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본문
오늘은 어린이날이요, 어린이 주일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어린이날이 주일로 겹쳐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요새는 학교가 좋아져서 6일날 쉬는 학교도 있나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으로 똑똑합니다. 얼마나 영특한지 모릅니다.
기성세대들은 변화무쌍한 시대를 따라가기에 버거운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시대를 즐기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컴퓨터 앞에서면 경직되어 버리는데 아이들은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알려줘도 열 가지를 알아버릴 정도로 머리들이 좋아졌습니다. 아마 지독한 부모들의 조기교육의 열병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만들어졌나도 모릅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똑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인간미는 사라져가고 있다는데 염려스럽습니다.
예의범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마치 왕이 된 것처럼 떠받들어 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되어 버렸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고, 어른을 우습게 여기며 오히려 말대꾸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부모들의 과잉보호로 인해 빗나간 자녀교육의 현실을 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과연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출애굽기 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으로 인해 모든 히브리인 사내아이는 다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환난의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런 긴박한 시대에서 모세의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였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진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옛말에 '농사 중에 자식 농사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내 자식만큼은 이럴 것이라고 장담을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기만 해 가지고는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면 곤란한 문제입니다.
자녀 교육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 문제는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쉽게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모세의 부모는 정말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믿음을 가진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 것인지에 대해 큰 깨달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 현실을 초월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절에서는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의 통치를 받던 시대였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막기 위해 출산하는 사내아이는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진 절망스러운 시대였습니다.
별로 좋지 못한 시대에 모세는 태어났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탄생을 예사로운 탄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임을 알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포기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자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나빠도 모세의 시대만큼 나쁘겠습니까 참으로 분위기가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성도는 자녀를 키우면서 어두운 시대를 탓해서도 안됩니다. 환경을 탓해서도 안됩니다. 돈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원을 보낼 여유가 없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녀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환경보다도 내 자녀에게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고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 위탁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에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모세를 숨겨 키웠으나 석달이 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갈대 상자를 만들고 역청으로 방수 처리를 다하고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모세의 부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녀를 책임졌다는 사실입니다.
절대적 왕권을 가진 군주정치 속에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석달을 길렀다는 것은 부모의 생명을 담보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로서도 어찌할 수 없게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약함을 가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렸습니다.
여기 '갈대 상자'는 방주라는 말입니다. 갈 상자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방주와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배는 키를 조정하여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이지만, 방주는 키도 없이 물위에 떠 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방주라고 하는 것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방주에 넣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최후에는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방주는 오늘의 교회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커 가는 자식을 매일 매시간 따라다니면서 지켜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학교로, 학원으로 보낼 때 부모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객지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서 부모 곁을 떠날 때도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방주를 만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부모가 방주를 만들어 모세를 거기에 넣었듯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거할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성장할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자녀 교육에 힘쓰고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 위대한 목표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라고 했습니다.
26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나일 강변에서 자기 동생 모세가 어떻게 되나 지켜보던 모세의 누이는 바로의 공주가 자기 아들로 입양하자 바로의 공주에게 찾아가 유모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소개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며 애굽의 학문과 문화를 익히면서 자랐지만 그 마음속에는 애굽인들이 알지 못하던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났습니다.
세상의 권좌를 누릴 좋은 기회를 가진 모세가 어떻게 공주의 아들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2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할 수 있는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철저하게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24절에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저 옷이나 몇 벌 사주고, 간식이나 사주는 이런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학교나 보내고 부모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젖을 먹이면서, 때론 모세의 곁에서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신앙 교육이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릴 만한 능력을 가지게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가진 신앙을 모세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어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바칠 만큼 여러분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 보았습니까
알량한 기도 몇 마디로 내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역사학자 '벤륜'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5천년 역사란 그들 민족이 자손에게 두 가지 유산을 물려주는 역사이다. 하나는 한 권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한 채의 집이다. 한 권의 책이란 성경이며, 한 채의 집이란 예루살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을 철저하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생활!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양보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부모가 여기에 실패하면 여러분의 자식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자식에게 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현대 감각에 맞는 옷을 입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세상 것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영적인 문제를 부모가 소홀히 하면 그것처럼 큰 수치는 없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신앙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얻는 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얻을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비록 고난을 받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했습니다. 고난을 피해 안일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아무리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어려워도 고난 받는 것이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 교육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모된 성도 여러분! 정말 자식을 위해 눈물 섞인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힘을 써 보았습니까
좋지 못한 환경이라고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위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자녀를 위탁하는 부모는 현명한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진정한 목표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죄악의 낙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땅의 보화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실 상급이 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지혜 있고, 현명한 부모가 되어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마 아이들이 어린이날이 주일로 겹쳐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요새는 학교가 좋아져서 6일날 쉬는 학교도 있나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으로 똑똑합니다. 얼마나 영특한지 모릅니다.
