시대에,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장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셨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의 백성들을 살피시고 지키십니다. 그의 자녀들이 생각해 낼 수도 없는 묘책을 베푸시면서! “그는 기묘자라, 모사라” ... 네, 그의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도 지혜로우시며 안전한 사랑이십니다.
바로의 위협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날마다 찾아오는 힘겨운 상황이요 위협이요, 둘러싼 환경입니다. 그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갈팡질팡하기도 합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살피시고 지키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보다 강하십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그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최상의 결과를 그의 자녀들에게 선물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오늘의 믿음'입니다! 오늘 나와 동행하셔서 나를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바울 사도가 276명을 태운 배 한 척이 풍랑속에서 위태하게 떠있습니다. 곧 거센 파도가 그 배를 삼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안전했습니다. 왜요 그 배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배를 지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그분께 소중하고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풍랑보다 강하십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이러고도(), -싸움과 수많은 범죄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입니다! 6. 25때부터, 수많은 역경의 시절속에서도 오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이 땅에 거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보살피시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에 잠기려 할 때에도 풍랑을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풍랑을 꾸짖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을 위하여서는 그렇게 많이 행하시던 기적 한 번 행하시지 않으셨지만,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행하셨는지요! 그분은 자기의 자녀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수고를 인색하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십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풍랑을 만났습니까 어떤 위협앞에 있습니까 어떤 두려운 사람앞에 있습니까 어떤 상황앞에 서있습니까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암담한 상황인가요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의 바로 그 연약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나의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분은 자기의 힘을 나타내시려고 더 가까이 오십니다. 나의 궁핍이 크면 클수록, 그분의 궁휼베푸심은 큽니다. 내게 찾아온 시험이 크면 클수록, 그분의 도우심은 더 세심하게 베풀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동일하신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자기 자녀를 돌보시고 건지시고 살리시는 일에는 언제나! 그 때나 이제나, 변함 없으십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범죄하고 숨었을 때에도 짐승을 잡아, 그들의 피를 흘리시면서까지 그를 덮어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의 위협속에서도 번번히 아브라함을 구하셨습니다. 풍랑속에서 바울을, 제자들을 건지셨습니다. 수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건지셨습니다. 그분께서(!) 당신을 건지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은 상황보다 강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환난이나 고난의 바람에 의해서도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 사랑앞에는 극복되지 못할 상황은 없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오늘도 당신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나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사 43:2~4)
그리스도인은 어려울 때가 이르면, 기막히게(!) 멋지고 통쾌한 방법으로 역사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날마다 역사히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 여인이 시력이 나빠 수술 받았다가 그만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남편은 아내가 어디를 가던지 항상 손을 잡아주었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 내일부터 당신이 한번 혼자 다녀봐요!" 여인은 섭섭했습니다.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번 넘어지기도 했고,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난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을 했습니다. "부인은 참 좋겠습니다.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을 한결같이 부인 뒤에 동승해서 극진히도 살펴주는군요”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집을 나서면 뒤에서 살폈습니다. 넘어지기라도 할 때면 더 아파했습니다. 버스를 타면 같이 타서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항상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아내는 그 깊은 사랑에 눈물을 솟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때로 나의 앞길이 안보여서 갈팡질팡 할 때에도, 그래서 넘어지기도 할 때에도, 그래서 서러운 눈물이 날 때에도, 그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나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홀로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가는 줄알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지친채로 주저앉을 줄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사랑하는 이가 뒤에서 지켜보고 또 지켜주고 있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등 뒤에 계십니다. 험한 풍랑속에서도 건져주시고, 캄캄한 데에서 헤멜때에도 인도하십니다.
저는 속으로 시편을 암송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라" (시23) ..
이어서 의사선생님의 치료는 부드러워졌답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을 둘러싼 소리(!)에 예민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요동합니다. 힘들어 합니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상황, 상황의 소리는 어떤 것입니까 30%의 사람들이 저축이 아닌, 빚으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또한 그만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마지노선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안해 하며 한 달, 한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저 나락으로 떨어질런지를 걱정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어려운 것도 힘들지만, 내일도 그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데에 그 답답함과 불안함은 더해 갑니다.
힘든 사람앞에 서있습니다. 힘든 현실앞에 서있습니다. 때로는 난감한 처지임을 발견하게됩니다. 당신은 어떤 상황이십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안에 서있습니까 불안하십니까 분노가 일어납니까...
사람은 상황에 약합니다.
보이는 것에 크게 요동합니다. 그것들에 의해서 하루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좋다가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애인을 만나는 기분과 직장 상사를 만나는 기분의 교차’..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을 경험하며 삽니다. 상황! 그것이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사람은 마치, ‘상황의 노예’같습니다.
베드로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배 밖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물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성난 파도를 보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두려움이 임했고 그 두려움이 그자신 전체를 물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상황에 시선(마음)을 빼앗기면 장사가 없습니다’. 상황은 종종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무너뜨립니다.