기성세대들은 변화무쌍한 시대를 따라가기에 버거운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시대를 즐기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컴퓨터 앞에서면 경직되어 버리는데 아이들은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알려줘도 열 가지를 알아버릴 정도로 머리들이 좋아졌습니다. 아마 지독한 부모들의 조기교육의 열병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만들어졌나도 모릅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똑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인간미는 사라져가고 있다는데 염려스럽습니다.
예의범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마치 왕이 된 것처럼 떠받들어 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되어 버렸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고, 어른을 우습게 여기며 오히려 말대꾸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부모들의 과잉보호로 인해 빗나간 자녀교육의 현실을 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과연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출애굽기 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으로 인해 모든 히브리인 사내아이는 다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환난의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런 긴박한 시대에서 모세의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였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진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옛말에 '농사 중에 자식 농사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내 자식만큼은 이럴 것이라고 장담을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기만 해 가지고는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면 곤란한 문제입니다.
자녀 교육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 문제는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쉽게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모세의 부모는 정말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녀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믿음을 가진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 것인지에 대해 큰 깨달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1. 현실을 초월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절에서는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7장 20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의 통치를 받던 시대였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막기 위해 출산하는 사내아이는 무조건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진 절망스러운 시대였습니다.
별로 좋지 못한 시대에 모세는 태어났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탄생을 예사로운 탄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임을 알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포기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자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나빠도 모세의 시대만큼 나쁘겠습니까 참으로 분위기가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성도는 자녀를 키우면서 어두운 시대를 탓해서도 안됩니다. 환경을 탓해서도 안됩니다. 돈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원을 보낼 여유가 없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녀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환경보다도 내 자녀에게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고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 위탁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에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수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모세를 숨겨 키웠으나 석달이 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갈대 상자를 만들고 역청으로 방수 처리를 다하고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모세의 부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녀를 책임졌다는 사실입니다.
절대적 왕권을 가진 군주정치 속에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석달을 길렀다는 것은 부모의 생명을 담보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로서도 어찌할 수 없게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약함을 가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렸습니다.
여기 '갈대 상자'는 방주라는 말입니다. 갈 상자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방주와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배는 키를 조정하여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이지만, 방주는 키도 없이 물위에 떠 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방주라고 하는 것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방주에 넣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최후에는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방주는 오늘의 교회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커 가는 자식을 매일 매시간 따라다니면서 지켜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학교로, 학원으로 보낼 때 부모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객지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서 부모 곁을 떠날 때도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방주를 만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부모가 방주를 만들어 모세를 거기에 넣었듯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거할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성장할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자녀 교육에 힘쓰고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 위대한 목표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라고 했습니다.
26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나일 강변에서 자기 동생 모세가 어떻게 되나 지켜보던 모세의 누이는 바로의 공주가 자기 아들로 입양하자 바로의 공주에게 찾아가 유모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소개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라며 애굽의 학문과 문화를 익히면서 자랐지만 그 마음속에는 애굽인들이 알지 못하던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났습니다.
세상의 권좌를 누릴 좋은 기회를 가진 모세가 어떻게 공주의 아들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25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할 수 있는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철저하게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24절에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저 옷이나 몇 벌 사주고, 간식이나 사주는 이런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학교나 보내고 부모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그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젖을 먹이면서, 때론 모세의 곁에서 너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신앙 교육이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릴 만한 능력을 가지게 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가진 신앙을 모세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어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목숨을 바칠 만큼 여러분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 보았습니까
알량한 기도 몇 마디로 내 자녀를 믿음으로 키웠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역사학자 '벤륜'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5천년 역사란 그들 민족이 자손에게 두 가지 유산을 물려주는 역사이다. 하나는 한 권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한 채의 집이다. 한 권의 책이란 성경이며, 한 채의 집이란 예루살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을 철저하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생활!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양보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부모가 여기에 실패하면 여러분의 자식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자식에게 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현대 감각에 맞는 옷을 입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세상 것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영적인 문제를 부모가 소홀히 하면 그것처럼 큰 수치는 없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신앙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얻는 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얻을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비록 고난을 받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했습니다. 고난을 피해 안일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아무리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어려워도 고난 받는 것이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 교육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부모된 성도 여러분! 정말 자식을 위해 눈물 섞인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힘을 써 보았습니까
좋지 못한 환경이라고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위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자녀를 위탁하는 부모는 현명한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진정한 목표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죄악의 낙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땅의 보화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실 상급이 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지혜 있고, 현명한 부모가 되어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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