사단은 이러한 인간들의 약점을 잘압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상황을 보게 하지요. 상황에 인생을 메몰시키고자 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그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모두가 다 상황에 약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안은 소극적으로는, 상황이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본질적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단은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상황을 볼 때 무너진다는 것을!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또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어떤 곳에라도 함께 계셔서 그의 자녀들을 건지시고 붙드시고 힘주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그러므로 신앙이란 행위이전에 ‘see action!’ 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을 병에 걸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놋뱀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믿음은 보는 것입니다. 믿는 것을 우러러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보는 것에 따라서 살기도 죽기도 합니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키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번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번성을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너뜨리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이스라엘의 남자가 태어나면 다 죽여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음 세대를 만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치 바람앞에 촛불처럼..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오직 딸만 낳아야 살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모세라는 남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의 부모는 어찌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식을 죽는 데에 내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숨겨야 하는지, 그런데 숨길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아들, 모세를 숨길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최악의 상황속에 있습니다! 도저히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아래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가지 길을 택합니다. 아이를 역청을 발라 물이 새어들지 않는 갈대 상자에 넣어서 하숫가에 띄우는 것이었습니다. '하숫가의 흐름에 맡긴 것'입니다.
믿음은 종종 이렇게 최후에 발휘됩니다. 나의 두 손을 들 즈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그 때(!)에, 거기(!)에는 애굽왕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하필 그녀는 왜 거기서! 그 때에! ... 그리고 그녀가 갈대 상자의 아기, 모세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그 애굽의 공주의 마음에 히브리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확~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갈대상자 속의 아이를 ‘애굽의 궁’으로, 이스라엘 남자아기를 다 죽이라고 명한 그 ‘바로의 궁’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히브리 아이를 위하여 히브리 여인을 불러다가 양육을 시키라고 합니다. 양육비까지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그 역할을 누가 했을까요 그 갈대상자 안에 있던 ‘아기의 어머니’ 모세의 어머니 였습니다! 놀랍지않습니까! 세상에, 자기 자식을 자기가 키우면서 양육비까지 챙기()다니요~
자, 보십시오. 그 아이는 태어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가운데서 났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곳’에서 ‘최고의 조건속에서’ 양육을 받게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위태한 시대에, 가장 안전한 곳에서 장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셨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의 백성들을 살피시고 지키십니다. 그의 자녀들이 생각해 낼 수도 없는 묘책을 베푸시면서! “그는 기묘자라, 모사라” ... 네, 그의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도 지혜로우시며 안전한 사랑이십니다.
바로의 위협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날마다 찾아오는 힘겨운 상황이요 위협이요, 둘러싼 환경입니다. 그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갈팡질팡하기도 합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살피시고 지키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보다 강하십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그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최상의 결과를 그의 자녀들에게 선물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오늘의 믿음'입니다! 오늘 나와 동행하셔서 나를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바울 사도가 276명을 태운 배 한 척이 풍랑속에서 위태하게 떠있습니다. 곧 거센 파도가 그 배를 삼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안전했습니다. 왜요 그 배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배를 지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그분께 소중하고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풍랑보다 강하십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이러고도(), -싸움과 수많은 범죄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입니다! 6. 25때부터, 수많은 역경의 시절속에서도 오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이 땅에 거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보살피시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에 잠기려 할 때에도 풍랑을 꾸짖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풍랑을 꾸짖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을 위하여서는 그렇게 많이 행하시던 기적 한 번 행하시지 않으셨지만,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행하셨는지요! 그분은 자기의 자녀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수고를 인색하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십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풍랑을 만났습니까 어떤 위협앞에 있습니까 어떤 두려운 사람앞에 있습니까 어떤 상황앞에 서있습니까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암담한 상황인가요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의 바로 그 연약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나의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분은 자기의 힘을 나타내시려고 더 가까이 오십니다. 나의 궁핍이 크면 클수록, 그분의 궁휼베푸심은 큽니다. 내게 찾아온 시험이 크면 클수록, 그분의 도우심은 더 세심하게 베풀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동일하신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자기 자녀를 돌보시고 건지시고 살리시는 일에는 언제나! 그 때나 이제나, 변함 없으십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범죄하고 숨었을 때에도 짐승을 잡아, 그들의 피를 흘리시면서까지 그를 덮어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의 위협속에서도 번번히 아브라함을 구하셨습니다. 풍랑속에서 바울을, 제자들을 건지셨습니다. 수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건지셨습니다. 그분께서(!) 당신을 건지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은 상황보다 강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환난이나 고난의 바람에 의해서도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 사랑앞에는 극복되지 못할 상황은 없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오늘도 당신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나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이라!” (사 43:2~4)
그리스도인은 어려울 때가 이르면, 기막히게(!) 멋지고 통쾌한 방법으로 역사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날마다 역사히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 여인이 시력이 나빠 수술 받았다가 그만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남편은 아내가 어디를 가던지 항상 손을 잡아주었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 내일부터 당신이 한번 혼자 다녀봐요!" 여인은 섭섭했습니다.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번 넘어지기도 했고,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난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을 했습니다. "부인은 참 좋겠습니다.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을 한결같이 부인 뒤에 동승해서 극진히도 살펴주는군요”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집을 나서면 뒤에서 살폈습니다. 넘어지기라도 할 때면 더 아파했습니다. 버스를 타면 같이 타서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항상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아내는 그 깊은 사랑에 눈물을 솟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때로 나의 앞길이 안보여서 갈팡질팡 할 때에도, 그래서 넘어지기도 할 때에도, 그래서 서러운 눈물이 날 때에도, 그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나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홀로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가는 줄알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지친채로 주저앉을 줄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사랑하는 이가 뒤에서 지켜보고 또 지켜주고 있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등 뒤에 계십니다. 험한 풍랑속에서도 건져주시고, 캄캄한 데에서 헤멜때에도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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